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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5·18문서 14건 비밀해제···"최규하는 무력한 대통령"

입력 2021.06.02. 13:57 댓글 0개
美, 5·18 민주화운동 관련 기록물 14건 비밀해제
주영복 국방장관도 '군부 통제할 실권 없다' 토로
韓정부 요청한 비밀해제 문서 80건 중 24건 남아
[서울=뉴시스] 미국 정부는 5·18 민주화 운동과 관련해 14건, 53쪽 분량을 추가로 비밀 해제하고, 이 같은 내용이 담긴 문서 사본을 한국 정부에 전달했다고 2일 외교부가 밝혔다. (사진/외교부 제공 문서 캡처)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이국현 기자 = 주한 미국대사관이 1980년 5월17일 비상계엄 전국 확대 직전 최규하 대통령은 실권이 없으며,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사실상 지도자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내용의 전문을 본국에 긴급 타전한 사실이 확인됐다.

2일 외교부가 미국 정부로부터 전달받은 5·18 민주화운동 관련 비밀해제 문서 사본 14건(53쪽)을 분석한 결과, 이 같은 사실이 추가로 확인됐다.

주한 미국대사관이 5월18일 0시 전국으로 비상계엄이 확대되기 전날 본국에 보낸 '서울에서의 탄압' 전문에 따르면 군부가 실권을 완전히 장악했고, 선두에 전두환이 있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다만 미대사관은 전두환에 대해 "상당히 중요한 리더이지만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 같지는 않다"고 평가했다. 사실상 전두환의 독자적인 결정이 아니라 뜻을 같이하는 군부 실권자들의 집단적인 결정이라고 판단한 대목이다.

당시 최규하 대통령에 대해선 '무기력한 대통령(helpless president)'이라고 평가하고, 최광수 비서실장 역시 비상계엄 전국 확대 결정이 대통령 의지와 관계없음을 시사했다고 보고했다.

최규하 대통령뿐만 아니라 주영복 국방부 장관도 실권이 없다고 토로한 사실도 드러났다.

1980년 1월10일 주한 미대사관이 작성한 '레스터 울프 미 하원 아태소위원회 위원장과 우리 군 수뇌부 인사들과의 회담' 문서에 따르면 당시 주영복 장관은 '자신은 군부를 통제할 실권이 없다'고 밝혔다. 이는 12·12 군사 반란 이후 전두환을 중심으로 새롭게 등장한 군부세력의 위상을 간접적으로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전두환을 실권자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미국의 외교적 딜레마도 드러났다.

1980년 3월3일 미 국무부가 작성한 '군부에 대한 미국 측의 입장'에 따르면 당시 국무부 차관은 6월로 계획된 연례안보협의회(SCM) 개최 여부에 대한 미국의 입장 정리 필요성을 언급하며 "군 내부의 갈등이 지속되고, 안정되지 않는 한 정례안보협의회 개최를 연기하겠다는 입장을 군의 실권자인 전두환에게 직접 전달해 압력을 가할 필요가 있다"고 지시했다.

특히 미 국무부는 3월5일 글라이스틴 미국 대사와 전두환의 면담이 전두환으로 하여금 미국이 자신을 지지하고 있다는 시그널로 이해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하면서 전두환을 직접 접촉하는 것에 대한 우려를 드러냈다.

이번에 공개된 문서에서는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재판에 대한 한국 정부의 외교적 대응도 확인됐다.

주한대사관은 1980년 7월23일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수감된 인사들에 대한 한국 정부의 조치를 본국에 보고했다. 당시 대사관은 '수감자들에 대한 가족 접견이 제한되고 있다'고 전했다. 아울러 김대중은 변호사를 구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박동진 외무부 장관은 '김대중을 위해 변호하겠다고 나서는 변호사들이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고 보고했다.

당시 국제 인권단체인 엠네스티와 국제법률가연맹에서 김대중 관련 모든 재판에 참관인을 신청했지만 한국 정부가 거절한 이유도 확인됐다. 그해 8월5일 주한대사관은 '김대중 재판에 대한 국제적 관측' 전문을 통해 박동진 외무부 장관이 "한국 정부는 엠네스티, 국제법률가연맹과 같은 국제인권단체가 재판을 편향된 시각에서 바라볼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참관을 반대한다"면서 2명의 외국기자에 대해서만 재판 전 과정을 취재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고 보고했다.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 관계자는 "이번에 공개된 문서는 기존 문서 가운데 삭제된 비공개 부분이 완전 또는 추가로 공개된 것"이라며 "5·18 진압 작전이 어떻게 펼쳐졌는지, 발포 명령을 누가 내렸는지, 암매장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등에 대한 내용이 포함돼 있지 않지만 5·18 민주화운동이 어떤 정치적 맥락에서 이뤄졌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외교부는 지난 2019년 11월 외교경로를 통해 미국 측에 5·18 민주화운동 관련 문서 80건에 대한 비밀해제 검토를 공식 요청해 지난해 5월 5·18 민주화운동 40주년 계기에 43건, 140쪽 분량의 문서를 1차로 전달받았다.

진상규명위 관계자는 "나머지 24건의 목록은 미국 입장에서 민감한 대목들로 공개가 유보된 상태로 판단된다"며 "바이든 정부가 전향적 태도를 보여준다면 그 문서도 공개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외교부 당국자는 "정부는 미측이 인권, 민주주의 등 핵심 가치를 공유하는 한미동맹 정신을 바탕으로 올해도 추가적인 비밀해제를 위해 협력해 준 데 대해 평가한다"며 "앞으로도 5·18 민주화운동 관련 미측 문서의 추가적인 비밀해제가 이뤄질 수 있도록 미국 측과 계속 협의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미국 측이 이번에 비밀해제해 전달한 문서는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에 따라 이날 '5.18민주화운동 기록관'에 인계 후 기록관 웹사이트에 공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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