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성 오봉산 (五峰山, 357m) /보성군 득량면
입력 2021.10.13. 15:28 수정 2021.10.17. 13:51 댓글 0개보성 오봉산 (五峰山, 357m) /보성군 득량면
보성(寶城)은 '녹차의 수도'라 부른다. 보성읍에서 회천쪽으로 가다보면 산자락이 온통 녹차밭이다. 봇재에서 남해를 바라보면 차밭과 어우러진 바다 풍경이 아름답다.
보성에는 명산들이 많다. 제암산, 일림산, 봉화산, 초암산은 5월에 철쭉이 만개한다. 요즈음 보성의 소금강(小金剛) 오봉산(五峰山)은 지역의 핫 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있다. 기암괴석, 칼바위, 풍혈, 구들장 채취길로 유명한 오봉산은 사시사철 어느 시기에 오르더라도 항상 멋진 절경을 보여준다. 벌교읍에서 2번 국도를 타고 보성읍에서 득량면으로 들어서면 도로 오른쪽으로 득량평야가 펼쳐지고, 평야지대에 기암괴석이 아름다운 두 개의 산이 보인다. 가깝게 보이는 산은 작은 오봉산(284.2m)이고, 멀리 보이는 산은 큰오봉산이라 부른다. 조선시대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1530)'에 등장하는 오봉산은 큰오봉산을 지칭하며, 보성의 오봉산을 찾는 산악인들은 큰오봉산을 오봉산이라 한다. 봉우리가 다섯이나 그 오봉의 위치를 가늠하기가 어렵다. 봉우리의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기 때문이다.
오봉산에 '오봉산 생태길' 조성
최근 보성군은 오봉산에 자연 생태 경관과 역사·문화자원을 연계한 멋진 생태길을 만들었다. 오봉산 생태길은 총 길이 5.8㎞로 황소걸음길, 칼바위길, 수변산책길, 용추골길, 구들돌담길 등 다섯 가지 생태문화 테마길로 조성됐다.
황소걸음 길은 오봉산 구들장 사업이 활발하던 시기에 새벽달을 보고 일어나 해가 질 때까지 가파른 산길을 소달구지를 끌고 오르내리던 보성 군민들의 애환을 느낄 수 있는 길이다. 소달구지에 구들장을 싣고 오르내리던 '갈 지'자 모양의 산길을 직접 걸어볼 수 있다.
칼바위길은 오봉산의 트레이드 마크인 칼바위를 명소화했다. 여름철에는 시원하고 겨울철에는 따뜻한 바람을 느낄 수 있는 풍혈지와 구들장을 이용한 돌탑,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존 설치를 비롯해 트리 하우스 등을 조성했다.
수변 산책길은 23만2천㎡의 드넓은 해평 호수를 따라 걸을 수 있는 데크로드와 맨발로 황톳길을 걸을 수 있는 산책로로 조성됐으며, 용추폭포를 따라 걸을 수 있는 용추골길과 오봉산의 자랑인 구들장을 쌓아 만든 구들돌담길도 마련됐다.
오봉산 구들장 채석 현장은 현존하는 세계 최대 구들장 채석지로 우리나라 온돌문화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또한 일제강점기 고된 노동을 생계와 맞바꾼 살아있는 근현대사 현장이기도 하다.
핫플레이스 칼바위 가는 길
오봉산 산행은 득량남초등학교 정문 바로 앞에서 시작된다. 산행 안내도가 세워졌다. 처음부터 산행은 완만하게 시작된다. 등산로로 잘 정비되어 있고, 주변은 울창한 숲이다. 한시간쯤 걸으면 260m 봉우리가 나오고, 여기서 10여분쯤 내려가면 해평저수지 주차장에서 오르는 등산로와 만나는 쌍삼거리이다. 두 개의 돌탑이 오봉산의 북쪽 능선과 어우러져 멋지게 서있다. 오봉산 등산로 주변에 봉우리마다 세워진 돌탑들이 이채롭다.
