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칼럼>'정규직 중심주의'가 '진보'인가?

입력 2021.12.20. 10:02 수정 2021.12.21. 09:26 댓글 0개
강준만의 易地思之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정규직 중심주의자들이 외쳐대는

면죄부 구호는 "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인데, 이건 사실상

실현 불가능하다. 그걸 알면서도

"옳으니까 해야 한다"고 외치는 건

사실상 정규직의 기득권을 보호하면서

비정규직에 대한 '희망 고문'을

연장시키는 위선일 수 있다

지금 우리는 '1% 대 99%의 사회'를

빙자해 사실상 '20% 대 80%의 사회'에서

20%의 기득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걸 진보라고 부르는

이상한 게임을 하고 있다.

"우리는 도덕적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보다 도덕적이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에게 더 큰 찬사를 보내오지 않았던가! (중략) 도덕은 스스로에게 적용하는 것이지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도덕을 앞세운 세대는 지독한 불량배들, 즉 도덕적으로 공격받을 위치에 있지 않기 때문에 어떤 주제에 대해서나 어떤 주장이라도 해댈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행세하는 사람들을 무수히 양산해냈을 뿐이다."

프랑스 지식인 레지 드브레의 말이다. 이런 말이 나오게 된 사회적 맥락이 있으니, 우리 처지에선 곧장 믿을 말은 아니다. 그럼에도 생각해볼 점은 있다. 도덕적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의 행위는 언론에 보도되지 않는 반면 도덕적이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의 말은 언론에 잘 보도된다. 그래서 도덕을 외치는 도덕주의자들은 사회적 권력까지 누릴 수 있다. 이로 인한 문제는 없는가?

"한국 사회는 사람들이 화려한 도덕 쟁탈전을 벌이는 하나의 거대한 극장이다." 일본 철학자 오구라 기조가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에서 한 말이다. 서울대 철학과에서 8년간 유학한 그는 "조선시대에는 도덕을 쟁취하는 순간, 권력과 부가 저절로 굴러 들어온다고 모두가 믿고 있었다"며 한국을 '도덕 지향성 국가'라고 했다. 한국인이 언제나 모두 도덕적으로 살고 있다는 뜻이 아니라 사람들의 모든 언동을 도덕으로 환원하여 평가한다는 의미에서다.

외국인, 그것도 일본인의 비판이라는 점에서 그렇지 않다고 반박부터 하고 싶겠지만, 전적으로 동의할 순 없다고 하더라도 대체적으로 맞다는 건 부인하기 어렵다. 아니 그건 내 생각일 뿐이고, 대체적으로 맞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을 게다. 나는 그간 문재인 정권이 경제마저 도덕처럼 다루는 '경제의 도덕화'로 민생을 어렵게 만들었다고 비판해왔는데, 내 주장을 정파적으로 해석한 탓인지는 몰라도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다. 또 욕 먹을 말이겠지만, 나는 문 정권의 야심작이었던 최저임금제와 주52시간제에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어떻게'는 소홀히 하고 '무엇'만 앞세우는 명분 위주의 '한줄 사회'다. 한줄로 요약되는 '총론'만 중시할 뿐 세부적인 '각론'은 가볍게 여긴다. "최저임금제·주52시간제 찬성이야 반대야?"라고 윽박지르는 2분법이 판치는 사회에선 그런 제도설계의 품질을 따지는 게 어려워진다. 그 품질에 문제가 있다고 말하면 노동자의 권익 보호를 위해 만든 최저임금제·주52시간제를 반대하는 '반노동적 노동관'을 가진 꼴통으로 몰리기 십상이다.

대졸 취업준비생의 65%가 구직을 포기할 정도로 취업이 어렵고, 학교 졸업 후 처음 가진 일자리에서 1년 이하 계약직 비중이 47%라는 조사 결과가 나오고 있다. 고용정보원이 추산한 2020년 플랫폼 비정규직 노동자는 220만 명(전체 취업자의 8.5%)에 이르렀고, 그 수는 급속히 늘고 있다. 이런 통계는 언론에 소개되고 있기에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희한한 건 우리의 노동 관련 논의는 이미 취업을 한데다 든든한 정규직을 차지한 노동자들 중심으로만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치나 다른 사회 분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세력의 크기나 힘에서 정규직이 비정규직에 비해 압도적 우위에 있다보니 '정규직 중심주의'가 '진보'로 통용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는 게 우리 현실이다.

정규직이 잘 돼야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잘 된다는 노동계의 '낙수 효과'는 타당한가? 나는 그게 영 이상하다고 생각해 그간 상식 차원에서 '정규직 중심주의'에 강한 이의를 제기해 왔는데, 이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자칫 '반노동적 노동관'으로 찍힐 위험이 있고, 실제로 그런 비판을 받기도 했다. 정규직 중심주의자들이 외쳐대는 면죄부 구호는 "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인데, 이건 사실상 실현 불가능하다. 그걸 알면서도 "옳으니까 해야 한다"고 외치는 건 사실상 정규직의 기득권을 보호하면서 비정규직에 대한 '희망 고문'을 연장시키는 위선일 수 있다.

때마침 이 분야의 전문가이자 진보적인 정치경제학자인 홍기빈이 경향신문 (2021년 11월 16일)에 기고한 "주 4일제와 정규직 중심주의"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정규직 중심주의'에 강한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칼럼 하나가 이토록 반가운 적은 없었다. 그는 "주 52시간 노동도, 최저임금도, 심지어 작업장 안전조차 일률적으로 감시와 규제가 이루어지지 않는 작업장이 허다한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러한 작업장에서 일하는 이들에게는 그 혜택이 제대로 갈 리가 없다. 뿐만 아니라 각종 불안정 노동자, 프리랜서, 영세 자영업자 등에게는 완전히 무의미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삶의 불편과 상대적 박탈감만 늘어나게 될 것이다. 결국 은행, 관공서, 공기업, 대기업, 대학과 학교 등 정규적 작업장의 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엄청난 혜택이 돌아가겠지만, 그 밖의 사람들에게는 돌아가는 혜택이 극히 불균등하거나 전혀 없거나 오히려 '벼락거지'가 되는 허탈함만 나타날 것이다."

이 문제에 관심 있는 독자께서는 꼭 이 칼럼을 찾아서 전문을 다 읽어보시기 바란다. 이런 이야기는 매우 희귀하니까 말이다. 나는 "'주 4일제' 제안은 우리의 현실을 도외시한 채 유럽이나 서구의 진보정책을 그대로 가져와 '쿨하게' 보이는 데에 집착하는 우리 진보 진영의 버릇이 나타난 예라고 볼 수도 있다"는 그의 생각에 동의한다. 또한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는 주로 상위 20%를 더욱 윤택하게 해주는 것들"을 "과연 진보적인 사회 정책"이라고 부를 수 있느냐는 그의 문제 제기에도 지지를 보낸다.

지금 우리는 '1% 대 99%의 사회'를 빙자해 사실상 '20% 대 80%의 사회'에서 20%의 기득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걸 진보라고 부르는 이상한 게임을 하고 있다. 그 게임에 이의를 제기하면 차분하게 논의해볼 생각은 하지 않고 몹쓸 딱지 붙이기부터 해대는 게 습관이 되고 말았다. 20%의 기득권은 사실상 언로(言路)마저 장악하고 있어서 다른 이야기를 하는 걸 어렵게 만든다. 이대로 좋은가? 좋지 않다! 더 낮은 곳을 바라보아야 한다. 진짜 도덕이 필요한 곳은 바로 이 곳이다.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 이건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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