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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항 故이선호씨 죽음에···노사,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촉각'
입력 2021.05.16. 06:13 댓글 0개노사 의견 수렴해 최종안 예정이나 노사 이견 커
이선호 씨 사망사고 이후 노사 신경전 더욱 가열
[서울=뉴시스] 강지은 기자 = 내년부터 시행되는 중대재해처벌법의 시행령 제정을 앞두고 노사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중대재해 발생 시 경영 책임자를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중대재해처벌법은 올해 초 국회를 통과했지만, 경영 책임자 의무 등 일부 구체적인 사항은 하위 법령인 시행령에 위임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평택항에서 발생한 고(故) 이선호(23)씨 사망사고를 계기로 정치권을 중심으로 중대재해 처벌 강화 목소리가 나오면서 노동계는 진전된 시행령 제정에 기대를, 경영계는 우려를 표하는 모습이다.
16일 고용노동부와 노사에 따르면 고용부는 이르면 이달 말 또는 내달 초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제정안을 입법예고할 예정이다. 본격적인 법 시행에 앞서 세부 내용을 마련하는 것이다.
현재 관계부처와 공동으로 시행령 초안을 만들고 있으며, 초안이 마련되면 입법예고 전 노사 의견을 수렴해 최종안을 정리할 계획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조만간 의견 수렴의 자리를 마련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산업 현장에서 노동자가 1명 이상 사망하는 중대재해가 발생한 경우 사업주나 경영 책임자 등을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올해 초 우여곡절 끝에 국회를 통과했으며, 내년 1월27일부터 50인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전면 시행된다. 다만 50인 미만 사업장은 3년간 유예 기간을 가지며, 그마저도 5인 미만 사업장은 아예 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다.
당시 노사는 법 적용 사업장은 물론 처벌 대상, 수위 등을 놓고 첨예한 이견을 보인 바 있다. 결국 노사 모두 각자의 입장에서 중대재해처벌법에 강한 유감을 표했는데, 이번에는 시행령을 놓고 '2라운드'를 예고한 것이다.
중대재해처벌법에서 구체적인 내용을 시행령으로 정할 수 있도록 위임한 사항은 총 5개다.
이 중 현재 노사 간 쟁점이 되고 있는 것은 크게 2가지로, 우선 중대재해를 정의한 내용 중 '급성중독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직업성 질병자'(제2조 제2호) 부분이다.
경영계는 중대재해처벌법 취지와 '급성중독 등'이라는 법률 문언에 비춰볼 때 업무상 사고와 유사한 화학물질 유출 등에 의한 질병자로 그 대상을 한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급성중독으로 보기 어려운 만성질환, 예컨대 뇌심혈관계질환이나 근골격계질환, 소음성 난청, 직업성 암 등은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하는 직업성 발병 범위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동계는 이러한 질병을 포함해 산재보험법상의 모든 직업병 목록을 시행령에 넣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영 책임자의 의무 중 '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 및 이행에 관한 조치'(제4조 제1항 제1호), '안전보건 관계 법령의 의무 이행에 필요한 관리상의 조치'(제4조 제1항 제4호)의 구체적 사항도 시행령에 위임한 상태다.
경영계는 이와 관련해서도 "경영 책임자의 지위와 역할을 고려해 연 1회 이상 보고받는 방법으로 관리하도록 구체적 의무 규정을 시행령에 마련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반면 노동계는 "경영 책임자 의무를 매우 한정적으로 제한하려는 시도"라면서 경영 책임자가 안전보건의 포괄적 책임과 의무를 다할 수 있는 시행령을 만들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특히 지난달 22일 평택항에서 개방형 컨테이너 내부 작업을 하던 이선호씨가 300㎏ 무게의 컨테이너 날개에 깔려 숨진 이후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을 둘러싼 노사의 신경전은 더욱 가열되는 모습이다.
뒤늦게야 정치권이 앞다퉈 현장 점검에 나서며 중대재해 처벌 강화를 약속하는 등 관심이 높아지면서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11일 산재 감축을 위한 범정부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지시하는 한편, 13일에는 이씨의 빈소를 조문하기도 했다.
노동계는 이에 힘입어 보다 포괄적인 시행령 제정을 거듭 촉구하고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지난 14일 기자회견을 열고 "모법의 제정 때부터 이를 방해한 자본과 이에 부화뇌동한 정치권의 방해를 넘어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을 빈틈없이 올바르게 제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도 최근 성명을 내고 "이미 모법인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 과정에서 누더기가 된 상태인데, 시행령마저 경영계의 주장대로 후퇴한다면 중대재해처벌법은 완벽하게 무력화될 것"이라고 정부를 압박했다.
반면 경영계는 최근 잇단 산재 사망사고로 시행령이 더욱 강화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평택항 사망사고 이후에도 지난 8일 현대중공업 하청업체 40대 직원이 원유운반선 작업 중 추락해 사망했고, 같은 날에는 현대제철 충남 당진 제철소에서 설비 점검하던 40대 직원이 기계에 끼여 숨졌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관계자는 "본래 입법 취지를 고려해 정부가 만들었던 안이 오히려 국회가 관심을 갖고 개입하면서 경영 책임자의 의무를 더 부여하는 방향으로 되면 곤란할 것 같다"며 "의견 수렴 때 입장을 전달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런 가운데 경영계는 시행령에 위임되지 않은 경영 책임자 정의 등도 시행령에 규정해 구체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경영 책임자를 '사업을 대표하고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 또는 '이에 준해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구체적으로 누구인지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박화진 고용부 차관은 지난 14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 법은) 처벌법이기 때문에 아주 엄격하게 법으로 정하고 법에서 위임한 부분만 시행령으로 정하는 것"이라며 "경영 책임자가 누구냐 하는 것은 법 규정을 해석해야 한다"고 했다.
노사의 간극이 좀처럼 좁혀질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의견수렴 등 입법예고까지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일각에선 노사의 첨예한 이견에 시행령이 모호하고 추상적인 수준에 그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고용부 관계자는 "노사의 의견을 최대한 수렴해 최선의 안을 마련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공감언론 뉴시스 kkangzi87@newsis.com <저작권자ⓒ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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