오봉산에 세워진 돌탑은 총 45개인데 보성군의 예산지원을 받아 기남마을 이장 이춘선씨가 2002년부터 4년에 걸쳐 쌓았다고 한다. 동쪽으로 득량만을 막아 간척한 예당평야가 황금빛으로 일렁인다. 남쪽으로 득량만 너머로 멀리 고흥반도가 보인다.
쌍삼거리에서 잠시 능선을 따라 오르면 위험한 암릉마다 안전하게 구조물이 설치되어 있다. 삼각점을 지난 봉우리에서 목재 데크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조새바위가 남쪽을 바라보며 서있다. 조새는 어촌에서 굴을 따고 그 안의 속살을 긁어내는 기구이다. 이바위의 생김새가 마치 조새처럼 생겨서 따온 이름이다. 또 황새가 먹이를 노리듯 마을을 바라보는 모습이라고 하여 황새바위라고도 부른다.
암릉을 따라 계속 걸으면 왼쪽으로 득량만과 고흥반도가 한눈에 들어오고 오른쪽으로 오봉산의 북쪽 능선과 해평저수지가 보인다. 단애(斷崖. 깎아지른 듯한 낭떠러지)로 이루어진 아슬아슬한 무명봉을 오르고 목재데크 계단을 따라 내려가다 337봉우리를 바라보면 능선의 오른쪽으로 소달구지가 올랐던 지그재그의 구들돌담길이 성처럼 보인다.
삼거리에서 잠시 내려가면 칼바위 암자터에 도착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등장하는 오봉사터로 추정된다. 이곳에서 신라의 고승 원효대가 수도했다고 전한다. 암자터에서 구멍바위를 통과하면 굴 안에 20여평 규모의 넓은 마당이 나오고, 정면으로 날카롭게 생긴 거대한 바위가 하늘을 향해 치켜 서 있다. 칼바위의 모습은 마치 새의 부리 같기도 하고 아가리를 벌리고 위협하는 코브라를 연상한다. 코브라의 목덜미 부분에 희미하게 마애불상이 새겨져 있다. 높은 바위에 올라가서 어떻게 마애불을 조각하였을까 신비스러울 따름이다. 칼바위는 중생대 백악기 화산 폭발 때 화산재가 쌓아 이루어진 응회암이다. 칼바위는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풍화되고 물의 침식작용에 의해 암석이 풍화되어 떨어져 나가 절벽이 되었다. 절벽에 새겨진 희미한 마애불상은 풍화와 침식작용에 의해 점점 흔적이 없어지게 될 것이다.
굴을 나와서 오봉사 터를 지나 돌로 양옆을 쌓은 돌담길을 50m 정도 올라가면 칼바위 전망대에 도착한다. 바로 앞으로 칼바위가 337m 봉우리에서 흘러내린 암릉과 어우러져 웅장하다. 칼바위 포토존 안내판에는 인생샷 안내와 인스타그램의 '좋아요' '하트'가 100만개 표시되어 있다. 칼바위의 인기를 실감하는 순간이다.
너널지대 풍혈지 '신령스럽다'
칼바위 삼거리에서 능선을 따라 20여분쯤 울창한 수림지대를 쉬엄쉬엄 오르면, 너널지대의 바위틈 사이로 한여름에는 시원한 바람과 한겨울에는 추운 바람이 나오는 풍혈지가 여러곳에 있다. 신령스러운 풍혈 기운을 쐬면 몸에 기운이 돌고 머리가 총명해지며 소원을 빌면 이뤄진다고 한다.
삼거리에서 1시간여쯤 걸어 도착한 오봉산 정상 표지석에 서면 남쪽 득량만 너머로 고흥의 팔영산, 운암산, 봉래산, 마복산, 천등이 보인다. 정상은 357m이므로 정상 표지석은 그 봉우리에 세워져야 한다.
