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칼럼> 국민 법 감정

입력 2021.06.13. 13:40 수정 2021.06.13. 20:11 댓글 0개
도철의 무등칼럼 무등일보 경제에디터

부자 친구가 다른 친구를 때렸다. 피가 나고 갈비뼈가 부러진 것 같은 의심도 들어 큰 소동이 났다. 원인은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맞은 친구 집은 부자가 아니었고 일에 바쁜 부모님은 학교를 찾아 올 상황도 되지 않았다.

두 친구는 다음날 등교하지 않았고 부자 친구 엄마만 선생님을 만나고 갔다. 어떻게 됐을까? 다른 친구들은 모두 궁금했다.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우리 반 체면 있으니, 조용히 하고 앞으로 잘 지내자."

3일째 되는 날 때린 친구는 웃으며 학교에 왔지만 맞은 친구는 일주일이 지나서야 겨우 나올 수 있었다. 드러내지 않았지만 친구들은 선생님이 싫었다. 때린 친구는 원래 그랬지만 공정을 바랐던 선생님에게 실망이었던 것이다. 일제강점기 강제 징용 피해자 등 84명이 일본기업 16곳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이 우리나라 법원에서 각하됐다.

서울중앙지법 민사34부(재판장 김양호)는 지난 7일 징용 피해자와 유족 84명이 일본제철·닛산화학·미쓰비시 중공업 등 일본 기업 16곳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을 각하했다.

각하는 소송 요건이 갖춰지지 않았다는 뜻으로 청구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는 지난 2018년 일본 전범기업들은 강제징용 피해 당사자에게 각각 1억원씩 배상해야 한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선고를 뒤집는 판결로 파장이 커지고 있다.

국민들 분노가 곳곳에서 터지고 있다. 실제로 소송을 각하한 김양호 부장판사를 탄핵해 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하루 반만인 지난 9일 오후 1시 기준 20만명을 훌쩍 넘었다. 바로 공정성 등 '법감정' 때문일 것이다. 김양호 판사 등은 각하 이유로 ▲패소할 경우 한국의 위신 추락 ▲식민지배의 불법성 인정은 국내법적 사정 ▲한·일 관계 악화 우려 등을 내세웠다.

사람들은 말했다. "개인 피해배상 재판에 왜 국제적 사정을 따지고 외교 문제가 필요한 지 이유를 모르겠다. 대법원의 판결을 뒤집는 판결로 혼란이 더 가중되고 국가 위신 추락 위험성도 훨씬 높아졌다."

판결의 권한은 지식을 뽐내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법감정'을 잘 살피는 게 우선이 아닐까? 한 평생 고통에서 살아 온 강제징용 피해자들과 유족들의 아픔을 단 한 조각이라도 느꼈을지 의문이다.

도철 신문제직부 부장 douls18309@sr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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