장흥 회진, 소설의 바다를 걷다

[마을에서 인간과 삶을 읽다] 장흥 회진, 소설의 바다를 걷다
◆4개의 상념이 담긴 바다
바다는 호기심이 많다. 하늘 높이 솟구쳐 바위를 끌어안다가도 깊은 명상에 빠진 듯 고요하다. 때론 격하게 때론 슬그머니 커다란 혀를 내밀었다 다시 넣으면서 하루 두 번 그렇게 세상을 엿본다.
장흥 바다는 운동장 열두어 개쯤 펼친 듯하다. 그 몇 굽이를 휘돌아 은밀한 곳에 항구가 자리 잡고 있다. 신동리나 진목, 모산이나 수문포 어느 곳에서도 보이는 회령포 회진항구다. 그런데 꼭 눈썹만큼 보인다. 그래서 더욱 호기심이 난다.

장흥 바다는 색깔이 있다. 고기를 낚고 비린내 나는 여느 바다와 달리 장흥의 바다만은 사색의 바다요 허구의 바다다. 심해에 수장된 헤아릴 수 없는 이야기들이 낙지처럼 줄줄 끌려 나온다. 그러므로 장흥에서 바다는 소설의 밭이다. 파도는 문체이고 갈매기와 키조개는 소재이며 안개와 뱃고동 소리는 배경이다.
◆민중의 바다- 송기숙과 남포마을

용산에서 남포로 가는 길에 모산마을이 둥글게 분지를 형성하고 있다. 송기숙의 고향이다.
"나는 이제 시골에서는 죽어도 못 살겠어. 시골에서는 아무리 뼛골 빼도 그 더운 여름에 쭈쭈바를 하나 먹어, 콜라 한 병을 마셔?" 작가의 소설 '몽기미 마을 사람'들의 남분이 목소리가 들려오는 동네다.
송기숙은 전봉준을 닮았다. 책상머리에 앉아 손으로 글을 쓰기보다 순전 발로 쓰는 작가이다. 모산에서 장흥으로 그리고 광주로 이어지는 길 위에서 녹두장군도 자랏골의 비가도 암태도도 모두 그렇게 썼을 것이다. 그의 소설 곳곳에 구수하고 구수한 입담과 사전에도 없는 속담을 통해 전라도의 민중들의 삶을 읽어냈다.
모산에서 봄날 기막힌 벚꽃을 볼 수 있는 하천을 따라 몇 걸음 내려가면 해돋이 명소 정남진 남포마을이다.
대학 시절 운주사 설화 조사차 동행한 적이 있었다. 만난 촌로 누구에게나 인간적이었으며 따뜻한 사람이 송기숙이었다. 그것이 바로 교육자의 소신이었고 민주화의 선두에 설 수밖에 없었던 장흥의 힘이었겠구나 생각했다. 그분에게서 문학을 소설을 배우기보다 올바르게 살아가는 방법, 정의롭게 존재하는 방법을 먼저 배웠다.

◆사색의 바다- 이승우와 정남진

신동리는 뒷산이 앞까지 휘돌아 나온 곳, 갈매기가 날개를 펼치듯 바람을 막아주는 마을이다. 그래서 바다는 멀리 좌우로 손톱만큼 보인다. 그런데 묘하게 더 갈증이 났다. 보지 않으면 더 애가 타나 보다. 그 끝과 속을 알 수 없는 바다.
80년 초반 에리직톤의 초상을 읽고 한동안 잠을 설쳤다. 진정한 신은 위에서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 곁에 있다는 관점이 그 답답한 시대에 큰 위안이 되었다.
생의 이면을 읽다가는 기묘하게 작가의 자전적 냄새가 많이 났다. "작가는 여러 편의 소설을 통해 한편의 자서전을 쓰는 사람이다."라는 말에 공감이 간다.
동두마을 이승우 생가를 찾았다가 의도와 달리 아픈 부분을 엿보았다는 생각이 든다. 진즉 작가의 이력에서 중간 부분이 단절된 부분을 받아들였어야 했다. 마을 꼭대기에 집이 있으니 어쩌면 당시 가난하게 살았으리라. 다행히 그곳에서 마을 사람들을 모두 내려다보며 전지적 작가 시점을 키울 수 있었고, 먼바다를 보며 작가는 심연의 습작을 수없이 반복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만이 이토록 눈부신 영적 세계를 쓴 것이다. 순전히 그의 소설의 뿌리는 이곳임이 분명했다. 내 삶의 허기를 채워준 작가의 뿌리는 장흥이다.