북쪽으로 오봉산의 능선이 해평저수지쪽으로 흘러 들어간다. 풍혈을 지나면 오봉산 남근바위 안내판이 있다. 돌탑에 있는 사각 구멍 사이로 남근바위가 보인다. 이 남근바위는 사시사철 물이 마르지 않는 용추폭포와 음양의 조화를 이룬다고 한다. 봉우리에서 약 20여분쯤 내려가면 오른쪽 너널에 돌탑이 세워졌다. 돌탑과 어우러진 칼바위 모습이 멋진 풍경을 보여준다. 돌탑에서 잠시 내려가면 용추교다. 용추교의 오른쪽으로 용추폭포가 보인다. 수량이 많을 때는 용추폭포는 장관를 이룬다고 한다. 용추폭포는 옛날 가뭄이 계속되는 해에 기우제를 지내는 관습이 있다. 120여년 전, 6월에 가뭄이 심하자 당시 유원규 보성군수가 기우제를 지내기 위해 용추폭포를 찾았는데 큰 뱀이 길을 막고서 방해하므로 산 아래로 내려와 목욕 후 다시 올라가 기우제를 지내 비를 맞이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용추폭포 아래 계곡 주위는 사방이 절벽으로 둘러져 있고, 정면으로는 높은 산봉우리에 막혀 있어 위로 트인 하늘이 마치 우물 속에서 하늘을 바라보는 듯 하다. 조선 선조 문인 오봉 정사제는 틈틈이 이곳을 찾아 마음을 수양하면서 용추석벽 등 많은 시를 남겼다고 한다. 용추폭포를 에워싸고 있는 암벽 오른쪽에는 통일신라시대의 문장 고운 최치원의 시가 새겨져 있다고 한다. 용추폭포에서 편백나무숲을 거치고 20여분쯤 임도를 걸으면 칼바위 주차장에 이른다.
산에서 만난 사람
이용남(72)·정연님(71)부부는 매월 3~4회 정도 오른다고 한다. 산에 오르면 일상에 답답함이사라지고 새로운 풍경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인생의 활력소가 된다고 한다. "정상에 오르면 힘들어도 성취감을 느낀다. 오봉산은 득량만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이며 산등성이에서 바라보는 황금들녁은 가히 환상적이다. 오봉산의 상징인 칼바위, 돌탑, 구들장바위, 풍혈, 정말 좋았습니다."
필자가 오봉산을 오르던날, 오봉산을 오르는 등산객들 중에서 연세가 가장 많은 부부였던 것 같다. 암릉에 올라선 부부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천기철 기자 tkt7777@mdilbo.com
볼거리
보성 봇재
'봇재'는 보성읍과 회천면을 넘나드는 고개를 지칭하는 지명으로 무거운 봇짐을 내려놓고 잠시 쉬어간다는 의미를 담은 곳으로, 보성의 역사와 문화, 예술 그리고 차산업과 차문화를 보여주는 공간이다.
득량역
득량역은 경전선의 철도역이다. 현재 무궁화호, 남도해양열차가 정차하며 역 앞은 득량면 소재지이나,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주관하는 간이역 문화공간 프로젝트 실시역이 되었다. 역사 내 공간이 리모델링 되었고, 주민들이 나서서 역 앞에 1970년대를 바탕으로 한 추억의 거리를 조성했다.
비봉리 공룡알화석(천연기념물 제418호)
공룡알 화석지는 지난 2000년 4월 24일 대한민국 문화재청에 의하여 천연기념물 제418호 및 문화재보호구역으로 지정된 곳이다.
보성비봉공룡공원
국내 최초로 시도되고 있는 공룡알쇼, 3D·4D영상, 워킹공룡쇼를 공연상영 중이며 남녀노소, 어린아이 구분 없이 모두가 좋아하는 공원으로 공룡에 대해 조금 더 쉽게 이해하고 접할 수 있도록 각 층별로 운영하고 있다.
