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칼럼> 조문 외교

입력 2022.09.22. 07:52 수정 2022.09.22. 20:21 댓글 0개
김현수의 무등칼럼 무등일보 서울취재본부

1980년 유고슬라비아 티토 대통령 장례식에 소련 공산당 서기장 브레즈네프가 참석하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당시 소련은 동유럽을 장악했으나, 유고만은 독자 노선을 걷고 있었다. 소련 입장에서 보면 유고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브레즈네프 서기장은 티토 대통령 장례식에 참석해 유고를 소련의 위성국으로 끌어들이려는 '조문 외교'에 나선 것이다.

2005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서거하자 200여국 정상과 정부 대표가 장례식에 참석했다. 천수이벤 대만 총통은 유럽에서 유일하게 국교관계를 유지하던 바티칸이 중국과 외교 수립을 하려는 움직임이 보이자 이를 막으려고 장례식에 참석했다. 반면 중국은 천 총통에게 비자를 발급한 것을 항의하며 조문단을 보내지 않았다.

교황 장례식에서는 사이가 좋지 않았던 모셰 카차브 이스라엘 대통령과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 모하마드 하타미 이란 대통령이 악수하는 장면이 포착됐다. 그런데 이란에서 비판 여론이 일자 하타미 대통령은 악수 사실을 부인하기도 했다.

2005년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가 사망하자 '김-오부치 선언' 당사자인 김대중 대통령은 장례식에 직접 참석했다. 김 대통령은 방일을 계기로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 모시 요시로 신임 총리 간의 3국 정상회담을 열었다.

1994년 김영삼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의 정상회담을 불과 보름여 앞두고 김 주석이 사망했다. 당시 야당에서는 조문단 파견을 주장했으나, 김 대통령은 조문단 파견 대신 전군에 비상을 선포했다. 결국 김일성 사후 남북 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어, 조문 외교 실패라는 지적 이 나왔다.

국가의 전·현직 원수나 세계적 인물이 사망하면 각국에서 조문사절이 방문해 자연스럽게 조문 외교가 잠깐 동안 펼쳐진다. 죽음은 예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당시 국제정세와 관련된 이해 당사국 정상들이 조문을 빌미로 정상회담을 하기도 했다.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장례식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의 조문 외교를 놓고 여야 공방이 며칠째 이어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굴욕 외교, 빈손 외교"라고 비난하고, 국민의힘은 야당이 "외교 참사"라는 나쁜 프레임을 씌우고 있다며 반박하고 있다.

여야는 조문 외교 논란에 앞서 '남의 죽음에 대하여 슬퍼하는 뜻을 드러내어 상주를 위문함'이란 조문의 의미부터 알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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