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물의 경고´…水水방관하면 ´골든타임´ 놓친다

입력 2023.05.25. 18:17 수정 2023.06.07. 10:24 댓글 0개
[제한급수 경고…재난의 양극화] 프롤로그
하루 3시간 급수때 도시는 전쟁터
세면서 화장실·세탁기까지 올스톱
광주도 가뭄대란 '발등의 불'경험
재난 불평등…취약계층 위험 높아
'지속가능한 물' 해법모색 나설 때
가뭄 등 이상 기후가 일상화된 시대다. 당장 대한민국 어느 도시가 제한급수를 겪는다 해도 이상하지 않은 시대가 됐다.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당할 수 밖에 없다. 물은 삶의 질, 더 나아가 행복추구권 등 인권의 문제로도 확장된다. 사진은 광주천 이미지 합성. 임정옥기자 joi5605@mdilbo.com

[제한급수 경고…재난의 양극화] 프롤로그 

내심 궁금했다. '무슨 말로 시작 할 까'. 지난해 11월 9일 오후 7시쯤 광주 홀리데이인 호텔. 취임 다섯달 째를 맞는 강기정 광주광역시장이 '무등CEO아카데미' 특강에 나선 터였다. 공개 석상에서의 첫 메시지. 140만 시민을 책임지고 있는 시장의 요즘 관심사에 궁금증이 일었다. 복합쇼핑몰 등 광주 발전에 대한 기대감이 커질 때였다. 예상은 빗나갔다. 그가 붙잡고 있는 화두는 '물'이었다. 시장 말의 무게감에 머릿속은 복잡했다.

'생활 속 물 절약' 영상은 속칭 '현타'를 불렀다. 고민한 적이 별로 없는 주제여서다. 강 시장이 말을 이었다. "175일 이후에 비가 안오거나 평년처럼 온다면 수돗물 공급이 중단된다." "제한급수라고?" 100여 명의 청중들이 웅성거렸다. 기후변화 영향 탓이었다. 장마에 비가 오지 않았다. 2022년 광주 장마철 강수량(284.1㎜)은 평년(295.4~384.8㎜)을 밑돌았다. 이 마저도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 '마른 장마'였다.

마실 물이 말라갔다. 식수 전용 동복댐의 저수율은 2021년 같은 시기의 절반도 안됐다. 또 다른 상수원인 주암댐도 11월 기준 최저치였다. 마지노선은 저수율 10%대. 우려는 현실이 됐다. 한 달도 채 안된 12월 4일, 동복댐 저수율은 29.5%(2천720만톤)로 30%대가 무너졌다. 주암댐도 30% 붕괴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물 부족은 가속화 됐다. 10%p 떨어지는데 고작 3개월 걸렸다. 고난의 행군이 예고됐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임시방편 사업에 수 백억원이 투입된 이유다. 전략은 장마시즌까지 버티는 쪽으로 맞춰졌다. 뾰족한 수가 없는 탓이다. "방금 전, 영산강 물을 끌고 오는 배수관 설치 공사에 들어갈 예산 100억원을 결제하고 왔다." 동복댐 밑 물을 펌핑해서 가져오는 공사 관련 사업 3건도 같은 수순을 밟았다고 했다. 결국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공사는 이듬해 3월에나 착공 가능했다. 반드시 거쳐야 하는 행정 절차 때문이었다.

기후는 예측 불가능한 영역이다. 언제든 가뭄 또는 홍수 상황이 되풀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14년 전 기억이 소환됐다. 2009년 1월부터 석달간 하루 3시간씩 제한급수를 했던 강원도 태백에서의 취재 경험이었다. 물이 끊기자, 도시는 전쟁터가 됐다. 본능은 통제받았다. 수세식 화장실과 세탁기 등 첨단 기술이 내장된 제품일수록 무용지물이 됐다.

생활 패턴은 40∼50년 전으로 돌아갔다. 먹고 입고 씻는 것 모두 그랬다. 한 주민은 물 두바가지로 머리 감고 면도·세수까지 했다. 후회와 회한, 그리고 새로운 다짐. 물이 생명의 근원이란 점을 절감했다고 했다. 트라우마였다. 예상치 못했던 겨울 가뭄은 치명적인 고통과 생활의 어려움으로 다가왔다. 지역 공동체에도 큰 생채기를 남겼다.

기자 "제한 급수 상황을 설명해 달라"

시민 "생활이 물 중심으로 이뤄졌다. 급수차가 오면 하던 일을 모두 내려놓고 집으로 갔다. 물 받이용 통 옆으로 튀는 물 한방울 조차 아깝더라"

기자 "가장 불편했던 점은 무엇인가"

시민 "원시시대로 돌아갔다. 씻거나 화장실이 가장 큰 문제였다. 야외에서 볼일을 봤다. 안 당해본 사람은 그 심정 모를 것이다"

기자 "경제적 손실도 컸다고 들었다"

시민 "눈꽃축제 기간과 겹쳐서 유명 리조트 등 숙박시설에 예약 취소가 잇따랐다. 음식점 등 매출이 30∼40% 가량 줄었다"

'며칠 전 불쾌했던 기억도 가뭄 때문이었을까'. "휴∼" 마스크 위로 썩은내가 진동했다. 보도블럭 옆 배수구를 지날 때였다. 광주천 생태계도 죽어가는 듯 했다. 주암댐과 영산강에서 끌어오던 하천 유지용수의 공급 감소로 바닥이 드러나면서다. 쓰레기 등 오염물질이 떠오르면서 악취가 코를 찌른다. 물고기는 장소를 달리하며 수 십마리씩 떼죽음 당했다. 용존산소가 부족해진 탓이다. 물고기가 살 수 없으면 사람도 살 수 없다.

가뭄 등 이상 기후가 일상화된 시대다. 당장 대한민국 어느 도시가 제한급수를 겪는다 해도 이상하지 않는 시대가 됐다. 위기는 단숨에 숨통을 조인다.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당할 수 밖에 없다. 생명과 직결되는 만큼 위험 부담이 크다. 재난 해결까지 적잖은 희생과 비용·시간이 들어가는 이유다. 특히 물은 삶의 질, 더 나아가 행복추구권 등 인권의 문제로도 확장된다.

재난은 평등하지 않다. 지자체 별 대응과 빈부 격차 등에 따라 다른 의미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지난해 여름 기록적 폭우로 신림동 반지하에 거주하던 일가족 3명이 숨진 참사가 대표적이다. 부의 불평등이 불편함을 넘어 개인의 삶과 생명, 생존 등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구조적 문제가 된 셈이다.

광주는 예방주사를 세게 맞았다. 제한급수 문턱까지 간 선행 경험을 토대로 실마리를 찾으려 한다. 재난 상황을 대비한 광주시의 계획과 전략 등을 점검하고 대안을 제시할 계획이다. 그 간 노정된 문제점 등도 자세하고 촘촘하게 들여다 보려 한다. 지속 가능한 물 관리·운영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서다. 제한급수 위기가 닥쳤을 때 정부와 지자체 등 관련 기관·단체는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 지, 평소 사전 점검을 통한 문제 해결 방안은 무엇인 지 등 지혜를 찾는 여정은 계속될 것이다.

유지호기자 hwaone@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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