- 짱뚱어·칠게 시글시글··· 자연이 만든 '생태천국' 신안 증도 갯벌1004섬 신안 1섬1뮤지엄 ④증도갯벌에서 바라본 수평선은 가뭇없이 아득했다. 이곳 날씨란 것이 원래 시시각각 다르다고는 하지만 종잡을 수 없는 왜바람에 당장이라도 후두둑, 굵은 빗방울을 흩뿌릴 듯 잔뜩 찌푸린 하늘은 희미한 바다의 실루엣을 더욱 검고 어둡게 만들었다.갯벌은 오래전부터 그렇게 있었던 듯, 훤하게 속을 드러내놓고 있었다. 농게와 칠게는 불풍나게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흙장난을 치고, 멋모르는 낙지 한 마리, 물골에서 허우적댔다. 짱뚱어란 놈은 자기를 보아달라는 듯, 갯벌 위에서 펄쩍펄쩍 뛰기까지 하고 있었다.녀석들의 분주한 움직임을 보자 괜스레 마음이 조급해졌다. 비가 내리거나 성격 급한 바닷물이 들어오기 전 조금이라도 더 많은 놈들을 낚아야 할 것이었다. 서둘러 바구니를 등에 메고 갯벌로 걸음을 옮기니 미끄러지듯 펄 속으로 발이 박혀 들어갔다. 휘청-. 이제는 발이 박히는 것에 익숙할 때도 됐건만 매번 중심을 잃고 넘어질 지경이 되는 것을 보면, 아직도 더 배워야 할 것이 많다는 생각을 한다.갯벌에서 몇 걸음 옮겨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는 낚싯대를 폈다. 최근에 새로 장만한 '신식 낚싯대'를 보자 마음부터 오달졌다.20대 초반이나 됐을까. 짱뚱어잡이를 위해 처음 사용한 낚싯대는 대나무였다. 벌교며 여수, 순천 등 외지 사람들이 와서 짱뚱어를 잡는 모습이 재미있어 보여 무턱대고 시작한 일이었다. 하지만 요령 없이 낚싯대를 던지다 보니 무겁기만 하고 낚싯줄이 원하는 만큼 나가지도 않아 어려움이 많았다. 썰물 때마다 갯벌에 나와 낚싯대를 던졌지만 허탕을 치기 일쑤였고, 이튿날도 맨손으로 돌아가는 날이 반복됐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조금씩 요령을 터득하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 등에 멘 바구니의 무게도 조금씩 늘기 시작했다.그는 새로 구입한 낚싯대를 길게 편 다음 원하는 곳 멀리까지 바늘을 던졌다. 조심스럽게 낚싯대를 끄는 동안 손끝에 미세한 감각이 전해지자 재빨리 잡아챘다. 낚싯바늘에 짱뚱어의 몸이 걸려있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엷은 미소가 떠올랐다.신안 증도 갯벌도립공원◆"갯벌은 삶의 터전… 복받았죠""새로 낚싯대를 사서 한번 해보니까 역시 좋아요. 하루하루 잡는 양이 달라지더라고요. 거기에 요령까지 더해지니 하루에 500마리 이상은 거뜬하게 잡을 수 있었지요. 게다가 다른 사람들은 짱뚱어에 관심조차 없었거든요. 그냥 갯벌에는 시글시글 흔하니까…."신안 증도 장고리의 이남창(85)씨는 짱뚱어 낚시의 산증인이다. 청년시절부터 시작해 최근까지 증도에서 짱뚱어를 낚아 가정을 이끌었다.짱뚱어가 식도락가들에게 인기를 끌 때는 '없어서 못 팔 지경'이었다. 신안의 식당마다 '짱뚱어'를 메뉴로 내걸었고, 물건을 대달라는 업주가 줄을 이을 정도였다. 이 씨가 사는 장고리에서만 5~6명이 함께 낚싯대를 던졌을 뿐, 많은 주민이 짱뚱어잡이에 나선 것도 아니었다.자신이 잡은 짱뚱어를 찾는 발길이 줄기 시작한 것은 수입산 짱뚱어가 들어오면서부터다. 평소 물건을 대달라고 사정하던 업주가 어느 순간 돌변해 "이제 당신과 거래하지 않겠다"고 통보한 일이 있었다.하지만 이 씨는 개의치 않았다. 