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재벌 3세 폭력에 반의사불벌죄로 대응한 변호사들

입력 2017.12.12. 08:55 수정 2017.12.12. 18:30 댓글 0개
조선희 법조칼럼 이광원 법률사무소 변호사

지나간 것은 잊힌다지만 2017년은 참으로 다사다난했던 한해였다. 법조계도 최순실 게이트를 비롯해 하루도 그냥 지나가는 날이 없었다. 변호사업계도 예외는 아니었다. 최근에는 변호사라는 직업의 위상에 대해 회의를 갖게 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지난 9월 벌어진 재벌 3세 한화 김승연 회장 3남 김동선 사건은 한편의 영화 같은 장면을 연출했다. 김동선은 지난 9월 변호사 10명과 함께한 술자리에서,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변호사들에게 “너희 아버지 뭐하시느냐?”라고 묻기도 하고, “날 주주님이라 불러라”, “허리 똑바로 펴고 있어라”등의 막말을 하는가 하면, 심지어 여성 변호사의 머리채를 쥐고 흔드는 폭행도 가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씨는 지난 1월에도 한 술집에서 만취상태로 종업원 2명을 폭행하고 순찰차 일부를 파손한 혐의로 재판에서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는데, 집행유예기간 중에 다시 폭행사건을 저지른 것이어서 수사초기 가중처벌 받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더욱이 기본적 인권을 수호하고 사회 정의에 앞장서야할 변호사들을 대상으로 한 폭행이라 대중의 관심은 컸다.

그러나 폭행을 당한 변호사들은 반의사불벌죄에 대한 처벌불원(處罰不原)의사를 밝히는 의외의 대응을 했다. 현재는 김씨에 대한 처벌이 가능할지 조차 의문이다.

현행법상 폭행죄는 친고죄(親告罪-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만 검사가 공소제기를 할 수 있는 범죄를 말함)가 아니므로 수사기관이 피해자의 고소여부와 관계없이 수사를 시작할 수는 있다. 하지만 폭행죄는 반의사불벌죄(反意思不罰罪-폭행, 협박, 모욕, 명예훼손죄의 경우 형사처벌에 있어서 피해자의 의사를 존중할 필요가 있는 점을 감안하여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명백히 한 경우에는 검사의 공소제기조차 불가능한 범죄를 말함) 때문에 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원치 않으면 검사가 공소제기를 할 수 없다.(형법 제260조 제3항 참조)

수사과정에서 폭행을 당한 변호사들이 김씨에 대해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밝혀 김씨를 처벌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경찰은 김씨가 술자리에서 변호사들을 폭행할 당시 술집내에서 난동을 피우거나 기물을 파손한 정황 등이 있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CCTV 복원도 시도했으나 이마저 실패해 무혐의 가능성만 더욱 높아졌다. 결국 경찰은 피해자인 변호사들이 처벌의사를 밝히지 않았으므로 김씨에 대한 사건을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전형적인 갑질 논란의 장본인이 유유히 법망을 빠져 나가는 영화 한 장면을 보는 듯 하다.

이번 사건을 보면서 변호사라는 직업이 감정노동자에 불과 한 것은 아닌지 하는 회의가 든다. 변호사를 보는 사회의 눈이 더 싸늘해지지 않을까 두렵기도 하다. 급기야 대한변호사 협회가 나서 “피해자들이 이 사건 확대를 원치 않더라도 변협은 가만히 있을 수 없다”며 “가해자에게 응분의 조처가 이루어지도록 하겠다”라고 엄포를 놓았지만 이마저 구두선에 그치고 말았다.

물론 피해 당사자들의 입장에서는 말할 수 없는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다. 법조계에서는 이를 두고 “대형로펌인 김앤장으로서는 우수 고객인 재벌기업에 밉보일 경우 기업자문이나 송무사건 수임이 끊길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고, 김앤장에 소속된 피해 변호사들도 회사와 입장을 같이 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법조인의 한 사람으로서 김앤장 소속 피해 변호사들이 깊은 고민 끝에 침묵을 선택했을 것이라 짐작은 하면서도 씁쓸하다. 대형로펌 소속 변호사들조차 재벌 3세의 갑질에 대해 방관한다면 일반 서민은 어디에다 정의를 기대할 것인가.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는 변호사조차 자신의 생계 때문에 자존심을 지키지 못하는 사회에서 일반 서민들은 얼마나 가진 자의 갑질에 시달릴까를 생각하니 인간적으로 미안한 마음이다.

변호사법 제1조는 ‘변호사는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함을 사명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어쩌면 변호사는 인권을 지키는 우리 사회 최후 보루다. 언론과 법조인의 노력으로 우리사회가 물질과 권력을 가진 자에 의한 소위 ‘갑질’이 더 이상 허용될 수도 없는 사회를 향해 나아가고 있고, 대다수 법조인들도 시민들과 마찬가지로 같은 방향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고 필자는 믿고 싶다.

하지만 이미 감정노동자로 전락한 듯 한 변호사 사회 현실을 보면서 2017년의 겨울이 더욱 춥게만 느껴진다. 첫눈을 맞으며 독자들의 세밑이 더욱 따뜻해지는 소식을 기다려 본다.

# 이건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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