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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종부세의 운명, 나라의 운명
입력 2021.11.29. 13:25 수정 2021.11.30. 09:06 댓글 0개소위 '종부세 폭탄'은 상당 부분 지어낸 이야기거나 과장이다
보유세 강화는 부동산투기를 막을 최후의 보루다
이 둑을 허물면 나라가 떠내려간다
투기꾼들이 만세를 부르고 전 국토에 투기 바람이 불 것이다
문제는 수요이고, 보유세이지 공급이 아니다.
토건족들이 부르짖는 공급확대론의 유혹에 넘어가면 안 된다.
어떤 경우에도 보유세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새 대통령이 보유세를 무시하고 공급을 앞세우는 우를 범한다면 그 결과는 아,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최근 종부세 고지서가 발부되었다. 올해 주택분 종부세는 전국적으로 95만명이 5.7조원을 내게 되어 있다. 작년 대비 인원은 28만명 늘었고, 과세액은 3배 이상 늘었다. 종부세 세수는 부동산 가격, 공시지가 현실화율, 그리고 종부세 세율의 곱으로 결정되는데, 셋 다 높아졌기 때문에 세수 급증은 필연적 결과다. 올해 종부세 납부자의 1인당 평균 부담액은 600만원 정도로서 상당한 금액으로 보이는데, 실제로는 다주택 소유자와 법인이 전체 세액의 89%, 그리고 올해 증가분의 92%를 부담하므로 1주택자의 부담은 생각만큼 큰 것은 아니다.
그리고 오래 전부터 유명한 이야기, 즉 수천만원 짜리 자동차 세금이 수십억 짜리 아파트 보유세보다 높다는 사실은 말이 안 되므로 - 자동차세를 낮추는 게 아니고 부동산 보유세를 높이는 방향으로 - 가일층의 조세개혁이 필요하다. 미국에서 오래 살다 온 내 친구는 미국의 재산세가 한국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높아서 부동산투기를 근본적으로 예방해준다며 한국은 부동산 보유세를 대폭 올려야 한다고 역설한다. 내가 보기에 이 친구는 합리적 애국자인데, 동창회에서 왕따가 될 우려가 있다.
흔히 종부세 폭탄론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이른바 집 한 채 가진 은퇴 노인이 종부세를 왕창 두들겨 맞아 난리가 났다는 이야기는 현실과는 거리가 있다. 왜냐하면 시가 25억 이하 1세대 1주택자의 평균 종부세는 50만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소위 '종부세 폭탄'은 상당 부분 지어낸 이야기거나 과장이다. 사실 종부세 폭탄론은 2008년 당시 한나라당이 헌법재판소에 위헌 청구소송을 제기했을 때 헌재에서 근거 없다고 결론 내린 바 있다. 당시 종부세에 대해 한나라당이 제기한 여러 가지 위헌 사유 -세금폭탄, 2중과세, 지방세를 중앙정부가 거두는 문제, 세대별 합산 등등 - 에 대해 헌재는 하나하나 근거가 없다고 논박하면서 세대별 합산을 이유로 위헌 결정을 내렸음을 상기하라.
사실 세대별 합산이 위헌이라는 헌재의 결정도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경제학에서는 세대별 합산과세가 옳은가 개인별 분리과세가 옳은가 하는 어려운 문제에 대해 정답이 없다는 것이 정답이다. 그런데 왜 위헌이란 말인가. 그리고 현실에 눈을 돌려 부동산투기라는 망국병을 근절하려면 당연히 세대별 합산 과세가 옳다는 것은 삼척동자라도 안다. 2008년 헌재의 종부세 위헌 결정은 세대별 합산이 잘못이라고 주장하지만 결국 온 가족 이름을 동원하여 전국에 부동산 사재기를 하는 투기꾼들을 보호해주는 잘못된 결정이었다고 훗날 역사의 법정에 기록될 것이다.
물론 개인 사정에 따라서는 종부세가 억울하고 부담이 과다할 수 있지만 부담을 줄여줄 방법은 여러 가지 있다. 예를 들어 소득이 없는 노인들은 종부세 납부를 나중에 부동산이 팔리거나 상속될 때 내도록 납세연기를 해주면 좋은데 왜 그런 간단한 개선 조치조차 하지 않는지. 그리고 작년에 비해 종부세 세수가 3배 이상 늘어난 것은 - 부동산 폭등을 인정하더라도 - 크게 상궤를 벗어난 것이므로 연간 세금 상승률에 상한을 두어 과도한 부담을 피하게 할 수 있다. 내가 참여정부에서 일할 때 그런 세금 급등 방지장치('cap'이라고 불렀다)를 분명 설치했는데, 왜 그 뒤 없어졌는지 그것도 궁금하다.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다'(苛政猛於虎)라고 공자가 말했는데, 이때 苛政이라 함은 무엇보다 과도한 세금이다. 종부세는 옳은 세금이고, 특히 한국과 같은 부동산투기 천국에서는 투기를 잠재울 필수 처방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조세행정의 총론은 총론이고 각론도 중요한데, 올해의 종부세 급등은 과도하므로 보다 세심한 배려가 필요했다고 본다.
