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혀와 입·눈과 코, 모든 오감 일깨워 흔드는 맛의 혁명

입력 2022.01.20. 10:06 수정 2022.01.20. 19:15 댓글 1개
영산포(榮山浦) 홍어 이야기
영산포홍어 김영수 대표는 황토를 이용해 숙성실을 만들어 '황토방 숙성홍어'를 개발했다.

홍어는 겨울에 가장 많이 잡히며, 가장 맛이 있다고 한다. 겨울 찬 바람이 매섭게 불어오면 코끝이 알싸한 홍어가 생각난다. 친구들과 아울러 막걸리 홍어 삼합(三合)한 접시에, 탁주 한잔 들이켜면 세상 부러울 게 없다. 영산포 홍어는 사합(四合)이다. 홍어살, 돼지고기, 묵은김치, 김 한장이 입안에서 뭉치면 툭 쏘는 맛이 입안에 가득 전해진다.


◆삭힌 홍어 기원은 흑산에서

'세종실록지리지'에 "영산(榮山)은 본래 흑산(黑山)이었는데, 육지로 나와 주(州)의 남쪽 10리 되는 남포강(南浦江) 가로 옮겼으며, 공민왕 12년(1363)에 군(郡)의 이름을 붙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영산창(榮山倉) 금강진(錦江津) 언덕에 있으니 곧 영산현(榮山縣)이다. 영산폐현(榮山廢縣) 주의 남쪽 10리에 있다. 본래 흑산도(黑山島) 사람들이 육지로 나와 남포(南浦)에 수거하였으므로 영산현이라 했다. 고려 공민왕 12년에 군으로 승격했다가 후에 주에 예속되었다."

이러한 기록들은 고려말 왜구의 침략으로 인하여 공도정책으로 당시 흑산도의 별칭인 '영산' 사람들이 남포강가(영산포)로 이주한 기록이다. 1982년 한글학회에서 발행한 '한국지명총람'에도 영산현의 옛터가 존재한다. 흑산도 주민들이 공도정책으로 영산포로 이주 시기에 흑산은 '영산'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영산창, 영산포, 영산강의 지명은 흑산도의 옛 이름 '영산'에서 유래되었다. 영산강을 옛날에는 영산강을 품은 바다라고 하여 '영산내해'라 하였다. 영산내해는 나주로 문물이 오가는 교류로였으며 흑산 홍어로드였다. 흑산도에서 영산포까지 뱃길은 대략 3박4일에서 4박5일에 이르는 뱃길로 추정된다.

흑산홍어

당시 흑산도에서 잡은 생홍어는 영산포로 오면서 자연 발효되어 일종의 삭힌 홍어가 되었을 것이다. 흑산도 사람들은 이미 삭힌 홍어를 즐길 줄 알았을 것이다. 생홍어가 항해하는 도중에 썩게 되면, 못 먹을 홍어를 배의 어창에 넣어 가지고 올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생홍어를 배의 어창에 넣고 이동하였던 시기는 홍어가 가장 맛이 있던 겨울철로 추정된다. 지금도 흑산도에서 홍어가 가장 맛이 좋을 때가 11월 초에서 2월이라 한다.

흑산도에서 18년간 유배 생활을 했던 정약전의 '자산어보'에 홍어에 관한 기록을 남겼다. '나주와 가까운 고을에 사는 사람들은 삭힌 홍어를 즐겨 먹는데 지방에 따라 기호가 다르다'고 기록되어 있다. 자산어보는 흑산도 사람들이 영산포에 살면서 나주에 삭힌 홍어 문화를 파급시켰던 중요한 기록이다.

황토방에 숙성한 홍어는 설명절을 앞두고 불티나게 팔린다고 한다.

◆일반회보다 풍미 좋은 생홍어회

홍어는 홍어목 가오리과에 속하며 우리나라 연근해와 남일본 연해 동중국 연해에 분포한다. 부산, 목포, 영광, 인천의 대청도 등 연근해에서 많이 서식하는데 흑산도에서 나는 홍어를 최고로 치며 겨울철에 맛이 가장 좋다.

이때 잡은 홍어는 꼬릿꼬릿 하지 않고, 홍어살 맛이 쫄깃하면서 달큼하다. 지금도 흑산도 사람들과 홍어 마니아들은 생홍어를 즐겨 먹는다고 한다. 생홍어회의 맛이 오히려 일반회의 맛보다,풍미가 있어 생홍어를 즐긴다고 한다.

