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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버려진 책들은 어디로 쌓이나?
입력 2023.01.15. 15:51 수정 2023.01.16. 10:43 댓글 0개주변에서 책들을 처리하는 문제로
대부분 골치를 앓는다는 소리를 듣는다
도서관 마다 책들을 받기를 꺼려, 그중
상당수가 폐지로 나가기도 한단다
어쨌든 책의 쓰임새와 더불어 욕망과
기대가 현저하게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농촌 마을을 들렀을 때 도서관이 있는 걸
보면 괜히 기분은 좋다. 책이 사라지는
현실에서 이처럼 도서관들이 늘어나는 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런 가운데서도 제대로 된 서재에서
'만권서'에 싸여 독서삼매에 빠진 이들도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에 격려를 보낸다
-쌓이는 책
책이 골칫거리가 되어 가는 듯하다.
언젠가 평론가와 지리산의 한 카페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 주인이 백두대간을 혼자서 주파한 여성이라 화제가 됐다. 그녀가 그 사실을 쓴 책을 우리에게 한 권씩 선물했다. 평론가는 받는 걸 주저했다. 당연히 고마워하며 받을 줄 알았는데, 주저하는 까닭을 묻자 그가 내게 귓속말을 했다. "집에 책이 많아서 골친데, 그 위에 또 한 권을 얹어야하는 부담 때문에…"
일 년 전 많은 책들을 도서관에 기증했는데(도서관 기증이 10여 년 동안 몇 번이나 이루어져, 다 합치면 수천 권은 되리라!), 그 새 또 책들이 쌓였다. 주로 시집들이다. 매일 부쳐오는 책들과 잡지들이 두 세 권씩은 된다. 그게 쌓이니 그새 시집들만도 수 백 권이 되는 것이다. 받는 즉시 책장을 넘기며 일별하고, 눈길이 가는 책들은 몇 번 씩 읽기도 한다. 그다음 쌓아두고는 한숨을 쉬는 것이다. 책을 보내주는 저자들에게는 고마움을 느끼지만, 책들이 쌓인다는 게 여간 부담스럽지 않다. 결국 또 기증할 데를 찾게 된다.
책벌레란 소리를 들을 정도로 독서에 엄청나게 몰두했던 때가 있었다. 60~70년대에는 학생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서점과 헌 책방들을 뒤지며 책들을 사 모으는 게 취미가 되다시피 했다. 당시 나오기 시작한 문고본들을 포켓에 꽂고 다니며, 읽기에 여념이 없었지. 책을 모으다 보니 자연스럽게 서재의 꿈을 꾸게 되었지. 결혼 후 겨우 집을 얻고, 작지만, 그 집의 한 방을 글을 쓴다는 핑계로 차지해 서재를 꾸미던 그 흡족함. 그랬던 것이 이제는 책이 짐이 된다니, 이 무슨 모순인가?
나만 그런 게 아니다. 주변에서 책들을 처리하는 문제로 대부분 골치를 앓는다는 소리를 듣는다. 많은 교수들이 정년퇴임 후 가장 큰 문제가 책 처리라고 한단다. 감당이 안 되는 중요 자료들의 처리가 난제 중의 난제란다. 어떤 교수는 연구실 밖에 책을 쌓아두고 학생들이든 누구든 필요하면 가져가라 했지만, 가져가는 이들은 극소수였다고 털어놓는다. 도서관 마다 책들을 받기를 꺼려, 그중 상당수가 폐지로 나가기도 한단다. 어쨌든 책의 쓰임새와 더불어 욕망과 기대가 현저하게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도서관들
책들을 버리는 데도, 도서관들은 왜 이리 많아지기만 할까?
나는 책들을 묶어서, 승용차에 바리바리 싣고 도서관으로 간다. 다행히 시집들을 흔쾌히 받아준다고 했기 때문이다. 안동 시내 들기 전 남선면 놉실로의 농촌으로 빠져 잠시 달리면, 노암마을의 논들 가운데에 '시집작은도서관 포엠'이 있다. 코밑과 턱에 성글게 수염을 기른 피재현 시인이 운영하는 도서관이다.
차를 마시며 도서관 운영에 대해 듣는다. 그동안 전국에서 책을 보내오는 문인들이 더러 있었단다. 그러나 상시 이용자들은 적은 모양이다. 농촌 구석에 이색 도서관이 생긴 건 멋진 일이지만, 그 일에 호응하는 이들은 많지 않은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도서관들이 생기는 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시든 소설이든 장르에 따라, 또는 전공별로 특수한 도서관이 있어서, '버려지는 귀중한 전공서적들'을 수합하여 요긴하게 쓰이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전국적으로 그런 도서관들이 많이 생긴다. 안동만 해도 작은 도서관이 14개나 된다. 개인 도서관이 대부분이지만, 공설도 있다. 그 중 가장 인기 있는 도서관은 어린이 대상 도서관이다. 특히 그림책 도서관이 인기란다. 농촌 마을을 들렀을 때 도서관이 있는 걸 보면 괜히 기분은 좋다. 책이 사라지는 현실에서 이처럼 도서관들이 늘어나는 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책의 향수
책이 버려지는 건 일찍이 예견됐다. 이건 물론, 내가 책을 버리는 문제와는 전혀 다른 문제다. 2000년을 앞두고 많은 문예지들은 문학의 전망을 우려하는 기획을 통해 책의 시대의 종언을 우울하게 예언했다. 대구 계명대서 열린 문학의 전망 관련 세미나에서 나도 토론자로 참여했는데, 발제는 물론 토론에서도 온통 우울한 전망뿐이었다.
