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영상] ˝종이신문, 그 자체로 삶의 흔적이자 가치 창조˝

입력 2022.01.05. 10:35 수정 2022.01.05. 18:43 댓글 0개
123 박물관 운영하는 김명곤씨
봉급의 80%가량을 종이신문 모으기에 쏟아 붓고 있는 ‘신문 수집광’ 김명곤씨는 1968년부터 2022년 1월 현재까지 180만부에 달하는 전국의 일간지를 매일 신문별‧날짜별로 모으고 있어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하고 있다.   

애독자이셨던 아버지 영향

중학교부터 보도사진 스크랩

직업군 시절에도 신문 챙겨

1890년대 프랑스 신문부터

온오프라인 상관없이 수집

2012년 곡성서 박물관 개관

1996~2007년 11년 치 총망라

제본 신문만 4천200권 달해


충남 당진에서 현대제철에 다니는 김명곤(51)씨는 남들과 다르게 산다. 타인과의 치열한 '생존경쟁'에 무게중심을 두기보다는 '가치창조'에 자신의 인생을 걸고 몰두한다. 그는 매월 받는 봉급의 80%가량을 종이신문 모으기에 쏟아붓는다. 이런 '신문맨'이다 보니 어쩌면 보는 시각에 따라 괴짜에 가깝다. 그의 일상이 비록 다양한 삶의 형태 중 하나라지만 세상은 그를 '별종'으로 치부한다. 전국에서 발행되는 일간신문을 모두 손에 넣기 전까지 그에게는 그 어떤 것도 필요하지 않다. 결코 포기를 모르는 신문 수집광이다. 어느 세상에도 없는, 사방이 신문으로 둘러싸인 '이상향의 신문세계'를 지향하는 천진난만한 모습을 보이면서….

김씨의 123 박물관에는 시사관련 근현대사 자료도 30만여점에 이른다.

그와의 만남은 당진의 독신자 아파트에서 힘겹게 이뤄졌다. 그가 고향땅 전라도에 살고 있지 않은 데다 요즘은 어떤 누구하고도 만나고 싶지 않다는 의중을 전해 들어서였다. 곡성에서 전업작가로 활동 중인 친형 김갑진(55)씨의 설득과 도움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인터뷰 자체가 힘들지 않았나 싶다. 그가 뭇사람들과의 접촉을 꺼린 건 그럴만한 사연이 숨어있었다. 날마다 쏟아지는 전국의 신문 저장 공간을 부단히 물색하고 섭외해도 전혀 화답이 없거니와 흐지부지되는 현실이 너무 씁쓸해서였다. 여기에 호주머니 사정 또한 점차 바닥을 드러내 앞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책일지 고민 중인 까닭도 섞여 있었다.

제2전시실에는 문화 연예 스포츠 관련 뉴스와 눈에 띄는 피규어 모형들이 전시 됐다. 

직장동료와 함께 거주한다는 김씨의 15평형 아파트는 온통 피규어(Figure)와 신문 꾸러미들로 가득했다. 간신히 선잠을 청할 수 있는 침대 위 공간만 할애돼 있다.

신문 창고로 사용된다는 당진의 40평짜리 허름한 옛 교회건물은 천정과 유리창 외벽에 구멍이 송송 뚫려 있었다. 창고는 입구에서부터 신문더미에 막혀 비집고 들어갈 틈새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요리조리 신문 더미들을 끄집어내고 나서야 가까스로 몸을 비집고 창고 내부로 향할 수 있을 정도였다. 마스크를 썼는데도 쾌쾌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물기를 머금은 신문들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천정까지 쌓인 신문더미들은 커다란 비닐 속에서 숨을 쉬지 못하고 아픈 신음 소리를 내는 것 같았다. 우리사회 전반의 실체적 진실을 담은 엄청난 역사적 자료들이 고스란히 썩어가고 있다는 생각에 가슴 한구석이 저며 왔다.

김씨가 소장한 1890년대 프랑스 신문에 그려진 고종황제(맨 가운데).

