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헤아릴 수 없는 이야기가 낙지처럼 줄줄 끌려 나온다

입력 2022.06.22. 09:58 수정 2022.06.22. 18:43 댓글 1개
[마을에서 인간과 삶을 읽다]
장흥 회진, 소설의 바다를 걷다
우리나라에서 누군가 노벨문학상을 받는다면 다른 것은 몰라도 최소한 지역은 장흥이 될 듯 하다. 사진은 장흥 회진면 소재지

[마을에서 인간과 삶을 읽다] 장흥 회진, 소설의 바다를 걷다

◆4개의 상념이 담긴 바다

바다는 호기심이 많다. 하늘 높이 솟구쳐 바위를 끌어안다가도 깊은 명상에 빠진 듯 고요하다. 때론 격하게 때론 슬그머니 커다란 혀를 내밀었다 다시 넣으면서 하루 두 번 그렇게 세상을 엿본다.

장흥 바다는 운동장 열두어 개쯤 펼친 듯하다. 그 몇 굽이를 휘돌아 은밀한 곳에 항구가 자리 잡고 있다. 신동리나 진목, 모산이나 수문포 어느 곳에서도 보이는 회령포 회진항구다. 그런데 꼭 눈썹만큼 보인다. 그래서 더욱 호기심이 난다.

선학동 세트장

장흥 바다는 색깔이 있다. 고기를 낚고 비린내 나는 여느 바다와 달리 장흥의 바다만은 사색의 바다요 허구의 바다다. 심해에 수장된 헤아릴 수 없는 이야기들이 낙지처럼 줄줄 끌려 나온다. 그러므로 장흥에서 바다는 소설의 밭이다. 파도는 문체이고 갈매기와 키조개는 소재이며 안개와 뱃고동 소리는 배경이다.


◆민중의 바다- 송기숙과 남포마을

이승우 동두마을

용산에서 남포로 가는 길에 모산마을이 둥글게 분지를 형성하고 있다. 송기숙의 고향이다.

"나는 이제 시골에서는 죽어도 못 살겠어. 시골에서는 아무리 뼛골 빼도 그 더운 여름에 쭈쭈바를 하나 먹어, 콜라 한 병을 마셔?" 작가의 소설 '몽기미 마을 사람'들의 남분이 목소리가 들려오는 동네다.

송기숙은 전봉준을 닮았다. 책상머리에 앉아 손으로 글을 쓰기보다 순전 발로 쓰는 작가이다. 모산에서 장흥으로 그리고 광주로 이어지는 길 위에서 녹두장군도 자랏골의 비가도 암태도도 모두 그렇게 썼을 것이다. 그의 소설 곳곳에 구수하고 구수한 입담과 사전에도 없는 속담을 통해 전라도의 민중들의 삶을 읽어냈다.

모산에서 봄날 기막힌 벚꽃을 볼 수 있는 하천을 따라 몇 걸음 내려가면 해돋이 명소 정남진 남포마을이다.

대학 시절 운주사 설화 조사차 동행한 적이 있었다. 만난 촌로 누구에게나 인간적이었으며 따뜻한 사람이 송기숙이었다. 그것이 바로 교육자의 소신이었고 민주화의 선두에 설 수밖에 없었던 장흥의 힘이었겠구나 생각했다. 그분에게서 문학을 소설을 배우기보다 올바르게 살아가는 방법, 정의롭게 존재하는 방법을 먼저 배웠다.

이청준 생가

◆사색의 바다- 이승우와 정남진

이승우 집

신동리는 뒷산이 앞까지 휘돌아 나온 곳, 갈매기가 날개를 펼치듯 바람을 막아주는 마을이다. 그래서 바다는 멀리 좌우로 손톱만큼 보인다. 그런데 묘하게 더 갈증이 났다. 보지 않으면 더 애가 타나 보다. 그 끝과 속을 알 수 없는 바다.

80년 초반 에리직톤의 초상을 읽고 한동안 잠을 설쳤다. 진정한 신은 위에서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 곁에 있다는 관점이 그 답답한 시대에 큰 위안이 되었다.

생의 이면을 읽다가는 기묘하게 작가의 자전적 냄새가 많이 났다. "작가는 여러 편의 소설을 통해 한편의 자서전을 쓰는 사람이다."라는 말에 공감이 간다.

동두마을 이승우 생가를 찾았다가 의도와 달리 아픈 부분을 엿보았다는 생각이 든다. 진즉 작가의 이력에서 중간 부분이 단절된 부분을 받아들였어야 했다. 마을 꼭대기에 집이 있으니 어쩌면 당시 가난하게 살았으리라. 다행히 그곳에서 마을 사람들을 모두 내려다보며 전지적 작가 시점을 키울 수 있었고, 먼바다를 보며 작가는 심연의 습작을 수없이 반복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만이 이토록 눈부신 영적 세계를 쓴 것이다. 순전히 그의 소설의 뿌리는 이곳임이 분명했다. 내 삶의 허기를 채워준 작가의 뿌리는 장흥이다.

