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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윤석열 화법´의 비극
입력 2023.01.29. 13:29 수정 2023.01.30. 19:04 댓글 0개윤석열의 화법은 '즉흥적 순발력'에 기대는
유형인데, 사실 이런 유형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좌중을 압도할 정도로
말을 유창하고 재미있게 잘하긴 하는데,
그는 참석자들의 보스거나 리더급에
속하는 인물이다. 웬만하면 웃어줄 준비가
돼 있는 청중을 대상으로 썰을 풀기는 쉽다
때와 장소와 사람에 따라 차별화된 다른
유형의 화법을 잘 구사할 수만 있다면
이런 유형은 문제될 게 없으며 말하기에
탁월한 재능이 있다고 칭찬해줘도
무방하리라. 그런데 간혹 이런 화법에
중독된 나머지 공식석상의 발언마저
같은 방식의 화법으로 밀어 붙여 큰 손해를
보는 사람들이 있다. 안타깝지만 윤석열도
바로 그런 사람 중의 하나다
"침묵은 말보다 더 능변이다." 영국 역사가 토머스 칼라일의 말이다. 그는 프랑스의 계몽 사상가 장 자크 루소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는데, 그 이유 역시 침묵과 관련이 있다. 그는 "루소는 지극히 귀중한 자질인 '침묵'을 갖지 못했다"며 "말하고 행동할 때가 오기까지 '조용히 침묵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은 진정한 사람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칼라일은 입이 매우 무거운 사람이었을까? 그래야 마땅할 것 같은데, 오히려 정반대였다고 하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칼라일보다 14년 연하였던 영국의 생물학자이자 진화론자인 찰스 다윈의 자서전엔 흥미로운 이야기가 등장한다. 다윈은 "형의 집에서 저녁식사를 함께 했을 때 재미있는 일이 있었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말 잘 하기로 유명한 찰스 배비지와 찰스 라이엘이 모두 있는 자리였는데, 칼라일이 침묵의 이점을 주제로 하여 저녁 내내 장광설을 늘어놓아 좌중을 잠잠하게 만들었다. 식사가 끝난 후 배비지는 험상궂은 표정으로 칼라일에게 인사하며 침묵에 대해 흥미있는 강의를 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실제로 칼라일처럼 다변가가 침묵의 미덕을 강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얼마나 믿어야 할진 모르겠지만, 한국인과 아일랜드인을 세계에서 '가장 말 많은 민족'으로 꼽는 속설에 따르자면 아마도 한국인과 아일랜드인 중에 그런 사람들이 비교적 많을 것 같다. 아일랜드인들은 "자기 목소리를 듣기 위해 말을 한다"는 말까지 들을 정도인데, 아일랜드 출신의 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이런 말을 남기기도 했다. "만약 영국인에게 말하는 법을 가르치고, 아일랜드인에게 듣는 법을 가르친다면, 이곳은 대단히 수준 높은 문명 사회가 될 것이다."
행여 한국인과 아일랜드인을 비하하는 걸로 오해하는 분이 없기를 바란다. 속된 말로 '썰'에 강하다는 건 장점이지 결코 단점은 아니다. 다만 썰의 품질에 대한 자기객관화 능력은 갖추는 게 어떨까 싶다. 그런 점에서 대한민국 검찰 역사상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다변가이자 달변가 검사로 통했던 대통령 윤석열의 화법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하자.
"윤석열은 늘 보기에 딱하다. 공개되지 않는 사랑방 잡담회 수준의 언어를 언론 앞에서도 그대로 구사함으로써 자주 화를 자초한다." 내가 지난해 1월에 출간한 '좀비 정치'라는 책에서 한 말이다. 1년이 지난 지금도 그런 화법엔 변함이 없으니 이를 어찌할 것인가.
윤석열의 화법은 '즉흥적 순발력'에 기대는 유형인데, 사실 이런 유형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좌중을 압도할 정도로 말을 유창하고 재미있게 잘하긴 하는데, 그는 참석자들의 보스거나 리더급에 속하는 인물이다. 권위와 카리스마를 갖고 있다는 의미일 수도 있지만, 말의 내용이나 품질에 대한 이의 제기나 도전으로부터 자유롭다는 뜻이다. 웬만하면 웃어줄 준비가 돼 있는 청중을 대상으로 썰을 풀기는 쉽다.
때와 장소와 사람에 따라 차별화된 다른 유형의 화법을 잘 구사할 수만 있다면 이런 유형은 문제될 게 없으며 말하기에 탁월한 재능이 있다고 칭찬해줘도 무방하리라. 그런데 간혹 이런 화법에 중독된 나머지 공식석상의 발언마저 같은 방식의 화법으로 밀어 붙여 큰 손해를 보는 사람들이 있다. 안타깝지만 윤석열도 바로 그런 사람 중의 하나다.
