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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윤정부의 강제 동원 해법은 ´외교´가 아니다
입력 2023.03.12. 13:27 수정 2023.03.13. 19:43 댓글 0개외교는 상대국이 존재하고, 협상을
통해서 주고받는 것이지만, 일본이라는
상대국은 없으며, 우리의 요구를
관철하기 위한 노력도 보이지 않는다
외교부의 발표문에는 일본과 논의했다는
것과 향후 일본의 호응을 기대한다는
목적어만 있을 뿐, 일본이 주어로
쓰인 부분이 없다. 강제 동원 문제를
덮어버리고 미래로 가자고 했으니,
이후부터 일본은 독도 영유권,
사도 광산 편법 등재, 위안부,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교과서
문제 등에서 강력하게 주장할
명분을 잃어버렸다. 자국민 피해자의
가슴에 대못을 박고, 신냉전을 획책하는
미·일의 집권 세력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정부는 과연 어느 나라 정부란 말인가?
정부는 지난 3월 6일, 소위 '제3자 변제'라는 일본의 강제 동원 문제에 대한 해법을 발표했다. 행안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정부와 국내 기업들의 출연기금으로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판결금과 지연 이자를 지급한다는 것이다. 발표 후 파장이 만만치 않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2018년 대법원의 강제 동원 판결 이행의 핵심이자, 피해자 요구의 핵심인 일본 정부와 전범 기업의 사과와 배상은 빠져있다. 그동안 한국의 대법원판결에 반발하면서 강제 동원 사안의 존재 자체를 거부해온 일본의 입장만을 전적으로 수용한 것이다. 향후 일본에 구상권을 청구할 계획이 없다고 밝힘으로써 완전한 면죄부까지 부여했다.
대한민국의 헌법정신에 반하고, 불법 강점이라는 역사를 부정하는 일본의 역사 수정주의를 묵인하며, 행정부가 사법부의 판결을 뒤엎는 3권분립의 민주주의 원칙을 훼손해버린 악수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에 더해 필자는 이번 조치의 외교적 함의를 따지고자 한다. 일본의 숙원을 한국 정부가 나서서 해결해준 것인데, 일각에서 지적하는 '외교 참사'라는 말로도 부족하다. 왜냐하면 외교 자체가 어디에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외교는 상대국이 존재하고, 협상을 통해서 주고받는 것이지만, 일본이라는 상대국은 없으며, 우리의 요구를 관철하기 위한 노력도 보이지 않는다. 외교부의 발표문에는 일본과 논의했다는 것과 향후 일본의 호응을 기대한다는 목적어만 있을 뿐, 일본이 주어로 쓰인 부분이 없다. 이것은 한국의 제안에 대한 일본의 이행 사항이 전혀 없다는 말이다.
외교는 51대 49의 협상 예술이라고 부른다. 100을 모두 가져올 수만 있다면 최고의 성과겠지만, 상대국이 바보가 아니기에 불가능에 가깝기에 현실적 목표치는 49를 주고, 51을 가져오는 것이라는 말이다.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며, 민감한 이슈들에서는 특히 치열한 주고받기의 협상 전쟁이 벌어진다. 상대방도 51을 향해 엄청나게 노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지속했다던 일본과의 논의에서 협상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일본에는 불가능에 가깝다는 100점짜리 답안을 내어주고, 한국은 0점이라는 성적표를 받았다. 일본의 수출규제 건에 대해서도 윤석열 정부의 굴욕외교는 이어졌다. 일본이 수출규제를 풀기도 전에 한국은 WTO 제소를 먼저 풀어버렸다. 일본이 수출규제를 강제 동원과 상관없는 조치였다는 입장을 확인해준 셈이다.
정부의 해법 발표가 양국의 합의문 형태가 아닌 '각자 발표'라는 형식을 채택한 것에 주목한다. 2015년 위안부 합의의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조항에 대한 한국 내 반발로 곤란했던 상황을 고려한 교활한 꼼수로 보인다. 정부는 한국이 먼저 해법을 내놓으면, 일본 정부와 피고 기업들이 호응할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일본이 그럴 일은 없다. 이미 받을 것 다 받았는데, 내줄리 없는 것이다. 일본의 의무를 요구하지 않고서 선의에 기대를 둔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더욱이 과거사에 관해 선의란 어디에도 없는 일본이다. 정부는 해법을 발표하면서 이것이 일본의 한계치라고 오히려 쉴드를 쳐주었다. 즉, 일본의 호응을 촉구하는 척하면서 국내 여론을 호도하려는 꼼수에 불과하다.
