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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이 사건' 그 후···수많은 정인이들은 왜 죽었나

입력 2021.05.15. 06:00 댓글 0개
아동학대, 정부 차원 진상규명 없어
영국, 학대사망사건 2년 추적조사로
아동보호시스템 전면적 개편 이뤄내
'아동학대 진상규명 특별법' 국회 계류
[양평=뉴시스]김선웅 기자 = 정인이 양부모에 대한 2차 공판을 하루 앞둔 16일 경기 양평군 서종면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원에 추모객들이 놓은 故 정인 양의 사진과 꽃이 놓여있다. 2021.02.16. mangusta@newsis.com

[서울=뉴시스] 김남희 기자 = 16개월 된 입양아 정인이를 학대해 숨지게 한 양모가 1심에서 살인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지난 1월 '그것이 알고싶다' 방영 이후 국민적 공분을 일으킨 정인이 사건이 가해자 처벌로 일단락되는 모양새다.

그러나 '정인이 사건은 끝이 아닌 시작'이란 목소리가 나온다. 끊이지 않는 아동학대 사망사건은 국가의 아동보호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신호라는 지적이다.

현재 국회에는 '아동학대 진상조사 특별법'이 발의돼 있다. 최근 3년간 발생한 아동학대 사망사건을 추적해 아동보호체계 시스템을 재정립하는 것이 골자다. 아동학대에 대한 범정부적 조사를 통해 시스템을 점검하고 정책 전반을 혁신하려는 시도지만 국회 논의는 지지부진하다.

영국 '클림비 보고서', 학대 아동 죽음 2년간 추적조사지난 1월 정인이 사건 보도 일주일 만에 국회는 '정인이법'으로 불리는 아동학대처벌법을 통과시켰다. 아동학대 신고가 접수되는 즉시 경찰이 수사하고, 가해자와 피해 아동을 분리해 조사하는 것이 골자다.

지난 3월부터는 아동학대로 2번 이상 신고된 피해아동을 학대행위자와 즉시 분리해 보호하는 즉각분리제도가 시행됐다. 그러나 시민사회는 처벌과 사후대책에 치중해서는 반복되는 비극을 막을 수 없다고 지적한다.

강미정 정치하는엄마들 공동대표는 뉴시스와의 통화에서 "처벌 강화로는 아동학대를 근본적으로 막을 수 없다. 범정부 차원에서 사건이 왜 일어났는지 조사하는 게 먼저고, 그 조사를 결과로 대응하는 법을 만들어야 하는데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 아무도 아동학대가 왜 발생하고 있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정인이는 3번의 학대 의심 신고에도 끝내 목숨을 잃었다. 경찰 수사는 사후 조치의 영역이다. 학대가 왜 일어났고, 왜 막을 수 없었는지를 밝히는 정부 차원의 진상조사는 단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다.

영국은 지난 2000년 영국의 9세 아동 빅토리아 클림비가 지속적인 학대 끝에 사망한 사건을 2년간 추적했다. 270명의 증언이 들어가고 380만파운드(약 60억원)의 비용을 투자해 발간된 432쪽 분량의 클림비 보고서에는 재발 방지를 위한 108개의 정책 제언이 담겼다.

이를 계기로 영국은 아동보호체계를 전부 뜯어고쳤다. 지방정부에 분산된 아동 관련 권한을 일원화하고 각 기관에 접수된 신고를 다른 기관과 공유하는 대대적 시스템 개편이 이뤄졌다.

국내에서도 2013년 울산에서 학대로 사망한 아동의 죽음을 조사한 '이서현 보고서'와 2017년 대구·포천 입양아동 학대 사망사건을 조사한 '은비 보고서'가 작성됐다. 그러나 정부 참여 없이 민간 주도로 이뤄졌다는 한계로 인해 조사체계의 제도화로 이어지지 못했다.

"한국판 클림비 보고서 만들자" 아동학대 진상규명 특별법
[김천=뉴시스] 이무열 기자 = 구미에서 3세 여아를 방치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김모(22)씨 공판이 열리는 9일 오후 경북 김천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원 앞에서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회원이 김씨 엄벌을 촉구하는 릴레이 일인시위를 하고 있다. 2021.04.09. lmy@newsis.com

국회에는 최근 3년 간 발생한 중대 아동학대 사망사건을 조사하는 위원회를 대통령 산하에 한시기구로 설치하는 '양천 아동학대 사망사건 진상조사 특별법'이 발의돼 있다. 여야 국회의원 139명이 공동발의에 참여했으나 지난 2월 발의 이후 제대로 논의되지 못한 상태다.

법안을 대표발의한 김상희 의원실 관계자는 "아이러니하게도 정인이 사건은 '그것이 알고싶다'를 통해 분석됐다. 정부는 어느 부처에서도 그 정도 수준의 분석도 한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학대가 발생할 때마다 조사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을 만들자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아직 시도해본 적이 없어 공감대를 얻기에 한계가 있었다"며 "2년 정도 진상규명위원회 활동으로 사건을 조사, 분석해 정부와 국회에 정책을 제안하는 한시법으로 발의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아동보호 및 입법 관련 11개 시민사회단체는 특별법 제정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성명서에서 "이서현 보고서 등은 민간 주도로 이뤄져 조사 권한에 제약이 있었고, 법적 의무가 없기에 제안에 그쳤다"며 "아동학대 사망사건들을 되짚어 보며 기관 간의 협력은 어떻게 이뤄지는지, 아동학대 대응 과정에서 아동의 보호조치를 결정하는 고려 사항들은 무엇이었는지, 분리된 이후 아동과 가정에 대해 어떠한 지원이 제공되었는지 등 종합적인 사례 분석을 바탕으로 아동보호체계에 대한 근본적인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아동학대특별법은 지난 4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소위에 상정됐지만 논의되지 못한 채 5월 국회로 넘어왔다. 지난주 열린 법안소위에서도 심사가 밀렸다. 복지위 관계자는 "복지위 자체가 담당하는 법이 많은 데다 코로나19와 의사면허법 등 쟁점이 많아 시일이 지체되고 있다"고 전했다.

강미정 정치하는엄마들 공동대표는 "정부와 국회는 '죽음으로부터 배울 의무'가 있다. 단순한 처벌 강화나 급조된 대책으로는 아동학대 사망을 막을 수 없다"며 "아동학대 사건들이 관심을 받고 있는 지금 특별법이 제정돼서 진상규명을 하고, 근본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부는 14일 열린 아동학대 대응상황 점검 관계차관회의에서 "복지부·지자체·경찰 등 아동보호 관계기관 간 위기아동 정보 공유를 강화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며 지속적 보완을 해나가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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