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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앵벌이성 후원금´과 ´출판기념회´
입력 2023.02.26. 13:34 수정 2023.02.27. 20:23 댓글 0개'앵벌이성 후원금 모집'을 아름답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이걸 하는 의원들은
비교적 정직하다고 볼 수 있다. 한국 정치에서
오랫동안 '편법 후원금 통로'로 이용돼 온
출판기념회는 상당 부분 위세를 이용한
수금으로 볼 수 있는 반면, '앵벌이성
후원금 모집'은 시종일관 그야말로 낮은
자세로 임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치인 출판기념회는 '편법 후원금 통로'의
수준을 넘어 공공연한 불법 정치자금과
뇌물 모금회로 불린 지도 오래됐다
모두 머리를 맞대고 '정치자금 정상화'를
위한 실효성 있는 개선책을 찾는 게 좋을 것 같다
"정치에서 중요한 것은 두 가지다. 첫 번 째는 돈이다. 두 번째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미국 정치인 마크 한나의 말이다. 그는 제25대 대통령 윌리엄 맥킨리의 선거본부장이었는데, 1896년 대선 당시 맥킨리가 쓴 선거자금은 경쟁자보다 5배나 많은 액수였다고 한다. 물론 이 선거는 맥킨리의 승리로 끝났다.
20세기엔, 그리고 21세기 들어선 좀 나아졌을까? 겉보기에 나아진 점은 있었지만, 한가지 변치 않은 게 있었으니, 그건 바로 "돈은 정치의 젖줄이다"는 사실이었다. 1977년에서 1987년까지 10년 넘게 미국 하원의장을 지낸 팁 오닐은 정치에서 돈의 중요성을 그렇게 간결한 한마디로 정리했다.
"백악관을 향한 선거전은 실제로 투표가 이루어지기 전에 결정된다." 미국 정부와 공직자들의 정직성을 감시하는 초당파적 비영리조사기구인 CPI의 전무이사인 찰스 루이스가 '2004년도 대통령 매수하기'라는 책에서 돈에 의해 선거가 좌우되는 '돈 선거'를 비판하면서 한 말이다. 그는 "미국 대통령 정치의 더러운 비밀은, 최고 부유층이 선거 1년 전에 자기들끼리 비밀리에 투표를 해버린다는 점이다"고 개탄했다.
그대로 다 믿을 말은 아니지만, 한국정치는 그런 주장이 나올 정도는 아니라는 점에서 다행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 같다. 물론 한국정치에서도 돈은 절대적으로 중요하지만, 돈을 구하려는 풍경 중엔 소박하거나 짠한 장면들도 많으니 말이다. 이른바 '앵벌이성 후원금 모집'은 어떤가.
"검찰의 악랄한 짓거리가 연일 터지고 있다. (국정감사 준비를 위한) 군자금이 부족하다. 저랑 의원실 보좌진이 밥을 굶고 있다. 매일 김밥이 지겹다. 염치없지만 후원금 팍팍 부탁드린다. 저에게 밥 한 끼 사주시고 검찰개혁 맡긴다 생각하시고 후원 부탁드린다."
2020년 10월 16일 민주당 의원 김용민이 김어준의 '딴지일보' 등 친(親)민주당 매체에 올린 글이다. 이 글을 본 지지자들은 "의원님, '윤짜장'(윤석열 검찰총장을 지칭) 꼭 혼내주세요" 등의 댓글을 달고 소액 후원금을 보냈다고 썼다.
법사위원으로서 중립적인 입장으로 피감기관을 상대해야 하는 의원이 지지자 사이트에 직접 검찰을 저격하면서 '앵벌이성 후원금 모집 글'을 쓴 것은 문제가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지만, 의원들에겐 그만큼 후원금이 절실하다는 걸 실감나게 말해준 에피소드였다.