책의 시대의 종언은 뉴 미디어, 곧 인터넷의 발전 탓이다. 컴퓨터를 이용한 전자출판이 나타나더니, 점차 상업적으로도 호황을 누리기 시작한다. 정보의 검색도 엄청나게 이루어진다. CD-ROM에 데이터를 내장한 각종 사전이 나오고, 검색전용의 단말기도 시판된다. 전자출판이 실용화된다. 이러한 뉴 미디어 시대가 올드 미디어의 대표적인 책을 도태시킨다고 보는 것이다.
지하철을 타면 승객들 대부분이 휴대폰을 들여다보면서 뭔가를 읽고 있다. 휴대폰의 정보를 뒤적이는 저런 건 어떤 독서의 모습인가? 그래, 나 역시 글을 쓸 때는 책이나 도서관 이용보다는 우선 인터넷의 엄청난 정보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책을 버리는 이가 많다고 했는데, 사실 대부분의 논문들이 인터넷에서 검색이 가능하니, 굳이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단다. 조선왕조실록의 방대한 자료들을 서재에 두면 '폼'은 나지만, 실제로는 인터넷 검색이 가능하기에 굳이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다는 식이다.
"새로운 전달 미디어가 출현할 때마다 책의 시대가 끝나리라는 우려가 있어왔다. 그러나 그때마다 책은 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새로운 미디어와 함께 더욱 발전해왔다"는 반론이 제기되기도 한다. 새로운 미디어가 책의 생명력을 더 강하게 한다는 게다. 멀티미디어 시대가 도래하면 어떻게 될까? 그에 따른 책의 형태와 제작 과정, 그리고 유통의 변화가 나타나겠지만, 여전히 지식의 기본적인 그릇의 역할을 할 것이란 전망도 있다.
어쨌든, 우리 같은 족속들에게 계속해서 쌓이는 책들은 책의 운명과 상관없이 골칫거리다. 아파트 문화에 적응하다보니, 잦은 이사가 부담되고, 책을 쌓아둘 공간이 없어지기 때문일까? 책이 아니어도 인터넷을 뒤적이며 읽는 그 정보 캐기가 무한정이기 때문일까? 그런 가운데서도 제대로 된 서재에서 '만권서'에 싸여 독서삼매에 빠진 이들도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에 우리는 고개를 숙이며 격려를 보낸다. 시인
- <칼럼> 나는 증오한다 고로 행복하다 프랑스 작가 에밀 졸라는 "증오란 신성한 것"이라고 했다. 억울하게 간첩 누명을 쓴 드레퓌스라는 사람을 옹호하면서 한 말이다. 아닌게 아니라 사회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신성한 증오'엔 저절로 머리가 수그러진다. 그러나 요즘엔 이런 증오를 보는 게 영 쉽지 않다. 물론 증오를 발산하는 이들은 사회정의를 내세우겠지만, 특정 진영논리에 사로잡히는 순간 그 사회정의는 내로남불의 하위 개념으로 전락하고 만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증오는 대부분 이런 내로남불형 증오다.혹 주변에 증오를 자주 발산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잘 관찰해보시라. 그들은 대부분 옳은 말을 한다. 그게 그렇게까지 욕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선 선뜻 동의하기 어려울망정 비난받아 마땅한 일에 대해 비난하는 것에 대해선 일단 긍정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증오를 자주 접하다보면 그 어떤 일관된 패턴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증오의 대상이 진영 중심으로 어느 한쪽에만 집중돼 있다는 점이다.사적인 자리에선 정치 이야기를 한사코 피하는 사람일지라도 누군가가 불쑥 꺼내는 정치 이야기까지 틀어 막을 수는 없는지라 그냥 들어야 할 때가 있을 게다. 잠자코 들으면서도 속으로는 홀로 이런저런 반론을 제기하고 싶을 게다. "그런 특성은 당신이 추앙하는 사람이 훨씬 더 심한 것 같은데, 왜 이 사람만 비난하지?" 이런 생각을 발설했다간 싸움 나기 십상인지라 그냥 자기 머릿속에서만 반론을 제기해야 한다. 사실 관계가 다른 과장과 왜곡이 섞여 있는 주장일지라도 그걸 지적하는 것조차 위험하다. "음. 선동 전문 유튜브를 많이 보는구나"라고 생각하면서 넘어가는 게 좋다.사회과학자로서의 직업병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평소 공사(公私) 영역에서 그런 증오를 발산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유형을 분류하곤 한다. 아무리 대화를 해봐야 내로남불을 내장하고 있는 진영논리라는 방탄벽을 뚫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절감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분석이나 해보자는 자세로 돌아서서 하게 된 게 유형 분류다. 증오의 이유 중심으로 볼 때에 생존투쟁, 쾌락투쟁, 인정투쟁, 이익투쟁의 네가지로 나눌 수 있었다.