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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겨울이라 불리는 거울
입력 2022.01.04. 14:07 수정 2022.01.04. 20:31 댓글 0개겨울, 우리 학교는 만남과 헤어짐의 시간이다. 대부분의 학교에서 정기 인사로 학교를 옮기거나, 때론 정년으로 학교를 떠나는 교사도 있다. 그리고 다른 여러 이유로 겨울, 학교는 헤어짐과 만남의 시간이다.
우리 학교도 몇 교사가 학교를 떠난다. 이른 아침 학교의 아침을 아이들 등교 맞이로 시작하던 교장선생님이 학교를 떠난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때론 우산을 들고, 때론 두툼한 겉옷을 걸치고 계절을 견딘 마음으로, 아이들을 맞이하며 먼저 인사말을 건네고 종종 피곤해 보이는 아이들의 건강 상태를 묻기도 하며 아침을 열던 그 모습을 출근하다 마주할 때면 교사가 묵묵한 실천을 꾸준히 해낸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알기에 더욱 생각이 많아지곤 하였다.
그리고 일명 '반장'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던 한 화학 담당 선생님도 정년을 마치고 학교를 떠난다. 마지막 수업 시간에 자신의 지난 수업을 돌아보던 그 선생님은 수업과 학생 교육에 항상 철저하였던 교사다.
우리 학교에서 꼼꼼함의 또다른 이름이었던 그 선생님은 수업을 계획하고 준비하고 진행하는 데 있어서 늘 흐트러짐이 없었다. 그렇듯이 마지막 수업도 시작 종과 끝 종이 울릴 때까지 언제나 그랬듯이 적당히 하는 법이 없이 진행되었다. 그 선생님다운 수업이었다. 그렇게 수업자료 한 장을 만들어도 자신이 생각한 틀과 내용을 담아내고 앞 자료와의 형식적 통일성도 고려하던 선생님도 마지막 수업에서는 다하지 못한 아쉬움을 전하고 있었다. 그리고 끝 종이 울리자, 동료 교사들과 학생들의 박수 속에 마지막으로 교실문을 나섰다. 그 선생님의 아쉬움이 여전히 서성대고 있을 교실문을 우린 다시, 이 2022년 3월이면 열고 들어설 것이다. 세상의 모든 교실문이 그러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고 보면 세상은 우리가 원하는 것이 풍족하여 모두가 그것을 누리며 돌아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부족함과 아쉬움을 서로 채워가면서 돌아간다. 그 아쉬움과 부족함을 무엇으로 어떻게 채울 것인가 고민이 필요하다. 누구나 꿈꾸는 교사상이 있다. 선배 교사들을 떠나보내다 보면 우린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아이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수업은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 저마다 결은 다를지 모르지만 교사가 아이들에 대해 갖는 성실함의 척추야 다를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학교는 교사의 성실함이 서로의 아쉬움과 부족함을 채우면 돌아가고 있다.
올 겨울, 선배 교사를 떠나 보내며 한 권의 책이 떠오른다. '닥터 노먼 베쑨'. 아주 오래 전의 책이지만, 중국 혁명의 시기 종군의사로 활동한 노먼 베쑨의 전기를 담은 책이다. 이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질병을 돌보되 사람을 돌보지 못하는 의사를 작은의사라 하고, 사람을 돌보되 사회를 돌보지 못하는 의사를 보통의사라 하며, 질병과 사람, 사회를 통일적으로 파악하여 그 모두를 고치는 의사를 큰의사라 한다' 교사의 역할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람과 교육과 사회를 통일적으로 파악하면서 그 모두의 변화를 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 이를 위해서 교사 스스로 노력해야 하는 것들도 많겠지만 사회 제도적으로는 교사의 정치기본권도 분명히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올해엔 모두가 알고 있듯이 대통령 선거와 지방 선거가 석 달 간격으로 진행된다. 이 선거가 우리 학교 교육에 미칠 영향이야 더 말할 것도 없다.
앞으로 광주교육을 책임질 교육감 선거의 중요성은 더욱 크다. 그러나 우리 교사들이 이와 관련하여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쉽지 않다. 규칙을 바꾸어야 하고 제도의 변화가 상황에서도 교육이란 이름으로 교사 개인의 노력만을 강조하면 넘을 수 없는 일들이 교육 현장에는 많은 데도 할 말을 다하지 못하는 교사의 모습은 사회 변화만 더디게 할 뿐이다.
