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신영, 최태성 아재 개그에 "차라리 항공권을 주시라"뉴시스
- 금융위, FIU 원장에 박광 국민의힘 수석전문위원 임명뉴시스
- [인사]금융위원회뉴시스
- 프랑스 하원, '머리칼에 관한 모든 차별 금지법안' 투표뉴시스
- 윤준병 후보 "4월10일은 윤석열정권 심판의 날" 민주당 필승 다짐뉴시스
- 선방위, '양승태 사법농단 무죄' 이탄희 인터뷰한 MBC에 법정제재 뉴시스
- 6시간 30분 방산협력 마라톤 회의···수출 지원 집중 토의(종합)뉴시스
- 차은우, 브라질·멕시코 팬콘 전석 매진···'미스테리 엘리베이터'뉴시스
- 이재명 부평역 유세 현장서 흉기 소지한 남성 검거(종합)뉴시스
- 여, 조국당 비례 박은정에 "남편 다단계 사기 변호로 22억 돈벼락"뉴시스
<칼럼>'정규직 중심주의'가 '진보'인가?
입력 2021.12.20. 10:02 수정 2021.12.21. 09:26 댓글 0개정규직 중심주의자들이 외쳐대는
면죄부 구호는 "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인데, 이건 사실상
실현 불가능하다. 그걸 알면서도
"옳으니까 해야 한다"고 외치는 건
사실상 정규직의 기득권을 보호하면서
비정규직에 대한 '희망 고문'을
연장시키는 위선일 수 있다
지금 우리는 '1% 대 99%의 사회'를
빙자해 사실상 '20% 대 80%의 사회'에서
20%의 기득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걸 진보라고 부르는
이상한 게임을 하고 있다.
"우리는 도덕적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보다 도덕적이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에게 더 큰 찬사를 보내오지 않았던가! (중략) 도덕은 스스로에게 적용하는 것이지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도덕을 앞세운 세대는 지독한 불량배들, 즉 도덕적으로 공격받을 위치에 있지 않기 때문에 어떤 주제에 대해서나 어떤 주장이라도 해댈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행세하는 사람들을 무수히 양산해냈을 뿐이다."
프랑스 지식인 레지 드브레의 말이다. 이런 말이 나오게 된 사회적 맥락이 있으니, 우리 처지에선 곧장 믿을 말은 아니다. 그럼에도 생각해볼 점은 있다. 도덕적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의 행위는 언론에 보도되지 않는 반면 도덕적이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의 말은 언론에 잘 보도된다. 그래서 도덕을 외치는 도덕주의자들은 사회적 권력까지 누릴 수 있다. 이로 인한 문제는 없는가?
"한국 사회는 사람들이 화려한 도덕 쟁탈전을 벌이는 하나의 거대한 극장이다." 일본 철학자 오구라 기조가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에서 한 말이다. 서울대 철학과에서 8년간 유학한 그는 "조선시대에는 도덕을 쟁취하는 순간, 권력과 부가 저절로 굴러 들어온다고 모두가 믿고 있었다"며 한국을 '도덕 지향성 국가'라고 했다. 한국인이 언제나 모두 도덕적으로 살고 있다는 뜻이 아니라 사람들의 모든 언동을 도덕으로 환원하여 평가한다는 의미에서다.
외국인, 그것도 일본인의 비판이라는 점에서 그렇지 않다고 반박부터 하고 싶겠지만, 전적으로 동의할 순 없다고 하더라도 대체적으로 맞다는 건 부인하기 어렵다. 아니 그건 내 생각일 뿐이고, 대체적으로 맞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을 게다. 나는 그간 문재인 정권이 경제마저 도덕처럼 다루는 '경제의 도덕화'로 민생을 어렵게 만들었다고 비판해왔는데, 내 주장을 정파적으로 해석한 탓인지는 몰라도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다. 또 욕 먹을 말이겠지만, 나는 문 정권의 야심작이었던 최저임금제와 주52시간제에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어떻게'는 소홀히 하고 '무엇'만 앞세우는 명분 위주의 '한줄 사회'다. 한줄로 요약되는 '총론'만 중시할 뿐 세부적인 '각론'은 가볍게 여긴다. "최저임금제·주52시간제 찬성이야 반대야?"라고 윽박지르는 2분법이 판치는 사회에선 그런 제도설계의 품질을 따지는 게 어려워진다. 그 품질에 문제가 있다고 말하면 노동자의 권익 보호를 위해 만든 최저임금제·주52시간제를 반대하는 '반노동적 노동관'을 가진 꼴통으로 몰리기 십상이다.