"곡성에 박물관이 마련돼 있어도 현재로서는 전국 각지에서 발행된 신문을 쌓아둘 공간이 턱없이 부족해 막막할 따름입니다. 더구나 제가 사는 아파트와 낡은 교회건물을 빌려 쟁여두고 있는 형편이지만 이제는 한계상황에 봉착했습니다. 그것도 비바람을 막기 위해 비닐로 덮어놓고 습기 등을 애써 차단하려는 노력을 기울여도 소실되는 자료들을 볼 때 가슴이 미어집니다. 그렇다고 여태껏 정성스레 모아둔 걸 스스로 정리할 수도 없는 심정입니다. 누군가 이 방대한 신문자료의 역사적 가치를 높이 평가해 주면 좋으련만 그마저도 쉽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그는 천장까지 차곡차곡 쌓아놓은 신문더미들을 애처롭게 바라보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곡성 목사동면의 한 폐교를 활용한 123 박물관의 제1전시실에는 정치‧경제‧사회‧국제 등 시사관련 뉴스가 빼곡하게 전시돼 있다

종이신문에 대한 그와의 인연은 지난 1981년 중학교 1학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버지가 승주(현 순천)에서 애독하던 신문기사에 흥미를 느끼고 보도사진을 중심으로 스크랩하기 시작한 것이 출발선이었다. 신문 스크랩으로 꽉 채워진 '신문 박물관'을 막연하게 꿈꾸면서 말이다. 끊임없이 발행되는 신문에 애착을 드러낸 그는 고교시절 정치·사회·문화·스포츠 등 섹션별로 기사를 스크랩한다. 그때까지만 해도 신문 스크랩 작업은 유년기에 불과했다. 1987년 실업계 고등학교 졸업 무렵, 늘 뇌리를 맴도는 건 어떻게 하면 일상생활과 신문수집을 유연하게 병행할 수 있을지의 여부였다. 그는 취업이 최선이라고 믿었다. 3년여동안 반월공단과 주암호 토목공사장 등지를 전전했다. 그 기간에도 신문 스크랩은 유일한 취미생활이었다. 1990년 10월 직업군인으로 해병대에 자원입대할 당시, 신문 스크랩은 역시 가장 소중한 의미였다. 직업군인의 길이 쉬지 않고 신문을 스크랩할 수 대안이라고 떠올랐기 때문이다.

곡성 목사동면의 한 폐교를 활용한 123 박물관의 제1전시실에는 정치‧경제‧사회‧국제 등 시사관련 뉴스가 빼곡하게 전시돼 있다

"신문을 대하고 있으면 괜스레 기분이 좋아집니다. 아마도 저와 신문과의 관계는 필연적인 운명인가 봅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군대에서도 하루도 빠짐없이 공보정훈실에 들러 신문을 수집하고 침상 옆 머리맡에 수북이 쌓아두는 버릇까지 생겼답니다. 야간매복 등 각종 훈련 때에도 배낭 속 신문은 필수품이었습니다. 한 번은 갑작스러운 장대비에 신문 전체가 젖어버려 말릴 수도 없었습니다. 제 자신이 몹쓸 독감에 걸린 듯 정말 기진맥진했던 기억도 생생합니다. 신문은 그렇게 제 삶의 일부로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4년 6개월간의 군생활을 마무리하고 생각을 정리할 겸 부모님 곁에서 농사일을 거들면서도 여전히 신문 스크랩만큼은 열성적인 그였다. 그러던 1996년 어느 날, 한보철강(현 현대제철)에서 인재를 뽑는다는 광고를 우연히 접했다. 그 길로 입사원서를 냈다. 그는 합격의 문턱을 넘었던 것이 지금까지 회사 일을 하면서 꿈을 실현할 수 있는 밑거름으로 작용했다고 말한다. 그는 "만약 신문 스크랩을 하지 않고 멍하니 농사일만 했더라면 여태 신문을 수집할 수나 있었겠느냐"며 신문과의 소중한 인연의 깊이를 강조한다.

김씨의 123 박물관에는 시사관련 근현대사 자료도 30만여점에 이른다.

