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강준만의 ´易地思之´] 현직 의원 물갈이는 혁신인가?

입력 2024.04.22. 11:06 수정 2024.04.22. 17:19 댓글 0개
곽정숙 칼럼 18대 국회의원 / 광주여성장애인연대이사

그간 정치권 안팎에선 국회의원 수를 줄이자는 제안이 여러 차례 있었다. 여론조사를 해보면 지지율이 매우 높게 나오는 제안이다. 한국은 국회의원 신뢰도가 바닥을 친지 오래인 나라인지라 당연한 결과다. 하지만 그건 정치혐오에 편승하면서 사실상 정치혐오를 부추기는 '반정치(anti-politics)'라며 비판하는 목소리도 높다. 반정치는 기성 정치에 대한 불신과 혐오로 인해 축소지향적인 정치를 선호하거나 정치를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으로 간주하는 현상을 말한다.

국회의원 수를 줄이는 건 찬반이 공존하는 쟁점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똑같은 반정치 현상임에도 찬성만 있을 뿐 반대가 거의 없는 이슈가 있다. 그건 바로 현역 국회의원 물갈이다. 왜 그럴까? 국회의원 축소는 현역 의원은 물론 정치 지망생 전체의 문제이기에 모두가 나서서 결사 반대하는 반면, 물갈이는 수가 훨씬 많은 정치 지망생들에게 새로운 기회의 문을 열어주는 것이기 때문에 환영의 목소리가 높은 게 아닐까?

그 이유가 무엇이건, 정치권은 총선 때마다 높은 현역 의원 교체율을 개혁이나 혁신의 증거로 간주했으며, 언론과 지식인들도 그걸 높게 평가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곤 한다. 국회의원 수를 줄이는 걸 비판한 사람이 교체율이 높은 건 칭찬하는 코미디 같은 일도 일어난다.

지난 4·10 총선에서 민주당은 높은 현역 의원 교체율을 혁신의 증거라며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민주당 총선 공천관리위원장 임혁백은 경향신문 인터뷰(3월 27일자)에서 "현역 의원 교체율이 혁신 공천의 바로미터라고 생각합니다. 40% 이상 교체됐다면 성공한 것이라 할 수 있는데, 민주당은 42.5%를 새 얼굴로 바꿨습니다"라고 자랑했다. 석학 도올 김용옥은 3월 20일 자신의 공식 유튜브 채널 '도올tv'를 통해 민주당 공천에 대해 다음과 같이 큰 의미를 부여했다.

"이번에 민주당 공천 사례를 봐도 중요한 것은 기존에 국회의원이던 사람이 60명 이상이 떨어졌다, 그것도 무슨 누가 강제로 한 것이 아니라 민중이 벌써 심판을 한 것이다…지금 민주당의 공천 과정을 보면, 민중이 성난 황소 같다. 성난 황소가 투우장에서 들이박으려고 덤벼드는 모습 같다. 그러니까 이미 (민중에 의한) 심판은 시작된 것이다. 이러한 심판으로 인해서 혁명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상한 일이다. 진영을 초월해 이른바 '비명횡사 친명횡재' 공천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는데도, 그게 '혁신'이고 '혁명'이라니 이게 웬말인가? 민주당 당선자 175명(비례연합 포함) 중 범친명계 당선자는 127명(72.6%)으로 집계됐다.(시사저널 분류) 명실상부한 '이재명의 민주당'이 완성된 것이다. 늘 민주당의 변방에 머물던 아웃사이더가 10년도 안된 짧은 기간에 민주당을 완전히 장악한 것은 놀라운 '인간 승리' 미담이 될 수도 있겠지만, 지금 우리가 무슨 위인전 영화를 찍는 건 아니잖은가. 그 과정과 방법이 얼마나 정당했는가를 따져봐야 하는 게 아닌가?

우선 높은 현역 의원 교체율을 혁신으로 보는 시각의 타당성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그 시각은 공적 차원의 경험·경륜 가치를 전혀 인정하지 않은 채 의원직을 개인적인 영달로만 보면서 "그만 하면 많이 해 먹었잖아"라는 식의 정치 불신·혐오에 근거한 것이다. 굳이 좋게 보자면, 신인을 많이 발굴해 돌아가면서 나눠먹자는 '밥그릇의 분배 정의'를 위한 것이라고 볼 수는 있겠지만, 그런 의미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그건 사실상의 공천권을 가진 정당 지도자의 욕심이다. 물갈이를 통해 자신의 계파가 아닌 다선을 줄이고 자신의 계파에 소속될 초선을 늘림으로써 계파적 통제를 쉽게 하겠다는 것이다.

한국 정당들은 4년마다 대폭적인 물갈이를 하곤 했지만, 그건 세대교체와는 전혀 무관한 물갈이였다. 아무리 물갈이를 많이 시도했어도 20-30대 의원의 비율은 늘 매우 낮았으며, 의원들의 평균 연령은 늘 50대 후반으로 세계에서 가장 늙은 유형에 속했다는 게 그걸 잘 말해준다. 이번 총선 당선자들의 평균연령도 56.3세고, 30대 당선자는 14명, 20대 당선자는 없다.

초선 의원은 선(善)이고 다선 의원은 악(惡)이라고 주장하려는 게 아니라면, 물갈이의 핵심 문제도 직시해야 한다. 이와 관련, 성공회대 교수 김동춘이 10년 전에 한 말을 다시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노무현 정부 때 과거사위원회에 들어가서 국회 출석을 해보면, 초선 의원과 다선 의원이 애와 어른 수준이었어요. 3선 의원 정도만 되면 그냥 예산 흐름을 훤히 봐요. 관료들이 와서 한마디만 해도 금방 지적을 하죠. 그래서 다선 의원이 필요한 겁니다. 개혁 공천이라고 초선 의원들로 갈아치우는 게 마냥 좋은 게 아니죠."

서울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지방일수록 다선 의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그래야 지역의 정당한 몫을 챙길 수 있는 역량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꼭 바람직스러운 현상은 아닐망정 현 '서울공화국' 체제가 만든 현실이다. 광주광역시 지역 당선자 8명 중 7명이 새 인물인데, 이는 광주가 그만큼 혁신에 앞장섰다는 걸 의미하는가? 이재명의 사법 리스크를 담당한 고검장 출신 거물급 변호사 2인이 광주에 출마해 당선됐다는 것만 지적해두기로 하자.

기존 의원들이 기득권 덕분에 의원직을 계속 차지하게 돼 있는 구조적 문제를 개혁하려는 노력은 꼭 필요하지만, 그건 예측가능하고 합리적인 방식이어야 한다. 사실상 공천 탈락을 의미하는 하위 10, 20% 평가를 받은 의원들에게 비밀이라며 평가 근거 자료 열람마저 거부하는 게 말이 되나? 만약 그게 당내 권력자가 자신의 계파 강화를 위해 작위적인 알고리즘으로 자기 계파에 유리한 물갈이를 시도한 것이라면 어쩔 것인가?

그런 식으로 공천에서 탈락한 의원들이 '조직을 위하여'라는 명분을 내세워 순응하는 것도 문제다. 그건 '공천 조작'을 정당화해줌으로써 궁극적으로 조직을 타락시키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순응하지 않으면 어쩌란 말인가? 언론과 시민단체들도 선거만 끝나면 모든 게 다 끝났다고 손을 털어버리는 상황에서 사실 답이 없다. 우린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이렇게 가르쳐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오직 결과만 중요하다. 그러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승리하라."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 이건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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