대졸 취업준비생의 65%가 구직을 포기할 정도로 취업이 어렵고, 학교 졸업 후 처음 가진 일자리에서 1년 이하 계약직 비중이 47%라는 조사 결과가 나오고 있다. 고용정보원이 추산한 2020년 플랫폼 비정규직 노동자는 220만 명(전체 취업자의 8.5%)에 이르렀고, 그 수는 급속히 늘고 있다. 이런 통계는 언론에 소개되고 있기에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희한한 건 우리의 노동 관련 논의는 이미 취업을 한데다 든든한 정규직을 차지한 노동자들 중심으로만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치나 다른 사회 분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세력의 크기나 힘에서 정규직이 비정규직에 비해 압도적 우위에 있다보니 '정규직 중심주의'가 '진보'로 통용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는 게 우리 현실이다.
정규직이 잘 돼야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잘 된다는 노동계의 '낙수 효과'는 타당한가? 나는 그게 영 이상하다고 생각해 그간 상식 차원에서 '정규직 중심주의'에 강한 이의를 제기해 왔는데, 이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자칫 '반노동적 노동관'으로 찍힐 위험이 있고, 실제로 그런 비판을 받기도 했다. 정규직 중심주의자들이 외쳐대는 면죄부 구호는 "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인데, 이건 사실상 실현 불가능하다. 그걸 알면서도 "옳으니까 해야 한다"고 외치는 건 사실상 정규직의 기득권을 보호하면서 비정규직에 대한 '희망 고문'을 연장시키는 위선일 수 있다.
때마침 이 분야의 전문가이자 진보적인 정치경제학자인 홍기빈이 경향신문 (2021년 11월 16일)에 기고한 "주 4일제와 정규직 중심주의"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정규직 중심주의'에 강한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칼럼 하나가 이토록 반가운 적은 없었다. 그는 "주 52시간 노동도, 최저임금도, 심지어 작업장 안전조차 일률적으로 감시와 규제가 이루어지지 않는 작업장이 허다한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러한 작업장에서 일하는 이들에게는 그 혜택이 제대로 갈 리가 없다. 뿐만 아니라 각종 불안정 노동자, 프리랜서, 영세 자영업자 등에게는 완전히 무의미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삶의 불편과 상대적 박탈감만 늘어나게 될 것이다. 결국 은행, 관공서, 공기업, 대기업, 대학과 학교 등 정규적 작업장의 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엄청난 혜택이 돌아가겠지만, 그 밖의 사람들에게는 돌아가는 혜택이 극히 불균등하거나 전혀 없거나 오히려 '벼락거지'가 되는 허탈함만 나타날 것이다."
이 문제에 관심 있는 독자께서는 꼭 이 칼럼을 찾아서 전문을 다 읽어보시기 바란다. 이런 이야기는 매우 희귀하니까 말이다. 나는 "'주 4일제' 제안은 우리의 현실을 도외시한 채 유럽이나 서구의 진보정책을 그대로 가져와 '쿨하게' 보이는 데에 집착하는 우리 진보 진영의 버릇이 나타난 예라고 볼 수도 있다"는 그의 생각에 동의한다. 또한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는 주로 상위 20%를 더욱 윤택하게 해주는 것들"을 "과연 진보적인 사회 정책"이라고 부를 수 있느냐는 그의 문제 제기에도 지지를 보낸다.
