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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정치는 사랑이 아니다
입력 2021.08.16. 17:47 수정 2021.08.17. 08:20 댓글 0개우리가 명심해야 할 점은 특정제품이
불량이면 산 사람만 손해지만,
집권한 정치인이 불량이면 그 손해는
그에게 투표하지 않은 이들에까지 미친다는 것.
그래서 말씀드린다. 내년 선거는 제발 잘 하자.
이미지만 보지 말고 그가 제대로
일할 사람인지 아닌지 꼼꼼히 따져보고
표를 던지라는 얘기다.
'이걸 왜 극장에서 봤을까?'라며 후회한 영화들이 꽤 있다. '제7광구'라는 영화가 그 중 하나다. 안성기와 하지원 등 이름있는 배우들이 나온 이 영화는 한때 석유가 나온다고 믿었던 7광구에 괴물이 나타나 시추를 위해 머물러 있던 대원들이 하나둘 목숨을 잃는다는 내용이다. 네이버 평점이 10점 만점에 3.34에 그친 것에서 보듯 영화는 엉망 그 자체다. 줄거리에는 일말의 개연성도 없는데다, 웃음을 위해 집어넣은 장치들도 유치하기 그지 없었다. 두고두고 회자되는 장면 하나. 바닥에 주저앉은 박철민에게 괴물이 다가온다. 위기의 순간에 등장한 안성기, 그는 괴물을 총으로 쏘려 하나, 박철민 옆에 놓인 나무박스 때문에 조준이 어려웠다. 안성기가 무전기로 말한다. "박스 치워!" 그러자 박철민이 난데없이 박수를 친다. 안성기가 재차 "박스 치우라니까!"라고 하자 박철민은 더 열심히 박수를 쳤다. 잠시 후 난 상황을 이해했다. 박철민은 "박스 치워"를 "박수 쳐"라고 잘못 알아들은 것이다. 이걸 보고 웃으라니, 관객들을 도대체 뭘로 본 걸까. 그 후 난 영화를 보기 전 반드시 다른 사람들의 평을 확인한다. 영화를 본 느낌은 사람에 따라 다르고, 알바가 의심되는 평점도 꽤 있는지라 그 뒤에도 '괜히 봤다'고 후회한 영화가 종종 있었지만, 적어도 '제7광구'같은 수준의 영화는 본 적이 없다.
많은 이들이 이런 식으로 영화를 선택할 것이다. 영화값 1만원과 상영시간 2시간을 버리기 싫어서다. 이보다 더 비싸고 오래 쓸 상품은 어떨까? 에어컨을 생각해보자. 무조건 싸다고 좋은 것도 아니니, 상품의 특징, 집 평수, 구매력, 그리고 다른 분들이 올려준 상품평을 따져본 뒤 구매를 결정할 것이다. 차도 마찬가지다. 매장에서 즉흥적으로 사는 분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어떤 차를 살지 굉장히 오랜 시간 고민을 한다. 한번 차를 사면 최소 3년, 길게는 10년 이상 타야 하는데, 이왕이면 가격 대비 좋은 차를 사야지 않겠는가? 이건 지금 시대에 보편화된, 합리적인 소비자의 자세다.
