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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교육은 좋아하게 하는 것으로부터
입력 2021.11.23. 11:18 수정 2021.11.23. 19:56 댓글 0개음악은 참 좋은 것이다. 음악은 듣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나고 피식 웃음이 나오며 가슴이 아려온다. 10대에 또는 20대에 들었던 노래를 들으면 우리의 감성과 기억은 순간이동하여 그때로 돌아갈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러한 음악을 악기로 연주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래서인지 한동안 우리나라에서는 초등학교 입학 즈음에 누구나 할 것 없이 피아노를 가르쳤다. 그런데 길게 배우지 못하고 피아노를 지겨워하며 떠나는 것을 많이 보았다. 참 안타까웠다. 더 안타까운 것은 세월이 흘러 '피아노를 계속 배울 걸 잘못했다'고 후회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무엇 때문에 그만두게 되었을까?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경험상 알게 된 것은 배우는 사람들의 잘못도 있지만 가르치는 사람들에게 원인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목표설정과 방법이 잘못되었을 가능성이 많다.
동네마다 있는 피아노 학원을 다니는 아이들이 모두 피아니스트가 될 것도 아닌데 피아노 교사들은 마치 모두가 피아니스트라도 되어야 할 것처럼 혹독하게 테크닉만을 강조하면서 재미없는 하농과 체르니 연습곡을 하나도 빼지 않고 반복적으로 연습하게 한다. 피아노를 통해 음악을 즐기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악보를 보고 피아노를 치는 방법만을 가르친다. 여기에 부모들의 지나친 기대도 한몫을 한다. 이런 환경에서 많은 학생들이 체르니 30번 정도에서 중도하차하고 좋지 않은 기억으로 음악과는 담을 쌓고 살아가게 된다. 과거 연구소의 한 동료는 학생시절 계이름을 읽지 못한다고 손바닥을 많이 맞아서 음악이 싫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백설희의 '봄날은 간다'를 시처럼 부를 수 있는 사람이었다.
무언가를 배우는 사람에게 교사가 꼭 해야 하는 것은 학생으로 하여금 '이 높은 산(어려운 고비, 혹은 혹독한 연습)을 넘어야 한다'는 굳은 결심을 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그 분야를 좋아하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한번의 커다란 동기유발이 아니라 끊임없이 작은 동기유발을 시켜주어야 한다. 이 간단한 코칭을 알게 된 후에 나는 미국에서 몇 명의 학생에게 피아노를 가르치게 되었다. 중1이었던 조셉은 나 이전에 이미 세 명의 피아노 교사를 거쳤는데 계속 그만두게 되었다고 했다. 테스트를 해보니 상당히 어눌한 손을 가지고 있었다. 그에게 맞는 교재를 골라 매번 연습하는 곡이 어떤 곡인지 함께 이야기하고, 다음 곡을 들려주며 다음 곡에대한 기대를 하게 하면서 우리는 시간을 보냈다. 그가 피아노 배우는 것을 즐거워하니 학부모도 늘 내게 감사를 표했다. 같은 시기에 중2, 중3 남자 형제도 가르쳤는데 이들은 이미 클라리넷과 바이올린을 하는 아이들로 음악을 매우 즐겼다. 덕분에 나는 참 잘 가르치는 사람 같았고 학생들도 많이 생겼다. 하지만 쓰라린 실패의 경험도 있다.
7세의 미국인 여아가 6개월 동안 기초 교재를 가지고 혼자 피아노를 치다가 처음으로 나에게 맡겨졌다. 음악을 좋아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진리는 이미 깨달은 후이며 경험상 나는 상당히 괜찮은 교사였다. 그런데도 나는 아이를 울리고 말았다.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는 아이는 손가락 모양이 제멋대로였다. 몇 차례 교정을 해주었더니 아이는 눈물을 터뜨렸다. 확언컨대 나는 진실로 친절하게 가르쳤다. 그렇더라도 손가락 모양, 그것이 뭐길래 큰 기대로 피아노를 배우겠다는 아이를 울려버렸는가. 우는 아이를 학부모에게 데려다주는 내 모습은 최악의 국제적 실패자였다. 이 실패는 내게 잊을 수 없는 교훈을 남겨주었지만 절대 일어나서는 안되는 실패였다. 그 아이는 나의 고지식한 가르침으로 지금도 음악을 싫어하며 살고 있을까? 한 번더 피아노를 배우려는 시도를 해보았을까? 꼭 그랬기를 바란다.