지금 우리는 '1% 대 99%의 사회'를 빙자해 사실상 '20% 대 80%의 사회'에서 20%의 기득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걸 진보라고 부르는 이상한 게임을 하고 있다. 그 게임에 이의를 제기하면 차분하게 논의해볼 생각은 하지 않고 몹쓸 딱지 붙이기부터 해대는 게 습관이 되고 말았다. 20%의 기득권은 사실상 언로(言路)마저 장악하고 있어서 다른 이야기를 하는 걸 어렵게 만든다. 이대로 좋은가? 좋지 않다! 더 낮은 곳을 바라보아야 한다. 진짜 도덕이 필요한 곳은 바로 이 곳이다.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 <칼럼> 나는 증오한다 고로 행복하다 프랑스 작가 에밀 졸라는 "증오란 신성한 것"이라고 했다. 억울하게 간첩 누명을 쓴 드레퓌스라는 사람을 옹호하면서 한 말이다. 아닌게 아니라 사회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신성한 증오'엔 저절로 머리가 수그러진다. 그러나 요즘엔 이런 증오를 보는 게 영 쉽지 않다. 물론 증오를 발산하는 이들은 사회정의를 내세우겠지만, 특정 진영논리에 사로잡히는 순간 그 사회정의는 내로남불의 하위 개념으로 전락하고 만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증오는 대부분 이런 내로남불형 증오다.혹 주변에 증오를 자주 발산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잘 관찰해보시라. 그들은 대부분 옳은 말을 한다. 그게 그렇게까지 욕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선 선뜻 동의하기 어려울망정 비난받아 마땅한 일에 대해 비난하는 것에 대해선 일단 긍정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증오를 자주 접하다보면 그 어떤 일관된 패턴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증오의 대상이 진영 중심으로 어느 한쪽에만 집중돼 있다는 점이다.사적인 자리에선 정치 이야기를 한사코 피하는 사람일지라도 누군가가 불쑥 꺼내는 정치 이야기까지 틀어 막을 수는 없는지라 그냥 들어야 할 때가 있을 게다. 잠자코 들으면서도 속으로는 홀로 이런저런 반론을 제기하고 싶을 게다. "그런 특성은 당신이 추앙하는 사람이 훨씬 더 심한 것 같은데, 왜 이 사람만 비난하지?" 이런 생각을 발설했다간 싸움 나기 십상인지라 그냥 자기 머릿속에서만 반론을 제기해야 한다. 사실 관계가 다른 과장과 왜곡이 섞여 있는 주장일지라도 그걸 지적하는 것조차 위험하다. "음. 선동 전문 유튜브를 많이 보는구나"라고 생각하면서 넘어가는 게 좋다.사회과학자로서의 직업병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평소 공사(公私) 영역에서 그런 증오를 발산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유형을 분류하곤 한다. 아무리 대화를 해봐야 내로남불을 내장하고 있는 진영논리라는 방탄벽을 뚫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절감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분석이나 해보자는 자세로 돌아서서 하게 된 게 유형 분류다. 증오의 이유 중심으로 볼 때에 생존투쟁, 쾌락투쟁, 인정투쟁, 이익투쟁의 네가지로 나눌 수 있었다.첫째, 생존투쟁은 자신이 살기 위해서 하는 증오다. 미국 작가 에릭 호퍼는 "열정적인 증오는 공허한 삶에 의미와 목적을 줄 수 있다"고 했는데,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의 강성 지지자들 중에 이런 유형의 사람들이 많다. 삶의 공허함은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 아닌가. 그런데 국가와 민족이라는 거대한 차원에서 격렬하게 증오할 대상을 찾아 증오의 발산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건 자신의 사회적 쓸모와 중요성을 확인하면서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의로운 일이 된다. 어느 정당에서건 강성 지지자들의 진정성과 열정이 감동을 자아내게 할 정도로 강할지라도 그들의 주장대로만 가면 당은 망할 수밖에 없는 역설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에게 우선적인 건 자기 삶의 의미와 목적이지, 그마저 희생해가면서 당의 성공을 바라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둘째, 쾌락투쟁은 자신의 즐거운 쾌감을 위해 하는 증오다. "증오와 사랑은 같은 호르몬을 유발하는 것 같다." 