이나저나 내년에는 종부세가 어찌 될까. 이재명 후보는 기본소득과 결합한 국토보유세를 신설해서 종부세를 통합, 강화하겠다고 하고, 윤석열 후보는 1주택자 면세를 포함해서 종부세를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한다. 두 사람은 정반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둘 중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종부세는 없어질지도 모르겠다. 보유세 강화는 부동산투기를 막을 최후의 보루다. 이 둑을 허물면 나라가 떠내려간다. 투기꾼들이 만세를 부르고 전 국토에 투기 바람이 불 것이다.
지금 여러 후보들이 부동산 공급확대를 외치는데, 이는 틀린 이야기다. 문재인 정부 때 주택공급 증가분은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정부 그 어느 때보다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격이 폭등한 이유는 무엇일까. 보유세 강화에 소극적이었기 때문이다. 이 점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문제는 수요이고, 보유세이지 공급이 아니다. 토건족들이 부르짖는 공급확대론의 유혹에 넘어가면 안 된다. 어떤 경우에도 보유세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지금 부동산 광풍 속에서 젊은이들이 내 집 마련 꿈을 포기하고 망연자실하고 있는데, 새 대통령이 보유세를 무시하고 공급을 앞세우는 우를 범한다면 그 결과는 아,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여론조사를 보면 내년 선거에서 정권교체를 해야 한다는 쪽이 6:4로 우위다. 거리에 나가 보면 스산한 겨울바람처럼 차가운 민심이 느껴진다. 사람들이 분노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부동산이다. 4년간 올라도 너무 올랐다. 문대통령은 조국 장관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고 말했는데, 인간적으로는 그러리라 이해하지만 차라리 무주택서민들과 청년들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고 말했으면 나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부동산과 교육은 대한민국에서 아킬레스의 건이다. 무주택서민들과 청년들의 분노는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러나 내년 선거는 매우 중요한 선거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 오바마의 실정에 분노한 서민들이 대거 트럼프를 찍어 이변을 일으켰지만 결국 후회하고 2020년 선거에서는 이성을 회복했던 것은 참고가 된다. 길게 보면 결국 이성과 합리가 역사를 전진시켜왔다는 사실을 믿고 미래에 희망을 걸어본다.
- <칼럼> 나는 증오한다 고로 행복하다 프랑스 작가 에밀 졸라는 "증오란 신성한 것"이라고 했다. 억울하게 간첩 누명을 쓴 드레퓌스라는 사람을 옹호하면서 한 말이다. 아닌게 아니라 사회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신성한 증오'엔 저절로 머리가 수그러진다. 그러나 요즘엔 이런 증오를 보는 게 영 쉽지 않다. 물론 증오를 발산하는 이들은 사회정의를 내세우겠지만, 특정 진영논리에 사로잡히는 순간 그 사회정의는 내로남불의 하위 개념으로 전락하고 만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증오는 대부분 이런 내로남불형 증오다.혹 주변에 증오를 자주 발산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잘 관찰해보시라. 그들은 대부분 옳은 말을 한다. 그게 그렇게까지 욕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선 선뜻 동의하기 어려울망정 비난받아 마땅한 일에 대해 비난하는 것에 대해선 일단 긍정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증오를 자주 접하다보면 그 어떤 일관된 패턴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증오의 대상이 진영 중심으로 어느 한쪽에만 집중돼 있다는 점이다.사적인 자리에선 정치 이야기를 한사코 피하는 사람일지라도 누군가가 불쑥 꺼내는 정치 이야기까지 틀어 막을 수는 없는지라 그냥 들어야 할 때가 있을 게다. 잠자코 들으면서도 속으로는 홀로 이런저런 반론을 제기하고 싶을 게다. "그런 특성은 당신이 추앙하는 사람이 훨씬 더 심한 것 같은데, 왜 이 사람만 비난하지?" 이런 생각을 발설했다간 싸움 나기 십상인지라 그냥 자기 머릿속에서만 반론을 제기해야 한다. 사실 관계가 다른 과장과 왜곡이 섞여 있는 주장일지라도 그걸 지적하는 것조차 위험하다. "음. 선동 전문 유튜브를 많이 보는구나"라고 생각하면서 넘어가는 게 좋다.사회과학자로서의 직업병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평소 공사(公私) 영역에서 그런 증오를 발산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유형을 분류하곤 한다. 