옛날에는 두엄 속에 넣어 삭히거나, 여러 조각으로 잘라서 옹기에 넣어 아랫목이나 밖에 놔두고 자연 발효시켰다. 요즘은 냉장시설이 잘 발달하여 온도차를 이용, 발효한다고 한다. 그래서 집마다 장맛이 다르듯이 홍어를 취급하는 상회마다 맛이 다르다.

홍어애국

홍어를 두고 '발효의 미학'이라고 한다. 신선할 때보다, 약간 삭혀서 암모니아 냄새가 날 때 가장 맛이 있다. 코가 뻥 뚫리고 입천장이 헐 정도로 강렬한 향과 맛은 처음엔 거부감이 일지만 강력한 중독성을 띤다.

소설가 황석영은 "참으로 이것은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혀와 입과 코와 눈과 모든 오감을 일깨워 흔들어 버리는 맛의 혁명이다. 이 지독한 별미는 홍어를 발효시켰기 때문이란다"라고 삭힌 홍어를 표현했다.

영산포 홍어식당의 홍어 정식.

홍어는 톡 쏘는 암모니아가 많아서 일반 부패세균의 발육을 억제하므로 식중독 발생의 염려가 없다. 입안 가득히 퍼지는 암모니아의 자극을 중화시키는 데 안성맞춤인 것이 막걸리이다. 홍어를 먹으면서 막걸리를 마시는 풍습이 전해 내려와 홍탁이라 불려 왔다. 적당히 삭힌 홍어, 삶은 돼지고기, 묵은김치를 전라도 사람들은 홍어삼합이라 부른다. 영산포에서는 김을 추가하여 4합이라 한다. 삼합과 사합을 먹어야만 홍어를 제대로 맛볼수 있다.

기름진 돼지고기와 묵은김치 때문에 처음에는 홍어의 꼬릿꼬릿한 냄새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세 가지가 목구멍으로 넘어가면 홍어 특유한 향이 오감을 자극한다.

'홍탁삼합'을 처음 먹는 사람들은 입천장이 홀라당 벗겨지기도 한다. 홍어 맛이 가장 좋은 곳은 '일 코, 이 날개, 삼 꼬리, 사 살'이라고들 한다. 어떤 이는 애(간)를 최고로 친다.

물컹한 홍어애는 날로 천일염에 참기름 치고, 고춧가루 뿌려 찍어 먹으면 고소하다. 홍어 애국은 된장을 푼 육수에 홍어애, 홍어 창자, 홍어 뼈를 보리와 곰밤부리를 넣고 끓여 먹으면 구수한 맛이 난다.

홍어애는 기름장에 찍어 먹어야 제맛이다.

수놈 홍어는 암놈에 비하면 헐값이다. 맛에 있어서 실제로 암놈은 지느러미 부근이나 속뼈가 흐물거리고 오돌오돌 씹히건만 수놈의 것은 뻣뻣하고 딱딱해서 발라내야만 한다. 살 맛도 부드럽고 쫄깃하지 못하고 어딘가 퍽퍽하다. 겉모양만 보아서는 분간하기가 어렵다. 홍어의 수놈은 거시기가 둘이다. 옛날 홍어 상인들이 숫 홍어의 거시기의 하나를 잘라 버리고, 암놈으로 속여서 팔았다고 한다.

요즈음은 고객들은 암놈, 수놈으로 나누어 주문한다. 맛도 미세하여 일반 사람들은 거의 구별하지 못한다. 흑산 홍어는 지느러미에 부드러운 가시가 있고 몸빛이 조금 더 진하고 검붉은 기가 도는데,칠레산은 색깔이 탁하다고 한다.

흑산 홍어를 맛본 마니아들은 살이 부드러우면서 차지다고 한다. 칠레산 홍어는 뻐셔서 맛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부드러운 흑산도 홍어는 창자와 뼈까지도 하나도 안 버리고 다 먹는다고 한다.

홍어 튀김

한때는 흑산도 홍어가 별로 잡히지 않자 흑산도 홍어잡이 배가 한 척만 남은 적도 있었다. 그 당시에 칠레산 홍어가 들어왔다고 한다. 지금은 14척이 흑산홍어를 잡고 있다.