첫째, 생존투쟁은 자신이 살기 위해서 하는 증오다. 미국 작가 에릭 호퍼는 "열정적인 증오는 공허한 삶에 의미와 목적을 줄 수 있다"고 했는데,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의 강성 지지자들 중에 이런 유형의 사람들이 많다. 삶의 공허함은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 아닌가. 그런데 국가와 민족이라는 거대한 차원에서 격렬하게 증오할 대상을 찾아 증오의 발산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건 자신의 사회적 쓸모와 중요성을 확인하면서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의로운 일이 된다. 어느 정당에서건 강성 지지자들의 진정성과 열정이 감동을 자아내게 할 정도로 강할지라도 그들의 주장대로만 가면 당은 망할 수밖에 없는 역설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에게 우선적인 건 자기 삶의 의미와 목적이지, 그마저 희생해가면서 당의 성공을 바라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둘째, 쾌락투쟁은 자신의 즐거운 쾌감을 위해 하는 증오다. "증오와 사랑은 같은 호르몬을 유발하는 것 같다." 영국 소설가 그래함 그린의 말이다. 이 주장을 입증하겠다는 듯 미국 정신분석학자 오토 케른베르크는 '즐거움으로서의 증오'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격노에서 파생된 증오는 매우 유쾌한 공격적 행동을 낳을 수 있다. 다른 이에게 고통, 수치심, 아픔을 유발함으로써 느끼는 가학적 쾌감, 다른 이의 가치를 깎아내림으로써 얻어지는 환희가 그것이다." 공적 영역에서건 사적 영역에서건 진정성과 열정을 갖고 증오의 언어를 내뿜는 사람들의 얼굴을 본 적이 있는가? 그런 얼굴들만 모아 그림으로 보여줄 수 없는 게 안타깝다. 그들은 개인적으론 쾌감을 느끼며 행복해하는 엑스터시(ecstasy)의 경지에 이르렀겠지만, 문제는 그런 엑스터시를 모르는 사람들과의 소통은 불가능하다는 점일 게다.셋째, 인정투쟁은 자신의 소속 집단에서 인정을 받기 위해 하는 증오다. 그 집단이 비공식 집단이며 느슨하게 구성돼 있을지라도 한 개인의 일상적 삶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라면 위계질서가 엄격한 공식 집단 이상의 영향력과 규제력을 행사할 수 있다. 그 집단의 구성원들이 이구동성으로 증오하는 대상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갖고 있으면 외로워질 뿐만 아니라 정도가 심해지면 왕따를 당할 수도 있다. 테레사 수녀는 "가장 나쁜 병은 나병도 결핵도 아니다. 아무도 존경하지 않고 아무도 사랑해주지 않고, 배척받고 있다는 느낌이 가장 나쁜 것이다"고 했다. 사실 배척받고 있다는 느낌은 공포다. 그런 공포를 피하는 건 물론이고 무난한 인간관계를 위해서라도 증오 발산의 대열에 동참해야 한다.넷째, 이익투쟁은 자신의 현실적인 이익을 위해 하는 증오다. 이는 증오를 팔아 돈을 버는 일부 언론과 유튜브 등 이른바 '정치군수업자들'의 선전·선동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선전·선동을 사회정의로 포장하는 '증오 마케팅' 능력이 워낙 탁월해 정의에 목 마른 신도들로부터 적잖은 헌금을 거둬들인다. 특정 정당이 막강한 지배력을 행사하는 지역으로 내려가면 반대 정당이나 진영에 대해 "누가 더 강한 증오와 혐오의 언어로 공격하나?"를 겨루는 경쟁이 벌어진다. 그런 풍토에선 개인이나 자영업자에게도 증오를 표현하는 건 먹고 사는 문제와 무관할 수 없는 일이 된다. 모두가 다 증오의 방향으로 뛰면 그 증오의 심정과 언어를 공유하면서 따라 뛰어야만 무난하게 살아갈 수 있다.이렇듯 우리 사회에선 자기 진영의 이익과 그 진영에 소속된 사람들의 여러 개인적인 이유들로 인해 증오를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나는 증오한다 고로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시사하는 것이어서,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사람이 어렴풋한 수준일지라도 소속 진영 없이 살아가기는 어려운 일인데다 팔은 안으로 굽기 마련이라는 걸 부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정치권의 고질병인 내로남불이 일반 시민들의 일상적 삶에까지 파고 들어 생활화되는 걸 당연하다고 여길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 모두 그 누구도 증오하지 않음으로써 행복해지는 길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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