아무리 대화를 해봐야 내로남불을 내장하고 있는 진영논리라는 방탄벽을 뚫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절감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분석이나 해보자는 자세로 돌아서서 하게 된 게 유형 분류다. 증오의 이유 중심으로 볼 때에 생존투쟁, 쾌락투쟁, 인정투쟁, 이익투쟁의 네가지로 나눌 수 있었다.첫째, 생존투쟁은 자신이 살기 위해서 하는 증오다. 미국 작가 에릭 호퍼는 "열정적인 증오는 공허한 삶에 의미와 목적을 줄 수 있다"고 했는데,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의 강성 지지자들 중에 이런 유형의 사람들이 많다. 삶의 공허함은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 아닌가. 그런데 국가와 민족이라는 거대한 차원에서 격렬하게 증오할 대상을 찾아 증오의 발산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건 자신의 사회적 쓸모와 중요성을 확인하면서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의로운 일이 된다. 어느 정당에서건 강성 지지자들의 진정성과 열정이 감동을 자아내게 할 정도로 강할지라도 그들의 주장대로만 가면 당은 망할 수밖에 없는 역설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에게 우선적인 건 자기 삶의 의미와 목적이지, 그마저 희생해가면서 당의 성공을 바라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둘째, 쾌락투쟁은 자신의 즐거운 쾌감을 위해 하는 증오다. "증오와 사랑은 같은 호르몬을 유발하는 것 같다." 영국 소설가 그래함 그린의 말이다. 이 주장을 입증하겠다는 듯 미국 정신분석학자 오토 케른베르크는 '즐거움으로서의 증오'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격노에서 파생된 증오는 매우 유쾌한 공격적 행동을 낳을 수 있다. 다른 이에게 고통, 수치심, 아픔을 유발함으로써 느끼는 가학적 쾌감, 다른 이의 가치를 깎아내림으로써 얻어지는 환희가 그것이다." 공적 영역에서건 사적 영역에서건 진정성과 열정을 갖고 증오의 언어를 내뿜는 사람들의 얼굴을 본 적이 있는가? 그런 얼굴들만 모아 그림으로 보여줄 수 없는 게 안타깝다. 그들은 개인적으론 쾌감을 느끼며 행복해하는 엑스터시(ecstasy)의 경지에 이르렀겠지만, 문제는 그런 엑스터시를 모르는 사람들과의 소통은 불가능하다는 점일 게다.셋째, 인정투쟁은 자신의 소속 집단에서 인정을 받기 위해 하는 증오다. 그 집단이 비공식 집단이며 느슨하게 구성돼 있을지라도 한 개인의 일상적 삶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라면 위계질서가 엄격한 공식 집단 이상의 영향력과 규제력을 행사할 수 있다. 그 집단의 구성원들이 이구동성으로 증오하는 대상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갖고 있으면 외로워질 뿐만 아니라 정도가 심해지면 왕따를 당할 수도 있다. 테레사 수녀는 "가장 나쁜 병은 나병도 결핵도 아니다. 아무도 존경하지 않고 아무도 사랑해주지 않고, 배척받고 있다는 느낌이 가장 나쁜 것이다"고 했다. 사실 배척받고 있다는 느낌은 공포다. 그런 공포를 피하는 건 물론이고 무난한 인간관계를 위해서라도 증오 발산의 대열에 동참해야 한다.넷째, 이익투쟁은 자신의 현실적인 이익을 위해 하는 증오다. 이는 증오를 팔아 돈을 버는 일부 언론과 유튜브 등 이른바 '정치군수업자들'의 선전·선동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선전·선동을 사회정의로 포장하는 '증오 마케팅' 능력이 워낙 탁월해 정의에 목 마른 신도들로부터 적잖은 헌금을 거둬들인다. 특정 정당이 막강한 지배력을 행사하는 지역으로 내려가면 반대 정당이나 진영에 대해 "누가 더 강한 증오와 혐오의 언어로 공격하나?"를 겨루는 경쟁이 벌어진다. 그런 풍토에선 개인이나 자영업자에게도 증오를 표현하는 건 먹고 사는 문제와 무관할 수 없는 일이 된다. 모두가 다 증오의 방향으로 뛰면 그 증오의 심정과 언어를 공유하면서 따라 뛰어야만 무난하게 살아갈 수 있다.이렇듯 우리 사회에선 자기 진영의 이익과 그 진영에 소속된 사람들의 여러 개인적인 이유들로 인해 증오를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나는 증오한다 고로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시사하는 것이어서,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사람이 어렴풋한 수준일지라도 소속 진영 없이 살아가기는 어려운 일인데다 팔은 안으로 굽기 마련이라는 걸 부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정치권의 고질병인 내로남불이 일반 시민들의 일상적 삶에까지 파고 들어 생활화되는 걸 당연하다고 여길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 모두 그 누구도 증오하지 않음으로써 행복해지는 길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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