영국 소설가 그래함 그린의 말이다. 이 주장을 입증하겠다는 듯 미국 정신분석학자 오토 케른베르크는 '즐거움으로서의 증오'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격노에서 파생된 증오는 매우 유쾌한 공격적 행동을 낳을 수 있다. 다른 이에게 고통, 수치심, 아픔을 유발함으로써 느끼는 가학적 쾌감, 다른 이의 가치를 깎아내림으로써 얻어지는 환희가 그것이다." 공적 영역에서건 사적 영역에서건 진정성과 열정을 갖고 증오의 언어를 내뿜는 사람들의 얼굴을 본 적이 있는가? 그런 얼굴들만 모아 그림으로 보여줄 수 없는 게 안타깝다. 그들은 개인적으론 쾌감을 느끼며 행복해하는 엑스터시(ecstasy)의 경지에 이르렀겠지만, 문제는 그런 엑스터시를 모르는 사람들과의 소통은 불가능하다는 점일 게다.셋째, 인정투쟁은 자신의 소속 집단에서 인정을 받기 위해 하는 증오다. 그 집단이 비공식 집단이며 느슨하게 구성돼 있을지라도 한 개인의 일상적 삶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라면 위계질서가 엄격한 공식 집단 이상의 영향력과 규제력을 행사할 수 있다. 그 집단의 구성원들이 이구동성으로 증오하는 대상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갖고 있으면 외로워질 뿐만 아니라 정도가 심해지면 왕따를 당할 수도 있다. 테레사 수녀는 "가장 나쁜 병은 나병도 결핵도 아니다. 아무도 존경하지 않고 아무도 사랑해주지 않고, 배척받고 있다는 느낌이 가장 나쁜 것이다"고 했다. 사실 배척받고 있다는 느낌은 공포다. 그런 공포를 피하는 건 물론이고 무난한 인간관계를 위해서라도 증오 발산의 대열에 동참해야 한다.넷째, 이익투쟁은 자신의 현실적인 이익을 위해 하는 증오다. 이는 증오를 팔아 돈을 버는 일부 언론과 유튜브 등 이른바 '정치군수업자들'의 선전·선동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선전·선동을 사회정의로 포장하는 '증오 마케팅' 능력이 워낙 탁월해 정의에 목 마른 신도들로부터 적잖은 헌금을 거둬들인다. 특정 정당이 막강한 지배력을 행사하는 지역으로 내려가면 반대 정당이나 진영에 대해 "누가 더 강한 증오와 혐오의 언어로 공격하나?"를 겨루는 경쟁이 벌어진다. 그런 풍토에선 개인이나 자영업자에게도 증오를 표현하는 건 먹고 사는 문제와 무관할 수 없는 일이 된다. 모두가 다 증오의 방향으로 뛰면 그 증오의 심정과 언어를 공유하면서 따라 뛰어야만 무난하게 살아갈 수 있다.이렇듯 우리 사회에선 자기 진영의 이익과 그 진영에 소속된 사람들의 여러 개인적인 이유들로 인해 증오를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나는 증오한다 고로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시사하는 것이어서,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사람이 어렴풋한 수준일지라도 소속 진영 없이 살아가기는 어려운 일인데다 팔은 안으로 굽기 마련이라는 걸 부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정치권의 고질병인 내로남불이 일반 시민들의 일상적 삶에까지 파고 들어 생활화되는 걸 당연하다고 여길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 모두 그 누구도 증오하지 않음으로써 행복해지는 길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 · <칼럼> 자연에 대한 받듬과 존중의 태도
- · <칼럼> '가족주의'의 역설
- · <칼럼> 섬세해야 민주주의다
- · <칼럼> 지역균형발전이라는 국민사기극
- 1[단독] 광주서 빗길에 '포르쉐' 인도로 돌진..
- 2광주시 유관기관·기초의원 평균 12억···250억대 재력가도[재..
- 3광주 중앙공원 1지구, 공공기여금 1371억원·분양가 2401만..
- 4"선호 크기 평균 34.6평···드레스룸·시스템 에어컨 있었으면..
- 5금값 또 역대 최고···한 돈 40만원 돌파..
- 6[무슐랭] 화순 벚꽃 명소 맛집, '불타는 용궁짬뽕..
- 7광주 '힐스테이트 중외공원' 선착순 동·호지정 분양..
- 8"대한민국 연예인 다 왔네"···혜은이 딸 결혼식, 어땠길래..
- 9"쌍촌동 아파트 분양권 있어" 수억 가로챈 50대 영장..
- 10봄바람 타고 유달산 갈까···'달빛더비' 열기 속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