이청준 집내

◆고향의 바다- 한승원과 수문포

정남진 전망대는 남쪽 쪽빛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 바다 한쪽에 있는 회진은 이순신 장군이 명량해전을 준비한 회령포다. 금당도 신지도 약산도 고금도 등 남도의 멋진 섬들이 회진을 방어하듯 초병처럼 떠 있다. 천관산을 등진 회진은 어머니처럼 포근하다.

글쓰기는 숙명이었을 것이다. 80년대 교직원 조회는 일방적 지시만 했던 서슬 퍼런 시대였다. 학교장은 성적 향상 운운하며 직원을 닦달했다. 오직 유일신처럼 교장 목소리만 들리던 교무실 구석에서 탁탁 탁탁 무슨 소리가 들려온다. 그만 지껄이라는 소리, 모두 긴장하며 타자기 소리가 나는 곳으로 시선을 모은다. 거기 한 젊은이가 열심히 타자기를 두드리며 소설을 쓰고 있었다. 한승원 선생님이었다.

이청준 천학동

난 작가가 타자기를 쳤던 그 교무실 의자에 앉아 작가를 떠올리며, 그분의 용기를 응원했다. 선배들에게 들은 한승원 작가 이야기는 게으른 작가들의 글쓰기를 지금도 질타한다.

한승원 작가는 장흥을 가장 사랑한 작가다. 고향에서 나는 생선과 해초들이 도시에서 생긴 상처를 치유해 주었기에 지금은 그가 고향을 지킨다. 회진과 수문포 여닫이 해변. 꿈틀거리는 바다를 보고, 작가의 근육이 다시 꿈틀거리고 사유의 세계는 더없이 넓고 깊다. 한승원의 문학은 인간에 대한 그 넓이와 깊이도 가늠할 수 없이 깊고 다양하다. 바다와 인간이 궁금해질 때마다 '한승원 문학 산책길'이 있는 수문 항구로 간다.

한승원길

◆예술혼 꿈꾸는 바다-이청준의 선유동

천년학 세트장에 이르면 학 울음소리가 들린다. 소리를 얻기 위해 누이 눈을 멀게 한 슬픈 소리꾼 이야기가 생각나고, 광대의 비극적 사랑 이야기를 통해 삶의 치열성과 운명을 읽는다. 작품 편편이 문장 구절마다 서늘하게 가슴을 쓸어내린다.

수능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소설이 이청준 작품이다. 그래서 읽지 않는 사람이 없고 또 읽을수록 그 깊은 맛이 난다. 작품마다 진정한 삶을 추구하는 사람의 예술혼을 미적 형상화를 통해 잘 그려냈기 때문이다.

회진항 벽화

작가는 서울에서 삶이 고달플 때는 자주 고향을 찾았다. 그에게 회진 선유동은 정화의 장소이자 출발의 장소였으며 회복의 공간이었다.

"80년대로 들어오면서 말이 극도로 억압당하고, 또 한편에서는 말이 굉장히 오염되었습니다. 그러면 말의 타락과 오염은 어디에서 회복이나 정화의 힘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인가 해서 고향의 삶의 모습을 그리게 되었습니다."

진목마을에서 가학리 가는 바다가 바라보이는 언덕에 선생님은 잠들어 계신다. 선생님이 평생 사랑하는 바다가 철썩거리는 소리에 귀 기울이면 그 속에 당신께서 신나게 소설을 쓰시는 소리가 섞여 들려온다.

회진항

◆장흥 회진 바다가 쓴 소설

송기숙의 바다는 외부 세계와의 투쟁을 통해 세상을 개혁해 나가려는 바다라면 이승우에게는 내면세계와의 끝없는 전쟁을 통해 어떤 경지에 도달하고자 하는 바다이다. 한승원은 불교적 해원의 바다라면 이승우는 기독교적 세계관과 연결된 바다다. 한승원과 이청준은 수많은 물결처럼 그 깊이를 헤아리기 어려운 다양성의 바다이다. 작가를 생각하며 걷는 장흥 바닷길은 상상력이 비늘처럼 돋아나는 신명나는 길이다.

누군가 우리나라에서 노벨문학상을 받는다면 누구일까. 다른 것은 몰라도 최소한 지역만은 분명하다. 바로 장흥이다.

작가들은 바다를 각기 다르게 읽는다. 욕망의 바다, 민중의 바다, 사념의 바다, 그리고 누구에겐 끝없이 파고들어야 할 신앙의 바다다. 오늘도 그 후손들은 생의 의미를 찾아 끊임없이 장흥 바다에 그물을 던지고 있다. 사실 소설은 뛰어난 예술가가 쓴 것은 아니다. 어쩌면 회진에서 작가는 바다인지 모른다. 바다가 쓰고 바다가 그린 작품들 말이다. 박용수 시민전문기자 toamm@hanmail.net

박용수는 화순 운주사가 있는 곳에서 태어났다. 전남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줄곧 수필 쓰기만 고집해 왔다. ‘아버지의 배코’로 등단하여, 광주문학상, 화순문학상, 광주문학 작품상 등을 수상하였다. 광주동신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재직 중이며, 작품으로 꿈꾸는 와불, 사팔뜨기의 사랑, 나를 사랑할 시간이 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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