- <칼럼> 늘봄학교, 우리 아이들의 삶이 없다 '늘봄', 이 얼마나 예쁜 말인가? 봄처럼 포근하고 따사로움이 늘 함께한다는 뜻일 것 같은 '늘봄'. 그러나 이제 이 언어는 그렇게 쓰일 수가 없다.언어의 의미는 사회에서 규정된다. 아무리 좋은 언어라도 사회에서 다른 의미로 사용하기 시작하면, 언어의 오염이 시작되고 결국 그 언어는 이전의 의미로는 쓸 수 없게 된다. 나에게 '늘봄학교'은 '녹색성장'과 같이 그렇게 오염된 채 다가왔다.2024학년도 1학기 광주지역 늘봄학교, 신청에서부터 선정까지 학교 현장 갈등2월 현재 광주에서는 30여개 초등학교가 늘봄학교에 참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신청한 18개 학교 중 중17개교는 협의록이 없으며, 교장 결정 3개교, 교장과 교감이 함께 결정한 학교 1개교, 교장, 교감, 행정실장이 결정한 학교 2개교, 부장교사가 요청하여 승인한 학교 1개교 등 내가 속한 학교지만 어떻게 늘봄이신청되고 선정되었는지를 학교 구성원은 잘 모른다. 그래서 서로 의심하고 속상해한다. 이렇게 늘봄학교는 불필요한 학교 현장 갈등을 양산 시키고 있다.교사? 돌봄전담사? 일반직? 과도한 노동을 강요받고 있어"우리가 일 때문에 늘봄학교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이 말은 늘봄학교 거부의 본질이 업무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은 거겠지만, 노동자에게는 일도 중요하다. 여전히 시간제가 많은 돌봄전담사의 업무도 아니고, 수업과 생활교육이 고유 업무이자 이것만으로도 과도한 노동을 하는 교사의 업무는 더더욱 아니다. 늘봄지원실을 만들어 일반직을 배정한다는 것도 총액인건비제에 묶여있는 공무원 상황을 보면 실현 가능하지 의문이 들고, 기간제에게 맡기는 것 또한 노동의 불안정성을 부추김과 동시에 결국은 기간제 공고부터 선정 관리까지 다시 학교의 업무가 되는 것은 학교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다 안다. 학교의 누군가는 일을 해야 한다. 본연의 업무가 아니라 강요받은 업무를 그것도 과도하게 말이다.가장 중요한 사실, 우리 아이들의 삶이 없는 '늘봄학교'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늘봄학교에는 우리 아이들의 삶이 없다는 것이다. 올해 초 늘봄학교에 대한 기사가 쏟아질 무렵 내 마음을 훅 치는 기사 하나가 있었다. 기사 중에는 지금은 고등학교 2학년이 된 자녀로부터 들은 초등돌봄교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다음과 같다."엄마, 나는 초등학교 때 돌봄교실이 제일 싫었어. 다른 친구들은 학교 끝나면 엄마랑 만나서 놀이터에서 놀고 학원에 가고 집에서 쉬는데, 난 혼자 돌봄교실에 갔어. 나도 다른 애들처럼 엄마랑 만나고 싶었어." 우리 아이들의 삶을 생각한다면 아침 7시부터 밤 8시까지 학교에 있는 게 폭력적일 수 있겠다는 생각 안드는지? 어른들보고 그렇게 있으라고 한다면 아마 대다수 집에 간다고 하지 않을까?늘봄학교에는 주체인 우리 아이들의 목소리는 빠져있고, 즉 아이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에 대한 고민과 사유는 실종되었다.학교, 지자체, 무엇보다 보호자가 우리 아이를 충분히 돌볼 수 있도록필자도 아이를 돌봄교실에 보냈었고, 아이를 맡길 데가 없어서 발을 동동거린 적이 있다. 대한민국 보호자들이라면 다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두 번이라도 했을 것이다. 그때 절실하게 느낀 것이 돌봄의 사회적책임이었고, 학교 현장에 있는 지금도 여전히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돌봄의 사회적 책임은 보호자의 노동권을 보장하기 위해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과 동시에 보호자의 양육권을 보장하기 위한 적절한 노동시간 합의와 양육시간 확보도 해당될 것이다. 후자의 대표적인 것이 소위 '저녁 있는 삶'과 같은 것이다.학교가, 지자체가 함께 우리 아이들을 돌봄과 동시에 보호자가 우리 아이를 충분히 사랑하고 충분히 돌볼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천천히 가더라도 그렇게 가야 우리 아이들의 삶이, 우리들의 삶이 있다.그렇게 간다면 다시 '늘봄', 이 언어의 원래의 의미를 되찾아 진정 우리가 바라는 '늘봄'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정애숙 광주동산초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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