◆영산하구언 건설에 뱃길 끊겨

수운이 발달한 영산포는 고려부터 조선 시대엔 조창을 통해 물산이 한양으로 올라갔다. 일제강점기엔 나주평야 쌀의 수탈 창구였다. 영산포에는 국내 유일의 내륙 등대, 영산포등대가 지금도 남아있다. 일제강점기 영산포 선창에 건립된 등대이다. 1915년 설치된 이 등대는 내륙하천 가에 있는 유일한 것으로 1989년까지 수위 관측시설로 사용됐다.

홍어찜

영산포 선창은 1960년대까지만 해도 각종 선박이 왕래하면서 많은 수산물이 유통됐다. 특히 홍어와 추자 멸치젓 배가 왕래해 지금도 어물전들이 남아 정취를 느끼게 한다. 1972년 시작된 영산강 유역 개발 사업이 시작되면서 상류에 댐이 하나씩 생기면서 유량이 줄어 배가 다닐 수 없었다. 1976년엔 영산강하구언 건설을 위한 둑막이 공사가 시작되면서 뱃길이 아예 끊겼다. 휘황찬란했던 영산포구는 불빛이 꺼졌다. 그때의 영광은 찾을 수 없지만, 지금도 영산포에는 홍어를 판매하는 식당들과 홍어집들이 여러 곳 남아있는데, 많은 홍어집들은 600여년의 역사를 간직한 흑산 홍어의 유명세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남도의 삭힌 홍어 산지는 광주로 넘어갔다. 광주 양동시장에서 목포와 영산포로 삭힌 홍어가 보내졌다. 영산포가 삭힌 홍어의 명성을 되찾은 건 불과 십수 년 전 일이다. 영산포는 현대화된 냉장 시설을 갖춰 저온에서 홍어를 삭혀 맛을 낸다.

한국은 홍어를 먹는 거의 유일한 나라다. 국내에서 소비되는 홍어는 연 1만t이 넘는다. 지금 영산포 홍어는 외국산이 많다. 칠레·아르헨티나·우루과이·미국 등 거의 전 세계 홍어가 영산포로 들어오며, 흑산도 홍어는 흑산도에서 , 국내산 홍어는 군산에서 구입한다. 이곳에서 숙성된 홍어는 전국에 팔려 나간다. 연간 1천500여t에 달한다. 전국은 물론이고 미국에까지 수출되고 있다.

홍어전

2004년 대형마트에 진공 포장된 홍어가 납품되면서 영산포 홍어가 전국구가 됐다. 그래서 영산포 사람들은 흑산도 홍어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대부분이 외국산을 가공한 것이어서 가격은 흑산도 홍어보다 싸지만, 유통량은 흑산도에 비할 바 아니기 때문이다.


◆숙성 명인이 운영하는 홍어정식

영산포 홍어식당

영산포의 홍어 정식은 홍어가 육지에서 꽃을 피운 대표적인 사례다. 영산포홍어 식당의 홍어 정식은 삼합, 애국, 전, 무침, 튀김, 찜, 코 등 20여 가지가 상차림 된다. 처음으로 접하는 사람들도 부담되지 않는다.

영산포 홍어식당의 홍어 정식.

영산포홍어식당의 김영수(54) 대표는 황토를 이용해 숙성실을 만들어 '황토방 숙성 홍어' 특허를 획득한 홍어 장인으로 이름나 있으며, 최불암이 출연하는 '한국인의 밥상'에도 소개됐다. 김 대표는 ㈔한국 무형문화예술교류협회 선정한 전통 식품 분야 명인이기도 하다.

김 대표는 "황토가 가진 큰 장점은 원적외선으로 세포 생리작용을 활발히 하고 열에너지를 발생시켜 유해 물질을 방출하는 효과가 있다"며 "홍어 사업을 시작하면서부터 황토를 이용한 숙성실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영산포의 옛 역사를 알려주는 선창. 지금은 황포돗대 유람선을 운항한다.

그는 "항아리에 짚을 깔고 홍어를 넣은 다음 황토방에서 숙성시킨 홍어는 그 맛과 향이 깔끔하고, 좋은 성분을 극대화한다"고 이야기한다. 그가 운영하는 영산포영농조합법인의 황토방 숙성 홍어는 설날을 앞두고 없어서 못 팔정도로 주문이 밀려들고 있다고 한다.

천기철기자 tkt7777@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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