◆고향의 바다- 한승원과 수문포
정남진 전망대는 남쪽 쪽빛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 바다 한쪽에 있는 회진은 이순신 장군이 명량해전을 준비한 회령포다. 금당도 신지도 약산도 고금도 등 남도의 멋진 섬들이 회진을 방어하듯 초병처럼 떠 있다. 천관산을 등진 회진은 어머니처럼 포근하다.
글쓰기는 숙명이었을 것이다. 80년대 교직원 조회는 일방적 지시만 했던 서슬 퍼런 시대였다. 학교장은 성적 향상 운운하며 직원을 닦달했다. 오직 유일신처럼 교장 목소리만 들리던 교무실 구석에서 탁탁 탁탁 무슨 소리가 들려온다. 그만 지껄이라는 소리, 모두 긴장하며 타자기 소리가 나는 곳으로 시선을 모은다. 거기 한 젊은이가 열심히 타자기를 두드리며 소설을 쓰고 있었다. 한승원 선생님이었다.

난 작가가 타자기를 쳤던 그 교무실 의자에 앉아 작가를 떠올리며, 그분의 용기를 응원했다. 선배들에게 들은 한승원 작가 이야기는 게으른 작가들의 글쓰기를 지금도 질타한다.
한승원 작가는 장흥을 가장 사랑한 작가다. 고향에서 나는 생선과 해초들이 도시에서 생긴 상처를 치유해 주었기에 지금은 그가 고향을 지킨다. 회진과 수문포 여닫이 해변. 꿈틀거리는 바다를 보고, 작가의 근육이 다시 꿈틀거리고 사유의 세계는 더없이 넓고 깊다. 한승원의 문학은 인간에 대한 그 넓이와 깊이도 가늠할 수 없이 깊고 다양하다. 바다와 인간이 궁금해질 때마다 '한승원 문학 산책길'이 있는 수문 항구로 간다.

◆예술혼 꿈꾸는 바다-이청준의 선유동
천년학 세트장에 이르면 학 울음소리가 들린다. 소리를 얻기 위해 누이 눈을 멀게 한 슬픈 소리꾼 이야기가 생각나고, 광대의 비극적 사랑 이야기를 통해 삶의 치열성과 운명을 읽는다. 작품 편편이 문장 구절마다 서늘하게 가슴을 쓸어내린다.
수능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소설이 이청준 작품이다. 그래서 읽지 않는 사람이 없고 또 읽을수록 그 깊은 맛이 난다. 작품마다 진정한 삶을 추구하는 사람의 예술혼을 미적 형상화를 통해 잘 그려냈기 때문이다.

작가는 서울에서 삶이 고달플 때는 자주 고향을 찾았다. 그에게 회진 선유동은 정화의 장소이자 출발의 장소였으며 회복의 공간이었다.
"80년대로 들어오면서 말이 극도로 억압당하고, 또 한편에서는 말이 굉장히 오염되었습니다. 그러면 말의 타락과 오염은 어디에서 회복이나 정화의 힘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인가 해서 고향의 삶의 모습을 그리게 되었습니다."
진목마을에서 가학리 가는 바다가 바라보이는 언덕에 선생님은 잠들어 계신다. 선생님이 평생 사랑하는 바다가 철썩거리는 소리에 귀 기울이면 그 속에 당신께서 신나게 소설을 쓰시는 소리가 섞여 들려온다.

