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칼럼>그리우면 그리워할밖에, 그것이 자식의 천형일지도

입력 2022.11.13. 12:46 수정 2022.11.13. 19:18 댓글 0개
정지아 아침시평 소설가

어느 독자가 물었다. 아버지가 그리우면 어떻게 하느냐고. 가고 없는 아버지가 그리운데 무슨 방법이 있을까? 다만 그리워할 뿐이다. 그리움은 날이 갈수록 사무친다. 이 그리움에는 기한도 없는 모양이다. 오래전, 헤어진 연인이 못 견디게 그리웠던 적이 있다. 사귄 기간보다 더 긴 시간이 필요하긴 했지만 어느 순간 그가 더 이상 그립지 않았다. 그립지 않다는 사실조차 자각하지 못할 정도로 까맣게 잊었다. 그런데 아버지 가고 난 지 벌써 십사 년, 그리움은 날이 갈수록 짙어진다. 그리움의 강도만 강해진 게 아니다. 시도 때도 없이 그립다.

한 달여 전, 장에 나갔더니 어물전에 전어가 풍성했다. 문득 아버지 모시고 광양에 갔던 날이 떠올랐다. 오랜만에 집에 내려갔더니 어머니가 하소연을 했다. 아버지가 장에서 지져 먹지도 못할 흐물흐물한 전어를 사와서는 회무침을 해내라고 닦달을 했다는 것이다. 구례 장에서는 전어회도 판다. 그걸 사오지 그랬냐고 퉁박을 줬더니 아버지가 무심히 말했다.

"먼 놈의 회를 한 사라에 삼만원이나 도라드라."

결국 그놈의 돈이 문제였다. 아니, 내가 문제였다. 딸자식이 부자였으면 아버지가 회 한 접시를 못 사 먹었겠는가. 슬픔인지 자괴감인지, 딱히 뭐랄 수 없는 감정이 솟구쳤고 엄한 아버지에게 성질을 부렸다.

다음날, 싫다는 부모님을 억지로 차에 태우고 광양에 갔다. 전어 축제가 한창이었다. 길마다 사람이 미어터졌고, 식당마다 만원이었다. 게다가 식당에서는 아버지가 제일 좋아하는 회무침을 팔지 않았다. 치매 걸린 아버지는 전어회와 전어구이를 먹는 동안 세 번이나 투덜거렸다.

"먼 놈의 식당이 회무침도 안 헌다냐? 영 파이다. 전어는 무시 채 썰어넣고 무쳐야 제 맛인디…"

아버지 좋아하는 전어 회무침 사드리러 갔던 광양행은 가장 슬픈 여행으로 기억에 남았다. 그 뒤로 전어만 보면 아버지가 떠오르는데, 끝내 아버지 좋아하는 회무침은 사드린 적이 없다.

아버지는 무도 좋아했다. 올해도 텃밭에 심어놓은 무가 싱싱하게 자랐다. 아버지는 무가 실해진 가을 끝자락부터 매일 무시밥을 하라고 어머니를 다그쳤다. 무시밥에 질린 어머니가 그나마 무 덜 씹히라고 잘게 다져서 밥을 하면 아버지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거이 먼 무시밥이대! 무시가 봬도 안크만."

무를 손가락만 하게 길죽길죽, 두툼하게 잘라서 무시밥을 해놓으면 아버지는 양념간장에 썩썩 비벼 반찬 없이도 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아버지가 간 뒤로 그런 무시밥을 본 적도 먹은 적도 없다.

어떤 독자가 또 물었다. 아버지를 만날 수 있다면 무엇을 하고 싶냐고. 특별히 하고 싶은 일은 없다. 아버지와 내 고향 반내골을 옛날처럼 걸어보고 싶다. 이번에는 슬쩍 아버지의 팔짱을 끼고. 그리고 아버지에게 내가 지은 밥 한 끼 대접하고 싶다. 무시밥에, 멸치육수 내서 무시 넣고 얼큰하게 끓인 무짠지에, 매콤한 무 생채에, 아버지 좋아하던 소주도 한 잔 곁들여.

아버지를 잃은 게 내 나이 마흔넷이었다. 옛날 같으면 손자도 봤을 나이인데 그 나이까지 나는 아버지에게 제대로 된 밥 한 끼 대접한 적이 없다. 아이 어릴 때 간혹 서울에 오시긴 했으나 고작 하루이틀 머물다 가셨고, 그때 반찬은 죄 아이를 위한 것이었다. 그러니 그 밥은 아버지를 위한 게 아니었다. 참으로 불효자식 아닌가?

살아생전 아무것도 해드리지 못한 자식은 아버지 가고 나서야 그게 사무쳐, 그보다 더한 그리움을 사무치게 앓는다. 나만 이럴까? 친구들도 비슷한 걸 보면 이게 자식의 숙명인가 싶기도 하다. 지난가을보다 올가을, 아버지가 더 간절히 그립다. 정지아(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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