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칼럼> 통일벼

입력 2021.10.17. 14:05 수정 2021.10.17. 18:47 댓글 0개
도철의 무등칼럼 무등일보 경제에디터

"반장은 점심시간에 '분식점검표' 작성해서 선생님 책상 위에 올려놓도록 …."

1970년대 학교에서는 매일 도시락 점검을 받았다. 쌀이 부족했던 시절, 정부가 쌀밥만 먹지 말고 보리나 고구마 등을 섞어 먹도록 권장하자 학교에서 도시락 검사를 했던 것이다. 비싼 쌀 값에 혼식이 일반적이던 때라 대부분 신경 쓰지 않았지만 정작 검사를 해야 하는 반장 등 몇몇 친구들이 문제였다.

심지어 어쩔 수 없이 쌀밥 위에 보리를 살짝 얹어 온 뒤 보리를 걷어내고 식사를 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당시 식탁 위에 올랐던 쌀 품종 중 하나는 통일벼였다.

백과사전을 보니 1960년대 후반 농촌진흥청 주도로 다수확 품종을 연구하던 서울대학교 허문회 교수가 개발한 다수확 품종 'IR667'이라고 한다.

한국인이 많이 먹는 자포니카(Japonica)와 다수확 품종인 인디카(Indica)를 교배해 만든 품종 중 667번째라는 의미로 불러진 이름이다.

통일벼는 시험재배에서 다수확이 확인돼 '기적의 쌀'로 주목 받았고 가장 유망한 장려품종으로 선택돼 1972년부터 전국에 보급됐다. 그런데 이 통일벼가 한국이 아닌 아프리카에서 황금물결을 이루고 있다는 소식이다. 대서양 연안 서아프리카의 가장 끝에 위치한 세네갈은 식량 부족국가 중 하나다.

쌀이 주식이지만 자급률이 낮아 50%이상을 수입쌀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벼꽃을 나라꽃으로 정할 정도로 간절하지만 농업기술과 토양여건 등은 열악하다. 식량문제 해결이 최우선 국정과제가 되면서 급기야 한국에 SOS를 보냈다. 한국과 아프리카 23개국이 참여하는 한-아프리카 농식품 기술협력회의체, 카파시(KAFACI)를 통해 지난 2016년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농진청은 국제기구인 '아프리카 벼 연구소'와 함께 현지에 맞는 벼 품종을 개발·보급중이다. 품종 육종기간을 단축시키는 기술 전수도 함께 말이다. 이 과정에서 통일벼를 기초로 아프리카 기후에 맞는 새 품종 '이스리'(ISRIZ)가 개발돼 큰 도움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에 내린 축복입니다. 이스리가 함께 하는 한 쌀만큼은 더 이상 다른 나라를 부러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인터뷰에 나선 세네갈 여성단체 리더의 진심이 느껴지자 내가 할 일도 아닌데 괜히 뿌듯하다. 도철 신문제작국부장 douls18309@mdilbo.com

# 이건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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