지난 15일 아랍에미리트(UAE)를 국빈 방문 중이었던 윤석열은 UAE에 파병된 아크부대 장병들을 만난 자리에서 "우리 형제 국가인 UAE의 안보는 바로 우리의 안보"라며 "UAE의 적은, 가장 위협적인 국가는 이란이고 우리 적은 북한이다. 우리와 UAE가 매우 유사한 입장에 있다"고 말했다. 이게 바로 그 유명한 'UAE의 적은 이란' 발언 사건이다.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 탁현민은 "장병들을 격려하기 위한 말이었다고 해명하는데, 그게 격려가 되는지 모르겠지만, 그 말이 사실이어도 그 정도 발언이 문제가 될 거라는 판단을 그 안에서 누구도 하지 않았다면 시스템이 붕괴됐다는 의미"라고 비판했다. 그런가? 시스템이 붕괴된 건가? 그건 아닌 것 같다. 애초에 시스템이라고 할 게 없었기 때문이다. 모든 게 '윤석열 마음대로'라고 보는 게 옳다. 그렇지 않다면 탁현민이 말한 '시스템 붕괴'는 이미 여러 차례 일어났는데, 붕괴된 시스템이 또 다시 붕괴된다는 건 이상하지 않은가.
'윤석열 화법'의 비극은 '메타인지(metacognition)', 즉 자기인식 능력이 박약하다는 데에 있다. 쉽게 말하자면, 윤석열은 자신을 전천후형 달변가로 오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 말 많고 탈 많았던 '도어스테핑'을 6개월간이나 지속시킨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다. 도어스테핑 중단 이후 지지율이 조금씩 오르기 시작했건만, 윤석열은 여전히 자신의 다변 또는 '달변'을 중단할 뜻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인터뷰나 발언시 원고 없이 순발력 하나로 버티는 걸 자랑스럽게 여기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지난해 9월 22일 뉴욕에서 벌어진 이른바 '대통령 비속어 논란' 사건만 해도 그렇다. 이 사건을 어떻게 평가하건, 내가 가장 놀란 건 단 몇십초를 참지 못해 부적절한 상황에서 문제의 발언을 한 그의 다변 체질이었다. 아니 단 10초만 참았어도 참모들만 듣는 자리에서 아무 논란 없이 그 어떤 발언이라도 속 시원하게 할 수 있었을 게다.
딱하긴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민주당은 결코 높다고 할 수 없는 현재의 대통령 지지율조차도 윤석열에겐 과분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들이 놓치는 게 하나 있다.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 최병천이 잘 지적했듯이, "지난 대선에서 국민들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1일 1망언'을 하는지 알고도 그를 뽑았다. 왜 그랬을까? 민주당과 민주당 대선 후보가 더 걱정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윤석열 화법'의 비극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게끔 할 수 있는 사실상의 주도권은 국민의힘보다는 민주당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민적 신뢰를 얻으시라. 그건 윤석열에 대한 네거티브 공세만으론 이룰 수 없는 것이다. 아니 네거티브 공세를 하더라도 적반하장이란 말을 들을 수 있는 내로남불은 없는지 꼭 점검해보시라. 양쪽 모두 정치적 자해를 일삼는 경쟁은 제발 좀 그만해주시길 간곡히 호소한다.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 <칼럼> 나는 증오한다 고로 행복하다 프랑스 작가 에밀 졸라는 "증오란 신성한 것"이라고 했다. 억울하게 간첩 누명을 쓴 드레퓌스라는 사람을 옹호하면서 한 말이다. 아닌게 아니라 사회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신성한 증오'엔 저절로 머리가 수그러진다. 그러나 요즘엔 이런 증오를 보는 게 영 쉽지 않다. 물론 증오를 발산하는 이들은 사회정의를 내세우겠지만, 특정 진영논리에 사로잡히는 순간 그 사회정의는 내로남불의 하위 개념으로 전락하고 만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증오는 대부분 이런 내로남불형 증오다.혹 주변에 증오를 자주 발산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잘 관찰해보시라. 그들은 대부분 옳은 말을 한다. 그게 그렇게까지 욕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선 선뜻 동의하기 어려울망정 비난받아 마땅한 일에 대해 비난하는 것에 대해선 일단 긍정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증오를 자주 접하다보면 그 어떤 일관된 패턴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증오의 대상이 진영 중심으로 어느 한쪽에만 집중돼 있다는 점이다.사적인 자리에선 정치 이야기를 한사코 피하는 사람일지라도 누군가가 불쑥 꺼내는 정치 이야기까지 틀어 막을 수는 없는지라 그냥 들어야 할 때가 있을 게다. 잠자코 들으면서도 속으로는 홀로 이런저런 반론을 제기하고 싶을 게다. "그런 특성은 당신이 추앙하는 사람이 훨씬 더 심한 것 같은데, 왜 이 사람만 비난하지?" 이런 생각을 발설했다간 싸움 나기 십상인지라 그냥 자기 머릿속에서만 반론을 제기해야 한다. 사실 관계가 다른 과장과 왜곡이 섞여 있는 주장일지라도 그걸 지적하는 것조차 위험하다. "음. 선동 전문 유튜브를 많이 보는구나"라고 생각하면서 넘어가는 게 좋다.