충남 당진에서의 회사생활은 신문 모으기에 대한 꿈을 더욱 구체화시키는 원동력이었다.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전국에 있는 신문사에 수시로 전화를 걸어 신문 수거작업에 나섰다. 실제로 그의 휴대폰 안에는 80여개사에 달하는 신문사 대표전화가 빼곡하게 새겨져있다. 신문과 관련된 사안이라면 온·오프라인을 모두 뒤져서라도 여지없이 뛰어드는 꼼꼼함과 대담함을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1890년대 프랑스 신문을 소장하고 있다. 조선시대 신하들이 2열 종대로 서서 숙연한 고종황제를 보좌하는 인상적인 일러스트 신문을 수 백만원의 대가를 지불하면서까지 구하기도 했다.

지난 2000년부터 2003년까지는 당진과 서산 등 충남일대의 초·중·고교생과 기업체, 관공서를 대상으로 반세기 신문 속에서 격동의 현대사를 둘러볼 수 있는 '찾아가는 전시회'도 마련했다. 당시 당진의 한 고등학교 교사는 "교육 효과가 탁월하다"며 수업을 전시회로 대체하는 모습을 보여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서산의 서령고에서는 학생들이 직접 축제기간에 신문 전시회를 개최, 역사의식 제고와 가치관 정립에 도움을 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곡성 목사동면의 한 폐교를 활용한 123 박물관의 제1전시실에는 정치‧경제‧사회‧국제 등 시사관련 뉴스가 빼곡하게 전시돼 있다

2012년 8월 그는 급기야 곡성의 한 폐교를 임대, 리모델링 공사를 거쳐 123 박물관을 개관하기에 이른다. 1996년부터 2007년까지 11년 치의 중앙지와 경제지, 스포츠지, 지방지 등 80여종을 총망라한 일간지를 신문별·날짜별로 하루도 거르지 않고 수집해 아예 제본까지 마쳤다. 현재 제본된 신문만 해도 4천200권에 달하고, 그 무게가 무려 50여t에 육박한다. 정치·사회·문화·국제 등 각 분야별 스크랩북도 3천여권, 80여종의 신문 원부(1968~2021년 현재) 180만부, 시사관련 근현대사 자료 30만여점, 시사 도서잡지 3만여권 등이 123 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다. 제1전시실에는 정치·경제·사회·국제 등 시사관련 뉴스가, 제2전시실은 문화·연예·스포츠 관련 뉴스와 눈에 띄는 피규어 모형들이 많이 전시돼있다. 복도에는 쇼킹한 뉴스들이 눈길을 끌게 하고, 열람실에는 제본된 신문과 스크랩북이 수북이 쌓여있어 그의 열정과 정성을 곧바로 느낄 수 있다. 11살 소년이 구체적 목표의식도 없이 어슴프레 시작한 꿈이 31년만에 현실로 발현된 것이었다.

하지만 오로지 종이신문에 올인하다 보니 개인적으로는 왕따도 당하고 미친 사람이라며 외계인 취급도 받았다. 요즘 세상은 SNS 등 온라인이 주류를 이루는데, 비주류인 오프라인에 죽자 살자 매달리는 어리석은 일을 한다며 수군거리기 일쑤였다. 하는 수없이 2년 전부터는 친구나 동료들의 경조사에 참석하는 등 안간힘을 다해봤다. 결과는 좋지 않았다. 인간들에 대한 회의감만 쌓여갔다. 그는 차라리 길 잃은 고양이들에게 관심을 쏟는다. 외로움과 그리움을 치유할 수 있고 상처와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서 훨씬 좋다.

‘신문 수집광’ 김명곤씨

신문인보다 더 신문인다운 사나이, 정성·사랑·열정으로 신문에 인생을 송두리째 건 남자 김명곤씨. 그는 "신문을 보관하는 일 자체가 사실이고 역사여서 아마 죽을 때까지 모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양이 많아지다 보니 보관할 장소가 여의치 않아 제2의 박물관 장소를 찾고 있다"며 "진정 종이신문의 가치를 알고 신념이 있는 순수한 사람만 있다면 나중에라도 도네이션을 고려해볼 생각"이라는 말을 내비쳤다. 자유로운 영혼으로 인고의 세월을 견딘 그가 신문 박물관의 롤 모델로 오래도록 기억 속에 남아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리고 그가 그토록 원하는 힐링의 세계가, 행복의 세계가 바이러스처럼 빠르게 확산됐으면 좋겠다.

김봉일기자 amazingreporter@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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