한·일 정상회담이 3월 16일부터 1박 2일로 열린다는 발표가 났다. 정상회담 개최 자체가 일본의 양보 조치는 아님에도, 국내의 반대 여론을 무마하고, 한일관계 개선의 결과로 포장하려는 시도다. 정상회담이 열리면 일본 기업들의 한국 유학생에 대한 기금 출연 등을 포함해 여러 우호적인 조치를 꺼내놓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이들 조치와 강제 동원 해법 간의 연결 고리는 자르고, 한국 정부만 호응 조치라고 포장할 것이다. 혹시라도 북한의 도발이 있다면, 그것을 대일 양보의 필요한 이유로 활용할 것이다. 강제동원 해법 발표 3일만에 일 외무상은 강제 동원은 없었고, 이미 다 끝난 일이라고 했다.
윤석열 정부는 일본 입장을 정당화시켜줌으로써 향후 세계 무대에서의 그간 대일 도덕적 우위를 스스로 포기했으며, 특히 강제 동원에 관해 국제법 위반을 인정한 꼴이 되었다. 이처럼 저자세 외교는 향후 대일 및 대미 관계에도 큰 문제를 일으킬 것이 자명하다. 강제 동원 문제를 덮어버리고 미래로 가자고 했으니, 이후부터 일본은 독도 영유권, 사도 광산 편법 등재, 위안부,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교과서 문제 등에서 강력하게 주장할 명분을 잃어버렸다. 박진 장관이 "문제 해결의 끝이 아닌 진정한 시작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피해자들의 반발과 국민 여론 악화를 의식해서 앞으로 노력하겠다는 말이었겠지만, 그 말이 저주의 씨가 될 수도 있다. 한일 간의 민감한 사안들이 불거져 나올 것이며, 약점을 잡힌 채로 향후 일본의 대담한 자기중심적 외교 공세에 직면할 가능성이 커졌다. 미래를 위해 과거를 이런 식으로 덮을 수는 없다. 오히려 우리의 미래는 이번 굴복 외교로 인해 더욱 참담한 과거의 굴레를 덮어쓰게 되었다.
실시간에 가까운 미국 정부의 즉각적인 환영은 배후임을 자처한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에 대해 가치를 내세우며 진영을 가르는 미국이, 더욱이 인권과 가치를 중시하는 민주당 정부가 불의한 과거에 눈을 감고 일본 군국주의의 부활을 부추겨, 한미일 3각 동맹을 구축하려 한다. 한국 정부는 이번 조치는 이런 미국의 구상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북한의 위협을 위해 일본과의 안보협력이 필수라고 말하지만, 북한을 상대하려다 중국과 러시아까지 끌어들여 한반도를 다시 강대국의 세력 경쟁의 최전선으로 만드는 우를 범하고 있다. 자국민 피해자의 가슴에 대못을 박고, 신냉전을 획책하는 미·일의 집권 세력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정부는 과연 어느 나라 정부란 말인가? 윤 정부의 강제 동원 해법에는 외교가 없었고, 악수를 해법으로 포장하기 위해 강조하는 '미래'는 암울할 뿐이다. 한동대학교 국제지역학과 교수·전 국립외교원장
- <칼럼> 나는 증오한다 고로 행복하다 프랑스 작가 에밀 졸라는 "증오란 신성한 것"이라고 했다. 억울하게 간첩 누명을 쓴 드레퓌스라는 사람을 옹호하면서 한 말이다. 아닌게 아니라 사회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신성한 증오'엔 저절로 머리가 수그러진다. 그러나 요즘엔 이런 증오를 보는 게 영 쉽지 않다. 물론 증오를 발산하는 이들은 사회정의를 내세우겠지만, 특정 진영논리에 사로잡히는 순간 그 사회정의는 내로남불의 하위 개념으로 전락하고 만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증오는 대부분 이런 내로남불형 증오다.혹 주변에 증오를 자주 발산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잘 관찰해보시라. 그들은 대부분 옳은 말을 한다. 그게 그렇게까지 욕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선 선뜻 동의하기 어려울망정 비난받아 마땅한 일에 대해 비난하는 것에 대해선 일단 긍정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증오를 자주 접하다보면 그 어떤 일관된 패턴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증오의 대상이 진영 중심으로 어느 한쪽에만 집중돼 있다는 점이다.사적인 자리에선 정치 이야기를 한사코 피하는 사람일지라도 누군가가 불쑥 꺼내는 정치 이야기까지 틀어 막을 수는 없는지라 그냥 들어야 할 때가 있을 게다. 잠자코 들으면서도 속으로는 홀로 이런저런 반론을 제기하고 싶을 게다. "그런 특성은 당신이 추앙하는 사람이 훨씬 더 심한 것 같은데, 왜 이 사람만 비난하지?" 이런 생각을 발설했다간 싸움 나기 십상인지라 그냥 자기 머릿속에서만 반론을 제기해야 한다. 사실 관계가 다른 과장과 왜곡이 섞여 있는 주장일지라도 그걸 지적하는 것조차 위험하다. "음. 선동 전문 유튜브를 많이 보는구나"라고 생각하면서 넘어가는 게 좋다.사회과학자로서의 직업병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평소 공사(公私) 영역에서 그런 증오를 발산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유형을 분류하곤 한다. 