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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인터넷이 만든 괴물, 대깨문
입력 2021.09.13. 14:25 수정 2021.09.14. 09:06 댓글 1개정상적인 사람들은 클리앙을 대깨문이라 규정하고 한심해 하지만, 클리앙 이용자들은 개의치 않는다
왜? '조국=예수' 같은 생각을 하는 이가 그 사이트엔 우글우글하니까 심지어 그들은 이런 말도 한다 "다른 사이트들은 다 일베한테 점령당했고, 오직 클리앙만 상식이 지배하는 사이트로 남았다"
문대통령이 물러나도 대깨문은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 세상엔 이상한 사람이 많고, 인터넷은 그들을 하나로 모이게 해주니 말이다
대학교 때, 난 야구광이었다. 그게 어느 정도였냐면, 프로야구 팀순위는 물론이고 각 선수의 타율과 홈런 숫자 같은 것을 줄줄이 외우곤 했다. 매 경기가 끝날 때마다 타율은 변하기 마련인데 그걸 어떻게 외웠을까? 학교에 갈 때 스포츠신문 한 부를 산 뒤 줄을 치면서 타율을 비롯한 각종 기록을 외웠고, 집에 가는 길에는 저녁판 스포츠신문을 사서 내가 외운 걸 복습했으니까.
의대생이란 한계 때문에 경기장에 가거나 TV로 야구중계를 보는 일은 드물었지만, 줄을 쳐가며 신문기사를 공부한 덕에 난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야구전문가가 됐다. 하지만 난 전문가 대접을 받지 못했다. 왜였을까? 전문가로서 자부심을 느끼려면 다음과 같은 일이 일어나야 한다.
친구1: 최동원 투수가 최고야!
친구2: 아니야, 선동열 투수가 더 잘해!
친구1, 2: 앗? 야구전문가 서민이 지나간다! 민아, 최동원과 선동열, 누가 더 잘해?
서민: 좋은 질문이야. 1984년 27승을 거둔 최동원의 활약은 프로야구사에 길이 남는 엄청난 것이지만, 너무 혹사당한 탓에 부상이 일찍 찾아왔어. 야구에선 누적 기록이 더 중요하다는 점에서, 뛰어난 활약을 더 오랫동안 한 선동열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어.
친구2: 거봐. 내가 맞지?
친구1: 분하지만, 서민이 그렇다면 인정할 수밖에.
안타깝게도 야구에 관한 의견을 묻는 이는 한 명도 없었다. 오히려 주변 친구들은 인간의 뼈와 근육 이름 대신 야구 타율이나 외우는 날 한심하게 바라봤다. 외로움을 이기려 혼자 야구 퀴즈를 내고 혼자서 푸는 기괴한 짓을 하면서, 난 내가 이상한 건 아닌가 진지하게 묻기 시작했다.
소개팅을 나갔을 때 상대방 여성한테 들은 다음 말은 충격이었다. "무슨 대학생이 야구 얘기밖에 몰라요?" 그 후 내 야구사랑은 시나브로 시들었고, 나중에는 선수들 이름이나 겨우 아는 정도가 됐다. 그로부터 십 년쯤 후, 인터넷이란 게 생겼다. 모든 정보를 즉석에서 검색가능하게 만들어 주기도 했지만, 인터넷의 가장 큰 기여는 기이한 취미를 가진 이들을 서로 연결시켜 줬다는 점이다.
어느 날 인터넷의 야구 사이트에 들어가본 난 깜짝 놀랐다. 야구를 좋아하는 이들끼리 퀴즈를 내고 맞추는 일들이 수시로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1986년 선동열 선수는 몇 승을 올렸을까요?' 같은 초보적인 문제를 맞췄다고 야구박사 취급을 받는 광경을 보면서 난 속이 쓰렸다.