하지만 이런 신중함이 전혀 통하지 않는 분야가 둘 있는데, 그 중 첫 번째는 연애와 결혼이다. 남녀가 사귈 때 오랜 시간의 관찰이 필요하진 않다. 커피를 먹는 모습이 예뻐서, 얼굴이 말상이어서, 목소리가 우렁차서 등등 외형적인 조건이 상대방을 사로잡는다면, 반 이상은 성사된 거나 다름없다. 다른 조건이 기대를 충족시키면 더 좋겠지만, 그러지 못해도 괜찮다. 이미 사랑에 빠진 이라면 웬만한 단점쯤은 다 양해해줄 '관대함의 호르몬'이 분비되기 때문이다. 친구들이, 혹은 부모님이 반대한다? 진정한 사랑은 이런 장벽쯤은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 신기하지 않은가? 몇 년 쓰고 말 물건들은 그렇게 꼼꼼히 살펴보는 이들이, 수십년을 같이 할 상대를 고를 땐 그리도 충동적이라는 사실이 말이다. 하지만 여기엔 이해될 만한 측면이 있다. 에어컨이나 차는 똑같은 제품이 대량생산되기 마련, 당연히 미리 써본 사람들의 평가가 도움이 된다. 그런데 사람은 제품이 아니어서, 완전하게 똑같은 사람은 세상에 없다. 일란성 쌍둥이를 키우는 분의 글을 보자. "첫째는 밤에 잘 자고, 행여 깨더라도 혼자 노는데, 둘째는 수시로 깨고, 깰 때마다 울어요. 어쩜 이렇게 다르죠?" 그러니 특정인에겐 다른 사람의 후기 같은 게 존재하지 않는다. 게다가 사람은 시간에 따라 변해서, 십 년 전의 그 사람과 지금의 그가 완전히 다른 경우도 존재한다. 결정적으로 남녀간의 사랑은 상호적이어서, 상대에게 자신이 뭘 원하는지에 따라 평가가 극과 극으로 갈릴 수 있다. 한 여성에게 나쁜 남자였던 이가 다른 여성에게 천사가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남녀는 웃을 때 보이는 치아에 반해서, 화날 때 눈을 둥글게 뜨는 모습이 예뻐서 등등의 이유로 커플이 되고, 그 중 상당수가 결혼에 성공해 잘 살고 있다.
이제 신중함이 통하지 않는 두 번째 분야를 말할 차례, 그건 바로 '정치'다. 시의원과 국회의원, 그리고 대통령까지, 우리는 선거를 통해 정치인을 선출한다. 그 정치인들은 우리가 부여한 권력을 정해진 임기 동안 휘두른다. 문제는 이 선택의 결과가 엄청나게 크다는 것이다. 누굴 뽑느냐에 따라 우리네 삶이 180도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보자. 2020년 4월, 우리 국민은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에게 180석 가까운 의석을 줬다. 그 의석으로 민주당이 통과시킨 것은 그 유명한 임대차3법, 임대차기간을 기존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고 재계약의 경우 임대료를 5% 이상 올리지 못하는 내용이었다. 시장은 이 법안에 곧바로 반응했다. 전세값이 오른 것은 둘째치고, 전세물건이 씨가 말랐다. 이전부터 집값이 천정부지로 오른 탓에, 전셋집을 구하지 못한 이들은 발을 동동 구르다 결국 보따리를 쌌다. 대통령 선거의 영향은 훨씬 더 지대하다. 2017년 대선에서 우리 국민은 문재인 후보를 1등으로 뽑아줬다. 그 뒤 벌어진 일들은 참담했다. 탈원전을 내세우며 태양광을 세우는 바람에, 전국의 산과 임야, 심지어 바다 위까지 거의 전 국토가 태양광 패널로 뒤덮이고 있다. 최저임금제로 인해 자영업자들은 큰 타격을 입었고, 정권을 등에 업은 노조로 인해 나라는 늘 어지럽다. 안보의 버팀목이 돼줄 한미동맹은 유명무실해졌고, 대통령이 자신만만해했던 남북관계도 파탄 상태다.
