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인디업계 화제...뮤지션 '파란노을'은 누구인가
입력 2021.04.23. 05:00 댓글 0개[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1인 밴드 '파란노을(Parannoul)'이 음악 좀 듣는다는 이들 사이에서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2월 발매한 2집 '투 시 더 넥스트 파트 오브 드림(To See the Next Part of the Dream)'이 유튜브를 중심으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수록곡 중 '아름다운 세상' '청춘반란' '흰천장'에 대한 반향이 특히 크다.
파란노을의 인기 조짐은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시작됐다. 세계 '음악 힙스터'들의 아지트로 통하는 미국의 리뷰·평점 사이트 '레이트 유어 뮤직'(Rate Your MusicRYM)에서 올해 나온 앨범 중 한 때 평점 1위를 기록했다. 미국의 권위 있는 음악매체 '피치포크'에선 10점 만점에 무려 평점을 8.0점을 받았다.
하지만 최근까지 국내 음원사이트에서 파란노을의 음악을 듣기 힘들었다. 해외 공정 음원 플랫폼 '밴드 캠프'나 유튜브에서만 청취가 가능했다.
유튜브의 파란노을 음원 콘텐츠에 댓글로 "국내 음원사이트에서 듣게 해달라"는 요청이 잇따랐다. 마침내 앨범이 나온 지 약 2달 만인 지난 19일 멜론, 플로, 지니뮤직, 바이브 등 국내 음원사이트에서 들을 수 있게 됐다.
파란노을의 구체적인 신상 정보에 대해 알려진 건 없다. 20대 초반의 학생이라는 사실 정도. 초반에 익명으로 진행된 일부 인터뷰를 제외하고, 언론과의 만남도 고사하고 있다.
그는 뉴시스에 "솔직히 저는 '이 앨범'으로 이름을 알려지는 게 부담스러웠다. 제 치부가 만천하에 공개되는 것 같아서"라며 정중하게 인터뷰를 고사했다.
피치포크도 "파란노을은 이름, 정확한 나이, 혹은 제작에 다른 사람이 관여하고 있는지 조차 밝히기를 거부했다"면서 "정보를 요청했을 때, '너무 부끄럽고 부모에게 음악을 만든다고 말하기조차 힘들다'고 했다"고 전했다.
파란노을은 작년 1월 발매한 1집에서 포스트 모던 록 성향의 음악을 들려줬다. 이번 2집의 주된 장르는 슈게이징이다. 슈게이징은 얼터너티브 록의 하위 장르다. 1980년대 말 영국에서 출현한 슈게이징은 밴드가 라이브 무대에서 꼼짝않고 악기만 연주하는 모습이 '마치 신발(shoe)을 쳐다보는 것(gazing)'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졌다.
주로 기타 이펙트를 통한 지글거리는 사운드에 보컬이 뒤섞인 것이 특색이다. 노이즈 등 소음마저 음악으로 승화시킨다. 종종 드림팝도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그런데 유행이 좀 지난 음악이다. 파란노을은 이 장르로 MZ세대와 소통하고 있는 것이다.
파란노을은 자신의 블로그에 "현실에서 나는 그냥 '찐따' 그 자체이고 아무도 알아보지 못한다"고 적었다. "패배주의에 심취했다"고도 고백했다.
하지만 이런 부분이 큰 공감대를 형성했다. 유튜브 사용자 CK는 댓글로 "지난 5년 동안 우울증에 빠져 제 자신을 미워하며 살아왔는데, 이 음반을 들으면서 소중했던 어린시절 기억이 잠시나마 떠올랐어요. 좋은 음악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적었다.
이런 점 때문에 한편에선 파란노을로부터, 일본 밴드 '세카이노 오와리'를 떠올리는 이들도 있다. 세카이노 오와리도 정신질환과 집단 따돌림 등 결코 유쾌하지 않은 성장통을 겪은 멤버들의 자전적인 이야기로 음악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파란노을의 음악에서 일본적인 요소도 읽을 수 있다. 일본 감독 이와이 슌지의 '릴리 슈슈의 모든 것'(2001) 대사가 노래 여기저기에 삽입됐다. 그는 일본 애니메이션 '신세기 에반게리온', 아사노 이니오의 만화 '잘 자, 푼푼'을 좋아한다고도 언급했다.
하지만 파란노을은 한국적 DNA가 훨씬 더 분명하다.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언니네이발관, 불싸조, 조월, 모임별, 선결, 아시안글로우, 푸른새벽, 이아직, 데이슬리퍼, 꿈에 카메라를 가져올걸, 팎, 얄개들, 전자양, 속옷밴드, 스타리아이드, 극초단파, 넬 등이 그가 영향을 받았다고 블로그에 공개적으로 밝힌 한국 뮤지션들이다.
결국 파란노을은 이 팀들의 감성과 문법을 창의적으로 받아들여 자신만의 음악을 만들어냈다. "내가 의도했던 건 찐따들의 자조적 주제가가, 아닌 당당하게 살아가기 위해 자신을 인정하는 하나의 발걸음"을 분명히 했다.
파란노을은 블로그에 "나는 남들에게는 찐따로 보일 수 있지만 나만이 나를 지켜주기만 한다면 괜찮다"면서 "이 앨범은 자기혐오에 대한 앨범이지만, 모순적으로 나는 앨범을 완성하고 나서 비로소 무언가에게서 졸업하게 됐다"고 썼다.
파란노을은 이미 산업화가 된 K팝의 시스템이 아닌, 서울의 골방에서 만들어진 인디 음악이 세계에서 주목을 받은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지난해 인디 밴드 '새소년'의 EP '비적응'이 피치포크의 '올해의 록 앨범35'에 선정되는 등 K팝이 '아이돌 전형성'을 벗고 점점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인디업계 관계자는 "파란노을 같은 뮤지션을 외국에서 먼저 발견했다는 것은, K팝에 대한 관심이 아이돌에만 쏠려 있지 않다는 걸 방증한다"면서 "우리 인디계에 좋은 뮤지션들이 많은 만큼, 더 많은 이들이 차차 알려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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