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칼럼> 계란을 한 바구니에만 담는 외교

입력 2023.02.13. 10:26 수정 2023.02.14. 10:40 댓글 0개
김준형의 외교광장 한동대 국제지역학교 교수/전 국립외교원장

윤석열 정부의 외교는 동맹 및 진영 외교가

다자외교를 압도한다. 오늘날의 국제정세를

피상적으로만 보면 미국 중심의 진영과

중러가 연대하는 두 세계로 확연하게

갈라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생각보다 양상은

매우 복잡하고, 예측하기 쉽지 않다

각자도생의 시대가 부상하기는 하지만

초연결의 세계화가 구축해온 질서가

중첩하면서 수많은 변수가 작동한다

따라서 단순하게 재단하고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위험한 전략이다

외교의 기본은 실리 추구이며, 외교는

평화를 확보하는 가장 값싸고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격언은 여전히 유효하다

'모든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미국의 경제학자 제임스 토빈(James Tobin)의 말이다. 그가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직후에 '포트폴리오 이론'을 쉽게 설명해달라는 기자의 질문에 대답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만 담으면, 떨어뜨리거나 충격이 가해질 때 전부 깨지기 때문에 분산해서 위험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의미다. 주식투자의 금기사항으로 자주 인용되지만, 거의 모든 영역에 적용할 수 있으며,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원칙으로 반박하기 어렵다. 그런데 최근 한국 정부의 외교는 이 금언을 자주 떠올리게 만든다.

국가의 외교 영역도 한 가지 전략에 매달리거나, 한 국가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은 위험하다. 불안정한 국제질서에서 이런 외교 원칙을 지키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변동성이 커지면 예측이 어렵기에 다양한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많은 옵션을 준비해야 한다. 활용할 카드를 적게 소유할수록 외교적 자율성은 급격하게 하락하고, 반대로 다른 국가에 대한 의존성은 커질 수밖에 없다.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의 양만큼 대외정책의 자율성 정도가 결정된다. 결국 얼마나 많은 카드를 지니고 있느냐에 따라 장기적으로 국력의 차이를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외교 행보를 냉철하게 돌아보면, 이 중요한 금기를 어기고 있어 우려가 크다. 미중 패권 갈등이 구조화하고, 우크라이나 전쟁은 장기화의 길로 들어섰으며, 지정학의 거센 파도로 불안정한 국제질서가 심화하는데 우리는 계란을 한 바구니에만 담는 위험한 전략을 하고 있다. '더하기 외교'를 해도 부족한데 '빼기 외교'를 해왔으며, 그 속도도 지나치게 빠르다. 전후좌우를 살피지 않고, 맹목적으로 한 방향으로 돌진하는 듯이 보인다. 학습하지 않는 외교 분야 문외한의 실책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 것이 대통령의 이분법적 세계관이 시간이 갈수록 굳어진다는 점이다. 대통령 후보 시절보다 더 세계를 흑백론으로 선과 악, 적과 친구로만 나눈다. UAE는 형제, 이란은 적이라는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것이 상대적으로 작은 사례이지만,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것은 그러한 세계관이 외교 전반을 관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발성이 아니라 첫 순방 외교였던 나토 정상회담 참여부터 지난해 말의 동남아순방까지 이어진 한국의 외교는 미국과 일본 일변도이다. 내용이나 빈도로도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지만, 방향도 확고하다. 무엇보다 세계질서의 진행보다 더 앞질러 신냉전의 시대로 질주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분단국가라는 한계 속에서도 개방형 통상국가로 성장해왔다. 지난 30년 동안 이질적인 대륙 세력과도 협력을 모색함으로써 해양 세력과의 교량 역할과 다자외교의 중심 국가로 도약할 수 있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의 외교는 동맹 및 진영 외교가 다자외교를 압도한다. 오늘날의 국제정세를 피상적으로만 보면 미국 중심의 진영과 중러가 연대하는 두 세계로 확연하게 갈라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생각보다 양상은 매우 복잡하고, 예측하기 쉽지 않다. 각자도생의 시대가 부상하기는 하지만 초연결의 세계화가 구축해온 질서가 중첩하면서 수많은 변수가 작동한다. 따라서 단순하게 재단하고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위험한 전략이다. 제로섬의 질서로만 보이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세계 141개국이 유엔에서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규탄하지만, 대러 경제제재에 참여함으로써 러시아와 맞서는 국가는 48개국으로 줄어든다.

세계를 적과 친구로만 규정하면 외교의 역할은 축소되고, 분쟁의 구도는 확대된다. 바이든 정부가 미국의 전략적 필요에 의해 '자유세계'와 '자유를 위협하는 세계'로 나누는데, 우리는 어쩌면 미국보다 더 적극적으로 대륙 봉쇄의 전위대가 되려 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 일본, 유럽은 금융경제를 기반으로 삼지만, 정작 에너지와 자원이 풍족하고, 제조업의 실물경제는 중국, 러시아, 중동 국가들이 주도한다. 아무리 전자의 국가들이 압박하고 봉쇄하더라도 후자의 국가들은 내핍으로 견딜 수 있는 국가들이다. 미국이 지난 수십 년 동안 북한, 쿠바, 이란 같은 나라들을 제재하고 봉쇄해도 무너뜨리지 못했는데, 중국이나 러시아를 봉쇄해서 제압하려는 기대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강조하던 중국의 한 고위 관리의 말이 되새겨진다.

지난해 최상목 경제수석은 "중국 성장이 둔화하고 있고, 내수 중심의 전략으로 전환되고 있다. 지난 20년간 우리가 누려왔던 중국을 통한 수출 호황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라는 발언으로 주식시장을 포함해 상당한 파문을 초래했었다. 이 발언은 나토 정상회담을 수행하면서 유럽 시장의 중요성을 기자들에게 설명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한국의 탈중국 선언으로 받아들여졌고, 중국의 비판이 한국의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그러나 대부분의 비판은 환구시보를 포함한 중국 언론의 문제제기였다. 오히려 중국 정부의 공식 반응은 생각보다 차분했다. 한중관계의 밀접한 상호의존을 지적한 다음, '너 안에 내가 있고, 내 안에 너 있다'는 시적인 표현으로 마무리했다. 생각하기에 따라 섬뜩하다.

시쳇말로 '몰빵'은 외교에서 선택해서는 안 된다. 전략적 명확성이 늘 옳은 것은 아니다. 전략이 없다는 의미에서의 전략적 모호성이 아니라 치밀한 계산과 변수를 고려한 이후 의도적인 모호성의 전략은 필요하다. 한미동맹은 우리 대외정책의 근간이고, 한일관계의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또한 북·중·러에 대한 혐오는 나름의 정당성이 있고, 국제정치 체제에서 선악의 개념은 강력한 효과를 발휘한다. 윤석열 정부의 흑백론과 친미-친일 일변도는 신념일 수도 있고, 국내 정치를 위한 수단일 수도 있다. 특히 대륙 세력과의 관계가 악화한다고 해도 책임은 '악한' 저들에게 돌리면 되므로 손해 볼 것은 없다고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 대한민국의 외교는 없어지고, 국익은 무너질 수 있다. 외교의 기본은 실리 추구이며, 외교는 평화를 확보하는 가장 값싸고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격언은 여전히 유효하다. 한동대학교 국제지역학과 교수·전 국립외교원장

# 이건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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