집권세력에게 표를 던진 이들은 억울하다고 할지 모르겠다. 저들이 이렇게 할지 우리가 어떻게 알았겠냐고. 과연 그럴까? 현 정권의 주축은 586 운동권, 그들은 자신들만이 선이라는 의식으로 무장해 있다. 가진 자를 증오하고, 자신들에게 반대하는 이는 무조건 적폐로 규정짓기에, 절대로 물러서는 법이 없다. 설령 그 과정에서 국민에게 피해가 돌아간다 해도, 그건 자기들 잘못은 아니다. 이런 특징들이 소위 조국사태 이후 명백히 드러났음에도, 당시 유권자들은 이를 별반 고려하지 않았다. 그 대신 유권자들은 국가의 미래와 하등 관련없는 이슈들, 예컨대 대통령이 잘생겨서, 착할 것 같아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친구라서 등등의 이유로 문대통령을 뽑았다. 더 무서운 점은 그렇게 했던 이들 중 상당수가 아직도 '이 제품 써보니까 좋아요'라는 거짓 리뷰를 작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명심해야 할 점은 다음이다. 특정제품이 불량이면 산 사람만 손해지만, 집권한 정치인이 불량이면 그 손해는 그에게 투표하지 않은 이들에까지 미친다는 것. 그래서 말씀드린다. 내년 선거는 제발 잘 하자. 이미지만 보지 말고 그가 제대로 일할 사람인지 아닌지 꼼꼼히 따져보고 표를 던지라는 얘기다. 정치는 사랑이 아닌, 삶을 결정짓는 거대한 이벤트니까.
- <칼럼> 나는 증오한다 고로 행복하다 프랑스 작가 에밀 졸라는 "증오란 신성한 것"이라고 했다. 억울하게 간첩 누명을 쓴 드레퓌스라는 사람을 옹호하면서 한 말이다. 아닌게 아니라 사회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신성한 증오'엔 저절로 머리가 수그러진다. 그러나 요즘엔 이런 증오를 보는 게 영 쉽지 않다. 물론 증오를 발산하는 이들은 사회정의를 내세우겠지만, 특정 진영논리에 사로잡히는 순간 그 사회정의는 내로남불의 하위 개념으로 전락하고 만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증오는 대부분 이런 내로남불형 증오다.혹 주변에 증오를 자주 발산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잘 관찰해보시라. 그들은 대부분 옳은 말을 한다. 그게 그렇게까지 욕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선 선뜻 동의하기 어려울망정 비난받아 마땅한 일에 대해 비난하는 것에 대해선 일단 긍정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증오를 자주 접하다보면 그 어떤 일관된 패턴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증오의 대상이 진영 중심으로 어느 한쪽에만 집중돼 있다는 점이다.사적인 자리에선 정치 이야기를 한사코 피하는 사람일지라도 누군가가 불쑥 꺼내는 정치 이야기까지 틀어 막을 수는 없는지라 그냥 들어야 할 때가 있을 게다. 잠자코 들으면서도 속으로는 홀로 이런저런 반론을 제기하고 싶을 게다. "그런 특성은 당신이 추앙하는 사람이 훨씬 더 심한 것 같은데, 왜 이 사람만 비난하지?" 이런 생각을 발설했다간 싸움 나기 십상인지라 그냥 자기 머릿속에서만 반론을 제기해야 한다. 사실 관계가 다른 과장과 왜곡이 섞여 있는 주장일지라도 그걸 지적하는 것조차 위험하다. "음. 선동 전문 유튜브를 많이 보는구나"라고 생각하면서 넘어가는 게 좋다.사회과학자로서의 직업병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평소 공사(公私) 영역에서 그런 증오를 발산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유형을 분류하곤 한다. 아무리 대화를 해봐야 내로남불을 내장하고 있는 진영논리라는 방탄벽을 뚫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절감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분석이나 해보자는 자세로 돌아서서 하게 된 게 유형 분류다. 증오의 이유 중심으로 볼 때에 생존투쟁, 쾌락투쟁, 인정투쟁, 이익투쟁의 네가지로 나눌 수 있었다.첫째, 생존투쟁은 자신이 살기 위해서 하는 증오다. 미국 작가 에릭 호퍼는 "열정적인 증오는 공허한 삶에 의미와 목적을 줄 수 있다"고 했는데,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의 강성 지지자들 중에 이런 유형의 사람들이 많다. 삶의 공허함은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 아닌가. 