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기고] 한복, 광주와 멕시코·쿠바를 잇는 사랑의 띠

입력 2024.03.10. 14:10 수정 2024.03.10. 17:33 댓글 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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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자 수필가

2023년 12월 16일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지원한 멕시코·쿠바 한인 후손들에게 한복 보내기경과보고 일이다. 서둘러 광주학생운동여학도기념역사관(전남여고 역사관)에 도착하니 1층 세미나실과 복도에 비단 물결이 출렁거린다. 천여 벌의 형형색색 한복이 옷걸이와 벽에서 섬섬옥수 손길로 빚어진 곡선들이 형형하다. 살포시 옷고름 입에 물고 은은한 눈짓으로 미끄러지듯 춤추는 여인처럼 저마다의 자태가 곱다.

원래 백의민족이라 불리는 우리는 흰옷을 즐겨 입었으나 시대의 흐름에 따라 한복은 다양한

변화를 해왔다. 요즘 한복은 일상으로 입지 않고 주로 큰 경사나 설날에 입는 고급스러운 파티복으로 변신하였다. 그러므로 한복은 우리에게 단순한 옷이 아니라 우리의 기쁜 날을 기록한 일기장이요 들추지 않고 가만히 바라만 보아도 행복하고 아름다운 추억이 그려지는 도화지다. 이것들이 모인 연유와 비단 물결은 어디로 흘러가려는 가를 알고 싶어진다.

1929년 11월 3일에 일어난 광주학생독립운동은 국내·외 각 곳에서 300여 학교가 동참하고멕시코와 쿠바의 한인들에게까지 석 달 안에 전파되었다. 전남대학교 김재기 교수는 '광주학생독립운동이 세계로의 확산과 지지의 연구'를 주도하며 이는 나라 잃고 해외 곳곳에 흩어져 살아가는 한인들의 역할과 도움이 컸음을 밝혀냈다.

멕시코에서는 1930년 삼일절 행사에서 광주학생독립운동 지지대회를 열고 즉석에서 후원금을 모았는데 엄마 품에 안긴 세 살짜리 아기까지 참여하였다. 이에 앞서 쿠바에서는 1930년 2월 5일에 광주학생독립운동 특별지지대회를 열고 즉석에서 모금 운동을 하여 민성국어학교학생 21명의 코 묻은 돈까지 합세하였다. 당시에 7세 최연소 학생이었던 생존자 주미엽(100세) 여사는 아버지 오빠와 함께 참석한 그때의 일을 생생하게 기억하였다. 그들 대다수는 현지인과 결혼하여 농장노동자로 힘든 삶을 살아가면서도 우리를 적극 지지하고 힘껏 도와주었다. 더하여 그들은 고국이 해방될 때까지 모국을 위해 지속적인 독립운동자금을 정기적으로 지원하였으며,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잊지 않고 이어가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지금도 멕시코와 쿠바에 사는 동포의 후손들은 매년 3.1절과 8.15 광복절 그리고 그들이 멕시코 땅에 처음 도착한 날에 모여서 기념식을 하는데 대대로 할머니 어머니의 손때가 묻은 한복을 입고 참여한다. 이를 본 김재기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한복이라고 입고 나왔는데 모두 이상해요. 우리 전통한복이 아니에요. 제대로 된 전통한복을 입고 참여하는 후손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더라고요."

김재기 교수가 학문적 연구와 별개라 할 수 있는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지원한 멕시코·쿠바 한인 후손에게 한복 보내기 운동'을 제안한 그의 마음씨가 참으로 기특하다. 지금은 이민 후손 5~6세대로 얼굴 모양도 국적도 다른 그들에게 우리 옷 입힐 생각을 했으니 이는 우리 가정에서 어머니가 자녀의 옷을 보고 느끼는 감정이요 해결책이다.

제94회 광주학생독립운동 기념일을 맞은 그 관련 단체들이 주축이 되어 30여 개의 후원·협력 기관이 참여했다. 실무 총괄은 광주학생독립운동여학도기념역사관 이향희 관장이 이 역사관에서 전남여고 동문·유공자 후손들의 협조로 추진하였다. 전문가의 조언을 거쳐 취사선택한500여 벌이 현지에 맞는 한복으로 개조하기까지 우리옷사랑회 임원들의 고운 손길이 더해졌다. 이국땅으로 꽃가마 타고 시집갈 신부가 된 한복은 예쁘게 꽃단장하고 시집갈 날을 기다리나니 이 얼마나 가슴설레는 일인가!

광주에서 일어난 이 비단 물결은 암울한 이 세대에 참으로 경사스럽고 가슴 뿌듯한 일이다.

이 일에 협조하고 동참한 분들의 마음과 손길은 비단결처럼 곱다. 94년 전에 일어난 광주학생독립운동과 그를 지지하고 도왔던 선조들의 헌신을 기리면서 그 후손들이 사랑의 띠를 짓는일이다. 멕시코인과 쿠바인으로 살아가는 한인 후세들이 지키고자 하는 우리의 전통이 길이길이 이어지기를 바라며 한인의 자긍심으로 빛나기를 원한다. 그들이 우리 민족의 피를 영원히이어가듯이 조상들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세계 속의 한국인이 되기를 기원한다.

그 땅에 삼일절과 광복절이 오면 골목골목마다 한복 물결이 출렁대고 태극기가 펄럭이는 기념식장으로 몰려들리라. 화사하고 아름다운 한복이 만든 무궁화동산에 푸른 하늘 드높이 태극기가 휘날리는 그곳은 또 다른 한국이다. 그들은 생각만 해도 가슴 벅차오르는 우리의 동포들

이다. 처음으로 한복을 입고 활짝 웃는 아이가 양팔 벌리고 뱅그르르 돌아서 함박꽃으로 피어난다. 참으로 곱다. 상상만으로도 입가에 웃음이 번진다. 김정자 수필가

# 이건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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