아, 내가 야구를 좋아하던 시절에 인터넷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랬다면 야구 사이트에서 '신'으로 추앙받았을 텐데. 하지만 '신'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더 열심히 야구 정보를 외웠을 테고, 그러느라 내 본업을 제대로 못했을 수도 있다. 야구에 탐닉한 날 한심하게 여긴 친구들 덕에 난 석·박사를 딴 뒤 교수가 됐고, 지금은 한국 정치에 감 놔라 배 놔라 간섭하고 있으니 말이다.
조국 전 장관이 재판에 출석한 9월 10일, 익숙한 광경이 펼쳐졌다. 지지자로 보이는 여성 네 명이 물수건으로 조씨의 차를 구석구석 닦았다. 조씨가 이날 재판에 나간 이유는 2018년 연세대 대학원 지원 과정에서 저질러진 아들의 입시비리 때문이었다.
조씨 아들은 처음에 경력란이 비워진 서류를 냈다가, 허위경력 7개가 추가된 서류를 다시 제출함으로써 입시 공정성을 해쳤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데, 여기에 조씨 부부가 관여했다는 것이다. 그 서류 중 최강욱 열린민주당 의원의 법무법인에서 발급된 인턴증명서는 이미 재판에서 허위임이 인정돼 최 의원은 의원직 상실에 해당되는 집행유예형을 선고받은 터였으니, 조씨가 무죄가 나올 확률은 거의 없는 셈이다.
지금 의사로 근무 중인 조씨의 딸까지 허위서류로 의전원에 합격했다는 사실까지 감안하면, 조씨는 '자녀에게 무관심했다'는 장관 청문회 발언과 달리 적극적으로 입시비리에 가담했다고 할 수 있다. 외압에 맞서 조씨의 죄를 따져묻는 검사의 차를 닦아줬어도 말이 나올 텐데, 유죄가 확실한 피고인의 차를 닦다니 과연 제정신일까? 당연하게도 댓글 반응은 참혹한 수준이었다.
"북한 사람들 김정은 보고 눈물 흘리는 것 같아요." "범죄자 차 말고 당신 남편 차나 그렇게 세차해 줘." "저 아줌마 가족들은 얼마나 부끄러울까?" 위에서 이 광경이 익숙하다고 한 이유는, 이들이 작년 5월에도 똑같은 광경을 연출했기 때문이었다. 그때도 사람들의 반응은 비난 일색이었으니, 이들은 확신범이라 할 수 있다. 오죽하면 마이크를 갖다댄 기자에게 "조국 선생님 개혁을 끝까지 함께 한다는 의미"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을까?
지금이 인터넷이 없던 1990년대였다면, 저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 겉으로는 정의를 외치면서 뒤로는 사모펀드와 입시비리를 저지르고, 사법부 판결마저 부정하는 이를 개혁의 화신으로 여기고 응원하는 이가 있다면, 또라이 취급을 받았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인터넷은 그런 또라이들을 연결시켜 줌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내가 틀린 건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갖게 만들어줬다.
이런 이들의 집합소인 인터넷 커뮤니티 클리앙을 보자. 그들은 레거시 미디어를 선택적으로 불신한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기사는 적극 이용하지만, 조국 전 장관에게 불리한 기사는 모조리 가짜뉴스로 몬다는 얘기다. 그들이 절대적으로 신봉하는 건 김어준의 뉴스공장뿐, 거기 나온 내용은 절대적 진리가 돼서 온종일 반복. 재생산된다.
정경심 구속 같은 뉴스에 불안했던 이들은 클리앙의 글들을 보며 평화와 안정을 되찾는다. 여기에 반하는 글이 올라오면 어떻게 될까? 진실이 얼어붙은 클리앙에 봄을 가져다주고자 회원가입을 한 적이 있다. 내가 쓰는 모든 글은 분란조장 등을 이유로 신고당했고, 운영자는 내게 6개월의 이용정지 처분을 내린다. 글을 쓰기 시작한 지 사흘만의 일이었다. 6개월이 지난 뒤 다시 접속했더니 이번에는 3년 이용정지 처분이 내려졌다.
