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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침 허용 20년 넘었는데···안전성·효과 검증 '사각지대'

입력 2023.03.27. 07:01 댓글 0개

기사내용 요약

1998년 의료행위로 인정받은 후

제조부터 유통·보관·사용규제 '無'

복지부 "약침 관리 강화 고민 중"

[서울=뉴시스] 한약을 주사기를 이용해 체내에 주사하는 시술인 약침이 대중화된 가운데, 한방 의료행위로 인정받은 지 20년이 넘었지만 안전성과 유효성을 검증할 수 있는 법과 제도가 없어 정비가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그래픽= 전진우 기자) 2023. 03.27.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백영미 기자 = 주사기를 이용해 한약을 체내에 주사하는 시술인 약침이 대중화된 가운데, 한방 의료행위로 인정받은 지 20년이 넘었지만 안전성과 유효성을 검증할 수 있는 법과 제도가 없어 정비가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27일 의료계에 따르면 약침은 1998년 보건복지부 유권해석을 통해서 한의 의료행위로 인정 받았다. 이후 허가받은 의약품만 주사하는 의사와 달리 한의사는 자유롭게 조제한 한약을 주사기에 넣어 환자의 경혈(침을 놓는 자리)이나 경락(기혈이 순환하는 통로)에 주사하는 방법이 허용되고 있다. 한의계에서 약침의 활용 범위는 고혈압, 당뇨, 위염, 관절 염좌, 요추추간판탈출증(허리디스크), 전신 쇠약 등 광범위하다.

하지만 효과가 우수하고 부작용이 없는 의약품은 없듯, 약침도 부작용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대한의사협회가 대한응급의학회의 도움을 받아 2015년 3월25일부터 31일까지 한방진료 후 급성 부작용으로 응급실로 내원한 사례를 수집해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한방치료 후 발생한 감염 관련 부작용은 연부조직염 발생 22건, 중증 농양·괴사·패혈증·화농성관절염 17건 등 총 39건이었다.

최근 30대 남성 환자 A씨가 교통사고 후 소염약침 시술 후 발생한 극심한 신경병성 통증으로 직장을 다니지 못하게 되자 한의사 B씨를 상대로 지난해 2월과 7월 각각 민·형사 소송을 제기한 사례도 있다. 법원은 해당 한의사에게 500만 원을 지급하라며 조정에 나섰지만 B씨는 이를 거부해 재판이 아직 진행되고 있다. 또 다른 30대 남성 환자 C씨는 교통사고 후 한방병원에서 중성어혈 약침을 맞은 후 심각한 엉덩이 괴사가 발생해 큰 수술을 받고 회복 중이다. C씨는 현재 소송을 준비 중이다.

현재 민사 소송 2심이 진행 중인 사례도 있다. 봉독 약침(벌독을 주성분으로 만든 약침)을 맞은 후 저혈압 쇼크와 알레르기 증상이 나타난 30대 여성 환자 B씨는 한의사가 전문의약품인 에피네프린과 덱사메타손으로 응급처치한 후에도 호흡곤란, 어지럼증, 일시적 시야장애, 두통 등의 증상이 지속됐다고 한다.

괴사 피해의 경우 약침으로 인한 감염이 부작용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김준성 가톨릭 의대 성빈센트병원 재활의학과 교수는 "오염된 침을 사용했거나 약침 성분이 관리가 안돼 감염됐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엉덩이에는 지방조직이 많아 농양이 커져 괴사가 일어나는데 처치가 빨리 안돼 항생제를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호전되지 않아 결국 수술로 농양을 제거한 후 피판술(피부 조직 전체를 옮기는 수술법)까지 한 것 같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인과관계를 볼 때 큰 질병이 있거나 건강이 아주 나쁘지 않은 이상 또 다른 원인은 있을 수가 없다"면서 "물론 100% 입증은 어렵지만, 약침을 맞고 2~3일 뒤 해당 부위에서 발생했고, 균이 나왔기 때문에 약침을 원인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고 타당하다. 약침은 효과 유무를 떠나 인체를 침습하는 시술인 만큼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약침도 일반 의약품처럼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지만, 일반 의약품과 달리 약침액 성분 제조부터 유통, 보관, 사용에 대한 규제가 없고 안전성·유효성 검증 절차도 없어 부작용을 막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정부에서 약침 부작용에 따른 사망·사고 등 피해 사례조차 조사하지 않아 통계로 잡힌 것도 없다.