효과가 좋았다는 게 입증되자 약 열흘 후인 10월 27일 민주당 의원 정청래는 페이스북에 "통장이 텅 비어 마음마저 쓸쓸하다. 한푼 줍쇼"라는 글을 올렸다. 이로 인해 또 다시 '앵벌이' 논란이 일었지만, 바로 그 다음 날 정청래의 통장엔 2천700만원이 입금되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2년 후인 2022년 11월 27일 민주당 의원 김남국은 온라인 커뮤니티인 디시인사이드에 "크리스마스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직접 비법을 전수해 드립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속내는 글의 말미에 밝혔다. "이 글을 보고 웃고 계시거나 연애 꿀팁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은 후원 꼭 부탁드린다"며 "후원금이 텅텅 비었다. 청년 정치인들은 후원금 모금하기가 정말 쉽지 않다"고 호소했다. 그는 글 게재 후 후원금이 쇄도한 사실을 알리며 "하루 사이에 지난 몇 개월간 받은 후원금보다 훨씬 많은 후원금을 보내줬다"고 밝혔다.
12월 29일엔 정의당 의원 류호정이 자신의 페이스북 게시글을 통해 "후원금은 이제 절반, 마감은 이틀 남았다"며 "구걸이라 조롱해도, 구질구질하다 핀잔해도 괜찮다. 의원실 보좌진, 당의 당직자들이 위축되지 않고 기꺼이 일할 수만 있다면…"이라고 했다. 그는 "가난한 소수정당 의원의 정치자금은 최소한의 운영비, 정책개발비, 홍보비에 쓰기에도 늘 모자라기 때문"이라며 "도와달라. 널리 알려달라. 부탁드린다"고 지지자들에게 호소했다.
'앵벌이성 후원금 모집'을 아름답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이걸 하는 의원들은 비교적 정직하다고 볼 수 있다. 한국 정치에서 오랫동안 '편법 후원금 통로'로 이용돼 온 출판기념회는 상당 부분 위세를 이용한 수금으로 볼 수 있는 반면, '앵벌이성 후원금 모집'은 시종일관 그야말로 낮은 자세로 임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후원금은 영수증 발행, 선관위 신고, 회계 검사까지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 투명하게 운용해야 하는 반면, 출판기념회의 이른바 책값은 아무 제한 없이 받아 아무데나 써도 된다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정치인 출판기념회는 '편법 후원금 통로'의 수준을 넘어 공공연한 불법 정치자금과 뇌물 모금회로 불린 지도 오래됐다. 권력이 센 정치인들이 츨판기념회로 10억을 모았다는 뒷말도 심심찮게 나올 정도이니 더 말해 무엇하랴.
오래 전에 나온 '눈도장 안 찍으면 … 출판기념회에 등골 휘는 지역 기업'이라는 제목의 중앙일보 기사를 감상해보자. 이 기사에 따르면, 어느 지역 기업 대표는 "최근 한 달 새 출판기념회 초청장만 10개 넘게 받았다"며 "찍힐까봐 안 갈 수는 없는데 앞으로도 계속 초청장이 올 것이어서 여간 부담되는 게 아니다"라고 털어놨다. 출판기념회 자리에서 직접 내미는 봉투뿐 아니라 행사장에 보내는 화환값 또한 만만치 않기에 지역기업인들은 그런 초청장을 '고지서'로 부른다고 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장 노태악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정치인 출판기념회를 폐지하거나, 책값을 정가로 받게 하자"고 말했지만, 둘 다 이루어지긴 어려울 것 같다. 출판기념회에 대한 비난은 아주 오래전부터 나온 것이지만 그간 달라진 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취지는 정의롭고 아름답지만 비현실적이다"는 반론을 무작정 비난만 할 게 아니라 모두 머리를 맞대고 '정치자금 정상화'를 위한 실효성 있는 개선책을 찾는 게 좋을 것 같다.