조 전 장관이 잘못했다는 이들은 다 나와 같은 길을 걸어야 하기에, 클리앙에는 '조국은 예수다' 같은 글들만 올라올 수밖에 없다. 정상적인 사람들은 클리앙을 대깨문이라 규정하고 한심해 하지만, 클리앙 이용자들은 개의치 않는다. 왜? '조국=예수' 같은 생각을 하는 이가 그 사이트엔 우글우글하니까. 심지어 그들은 이런 말도 한다. "다른 사이트들은 다 일베한테 점령당했고, 오직 클리앙만 상식이 지배하는 사이트로 남았다." 문대통령이 물러나도 대깨문은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 세상엔 이상한 사람이 많고, 인터넷은 그들을 하나로 모이게 해주니 말이다.
- <칼럼> 나는 증오한다 고로 행복하다 프랑스 작가 에밀 졸라는 "증오란 신성한 것"이라고 했다. 억울하게 간첩 누명을 쓴 드레퓌스라는 사람을 옹호하면서 한 말이다. 아닌게 아니라 사회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신성한 증오'엔 저절로 머리가 수그러진다. 그러나 요즘엔 이런 증오를 보는 게 영 쉽지 않다. 물론 증오를 발산하는 이들은 사회정의를 내세우겠지만, 특정 진영논리에 사로잡히는 순간 그 사회정의는 내로남불의 하위 개념으로 전락하고 만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증오는 대부분 이런 내로남불형 증오다.혹 주변에 증오를 자주 발산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잘 관찰해보시라. 그들은 대부분 옳은 말을 한다. 그게 그렇게까지 욕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선 선뜻 동의하기 어려울망정 비난받아 마땅한 일에 대해 비난하는 것에 대해선 일단 긍정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증오를 자주 접하다보면 그 어떤 일관된 패턴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증오의 대상이 진영 중심으로 어느 한쪽에만 집중돼 있다는 점이다.사적인 자리에선 정치 이야기를 한사코 피하는 사람일지라도 누군가가 불쑥 꺼내는 정치 이야기까지 틀어 막을 수는 없는지라 그냥 들어야 할 때가 있을 게다. 잠자코 들으면서도 속으로는 홀로 이런저런 반론을 제기하고 싶을 게다. "그런 특성은 당신이 추앙하는 사람이 훨씬 더 심한 것 같은데, 왜 이 사람만 비난하지?" 이런 생각을 발설했다간 싸움 나기 십상인지라 그냥 자기 머릿속에서만 반론을 제기해야 한다. 사실 관계가 다른 과장과 왜곡이 섞여 있는 주장일지라도 그걸 지적하는 것조차 위험하다. "음. 선동 전문 유튜브를 많이 보는구나"라고 생각하면서 넘어가는 게 좋다.사회과학자로서의 직업병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평소 공사(公私) 영역에서 그런 증오를 발산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유형을 분류하곤 한다. 아무리 대화를 해봐야 내로남불을 내장하고 있는 진영논리라는 방탄벽을 뚫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절감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분석이나 해보자는 자세로 돌아서서 하게 된 게 유형 분류다. 증오의 이유 중심으로 볼 때에 생존투쟁, 쾌락투쟁, 인정투쟁, 이익투쟁의 네가지로 나눌 수 있었다.첫째, 생존투쟁은 자신이 살기 위해서 하는 증오다. 미국 작가 에릭 호퍼는 "열정적인 증오는 공허한 삶에 의미와 목적을 줄 수 있다"고 했는데,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의 강성 지지자들 중에 이런 유형의 사람들이 많다. 삶의 공허함은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 아닌가. 그런데 국가와 민족이라는 거대한 차원에서 격렬하게 증오할 대상을 찾아 증오의 발산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건 자신의 사회적 쓸모와 중요성을 확인하면서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의로운 일이 된다. 