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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지역경제 발전과 사회적 대화
입력 2022.10.23. 12:45 수정 2022.10.23. 19:20 댓글 0개상대적으로 낙후된 지역경제 현실을 볼 때마다 고민스럽기는 매한가지일 것이다. 열악한 기업환경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지역기업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더더욱 그렇다. 더욱이 최근 원자재비가 급상승하고 있고, 고금리에 고환율로 자금부담이 늘고 있는 상황에서 버텨내고 있는 중소기업인들과 소상공인들의 어려움을 듣고 있자니 참으로 답답하기 그지없다. 이처럼 힘든 상황을 보면서 필자는 오늘도 지역의 오피니언 리더들과 함께 광주경제진흥의 해법을 찾느라 노력해 보지만 역부족임을 실감하고 있다.
얼마 전이다. 지역대학에 설치된 고용노사관계 전문가 과정의 세미나에서 수강생들과 함께 이 문제에 대하여 심도 있는 논의를 한 적이 있다. 이 프로그램은 고용노동부 지원사업으로 호남지역의 기업, 공공기관, 사회단체 등에서 리더들이 주경야독하면서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날 수업에서 우리는 먼저 우리 고장의 재정자립도, 제조업 비율, 청년 실업율 등의 지표를 다른 지역과 면밀하게 비교해 보았다. 그러고 나서 꼴찌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광주·전남의 암울한 현실을 어떻게 타개하면 좋을지 머리를 맞대어 보았다. 남도를 이끄는 리더의 사명감과 책임감을 통감하면서 함께 하고 나니 훨씬 더 진지하게 임할 수 있었다.
이날 오랜 토의 끝에 찾은 해법의 하나는 다음과 같았다.우리 지역 지도층 리더들의 사회적 대화가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바꿔 말하면 광주·전남의 미래를 논의하는 대화의 채널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지역의 주요경제단체들이 열고 있는 포럼들은 많지만, 대개는 유명한 강사들을 초빙하여 조찬세미나로 진행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그저 교양강좌 수준에 그치면서 논의의 자리는 마련되지 않고 있다. 아울러 여러 기관이나 단체들이 열고 있는 포럼 또한 지역의 현안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있는지라 서로가 중지를 모아 해결책을 찾기에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그래서 광주와 전남, 이른바 남도의 앞날을 연구하고 토의하는 공론의 장이 마련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물론 광주·전남의 경쟁력을 키우고 시도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자 하는 싱크탱크가 있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관 중심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보다 객관적이고 냉철한 차원에서 함께 문제를 풀어 가기에는 부족하지 않겠느냐 말이다. 더욱이 광주와 전남은 서로 이해관계가 상반되는 경우가 적지 않게 생기다 보니 종종 갈등을 빚는 사례들도 게 많아 우리를 힘들게 하고 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지역경제 발전을 위한 사회적인 대화 채널로 적합한 방법 가운데 하나로 콜로키움을 들었다. 사계의 전문가를 모셔 놓고 고견을 듣고 나서 30명 내외의 참석자들이 깊이 있는 견해를 피력해가며 대안을 모색하는 방법 말이다. 다행스럽게도 이러한 점에 착안하여 올해 들어 시작된 미래남도 콜로키움은 현재까지 순항하고 있다. 달마다 한 번씩 지역경제 발전을 위한 이슈를 중심으로 꾸준히 개최되고 있으며, 이렇게 다루어진 내용은 보다 많은 시민과 도민들이 공유할 수 있도록 다음날 지역신문 한 페이지에 보도되고 있다.