그런데 국가와 민족이라는 거대한 차원에서 격렬하게 증오할 대상을 찾아 증오의 발산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건 자신의 사회적 쓸모와 중요성을 확인하면서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의로운 일이 된다. 어느 정당에서건 강성 지지자들의 진정성과 열정이 감동을 자아내게 할 정도로 강할지라도 그들의 주장대로만 가면 당은 망할 수밖에 없는 역설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에게 우선적인 건 자기 삶의 의미와 목적이지, 그마저 희생해가면서 당의 성공을 바라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둘째, 쾌락투쟁은 자신의 즐거운 쾌감을 위해 하는 증오다. "증오와 사랑은 같은 호르몬을 유발하는 것 같다." 영국 소설가 그래함 그린의 말이다. 이 주장을 입증하겠다는 듯 미국 정신분석학자 오토 케른베르크는 '즐거움으로서의 증오'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격노에서 파생된 증오는 매우 유쾌한 공격적 행동을 낳을 수 있다. 다른 이에게 고통, 수치심, 아픔을 유발함으로써 느끼는 가학적 쾌감, 다른 이의 가치를 깎아내림으로써 얻어지는 환희가 그것이다." 공적 영역에서건 사적 영역에서건 진정성과 열정을 갖고 증오의 언어를 내뿜는 사람들의 얼굴을 본 적이 있는가? 그런 얼굴들만 모아 그림으로 보여줄 수 없는 게 안타깝다. 그들은 개인적으론 쾌감을 느끼며 행복해하는 엑스터시(ecstasy)의 경지에 이르렀겠지만, 문제는 그런 엑스터시를 모르는 사람들과의 소통은 불가능하다는 점일 게다.셋째, 인정투쟁은 자신의 소속 집단에서 인정을 받기 위해 하는 증오다. 그 집단이 비공식 집단이며 느슨하게 구성돼 있을지라도 한 개인의 일상적 삶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라면 위계질서가 엄격한 공식 집단 이상의 영향력과 규제력을 행사할 수 있다. 그 집단의 구성원들이 이구동성으로 증오하는 대상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갖고 있으면 외로워질 뿐만 아니라 정도가 심해지면 왕따를 당할 수도 있다. 테레사 수녀는 "가장 나쁜 병은 나병도 결핵도 아니다. 아무도 존경하지 않고 아무도 사랑해주지 않고, 배척받고 있다는 느낌이 가장 나쁜 것이다"고 했다. 사실 배척받고 있다는 느낌은 공포다. 그런 공포를 피하는 건 물론이고 무난한 인간관계를 위해서라도 증오 발산의 대열에 동참해야 한다.넷째, 이익투쟁은 자신의 현실적인 이익을 위해 하는 증오다. 이는 증오를 팔아 돈을 버는 일부 언론과 유튜브 등 이른바 '정치군수업자들'의 선전·선동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선전·선동을 사회정의로 포장하는 '증오 마케팅' 능력이 워낙 탁월해 정의에 목 마른 신도들로부터 적잖은 헌금을 거둬들인다. 특정 정당이 막강한 지배력을 행사하는 지역으로 내려가면 반대 정당이나 진영에 대해 "누가 더 강한 증오와 혐오의 언어로 공격하나?"를 겨루는 경쟁이 벌어진다. 그런 풍토에선 개인이나 자영업자에게도 증오를 표현하는 건 먹고 사는 문제와 무관할 수 없는 일이 된다. 모두가 다 증오의 방향으로 뛰면 그 증오의 심정과 언어를 공유하면서 따라 뛰어야만 무난하게 살아갈 수 있다.이렇듯 우리 사회에선 자기 진영의 이익과 그 진영에 소속된 사람들의 여러 개인적인 이유들로 인해 증오를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나는 증오한다 고로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시사하는 것이어서,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사람이 어렴풋한 수준일지라도 소속 진영 없이 살아가기는 어려운 일인데다 팔은 안으로 굽기 마련이라는 걸 부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정치권의 고질병인 내로남불이 일반 시민들의 일상적 삶에까지 파고 들어 생활화되는 걸 당연하다고 여길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 모두 그 누구도 증오하지 않음으로써 행복해지는 길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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