'앵벌이성 후원금 모집'은 깨끗하다고는 해도 '증오 마케팅'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다는 게 문제다. 후원금을 아끼지 않는 강성 지지자들을 겨냥해 반대편 정치세력이나 정치인에 대한 증오와 혐오를 부추기는 담론을 양산해내는 의원들이 있으며, 이들의 후원금 모금 실적이 비교적 좋다는 건 무얼 말하는가? 국민통합의 관점에선 그런 전투적 정치인들보다는 차라리 출판기념회를 통해 수금하는 정치인이 더 낫다고 말해야 하는 현실이 서글프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광주·전남 대표 정론지 무등일보는 영남일보(경상), 중부일보(경기), 충청투데이(충청) 등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지역신문사들과 함께 매주 화요일 연합 필진 기고를 게재합니다. 해당 기고는 무등일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칼럼> 나는 증오한다 고로 행복하다 프랑스 작가 에밀 졸라는 "증오란 신성한 것"이라고 했다. 억울하게 간첩 누명을 쓴 드레퓌스라는 사람을 옹호하면서 한 말이다. 아닌게 아니라 사회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신성한 증오'엔 저절로 머리가 수그러진다. 그러나 요즘엔 이런 증오를 보는 게 영 쉽지 않다. 물론 증오를 발산하는 이들은 사회정의를 내세우겠지만, 특정 진영논리에 사로잡히는 순간 그 사회정의는 내로남불의 하위 개념으로 전락하고 만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증오는 대부분 이런 내로남불형 증오다.혹 주변에 증오를 자주 발산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잘 관찰해보시라. 그들은 대부분 옳은 말을 한다. 그게 그렇게까지 욕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선 선뜻 동의하기 어려울망정 비난받아 마땅한 일에 대해 비난하는 것에 대해선 일단 긍정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증오를 자주 접하다보면 그 어떤 일관된 패턴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증오의 대상이 진영 중심으로 어느 한쪽에만 집중돼 있다는 점이다.사적인 자리에선 정치 이야기를 한사코 피하는 사람일지라도 누군가가 불쑥 꺼내는 정치 이야기까지 틀어 막을 수는 없는지라 그냥 들어야 할 때가 있을 게다. 잠자코 들으면서도 속으로는 홀로 이런저런 반론을 제기하고 싶을 게다. "그런 특성은 당신이 추앙하는 사람이 훨씬 더 심한 것 같은데, 왜 이 사람만 비난하지?" 이런 생각을 발설했다간 싸움 나기 십상인지라 그냥 자기 머릿속에서만 반론을 제기해야 한다. 사실 관계가 다른 과장과 왜곡이 섞여 있는 주장일지라도 그걸 지적하는 것조차 위험하다. "음. 선동 전문 유튜브를 많이 보는구나"라고 생각하면서 넘어가는 게 좋다.사회과학자로서의 직업병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평소 공사(公私) 영역에서 그런 증오를 발산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유형을 분류하곤 한다. 아무리 대화를 해봐야 내로남불을 내장하고 있는 진영논리라는 방탄벽을 뚫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절감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분석이나 해보자는 자세로 돌아서서 하게 된 게 유형 분류다. 증오의 이유 중심으로 볼 때에 생존투쟁, 쾌락투쟁, 인정투쟁, 이익투쟁의 네가지로 나눌 수 있었다.첫째, 생존투쟁은 자신이 살기 위해서 하는 증오다. 미국 작가 에릭 호퍼는 "열정적인 증오는 공허한 삶에 의미와 목적을 줄 수 있다"고 했는데,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의 강성 지지자들 중에 이런 유형의 사람들이 많다. 삶의 공허함은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 아닌가. 