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칼럼> 경제위기 앞에 선 정치

입력 2022.12.27. 16:16 수정 2022.12.28. 19:01 댓글 0개
박지경의 무등칼럼 무등일보 편집국장

15대 대선(12월19일)을 앞둔 1997년 11월21일, 우리 정부는 국제 통화기금(IMF) 자금 지원 요청을 했다는 발표를 했다. 나라 빚이 총 1천500억 달러가 넘는데, 우리 외화보유고는 40억 달러에도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12월3일 우리나라는 IMF로부터 210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승인 받았다. 또 국제부흥개발은행(IBRD) 100억 달러, 아시아개발은행(ADB) 40억 달러 등 총 350억 달러의 국제기관 지원을 받게 됐다.

이 빚 때문에 우리는 간신히 국가 부도는 면했지만 대가는 혹독했다. 수많은 기업과 은행이 도산했다. 수많은 주식이 휴지가 됐고 실업자가 넘쳐났다.

이같은 경제위기는 우리 금융기관의 과욕과 무지, 그를 감독하는 정부 기관의 나태에서 비롯됐다.

1990년대 중반 우리 경제는 안정적 발전 상태였다. 여러 경제지표도 좋았다. 당시 우리 기업·금융기관은 동남아·동구권 등에 많이 진출해 있었다. 특히 금융기관은 국제금융시장에서 3개월짜리 단기대출을 얻어 1년 이상 장기대출을 해주고 2~3%p의 이자차익을 누리고 있었다. 보유 외환을 아무 걱정없이 썼던 것이다. 그런데 1997년 태국·홍콩·말레이시아·필리핀·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에 연쇄적 외환위기가 닥쳤다. 외자 조달이 중단되고 대출 회수가 불가능해졌다. 외국 금융회사의 부채상환 독촉에 몰린 우리 금융기관은은 국내에서 대출을 회수, 외채를 상환했다. 결국 외환보유고가 고갈되고 IMF 지원을 받는 처지가 됐다.

이듬해 등장한 국민의 정부는 곧바로 고강도 구조조정을 했다. 우선 많은 기업이 정부 지원 중지로 문을 닫았다. 또 기업의 문어발식 확장에 따른 중복투자 비효율성을 극복하고 전문화를 추구하는 '빅딜'을 시도했다. 아울러 공기업 108개를 민영화시키고 14만명의 공공부문 인력을 감원하는 등 공공부문을 혁신했다.

김대중 정부는 특히 IT와 문화콘텐츠산업 장려에 힘 썼다. 현재 세계적 선풍을 끌고 있는 K드라마·팝과 IT기업의 경쟁력은 이때부터 길러졌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국민도 위기 극복에 동참했다. 351만명이 참여한 금 모으기 운동은 약 225톤 가량의 금을 모아 위기 극복의 큰 동력이 됐다.

그 결과 , 1998년 -6.9%였던 경제성장률은 1999년 9.5%, 2000년 8.5%로 급격히 상승했다. 이에 김대중 정부는 예정보다 3년 가까이 앞당겨 2001년 8월 IMF 구제금융을 전액 상환하고 외환위기 해소를 선언했다.

이후 7년여가 흐른 2008년 9월, 세계에서 4번째로 큰 리먼브라더스가 파산했다. 비우량주택담보대출(서브프라임모기지)에 대한 담보부증권 판매가 부진해 자금난에 시달렸고 신용악화까지 겹쳤기 때문이었다. 직후 미국 등 글로벌 증시와 채권 값은 폭락했고 AIG·씨티그룹 등 철옹성 같았던 금융회사들도 하나 둘 쓰러졌다. 그렇게 세계금융위기는 시작됐다.

이 충격은 한국에도 미쳤다. 급격한 자본유출과 주가 폭락, 환율 급등이 일어난 것. 2008년 9~12월 무려 462억달러가 유출돼 외화유동성 부족을 야기했고 직전 1400선을 넘었던 주가는 2008년 10월27일 892.16까지 폭락했다. 달러당 1천100원 수준이던 원달러 환율은 1천400원대까지 폭등했다.

하지만 우리 경제는 매우 적극적인 재정·통화정책과 글로벌 정책공조를 통한 세계경제 회복에 힘입어 빠르게 회복했다.

그로부터 10년 이상이 흐른 2022년 12월. 우리 경제는 또다시 위기 앞에 서 있다.

최근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전국 대학 경제·경영학과 교수 204명을 대상으로 '최근 경제 상황과 주요 현안'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 52.7%는 현재 경제상황을 '2008년 세계금융위기 때와 유사하거나 더 어렵다'고 답했다. 2008년 때와 비슷하다고 본 답이 27.1%였다. IMF 외환위기 정도는 아니지만 세계금융위기보다 더 어려울 것이라는 답은 18.7%였으며 IMF 외환위기 때와 유사하거나 더 어려울 것이라고 본 답도 6.9%나 됐다.

실물경제권에서도 대부분 현재 상황을 경제위기로 보고 내년에는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우리는 최근 30년 사이 두번의 경제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했다. 닥쳐오는 위기가 그 두번보다 거셀지는 모를 일이다. 하지만 우리 국민에겐 지혜와 극복 의지가 있다. 반드시 극복할 것으로 믿는다. 다만, 한국 정치의 후진성이 이를 어렵게 할 가능성은 있다. 공동체의 이익보다는 정치인 개인의 욕심과 관계에만 집중하는 한국 정치의 민낯을 보고 있는 요즘, 한국 정치가 한국 사회 발전을 가로 막는 최대 걸림돌이라는 사실에 또한번 고개를 끄덕인다. 박지경 디지털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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