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칼럼> 3월의 이해

입력 2023.03.20. 10:13 수정 2023.03.21. 10:38 댓글 0개
김유진의 교단칼럼 산정중학교 교사

불빛 한 줄기 없는 방에서 벽을 더듬거리면 전등 스위치를 찾아야만 했던 전입교사의 3월이 다 가고 있다. 언뜻 보면 학교마다 하는 일들은 다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새로운 사람, 시간, 공간과 함께 오는 그 어마어마한 3월은 일들의 구체적인 모습들을 미묘하게 빠꿔놓는다. 바뀐 것들에 익숙해지는 과정에서 긴장하고 불편하며 때론 당황스러움을 겪기도 한다. 3월은 개기름 자주 끼는 피곤한 그것이다.

3월은 교사의 여러 모양의 말들이 만나는 시기이도 하다. 학생 자치, 생활 교육, 삶을 위한 교육과정 등을 주제로 저마다 다른 말들을 꺼내 놓으니 그것이 학교를 풍요로워지게도 하고, 때론 부딪혀 함께 보낼 앞으로의 시간에 덜컥 겁을 먹기도 한다. 이후로 겁을 먹는 것이 두려워 아예 말을 꺼내지 않게 되어버리는 소극적 쾌락주의자들도 양산되는 시기이다.

학교 생활이 지칠 때 마다 박카스 마시듯 읽는 책이 있다. 그 책을 읽고 나면 교사로서의 고단함이 한시름 놓인다. 3월을 지낸 교사들이여, 자기 돌봄을 할 수 있는 도구 하나씩 찾아서 자신을 잘 회복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저마다 예쁘고 새로운 3월의 학생들이 있다. 교사의 가르침에 입은 "네"하고 있으나 번들거리는 눈을 점점 가늘게 뜨며 온 얼굴로 교사에 대한 불신과 경계심을 보이는 학생들이 있다. 또, 교사의 가르침에 진심으로 "네"만 하는 학생들이 있다. 그리고 속을 도대체 알 수 있는 정체가 궁금한 학생들도 있다. 이때 교사는 섣불리 진단하고, 섣불리 통제하고, 섣불리 가르치려 해서는 안 된다. 그랬다가는 첫번째 아이들에게는 자신을 정확히 이해하고 관리할 수 있는 기회나 힘을 빼앗는 경우가 생긴다. 그리고 두번째 아이들에게는 구조적 폭력을 가하는 실수를 범할 수도 있다. 마지막 학생들은 영원히 학생들을 알 수 있는 기회가 차단 될 수가 있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가장 힘든 학생은 눈을 점점 가늘게 뜨다가 아예 감아버린,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기보다는 삐뚤어진 관점으로 자기 자신을 이해하여 자신이 타인에게 끼치는 해를 인정하지 않는 학생들이다.

그 안에 얼마나 많은 바람과 비와 햇살을 머금고 있을지 모를 꽃봉오리가 꽃을 잘 피울 수 있게끔 3월의 학생들은 조심히, 다정히 만났으면 좋겠다.

이제 곧 4월의 교사와 학생들이 온다. 남극 탐방을 떠났다 빙하에 배가 난파되었지만 무사귀환한 인듀어런스호의 선원들을 아는가?

그 배의 선장인 셰클턴이 사람과 사람을 연결시켜 주는 도구들을 적절히 활용하여 나보다는 우리, 절망보다는 희망의 꽃을 피우려 노력했기에 가능했다. 카메라, 벤죠, 공, 그리고 특유의 유머 등과 같은 도구들 말이다. 결국 사람과 사람이 잘 연결되어 있을 때 공동체의 공간과 시간은 안전하고 풍요로워지며, 그 안에서 구성원들은 우리와 희망을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다. 4월은 그런 도구들을 찾아 우리가 잘 연결되는 시기였으면 좋겠다. 김유진 산정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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