그런데 국가와 민족이라는 거대한 차원에서 격렬하게 증오할 대상을 찾아 증오의 발산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건 자신의 사회적 쓸모와 중요성을 확인하면서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의로운 일이 된다. 어느 정당에서건 강성 지지자들의 진정성과 열정이 감동을 자아내게 할 정도로 강할지라도 그들의 주장대로만 가면 당은 망할 수밖에 없는 역설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에게 우선적인 건 자기 삶의 의미와 목적이지, 그마저 희생해가면서 당의 성공을 바라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둘째, 쾌락투쟁은 자신의 즐거운 쾌감을 위해 하는 증오다. "증오와 사랑은 같은 호르몬을 유발하는 것 같다." 영국 소설가 그래함 그린의 말이다. 이 주장을 입증하겠다는 듯 미국 정신분석학자 오토 케른베르크는 '즐거움으로서의 증오'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격노에서 파생된 증오는 매우 유쾌한 공격적 행동을 낳을 수 있다. 다른 이에게 고통, 수치심, 아픔을 유발함으로써 느끼는 가학적 쾌감, 다른 이의 가치를 깎아내림으로써 얻어지는 환희가 그것이다." 공적 영역에서건 사적 영역에서건 진정성과 열정을 갖고 증오의 언어를 내뿜는 사람들의 얼굴을 본 적이 있는가? 그런 얼굴들만 모아 그림으로 보여줄 수 없는 게 안타깝다. 그들은 개인적으론 쾌감을 느끼며 행복해하는 엑스터시(ecstasy)의 경지에 이르렀겠지만, 문제는 그런 엑스터시를 모르는 사람들과의 소통은 불가능하다는 점일 게다.셋째, 인정투쟁은 자신의 소속 집단에서 인정을 받기 위해 하는 증오다. 그 집단이 비공식 집단이며 느슨하게 구성돼 있을지라도 한 개인의 일상적 삶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라면 위계질서가 엄격한 공식 집단 이상의 영향력과 규제력을 행사할 수 있다. 그 집단의 구성원들이 이구동성으로 증오하는 대상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갖고 있으면 외로워질 뿐만 아니라 정도가 심해지면 왕따를 당할 수도 있다. 테레사 수녀는 "가장 나쁜 병은 나병도 결핵도 아니다. 아무도 존경하지 않고 아무도 사랑해주지 않고, 배척받고 있다는 느낌이 가장 나쁜 것이다"고 했다. 사실 배척받고 있다는 느낌은 공포다. 그런 공포를 피하는 건 물론이고 무난한 인간관계를 위해서라도 증오 발산의 대열에 동참해야 한다.넷째, 이익투쟁은 자신의 현실적인 이익을 위해 하는 증오다. 이는 증오를 팔아 돈을 버는 일부 언론과 유튜브 등 이른바 '정치군수업자들'의 선전·선동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선전·선동을 사회정의로 포장하는 '증오 마케팅' 능력이 워낙 탁월해 정의에 목 마른 신도들로부터 적잖은 헌금을 거둬들인다. 특정 정당이 막강한 지배력을 행사하는 지역으로 내려가면 반대 정당이나 진영에 대해 "누가 더 강한 증오와 혐오의 언어로 공격하나?"를 겨루는 경쟁이 벌어진다. 그런 풍토에선 개인이나 자영업자에게도 증오를 표현하는 건 먹고 사는 문제와 무관할 수 없는 일이 된다. 모두가 다 증오의 방향으로 뛰면 그 증오의 심정과 언어를 공유하면서 따라 뛰어야만 무난하게 살아갈 수 있다.이렇듯 우리 사회에선 자기 진영의 이익과 그 진영에 소속된 사람들의 여러 개인적인 이유들로 인해 증오를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나는 증오한다 고로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시사하는 것이어서,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사람이 어렴풋한 수준일지라도 소속 진영 없이 살아가기는 어려운 일인데다 팔은 안으로 굽기 마련이라는 걸 부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정치권의 고질병인 내로남불이 일반 시민들의 일상적 삶에까지 파고 들어 생활화되는 걸 당연하다고 여길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 모두 그 누구도 증오하지 않음으로써 행복해지는 길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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