아무리 대화를 해봐야 내로남불을 내장하고 있는 진영논리라는 방탄벽을 뚫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절감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분석이나 해보자는 자세로 돌아서서 하게 된 게 유형 분류다. 증오의 이유 중심으로 볼 때에 생존투쟁, 쾌락투쟁, 인정투쟁, 이익투쟁의 네가지로 나눌 수 있었다.첫째, 생존투쟁은 자신이 살기 위해서 하는 증오다. 미국 작가 에릭 호퍼는 "열정적인 증오는 공허한 삶에 의미와 목적을 줄 수 있다"고 했는데,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의 강성 지지자들 중에 이런 유형의 사람들이 많다. 삶의 공허함은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 아닌가. 그런데 국가와 민족이라는 거대한 차원에서 격렬하게 증오할 대상을 찾아 증오의 발산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건 자신의 사회적 쓸모와 중요성을 확인하면서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의로운 일이 된다. 어느 정당에서건 강성 지지자들의 진정성과 열정이 감동을 자아내게 할 정도로 강할지라도 그들의 주장대로만 가면 당은 망할 수밖에 없는 역설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에게 우선적인 건 자기 삶의 의미와 목적이지, 그마저 희생해가면서 당의 성공을 바라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둘째, 쾌락투쟁은 자신의 즐거운 쾌감을 위해 하는 증오다. "증오와 사랑은 같은 호르몬을 유발하는 것 같다." 영국 소설가 그래함 그린의 말이다. 이 주장을 입증하겠다는 듯 미국 정신분석학자 오토 케른베르크는 '즐거움으로서의 증오'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격노에서 파생된 증오는 매우 유쾌한 공격적 행동을 낳을 수 있다. 다른 이에게 고통, 수치심, 아픔을 유발함으로써 느끼는 가학적 쾌감, 다른 이의 가치를 깎아내림으로써 얻어지는 환희가 그것이다." 공적 영역에서건 사적 영역에서건 진정성과 열정을 갖고 증오의 언어를 내뿜는 사람들의 얼굴을 본 적이 있는가? 그런 얼굴들만 모아 그림으로 보여줄 수 없는 게 안타깝다. 그들은 개인적으론 쾌감을 느끼며 행복해하는 엑스터시(ecstasy)의 경지에 이르렀겠지만, 문제는 그런 엑스터시를 모르는 사람들과의 소통은 불가능하다는 점일 게다.셋째, 인정투쟁은 자신의 소속 집단에서 인정을 받기 위해 하는 증오다. 그 집단이 비공식 집단이며 느슨하게 구성돼 있을지라도 한 개인의 일상적 삶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라면 위계질서가 엄격한 공식 집단 이상의 영향력과 규제력을 행사할 수 있다. 그 집단의 구성원들이 이구동성으로 증오하는 대상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갖고 있으면 외로워질 뿐만 아니라 정도가 심해지면 왕따를 당할 수도 있다. 테레사 수녀는 "가장 나쁜 병은 나병도 결핵도 아니다. 아무도 존경하지 않고 아무도 사랑해주지 않고, 배척받고 있다는 느낌이 가장 나쁜 것이다"고 했다. 사실 배척받고 있다는 느낌은 공포다. 그런 공포를 피하는 건 물론이고 무난한 인간관계를 위해서라도 증오 발산의 대열에 동참해야 한다.넷째, 이익투쟁은 자신의 현실적인 이익을 위해 하는 증오다. 이는 증오를 팔아 돈을 버는 일부 언론과 유튜브 등 이른바 '정치군수업자들'의 선전·선동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선전·선동을 사회정의로 포장하는 '증오 마케팅' 능력이 워낙 탁월해 정의에 목 마른 신도들로부터 적잖은 헌금을 거둬들인다. 특정 정당이 막강한 지배력을 행사하는 지역으로 내려가면 반대 정당이나 진영에 대해 "누가 더 강한 증오와 혐오의 언어로 공격하나?"를 겨루는 경쟁이 벌어진다. 그런 풍토에선 개인이나 자영업자에게도 증오를 표현하는 건 먹고 사는 문제와 무관할 수 없는 일이 된다. 모두가 다 증오의 방향으로 뛰면 그 증오의 심정과 언어를 공유하면서 따라 뛰어야만 무난하게 살아갈 수 있다.이렇듯 우리 사회에선 자기 진영의 이익과 그 진영에 소속된 사람들의 여러 개인적인 이유들로 인해 증오를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나는 증오한다 고로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시사하는 것이어서,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사람이 어렴풋한 수준일지라도 소속 진영 없이 살아가기는 어려운 일인데다 팔은 안으로 굽기 마련이라는 걸 부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정치권의 고질병인 내로남불이 일반 시민들의 일상적 삶에까지 파고 들어 생활화되는 걸 당연하다고 여길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 모두 그 누구도 증오하지 않음으로써 행복해지는 길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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