사회과학자로서의 직업병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평소 공사(公私) 영역에서 그런 증오를 발산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유형을 분류하곤 한다. 아무리 대화를 해봐야 내로남불을 내장하고 있는 진영논리라는 방탄벽을 뚫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절감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분석이나 해보자는 자세로 돌아서서 하게 된 게 유형 분류다. 증오의 이유 중심으로 볼 때에 생존투쟁, 쾌락투쟁, 인정투쟁, 이익투쟁의 네가지로 나눌 수 있었다.첫째, 생존투쟁은 자신이 살기 위해서 하는 증오다. 미국 작가 에릭 호퍼는 "열정적인 증오는 공허한 삶에 의미와 목적을 줄 수 있다"고 했는데,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의 강성 지지자들 중에 이런 유형의 사람들이 많다. 삶의 공허함은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 아닌가. 그런데 국가와 민족이라는 거대한 차원에서 격렬하게 증오할 대상을 찾아 증오의 발산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건 자신의 사회적 쓸모와 중요성을 확인하면서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의로운 일이 된다. 어느 정당에서건 강성 지지자들의 진정성과 열정이 감동을 자아내게 할 정도로 강할지라도 그들의 주장대로만 가면 당은 망할 수밖에 없는 역설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에게 우선적인 건 자기 삶의 의미와 목적이지, 그마저 희생해가면서 당의 성공을 바라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둘째, 쾌락투쟁은 자신의 즐거운 쾌감을 위해 하는 증오다. "증오와 사랑은 같은 호르몬을 유발하는 것 같다." 영국 소설가 그래함 그린의 말이다. 이 주장을 입증하겠다는 듯 미국 정신분석학자 오토 케른베르크는 '즐거움으로서의 증오'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격노에서 파생된 증오는 매우 유쾌한 공격적 행동을 낳을 수 있다. 다른 이에게 고통, 수치심, 아픔을 유발함으로써 느끼는 가학적 쾌감, 다른 이의 가치를 깎아내림으로써 얻어지는 환희가 그것이다." 공적 영역에서건 사적 영역에서건 진정성과 열정을 갖고 증오의 언어를 내뿜는 사람들의 얼굴을 본 적이 있는가? 그런 얼굴들만 모아 그림으로 보여줄 수 없는 게 안타깝다. 그들은 개인적으론 쾌감을 느끼며 행복해하는 엑스터시(ecstasy)의 경지에 이르렀겠지만, 문제는 그런 엑스터시를 모르는 사람들과의 소통은 불가능하다는 점일 게다.셋째, 인정투쟁은 자신의 소속 집단에서 인정을 받기 위해 하는 증오다. 그 집단이 비공식 집단이며 느슨하게 구성돼 있을지라도 한 개인의 일상적 삶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라면 위계질서가 엄격한 공식 집단 이상의 영향력과 규제력을 행사할 수 있다. 그 집단의 구성원들이 이구동성으로 증오하는 대상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갖고 있으면 외로워질 뿐만 아니라 정도가 심해지면 왕따를 당할 수도 있다. 테레사 수녀는 "가장 나쁜 병은 나병도 결핵도 아니다. 아무도 존경하지 않고 아무도 사랑해주지 않고, 배척받고 있다는 느낌이 가장 나쁜 것이다"고 했다. 사실 배척받고 있다는 느낌은 공포다. 그런 공포를 피하는 건 물론이고 무난한 인간관계를 위해서라도 증오 발산의 대열에 동참해야 한다.넷째, 이익투쟁은 자신의 현실적인 이익을 위해 하는 증오다. 이는 증오를 팔아 돈을 버는 일부 언론과 유튜브 등 이른바 '정치군수업자들'의 선전·선동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선전·선동을 사회정의로 포장하는 '증오 마케팅' 능력이 워낙 탁월해 정의에 목 마른 신도들로부터 적잖은 헌금을 거둬들인다. 특정 정당이 막강한 지배력을 행사하는 지역으로 내려가면 반대 정당이나 진영에 대해 "누가 더 강한 증오와 혐오의 언어로 공격하나?"를 겨루는 경쟁이 벌어진다. 그런 풍토에선 개인이나 자영업자에게도 증오를 표현하는 건 먹고 사는 문제와 무관할 수 없는 일이 된다. 모두가 다 증오의 방향으로 뛰면 그 증오의 심정과 언어를 공유하면서 따라 뛰어야만 무난하게 살아갈 수 있다.이렇듯 우리 사회에선 자기 진영의 이익과 그 진영에 소속된 사람들의 여러 개인적인 이유들로 인해 증오를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나는 증오한다 고로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시사하는 것이어서,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사람이 어렴풋한 수준일지라도 소속 진영 없이 살아가기는 어려운 일인데다 팔은 안으로 굽기 마련이라는 걸 부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정치권의 고질병인 내로남불이 일반 시민들의 일상적 삶에까지 파고 들어 생활화되는 걸 당연하다고 여길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 모두 그 누구도 증오하지 않음으로써 행복해지는 길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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