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칼럼>슈링크플레이션

입력 2022.11.24. 14:14 수정 2022.11.24. 19:59 댓글 0개
선정태의 무등칼럼 무등일보 취재2본부
선정태 취재1본부 부장대우

얼마 전 과자를 먹고 싶다는 아들에 이끌려 동네 마트에 갔다. 아들은 평소 좋아했던 과자를 한 아름 집어 들었지만, 고작해야 스낵 3봉지에 초콜릿 과자 상자 1개였다. 하지만 과자 5개에 1만원을 훌쩍 넘는 가격을 본 순간 높아진 물가에 깜짝 놀랐고, 식탁에 앉아 과자 봉지를 열면서는 '질소 과자'를 샀다는 생각에 분개했다. 산패와 부패를 막는 목적으로 질소를 충전해 포장했던 스낵은 어느새 '질소를 사면 과자는 덤'이라는 해학적인 비난으로 이어졌다. 종이 상자에 담긴 과자는 낱개 포장은 물론 받침 접시까지 있어 상자 안 빈 곳이 80% 이상은 돼 보여 허탈하기까지 했다. 10여년 전 질소 과자에 분노한 한 소비자가 수십 개의 과자 봉지를 엮어 뗏목을 만들어 강을 건너는 퍼포먼스로 과자 회사를 질타하기도 했고, 사기적인 상술이 없다는 수입 과자를 구입하는 소비자들도 늘었다.

'질소 과자' 논란과 함께 비슷한 맥락에서 '창렬하다'는 유행어가 퍼졌다. 해당 연예인에게는 수치스러운 일이지만, 과대 포장된 과자를 넘어 가격에 비해 크기나 양, 질이 형편없고 부실한 음식을 표현하는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전 세계가 코로나19를 겪은 데 이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영향으로 고유가·고물가·고임금의 시대를 관통하고 있다. 여기에 곡물을 비롯해 원자재 가격이 고공행진 하면서 '부실한 과대 포장'이 또다시 횡행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전 세계의 여러 기업들이 생산비와 인건비가 늘어난 상황에서 이윤을 높이기 위해 가격을 올리는 대신 용량이나 개수를 줄이는 꼼수를 부리고 있다. 과자 양을 줄이거나 티슈 개수를 줄이고, 비누나 세제, 음료를 조금만 담는다. 양상추를 빼거나 없앤 패스트푸드 등 분야도 가리지 않는다.

이런 기업의 편법 상술을 '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이라고 불리는데, 규모나 양을 줄인다는 뜻의 슈링크와 물가 상승을 뜻하는 인플레이션의 합성어다. 슈링크플레이션은 '인플레이션 뒤에 숨겨진 인플레이션'이라고도 불린다. 소비자들은 가격을 올리는 것에는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용량을 줄이는 데는 덜 민감하다. 가격은 그대로라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내용물이 줄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래전부터 창렬스러운 과대포장에 익숙한 소비자들에게 슈링크플레이션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지만, 기업의 얌체 상술은 무덤덤해지지 않는다.

선정태 취재1본부 부장 wordflow@mdilbo.com

# 이건어때요?
댓글0
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