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나보곤 아끼라더니˝··· 도로는 ´콸콸´ 가게는 ´쪼르륵´

입력 2023.05.26. 13:28 수정 2023.06.07. 13:42 댓글 0개
[‘단수된 날’ 광주 어느 카페의 하루]

“석유가 20세기 분쟁 원인이었다면, 21세기는 물 분쟁의 시대가 될 것이다.” 기후 변화가 일상화된 시대다. 광주·전남은 제한급수 문턱까지 갔다. 지난해 장마 시즌부터 비가 내리지 않으면서다. 극심한 가뭄을 경험하면서 물관리의 새로운 패러다임 요구하는 목소리가 광주에서 시작됐다. ‘하늘만 쳐다볼 수밖에 없었던’ 무기력에서 벗어나 미래세대를 위한 효율적·효과적 물관리 방안을 찾자는 취지에서다. 제한급수 공포에서 광주시민들이 겪었던 아찔했던 경험담과 물관리 중요성 등을 들어봤다.

[제한급수 경고…재난의 양극화] 제1부 물과 불평등 ①파괴되는 삶

[‘단수된 날’ 광주 어느 카페의 하루]

"매일 샤워도 제대로 못하고 있는데, 도로가 아조 수영장으로 변해 부렀네."

지난 2월 12일 오전 10시께. 광주광역시 남구 행암동 커피숍으로 출근하는 길에 받은 휴대전화 내용은 다소 엉뚱했다. 평소 시니컬한 옆 가게 박 사장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벌써 한두 옥타브 올라가 있었다. '누군가 화분에 물 준다고 길가를 적셔놓은 것 아닐까.' "허~ 어잉" 나도 모르게 한숨이 절로 나왔다. "누가 그랬대. 아무튼 사람들이 물 중헌 지 모르고…." 질문과 속엣말이 잇따라 나오는 순간, 박 사장이 말을 끊었다. "아니 사진을 한번 봐봐."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어제까지 멀쩡하던 노인건강타운 앞 2차선 도로가 완전히 강으로 변해 있었던 것이다. 급하게 라디오를 켰다. '행암동 덕남정수장에서 5만7천여t의 물이 도로로 유실됐다'는 뉴스가 속보로 연신 보도됐다. '아뿔싸' 우리 가게에서 1.1㎞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걸어서 1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 도로는 홍수가 난 듯싶었다. 흙탕물로 뒤덮인 도로 한가운데 박 사장이 무인도 조난자라도 된 듯 바위를 밟고 서 있었다.

'영화 속 한 장면인가'. 도로 위 풍경은 현실감이 떨어졌다. '광주시민들이 마실 물이 다 말라간다'는 뉴스를 본 게 엊그제였다.

"시민들한테 백날 물 절약 하라고 하면 머 한데. 공무원들이 물을 이렇게 펑펑 버리고 있는데" 박 사장이 퉁을 놨다. "그러게, 저 물 어떻게 해야 쓰까. 다시 쓸 수도 없고"

지난 2월 오후 광주 남구 덕남정수장 주변 도로에 송수관 밸브 고장으로 정수지를 빠져나가지 못한 수돗물이 흘러 넘치고 있다.

경찰들은 곳곳에서 교통을 통제했다. 노란 민방위복을 입은 공무원들도 발길을 재촉했다. 마침, 모래주머니를 가득 실은 트럭 한 대가 물살을 헤치고 '강물' 가운데에 주차했다. 노인건강타운 앞 주차장에선 사람들이 삽과 포클레인으로 물과 진흙을 끌어 하수구에 집어넣고 있었다. 한방울 한방울이라도 아끼라던 '금쪽같은 물'이 쓰레기 취급을 받는 것을 보자 문득 화가 치밀었다.

"금방 점심시간인데, 장사는 해야지. 이미 벌어진 일에 화를 내서 뭐 해. 이따 문 닫고 보게."

애써 화를 누른 채 큰길을 건너 가게 앞으로 돌아왔다. 다행히 영업시간에 늦지 않았다. 습관처럼 커피머신에 원두를 채웠다. 그러다 문득 싱크대 세제를 푼 물에 담궈 둔 접시와 컵을 떠올렸다. 속칭 '2차 설거지'였다. '1차'는 접시와 컵에 묻은 음식물을 대강 씻어 세제 물에 담그고 퇴근했었다. 어제부터 물을 아끼기 위해 설거지 방법을 바꾼 참이었다.

'쪼르르~~' 습관적으로 조심스럽게 수도꼭지를 틀자 얇은 물줄기가 흘러내린다. 설거지를 마칠 때쯤, 갑자기 물이 나오지 않았다. 커피머신도 정수기도, 제빙기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정수장 밸브 고장으로 단수'라는 문자를 뒤늦게 확인한 것은 영업 시작 시간을 막 넘긴 정오께였다.

숨이 턱 막혔다. '안 그래도 겨울이라 매출이 안 나오는데…주말이니 커피 100잔이면, 50만원어치는 팔 수 있었을 텐데… 애들 학원비가 얼마더라….' 부정적인 생각과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단수가 계속되면 어떻게 하지'. 왁자지껄한 소리에 고개를 들어보니, 사원증을 목에 건 젊은이 대여섯 명이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선다. "아, 지금 가게 물이 안 나와서요…. 영업이 힘들 것 같아요."

애써 침착하게 설명을 마치고 손님들을 돌려보냈다. 주머니에 꽂혀있던 전단 뒷면에 '수돗물 단수로 내일 뵙겠습니다'라고 적어 문에 붙였다. 냉가슴이 됐다. 이른 퇴근길에 마주친 노인건강타운 앞은 여전히 흙탕물로 흥건했다. "나보곤 아끼라더니…." 흥건한 도로를 지나가며 욕지거리를 읊조렸다.

안혜림기자 wforest@mdilbo.com


이 기획기사는 서사적 글쓰기인 '내러티브 저널리즘(narrative journalism)'을 활용했습니다. 지난해 10월부터 제한급수 위기에 가슴 졸이며 생활했던 경험 등을 현장감 있게 전달해 보자는 취지에서입니다. 관찰자로서 기자 자신이 직접 일하면서 보고 느낀 감정과 인간관계 등을 단순 사실 전달식 기사 형태에서 벗어나 소설처럼 이야기하듯 구성할 계획입니다. 물 부족이 현실화됐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 위험 등을 독자 여러분들께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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