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칼럼> 고흥 나로도

입력 2021.10.21. 18:07 수정 2021.10.21. 18:36 댓글 0개
유지호의 무등칼럼 디지털편집부 겸 뉴스룸센터장

기자가 전라남도청을 출입하던 2008년엔 대한민국 최초 우주발사체인 '나로호'에 대한 관심과 기대감이 컸다. 그 간 외국에서만 쏘아올렸던 인공위성을 이제 '우리 땅 남도'에서 발사 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다. 세계 13번째 우주센터 완공. 그 해 가을, 이듬해 발사를 앞둔 '나로우주센터'가 있는 섬, 외나로도를 찾은 이유다.

남악신도시를 출발한 지 2시간여 만에 도착한 고흥읍에서 남쪽으로 30㎞를 달려 고흥반도의 끝에 다다른 뒤, 연륙교(도화면~내나로도)와 연도교(내나로도~외나로도)를 차례로 건넜다. 외나로도는 본래 '나라 섬'으로 불리웠다. 기후가 온화하고 초지가 발달한데다 해풍이 적당히 부는 섬. 조선 초, 나라에 바칠 말을 키우는 목장이 여러군데 있었다 한다. 일제 강점기 때 한자식 지명인 나로도로 바뀌었다.

중국 상인들의 왕래가 빈번하던 신라 장보고 시절, 외나로도 '서답바위'(일명 부채바위)를 보고 오래된 비단(라·羅)이 바람에 날리는 듯 아름다워(로·老) 이름이 붙었다는 설도 있다. 옛부터 어업의 전진기지였다. 삼치·바지락 등이 특산품. 고흥에서 우체국이 가장 먼저 들어섰다고 한다. 또한 일제시대부터 전기·수돗물 등 기반 시설이 갖춰져 군 세수(稅收)의 30% 가량을 담당할 정도의 부자 섬으로 통했다.

연륙·연도교가 완공되기 전인 1994년까지만 해도 고흥 동래도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한 시간 가까이 가야 하는 오지였다. 우주센터는 옛 대관령길처럼 구불구불한 데다 폭도 넓지 않은 2차선 도로를 10여분간 달린 뒤 나왔다. 마치산 고개를 넘어 푸른빛 다도해와 함께 눈에 들어 온 하반마을. 형태가 마치 '강을 바치고 있는 쟁반같다'는데서 유래됐다.

우주센터 공사는 막바지였다. 산봉우리 하나를 깎아 만든 축구장 서너 개 넓이의 발사대 부지와 작은 봉우리 위에 올라선 발사 통제동, 로켓 추적동 등이 눈에 들어왔다. 꿈으로만 여겨졌던 '자국 땅에서 자국 위성을 자국 발사체'로 쏘는 '우주클럽' 가입은 상상 만으로도 가슴 벅차게 했다. 하지만 당시 나로호의 1단 발사체는 러시아에서 '완제품'형태로 왔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2021년 10월 21일. 순수 국내기술로 개발해온 한국형발사체 누리호가 지구 상공 700㎞ 우주궤도에 도달하는 데 성공했다. 우주발사체 독립의 날. 세계 10번째로 스페이스 클럽에 들게 됐다. '나라를 위한 섬'이 지명대로 나라의 위상을 다시 드높였다.

유지호 디지털편집부장 겸 뉴스룸센터장 hwaone@sr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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