◆장흥 회진 바다가 쓴 소설
송기숙의 바다는 외부 세계와의 투쟁을 통해 세상을 개혁해 나가려는 바다라면 이승우에게는 내면세계와의 끝없는 전쟁을 통해 어떤 경지에 도달하고자 하는 바다이다. 한승원은 불교적 해원의 바다라면 이승우는 기독교적 세계관과 연결된 바다다. 한승원과 이청준은 수많은 물결처럼 그 깊이를 헤아리기 어려운 다양성의 바다이다. 작가를 생각하며 걷는 장흥 바닷길은 상상력이 비늘처럼 돋아나는 신명나는 길이다.
누군가 우리나라에서 노벨문학상을 받는다면 누구일까. 다른 것은 몰라도 최소한 지역만은 분명하다. 바로 장흥이다.
작가들은 바다를 각기 다르게 읽는다. 욕망의 바다, 민중의 바다, 사념의 바다, 그리고 누구에겐 끝없이 파고들어야 할 신앙의 바다다. 오늘도 그 후손들은 생의 의미를 찾아 끊임없이 장흥 바다에 그물을 던지고 있다. 사실 소설은 뛰어난 예술가가 쓴 것은 아니다. 어쩌면 회진에서 작가는 바다인지 모른다. 바다가 쓰고 바다가 그린 작품들 말이다. 박용수 시민전문기자 toamm@hanmail.net
박용수는 화순 운주사가 있는 곳에서 태어났다. 전남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줄곧 수필 쓰기만 고집해 왔다. ‘아버지의 배코’로 등단하여, 광주문학상, 화순문학상, 광주문학 작품상 등을 수상하였다. 광주동신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재직 중이며, 작품으로 꿈꾸는 와불, 사팔뜨기의 사랑, 나를 사랑할 시간이 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
파란·분홍 수국 군락 환상적...7월 전국 '수국 축제' 기사내용 요약부산, 신안, 태안...화담숲·아침고요수목원도4est 수목원의 수국. (사진=전남 해남군·한국관광공사 '대한민국 구석구석)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서울=뉴시스] 박주연 기자 = '꽃잎마다 하늘이 보이고 구름이 흐르고 잎새마다 물 흐르는 소리 / 각박한 세상에도 서로 가까이 손 내밀며 원을 이루어 하나가 되는 꽃 / 혼자서 여름을 앓던 내 안에도 오늘은 푸르디 푸른 한다발의 희망이 피네' (이해인 '수국을 보며'中)7월이다. 수국의 계절이 무르익고 있다. 형형색색 탐스럽게 핀 수국은 더위에 지친 몸과 마음에 싱그러운 에너지를 채워준다. 안개비가 내리는 날 촉촉히 젖은 숲 속에서 만나는 산수국 군락은 환상적이기까지 하다.수국은 장마와 함께 온다. 이름도 물 수(水), 국화 국(菊)으로, 물을 좋아하는 국화라는 뜻이다. 수국의 속명인 히드란게아(Hydrangea) 역시 그리스어로 물을 뜻하는 '하이드로(hydro)'와 그릇을 뜻하는 '안게리온(angerion)'이 합쳐진 말이다.야생의 산수국에는 가장자리에 곤충을 부르는 가짜꽃(무성화), 가운데 실제 열매를 맺는 진짜꽃(유성화)이 함께 핀다. 무성화가 유성화보다 훨씬 크고 화려하다. 산수국에서 유성화를 없애고 무성화만 남겨 크고 화려하게 개량한 것이 수국이다.수국은 꽃이 피기 시작할 무렵 초록이 살짝 비치는 흰색이었다가 점차 밝은 파란색으로, 보라색으로 변한다. 토양의 산도에 따라서도 색이 달라진다. 산성 토양에서는 청색, 염기성 토양에서는 붉은색을 띈다. 그래서일까. 수국의 꽃말은 '변덕'과 '진심'이다.만개한 수국을 즐기기 위해 남도로 떠나보자. 제주 마르노블랑·휴애리 여름수국 축제, 신안 섬수국 축제, 화담숲 여름수국축제 등 수국 축제가 풍성하다. 꼭 축제가 아니어도 좋다. 제주 사려니숲길·보롬왓 등 숲길에서 만나는 산수국은 더욱 싱그럽다.[서귀포=뉴시스] 우장호 기자 = 비교적 맑은 날씨를 보이는 지난달 12일 오전 제주 도내 대표적인 수국 명소인 서귀포시 온평리 혼인지에 나들이객이 찾아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2022.06.12. woo1223@newsis.com◆제주 숲길서 만나는 수국, 환상 그 자체우리나라에서는 6월과 7월 제주와 부산, 신안, 태안 등이 수국 천지로 변한다. 안덕면 마노르블랑, 남원 휴애리 등 제주 곳곳에서 수국축제가 열린다.마르노블랑은 서귀포에 위치한 정원이 아름다운 수목원이다. 