김 교수는 "정부가 약침 시술을 한방 의료행위로 허가한 이래 현대의학과 달리 철저한 검증 없이 쓰도록 하고 있다"면서 "주사에 들어가는 약침액의 성분이나 용량이 명확히 정해져 있지 않아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잣대를 적용하는 의학의 기준에 맞게 정비돼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약침액 성분에 기준이 없어 원외 탕전실별로 약침액을 개발해 대량생산하고 있고 한의사가 마음대로 조제할 수도 있다고 한다. 원외탕전실은 한의사의 처방에 따라 탕약, 환약 등의 한약을 전문적으로 제조하는 의료기관 부속시설로, 여러 한의원들이 주문한 한약을 만들어 납품한다.

강석하 과학중심의학연구원 원장(대한의사협회 한방대책특별위원회 전문위원)은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도 의학계는 치료제 개발을 위한 비용과 시간을 감수해가며 철저하게 동물실험과 3단계 임상시험 평가(임상 1·2·3상)까지 마친 뒤 사용했다"면서 "약침은 한의사가 마음대로 만들어 주사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 외에 유례를 찾기 힘들다. 반드시 적절한 검증과 규제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한약침학회는 약침을 맞은 후 생긴 부작용의 원인이 세균 감염에 있다고 보긴 하지만, 약침이 아닌 한의사의 위생 관리가 문제라는 입장이다.

박재흥 대한약침학회 총무이사는 "엉덩이 괴사, 신경병성 통증이 발생한 것은 약침의 요인보다는 침습적 행위에서 흔히 나타날 수 있다"면서 "약침이 아니더라도 양방(현대의학)에서 주사를 투여해도 흔히 나타나는 후유증"이라고 반박했다. 또 "감염 문제는 침습적 행위에서는 언제든지 나타날 수 있다"면서 "침습적 행위는 흔히 말하는 손씻기 이상의 가이드라인을 양방에서도 찾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한의약 관련 제도와 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하는 보건복지부(복지부)는 약침이 유효하고 큰 문제 없이 안전하게 관리되고 있다는 입장이다.

복지부 한의약정책과 관계자는 "2019년과 2020년 약침의 유효성과 안전성에 관한 임상 연구가 2건 정도 있었는데, 임상 1상 정도로 임상 규모는 한 건은 82명, 다른 한 건은 93명"이라면서 "양약처럼 1,2,3상을 거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의약품 기준으로 임상 1상은 소규모 지원자를 대상으로 의약품이 사람에게 안전한지 여부만 확인하는 임상 초기 단계로, 의약품의 유효성과 안전성을 입증하는 임상 2상과 구분된다. 약침이 현대의약품은 아니지만, 아직 유효성과 안전성은 입증되지 않은 셈이다.

이 관계자는 또 "약침은 부작용 발생 위험도 있고 만드는 과정도 복잡해 한의원들이 약침의 조제를 원외탕전실에 맡겨 공급받는 형태가 많아졌고, 원외탕전실은 GMP(의약품 제조·품질관리 기준)수준으로 관리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는 약침의 종류와 정부가 인증한 원외탕전실 3곳에서 제조되는 약침의 비중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복지부는 한약이 안전하게 조제되는지 검증하기 위해 원료 입고부터 보관·조제·포장·배송까지 평가해 인증마크를 부여하는 '원외탕전 인증'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약침의 종류는 아마 100여 개 가까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1만5000 곳 가량에 달하는 국내 한의원을 모두 조사할 수 없어 인증 원외탕전실에서 조제하는 약침의 비중까지는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원외 상시 인증제로 약침 관리를 좀 더 강화하기 위해 내부적으로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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