어느 정당에서건 강성 지지자들의 진정성과 열정이 감동을 자아내게 할 정도로 강할지라도 그들의 주장대로만 가면 당은 망할 수밖에 없는 역설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에게 우선적인 건 자기 삶의 의미와 목적이지, 그마저 희생해가면서 당의 성공을 바라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둘째, 쾌락투쟁은 자신의 즐거운 쾌감을 위해 하는 증오다. "증오와 사랑은 같은 호르몬을 유발하는 것 같다." 영국 소설가 그래함 그린의 말이다. 이 주장을 입증하겠다는 듯 미국 정신분석학자 오토 케른베르크는 '즐거움으로서의 증오'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격노에서 파생된 증오는 매우 유쾌한 공격적 행동을 낳을 수 있다. 다른 이에게 고통, 수치심, 아픔을 유발함으로써 느끼는 가학적 쾌감, 다른 이의 가치를 깎아내림으로써 얻어지는 환희가 그것이다." 공적 영역에서건 사적 영역에서건 진정성과 열정을 갖고 증오의 언어를 내뿜는 사람들의 얼굴을 본 적이 있는가? 그런 얼굴들만 모아 그림으로 보여줄 수 없는 게 안타깝다. 그들은 개인적으론 쾌감을 느끼며 행복해하는 엑스터시(ecstasy)의 경지에 이르렀겠지만, 문제는 그런 엑스터시를 모르는 사람들과의 소통은 불가능하다는 점일 게다.셋째, 인정투쟁은 자신의 소속 집단에서 인정을 받기 위해 하는 증오다. 그 집단이 비공식 집단이며 느슨하게 구성돼 있을지라도 한 개인의 일상적 삶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라면 위계질서가 엄격한 공식 집단 이상의 영향력과 규제력을 행사할 수 있다. 그 집단의 구성원들이 이구동성으로 증오하는 대상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갖고 있으면 외로워질 뿐만 아니라 정도가 심해지면 왕따를 당할 수도 있다. 테레사 수녀는 "가장 나쁜 병은 나병도 결핵도 아니다. 아무도 존경하지 않고 아무도 사랑해주지 않고, 배척받고 있다는 느낌이 가장 나쁜 것이다"고 했다. 사실 배척받고 있다는 느낌은 공포다. 그런 공포를 피하는 건 물론이고 무난한 인간관계를 위해서라도 증오 발산의 대열에 동참해야 한다.넷째, 이익투쟁은 자신의 현실적인 이익을 위해 하는 증오다. 이는 증오를 팔아 돈을 버는 일부 언론과 유튜브 등 이른바 '정치군수업자들'의 선전·선동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선전·선동을 사회정의로 포장하는 '증오 마케팅' 능력이 워낙 탁월해 정의에 목 마른 신도들로부터 적잖은 헌금을 거둬들인다. 특정 정당이 막강한 지배력을 행사하는 지역으로 내려가면 반대 정당이나 진영에 대해 "누가 더 강한 증오와 혐오의 언어로 공격하나?"를 겨루는 경쟁이 벌어진다. 그런 풍토에선 개인이나 자영업자에게도 증오를 표현하는 건 먹고 사는 문제와 무관할 수 없는 일이 된다. 모두가 다 증오의 방향으로 뛰면 그 증오의 심정과 언어를 공유하면서 따라 뛰어야만 무난하게 살아갈 수 있다.이렇듯 우리 사회에선 자기 진영의 이익과 그 진영에 소속된 사람들의 여러 개인적인 이유들로 인해 증오를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나는 증오한다 고로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시사하는 것이어서,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사람이 어렴풋한 수준일지라도 소속 진영 없이 살아가기는 어려운 일인데다 팔은 안으로 굽기 마련이라는 걸 부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정치권의 고질병인 내로남불이 일반 시민들의 일상적 삶에까지 파고 들어 생활화되는 걸 당연하다고 여길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 모두 그 누구도 증오하지 않음으로써 행복해지는 길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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