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갈 곳 없어진 입주예정자에 빚 내주면서 생색내는 현산

입력 2022.08.12. 12:30 수정 2022.08.12. 15:06 댓글 17개
협상·소통도 없이 지원책 일방통보
세부내용은 예비입주자에 빚 떠넘기기
손해없는 방법을 '통큰 결정'으로 둔갑
유병규 HDC현대산업개발 대표이사 등 임직원들이 지난 1월 광주 서구 화정동 외벽 붕괴사고 현장을 찾아 고개를 숙이고 있다. 임정옥기자 joi5605@mdilbo.com

"1억원을 빌려줄테니 알아서 전셋집을 구하라는 겁니다. 대위변제를 해준 건 입주자들이 이자까지 붙여서 건설사에 갚아야 해요. 이게 대부업이지, 지원책입니까?"

HDC현대산업(이하 현산)이 입주가 5년 이상 밀린 광주 화정 아이파크 예비입주자들을 위해 마련한 지원책에 대해 입주자들은 '말장난 식 언론플레이'라며 비판하고 나섰다. 특히 예비입주자들과의 협상·소통 단계도 거치지 않고 지원책을 통보한 것으로 알려져 공분을 사고 있다.

12일 화정아이파크예비입주자협의회에 따르면 현산은 지난 10일 예비입주자들을 대상으로 주거 지원 방안 설명회를 열어 61개월여의 입주 지연 기간에 대한 지원책을 통보했다. 이튿날인 11일에는 '예비입주자들을 위해 2천630억을 지원'한다는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예비입주자들은 이러한 현산의 행보에 대해 집단적으로 반발하고 있다. 현산의 지원책을 뜯어보면, 그 내용은 예비입주자들을 채무자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산은 총 2천630억원 규모의 지원책을 책정해 1천억원은 무이자 이주비로, 1천630억원은 중도금 기대출분 상환으로 사용할 예정이다. 입주예정자의 주택 평수에 따라 세부 금액은 차이가 있지만 35평형 입주예정자를 기준으로 하면 1억1천만원의 주거지원금을 무이자로 대여받고, 중도금대출비는 현산이 최대 2억1천만원까지 대납해준다.

현산이 제시한 주거지원금은 입주 지연으로 갈 곳이 없어진 이들이 새 보금자리를 구하기는 턱없이 적은 금액이다. 게다가 화정 아이파크가 완공된 후에는 어차피 현산에 돌려줘야 할 금액이다.

중도금대출비는 현산이 고금리로 빌려주는 형식이라 문제가 더 심각하다. 현산은 중도금 상환에서 발생한 대출이자를 계약자 부담으로 추후 정산하겠다고 못박았다. 이자는 민법상 6%에 달하는 고이자율로 제시하고 있다. 이 이자율을 따르면 2억1천만원의 중도금대출비를 현산이 대납해준 예비입주자들은 만기일시 원금인 2억1천만원에 7천4백만원의 이자를 더해 현산에 갚아야 한다.

더구나 현산은 입주지원책이 불합리하다는 예비입주자들의 반발에도 입주지원책은 협상할 사안이 아니라는 입장만을 내세웠다. 자체적으로 구상한 대책을 통보한 후 '통 큰 지원책'을 마련한 것처럼 언론에 발표했다.

이에 입주예정자들은 현산이 예비입주자들을 기만하는 말장난식 행보를 보이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입주예정자 현정호씨는 "현산은 '회사 상황이 어렵다', '지원해드릴 수 있는 최선이다'고 말하면서 따지고 보면 조금도 손해 보지 않는 방안을 통보했다"고 비판했다.

이승엽 화정아이파크 입주예정자협의회장은 "현산은 지원책을 납득할 수 없다는 입주예정자들의 반발에도 그저 대책을 막무가내로 통보하고 떠났다"며 "본인들로 인해 갈 곳을 잃은 피해자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은 입주예정자들을 채무자로 만드는 것 일뿐, 지원책으로 볼 수 없다"고 규탄했다.

안혜림기자 wforest@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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