8월31일까지 수국축제를 진행한다. 제주 수국을 비롯해 전세계 30여종 7000여본의 수국을 만날 수 있다.휴애리 수국축제는 지난달 10일 시작해 이달 20일까지 이어진다. 정성스럽게 가꾼 다양한 수국을 온실, 수국정원, 수국오름 등 공원 곳곳에서 감상할 수 있다.입장료 없이 수국길을 거닐며 자연이 선물한 향연에 빠져볼 숨은 명소들도 많다.사려니숲길, 종달리 수국길, 보롬왓 수국길이 아름답다. 안덕면사무소 일대 수국거리와 고·양·부 제주의 삼성(三性)신화가 깃든 '혼인지', 제주 표선면에 위치한 보롬왓도 빼놓을 수 없는 수국 명소다.[신안=뉴시스] 도초도 수국공원. *재판매 및 DB 금지◆전남 해남·신안 수국축제 풍성전남 해남에는 국내 최대 수국 정원을 보유한 '4est 수목원'이 있다. 지난 6일부터 이달 18일까지 이 곳에서 '땅끝 해남 수국축제'가 열린다. 알록달록 수국과 피톤치드 가득한 숲이 어우러진 곳이다. 울창한 소나무 숲 아래 형형색색의 수국꽃 7000여그루가 만발하다. 파랑, 분홍, 보라, 흰색의 수국들이 무리 지어 피어 있다. 넓은 잎 수국, 떡갈잎 수국, 나무수국, 바위수국 등 200여 품종의 수국들을 살펴볼 수 있다.해남 지역에서 자생하는 산수국을 비롯해 희귀 수국도 많다. 장미꽃을 닮은 듯한 메리, 겹으로 핀 제주 겹산수국, 이국적인 아라모드, 팝콘 수국, 웨딩부케 등 신기한 수국들이 눈길을 끈다. 독특한 무늬가 새겨진 꽃송이에 꽃잎 한 장 한 장 천사가 춤을 추는 듯한 매력을 지닌 댄싱엔젤은 유난히 눈길을 끈다.전남 신안군은 오는 3일까지 '섬 수국축제'를 연다. 주제는 '팽나무 10리길에서 수국을 만나다'다. 수국공원, 환상의 정원을 중심으로 도초도 일원에서 문화·전시행사를 비롯한 스탬프투어, 해시태그 이벤트 등이 함께 진행된다.도초도 가는 길은 배편을 이용해야 한다.암태 남강선착장에서 비금 가산선착장까지 차도선으로 40분이 소요되고, 목포여객터미널에서 쾌속선을 이용해서 도초 화도로 올 경우 1시간이 소요된다.[서울=뉴시스]경기 가평 상면 아침고요수목원.◆화담숲·아침고요수목원도 수국축제곤지암 화담숲도 오는 3일까지 '여름 수국축제'를 진행한다. 100여 품종의 7만여 본의 다채롭고 화려한 수국의 향연을 만끽할 수 있다. 4500㎡ 규모의 화담숲 수국원은 17개의 테마원 가운데 여름에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시원하게 떨어지는 폭포와 짙푸른 신록 사이로 수국 군락이 꽃망울을 터트리며 숲 속에 비단길을 수 놓는다.경기 가평 아침고요수목원도 3일까지 수국전시회를 한다. 서늘한 그늘을 좋아하는 수국의 특성에 맞춰 잣나무 숲이 우거진 산책로에서 개최된다. 넓은 잎수국, 떡갈잎수국, 미국수국, 산수국 등 4가지 계열별 수국 약 120여 종을 한 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다.대구 이월드 수국 아일랜드에서는 오는 31일까지 수국의 향연을 즐길 수 있다. 낮에는 숲속에서 청량함이 느껴지는 수국꽃을, 밤에는 야간 별빛 조명에 비친 몽긍몽글한 수국꽃을 즐길 수 있다.◎공감언론 뉴시스 pjy@newsis.com
- · 핫한 남도의 여름밤, 야시장&포차거리
- · [카드뉴스] 전남 워터파크에 더위 좀 팔아보자!
- · 여름꽃의 대명사 수국의 비밀 명소, 수국밭 보성윤제림
- · 해남 가족여행지 아이들이 좋아하는 공룡박물관
- 1파란·분홍 수국 군락 환상적...7월 전국 '수국 축제'..
- 2어느 편의점주의 눈물···"14시간 일해야 월급 80만원"..
- 3여수서 일가족 탄 승용차 낭떠러지 추락···3명 부상..
- 4무알코올 맥주, 음주운전 걸릴까...직접 측정 해봤습니다..
- 5[분양캘린더]7월 첫째 주 4253가구 분양···견본주택 7곳 ..
- 6[고물가 大위기]①외환위기 이후 24년만···밀려오는 6%대 경..
- 7[상반기 부동산 결산②] 거래 급감 속 서울 아파트는 증여 늘어..
- 8'태풍 차바·에어리 대비' 김영록 전남지사, 긴급 점검 지시..
- 9[백내장보험금어쩌나①]갑자기 왜 난리인가..
- 10[집피지기]중개업소에 앉아 있다고 공인중개사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