수입산 짱뚱어는 자신이 직접 잡은 것과 비교해 그 맛이 월등히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결국 수입산 짱뚱어탕을 팔던 가게는 손님이 눈에 띄게 줄면서 폐업 위기까지 닥쳤고, 다시 이 씨를 찾아와 짱뚱어를 달라고 하소연하기에 이르렀다. 이 씨는 업주의 행태가 괘씸했지만, "다시는 거래를 끊겠다는 말하지 않겠다"며 읍소하는 모습을 보고 다시 짱뚱어를 공급했다.짱뚱어는 봄에 보이기 시작하지만 낚시는 여름과 가을에 주로 이뤄진다. 짱뚱어가 살이 쪄서 맛이 가장 뛰어난 시기이기도 하다.신안 증도 짱뚱어가 유명해지면서 이를 겨냥한 외지인들이 발길이 이어졌다. 이웃 섬은 물론 무안이나 여수 등지에서도 짱뚱어를 잡기 위해 찾아오곤 했다. 이 씨는 "이 지역 것은 곧 내 것인데 왜 너희가 와서 잡느냐"며 쫓아내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안타까운 점은 환경오염과 기후변화 등의 영향으로 갈수록 짱뚱어의 수가 주는 데다 수요 역시 감소하고 있다는 점이다.이 씨는 신안 증도의 갯벌이 곧 삶의 터전이었다고 회고했다. "우리로서는 복받은 것이지요. 누구는 짱뚱어를 잡고, 누구는 낙지를 잡으며 힘든 시절 견디고 생계를 유지했으니까요. 농사를 함께 짓기도 했지만 수입은 비교가 안 됐어요.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 좋은 갯벌이 지척에 있다는 것이요."갯벌박물관을 찾으면 갯마을 사람들의 다양한 어로활동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들이 전시돼 있다.◆숭어에 농게·칠게·짱뚱어·갯강구까지…갯벌은 조수가 드나드는 바닷가의 모래나 펄로 된 넓고 평평한 땅이 밀물 때는 바다가 됐다가 썰물 때 드러난 곳이다. 육상과 해양이라는 두 개의 생태계가 접하는 곳으로 두 세계의 완충작용뿐만 아니라 연안 생태계의 모태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갯벌은 자연이 만든 천혜의 생명 보고(寶庫)다. 숭어와 농게, 칠게, 짱뚱어, 망둥어는 물론이고 총알고둥, 갯강구, 댕가리, 칠면초 등이 살아 숨 쉬고 있다. 여기에 노랑부리저어새 같은 희귀 조류까지 더해지면 그야말로 살아있는 자연박물관이 된다.바지락과 낙지, 꽃게, 굴, 백합 등 수집 종에 이르는 갯벌 속 청정자원은 갯벌에 터를 잡고 살아온 어민들의 삶의 터전이자 미래 자원이다.신안 갯벌은 가장 넓은 규모를 자랑하는 우리나라 대표 갯벌이다. 국내 전체 면적(2천482의㎢) 중 전남이 42.5%를 보유했는데, 신안에서만 14%(378㎢)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신안 갯벌은 대형 저서동물(底棲動物·산호나 성게, 조개, 새우 등 호수나 강, 바다의 바닥에 깔린 바위나 모래에 사는 동물)이 100종 이상 서식하는 곳으로 보전 가치를 인정받아 지난 2009년 5월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됐다. 이어 2010년 1월 국토해양부 습지보호지역으로 선정됐고, 2011년 9월에는 우리나라에서 17번째로 람사르습지에 등록됐다.김만선기자 geosigi22@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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