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평범한 시민들의 일기에서 5월을 보다

입력 2021.05.17. 17:31 수정 2021.05.17. 19:56 댓글 0개
5·18 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 10주년
엄혹한 시기 민주화 향한 시민들의 열망
아이·노인·임산부까지 계엄군 악행 기록도
시민·종교인으로서의 투쟁·고뇌 고스란히
'김현경 5월 일기'가 유네스코 등재 10주년을 맞아 5·18 민주묘지 추모관에 전시됐다. 당시 동산초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김현경은 5·18민주화운동 당시의 공포와 무서움을 일기에 기록했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지 올해로 꼭 10년을 맞이하는 가운데 시민들이 직접 쓴 성명서와 선언문, 기자들이 찍은 흑백사진 등 86만장 규모의 방대한 기록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특히 이 가운데 초등학생부터 주부, 공무원 등 11명의 평범한 시민들이 쓴 일기는 잔혹했던 그날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5·18민주화운동 41주기를 맞아 개인의 기록을 넘어 역사의 기록이 된 시민들의 일기를 바탕으로 1980년 5월 10일부터 27일까지의 이야기를 재구성했다. 이 일기들은 광주 북구 망월동 국립5·18민주묘지 추모관에서 오는 7월까지 '봄날, 안부를 전하다'라는 이름으로 전시된다. 8월 2일부터는 강원도 춘천시청에서도 공개된다.

▲"위기 시국… 나는 어떻게" / 종교인·대학생 문용동

'주이택 5월 일기'가 유네스코 기록유산 등재 10주년을 맞아 5·18 민주묘지에 전시됐다.당시 천주교 광주대교구에서 일하던 주이택은 일기에 금남로에서 벌어진 처참한 상황들을 담았다.

1980년 5월10일. 호남신학대에 재학중이던 문용동씨의 일기에는 당시대를 살아가는 종교인이자 시민으로서의 자세를 자문하고 있다. '계엄해제시위', '민주회복운동' 등을 외치며 전국의 대학 캠퍼스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열리던 민주화운동은 특히 전남도청 앞에서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었던 때다.

문용동씨는 '민주주의는 어디로 흘러가는지', '나는 구경만 해야하는지', '나는 그냥 있어야 하는지' 등의 고뇌를 토로한 뒤 '현 상황에 맞는 행동이 있어야 한다'는 말로 일기를 끝맺었다. 그는 27일 마지막까지 도청을 사수하다 계엄군의 총에 맞아 숨졌다.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는 지난 2016년 그를 순직자로 인정했다.

'조한금 오월 일기'가 유네스코 기록유산 등재 10주년을 맞아 5·18 민주묘지에 전시됐다. 당시 목포에 살던 조한금은 불안한 소문이 일렁이던 상황을 생생하게 노트에 기록했다.

▲"죽어간 영혼의 소리가…" / 대주교 운전기사 주이택

1980년 5월18일. 천주교 광주대교구 윤공희 대주교의 운전기사로 일했던 주이택씨는 공수부대의 끔찍한 만행에 분개했다. 처녀의 옷을 찢어 유방을 도려내던 계엄군의 끔찍한 악행까지도 고스란히 담긴 그의 일기장에는 신을 향한 처절한 구원이 담겼다.

정부의 비상계엄 강화 발표 후 분노한 대학생들은 학교 앞으로 모여 정부 조치에 대해 비판 목소리를 높였다. 이때 무더기로 나타난 공수부대원들는 몽둥이와 칼을 앞세워 시민들을 무자비하게 폭행했다. 평화롭던 대학가는 금세 비명과 아우성으로 가득찼다.

주씨는 평범한 시민들을 피투성이로 만든 공수부대의 행태에 치를 떨었다. 그의 일기에는 노인도, 아이도, 임산부도 할 것 없이 대검에 찔려 쓰러진 모습을 기록하고 있다.

다음날인 19일에는 사지가 축 쳐진 젊은이들이 개돼지마냥 차에 실려 가는 모습을 적었고, 피투성이가 된 한 청년이 곤봉에 맞아 두개골이 보인 채 쓰러져 있었다고도 했다. 그는 울분이 터져 나왔지만 눈물만 흘릴 뿐 공수부대에 맞설 수 없었다고 고백하며 "영혼들의 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천주님, 도와주소서. 시민들을 보호해주소서"라고 기도했다.

▲"총알 한 발, 시민 하나의 목숨" / 시민 민영량

1980년 5월21일. 세 딸을 키우던 시민 민영량씨는 "총알 한 발 한 발이 시민들의 목숨으로 바뀌었다"고 썼다. 금남로의 한 고층빌딩에 선 군인들이 군중을 향해 사격연습을 하는 것을 목격한 후였다. 분노한 시민들이 차량 질주로 반격했지만 계엄군의 집단사격은 멈추지 않았다고도 썼다.

자신이 전남맨션 쯤에 다다랐을때 자전거를 타고 가던 평범한 아주머니가, 수혈을 마친 여학생이, 세살배기 아기의 손을 잡고 걷던 임산부가 차례로 계엄군의 총알에 쓰러지는 모습도 목격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총을 쏘는 이들은 바늘구멍만한 양심이라도 있을까? 언제 이 사무친 한을 풀 수 있을까"라고 한탄했다.

▲ "우리가 지킬 것" / 직장인 박연철

1980년 5월22일. 평범한 직장인이던 박연철씨는 자신의 일기에 "나의 몸뚱아리를 기꺼이 군중의 일원으로 바치겠다"라고 쓰며 민주화운동 동참을 결심했다.

하루 전날 라디오를 통해 광주에서 폭동이 일어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뒤 광주가 그들이 말하는 '불순분자'에 의해 휘둘리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뭉쳐야한다고 다짐했다는 박씨는 거리로 나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길 한가운데에 마치 차선처럼 남겨진 핏자국을 목격하고 분노가 치민 그는 곧장 도청 앞 분수대로 향했다. 그는 눈 앞의 피바다가 자신을 분수대로 이끌었다며 이 발걸음이 결코 '강제'가 아니었다고 적고 있다. 그러면서 평소보다 많은 민주화 인파를 보며 "국가도, 민주주의도 우리가 수호할 것"이라는 결의를 보였다.

▲"일방적으로 폭도" / 목포시민 조한금

1980년 5월27일. 목포에 살던 평범한 시민 조한금씨는 '유언비어에 속지 말라'는 신문과 방송에 분노했다. 고립된 광주에서 일어나던 일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언론이 민주주의를 위해 거리로 나선 이들을 '폭도', '불순분자'로 취급하고 있다고 꼬집기도 했다.

'군인이 광주시를 장악했다. 민간인이 다치지 않게 거사를 치룬 군인들에 찬사를 보낸다'는 멘트와 함께 돌에 맞아 피를 흘리는 군인의 모습을 송출하는 방송을 지켜보며 그는 국민이 기만당하고 있다고 생각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모든 국민이 광주의 일을 잘 모르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국민을 기만하고 우롱하는 현시국이 그렇게 우스꽝스러워보일 수가 없었다. 우리는 언제쯤 올바로 보고 듣고 말하고 전달하는 일을 행할 수 있을까"라고 독백했다.

안혜림기자 wforest@sr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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