지금까지 논의된 과정에서 찾아보는 중요한 화두는 '동반성장은 시대정신'이 었다. 동반성장의 전도사라고 불리는 정운찬 전 총리의 첫 발제 내용을 살펴보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이 무엇보다도 크기 때문이다. 그는 지역경제 발전의 해법을 '더불어 성장하고 함께 성장하자'고 하는 사회철학에 근간을 두고 있으며, 특히 지속 가능한 사회공동체의 가치를 강조하고 있다. 크고 작은 나무를 함께 키워야 숲을 만들 수 있도록 하려면 승자독식을 견제하고, 참여자에게 정당한 몫을 배분하는 협력적 경쟁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양극화 해소가 절실하며 초과이익공유제와 같은 대안을 계속해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왜 우리 선조들의 지혜로운 해법 가운데 간과해서는 안될 사례가 있지 않던가. 12대에 걸쳐 400년간의 부를 이어 온 경주 최부자집 동반성장의 교훈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현재까지 미래남도 콜로키움에서 인구감소시대의 국토균형발전, 탄소중립시대의 우리 남도역할, 남도관광의 상생해법, 초광역권에 기반한 광주·전남의 산업혁신전략 등 지역의 이슈들을 다루어 왔다. 그렇지만 우리 지역경제 발전의 해법은 광주와 전남의 상생을 통한 부단한 사회적 대화가 지속되어야 한다는 점에서는 공감이 더욱 클 것으로 생각한다. 박성수 광주경제고용진흥원 이사장
- <기고>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나는 파리 19구에 산다. 서민 동네이자 치안이 나쁘기로 소문난 구역이라 한국인은 거의 만나기 어렵다. 옆방 이웃은 난민 출신이다. 우리는 파리 주민이자 이방인이다. 남의 나라에서 남루하게 살아가는 처지라 생활이 풍족하지는 않다. 대신에 1980년대 한국 달동네에서 있었을 법한 일화가 가끔 일어난다. 어느 방에서 아이가 너무 울면 문을 열어 남의 아이를 안고 달래준 달지, 이 빠진 접시에 음식을 담아 맛보라고 가져다준달지….벽은 소음에 취약해 옆방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소상히 알려준다. 이웃으로 살면서 우리는 서로의 안부를 소리로 확인한다. 옆방에서는 아프리카 노래가 자주 흘러나온다. 엄마는 아이에게 큰소리로 노래를 불러주곤 했다. 밝은 리듬에 콩룩콩탁 거리는 발음이 사랑스러운 노래다. 내용을 알 수 없지만 밝고 흥겹다. 때로는 이 귀여운 노래 위에 시름이 느껴질 때도 있다.낯선 리듬과 노랫말을 가만히 듣고 있자면 새댁의 하루가 어땠는지 짐작할 수 있게 된다. 반대로 옆방에서는 나의 한국어를 꽤나 들었을 것이다. 내가 일 때문에 지방에 며칠 다녀왔을땐 내게 무슨 일이 생긴 줄 알았다며 새댁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한 적도 있다.옆방 새댁이 어떤 경로로 파리에 오게 됐는지 나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아이를 데리고 미장원으로 출근한다는 정도만 안다. 지하철역에서 우연히 옆방 모자를 만났다. 넓은 천을 이렇게 저렇게 꼬아 머리에 두르고 아프리카 스타일 프린트가 화려한 외투로 한껏 차려입었다. 예쁘다. 지하철 의자에 나란히 앉은 모자를 맞은편에 앉은 내가 핸드폰으로 찍는다. 엄마 등에 업혀 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칭얼대던 아기는 어느덧 엄마에게 프랑스어로 떼를 쓸 정도로 컸다.일하러 가느냐고 그녀가 내게 묻는다. 지하철 창문 쪽으로 유리 닦는 시늉을 하며 청소라고 프랑스어로 발음한다. 나는 요즘 청소 일을 한다."이브람 엄마도 일하러 가요? 미장원이 어디에 있어요?" "아뇨, 오늘 일 안 해요. 그런데... 20유로... 있어요? 20유로만 빌려줄 수 있어요?"돈 빌려달라는 말에 머릿속이 순간 복잡해진다. 20유로면 3만 원정도 된다. 지갑 속에는 꼬깃꼬깃한 5유로짜리 지폐와 동전이 들었다. 주로 카드를 사용하니 현금 가지고 다니는 일이 드물다. 잠깐 고민 후 돈이 없다고 대답한다. 새댁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한다. 표정에 낙담하는 기색이 역력해 미안할 지경이다."이브람 엄마, 집에 지갑 놓고 나왔어요?" "미장원 일 못한 지 한 달도 넘었어요. 체류증이 끝나서 일 못해요. 먹을 게 없어요. 파리에 친구가 없어요."난민 체류자격 기한이 끝나 미장원에서 해고된 모양이다. 프랑스에서 체류증 없이 노동하는 건 불법이다. 두 모자가 지하철에서 내린다. 엄마에게 잡히지 않은 손을 연신 흔들며 아이가 떠나는 내게 인사한다. 옆방에 사는데 밖에서 만나니 새삼 반가운 모양이다. 아이의 작고 까만 손을 바라보며 이어폰을 귀에 꽂는다. 유튜브 아카이브에서 1980년 어느 날의 '이종환의 디스크쇼' 오프닝이 들린다. 해외에서 생활하다가 이따금 향수병에 시달릴 때 한국 라디오가 위안이 돼준다.성북구 종암동 이창수 씨의 엽서입니다. 당신의 모든 것을 열망하는 나의 사랑을 믿으십시오…. 어느 청취자의 절절한 사랑고백이다. 1980년 이창수 씨는 그녀에게 구애하며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를 신청했다. "당신이 지쳐 작게 느껴질 때 두 눈에 눈물 고일 때 내가 눈물을 닦아드릴게요. 당신이 잘 지내지 못하고 당신이 길에서 떠돌 때 나는 당신의 편이에요. 외로운 당신을 위해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당신을 지켜줄게요…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창수 씨는 사랑을 이루었을까. 험한 세상에서 그녀를 위해 다리가 되어주었을까. 나는 누군가에게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준 적 있는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고인다.지하철에서 찍은 사진을 새댁에게 전송한다. 사진 속에서 아이가 손가락으로 V를 그려 보이고, 엄마는 공작새처럼 화사하게 웃고 있다. "메르시 마마"라고 답장이 온다. 신혜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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