실패를 경험한 자로서 나는 누군가에게 교육을 논할 자격이 없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무엇인가를 가르치는 사람들에게 부탁드린다. "피아노, 플루트, 외국어, 골프, 그림, 역사, 어떤 것이건 처음에는 좀 못해도 괜찮습니다. 좀 더 시간이 걸려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것은 좋아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면 길게 갈 수 있고 평생 즐기게 할 수 있습니다. 조급하게 잘 가르치려다가 그것으로부터 영원히 떠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교육에서의 실패는 그 결과가 치명적이기에 늘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다가가야 합니다." 정유하 나산실용예술중학교 교장
- <칼럼> 늘봄학교, 우리 아이들의 삶이 없다 '늘봄', 이 얼마나 예쁜 말인가? 봄처럼 포근하고 따사로움이 늘 함께한다는 뜻일 것 같은 '늘봄'. 그러나 이제 이 언어는 그렇게 쓰일 수가 없다.언어의 의미는 사회에서 규정된다. 아무리 좋은 언어라도 사회에서 다른 의미로 사용하기 시작하면, 언어의 오염이 시작되고 결국 그 언어는 이전의 의미로는 쓸 수 없게 된다. 나에게 '늘봄학교'은 '녹색성장'과 같이 그렇게 오염된 채 다가왔다.2024학년도 1학기 광주지역 늘봄학교, 신청에서부터 선정까지 학교 현장 갈등2월 현재 광주에서는 30여개 초등학교가 늘봄학교에 참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신청한 18개 학교 중 중17개교는 협의록이 없으며, 교장 결정 3개교, 교장과 교감이 함께 결정한 학교 1개교, 교장, 교감, 행정실장이 결정한 학교 2개교, 부장교사가 요청하여 승인한 학교 1개교 등 내가 속한 학교지만 어떻게 늘봄이신청되고 선정되었는지를 학교 구성원은 잘 모른다. 그래서 서로 의심하고 속상해한다. 이렇게 늘봄학교는 불필요한 학교 현장 갈등을 양산 시키고 있다.교사? 돌봄전담사? 일반직? 과도한 노동을 강요받고 있어"우리가 일 때문에 늘봄학교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이 말은 늘봄학교 거부의 본질이 업무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은 거겠지만, 노동자에게는 일도 중요하다. 여전히 시간제가 많은 돌봄전담사의 업무도 아니고, 수업과 생활교육이 고유 업무이자 이것만으로도 과도한 노동을 하는 교사의 업무는 더더욱 아니다. 늘봄지원실을 만들어 일반직을 배정한다는 것도 총액인건비제에 묶여있는 공무원 상황을 보면 실현 가능하지 의문이 들고, 기간제에게 맡기는 것 또한 노동의 불안정성을 부추김과 동시에 결국은 기간제 공고부터 선정 관리까지 다시 학교의 업무가 되는 것은 학교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다 안다. 학교의 누군가는 일을 해야 한다. 본연의 업무가 아니라 강요받은 업무를 그것도 과도하게 말이다.가장 중요한 사실, 우리 아이들의 삶이 없는 '늘봄학교'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늘봄학교에는 우리 아이들의 삶이 없다는 것이다. 올해 초 늘봄학교에 대한 기사가 쏟아질 무렵 내 마음을 훅 치는 기사 하나가 있었다. 기사 중에는 지금은 고등학교 2학년이 된 자녀로부터 들은 초등돌봄교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다음과 같다."엄마, 나는 초등학교 때 돌봄교실이 제일 싫었어. 다른 친구들은 학교 끝나면 엄마랑 만나서 놀이터에서 놀고 학원에 가고 집에서 쉬는데, 난 혼자 돌봄교실에 갔어. 나도 다른 애들처럼 엄마랑 만나고 싶었어." 우리 아이들의 삶을 생각한다면 아침 7시부터 밤 8시까지 학교에 있는 게 폭력적일 수 있겠다는 생각 안드는지? 어른들보고 그렇게 있으라고 한다면 아마 대다수 집에 간다고 하지 않을까?늘봄학교에는 주체인 우리 아이들의 목소리는 빠져있고, 즉 아이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에 대한 고민과 사유는 실종되었다.학교, 지자체, 무엇보다 보호자가 우리 아이를 충분히 돌볼 수 있도록필자도 아이를 돌봄교실에 보냈었고, 아이를 맡길 데가 없어서 발을 동동거린 적이 있다. 대한민국 보호자들이라면 다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두 번이라도 했을 것이다. 그때 절실하게 느낀 것이 돌봄의 사회적책임이었고, 학교 현장에 있는 지금도 여전히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돌봄의 사회적 책임은 보호자의 노동권을 보장하기 위해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과 동시에 보호자의 양육권을 보장하기 위한 적절한 노동시간 합의와 양육시간 확보도 해당될 것이다. 후자의 대표적인 것이 소위 '저녁 있는 삶'과 같은 것이다.학교가, 지자체가 함께 우리 아이들을 돌봄과 동시에 보호자가 우리 아이를 충분히 사랑하고 충분히 돌볼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천천히 가더라도 그렇게 가야 우리 아이들의 삶이, 우리들의 삶이 있다.그렇게 간다면 다시 '늘봄', 이 언어의 원래의 의미를 되찾아 진정 우리가 바라는 '늘봄'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정애숙 광주동산초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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