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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넘어북한] 코로나19 백신 北에 지원하면? 美 적대정책 철회 신호탄 될까

입력 2021.05.07. 16:36 댓글 0개
바이든 행정부 새 대북정책 '외교와 억지' 발표
북한 "미국 매우 심각한 상황 직면하게 될 것"
하지만 적대시 정책 철회 조건 내건 북한은
아직 최종적 반응 보이지 않은 상황
코로나19 '백신' 지원이 협상 밑바탕 마련할 것

【서울=뉴시스】강영진 박수성 기자 = 미 바이든 행정부의 새 대북정책이 발표됐습니다. 외교와 단호한 억지로 북한 핵위협에 대처하겠다는 요지입니다. 미국은 북한과 접촉 의지가 있어 보이지만, 북한은 '외교란 허울 좋은 간판'이고 '억제는 핵 위협 수단'이라고 응수했습니다. 애매한 적대시 정책 철회를 조건으로 내건 북한을 어떻게 협상으로 이끌 수 있을까요? <창 넘어 북한>에서 코로나19 백신 지원 아이디어를 제안합니다.

안녕하십니까. 뉴시스 북한팀 에디터 강영진입니다.

이번 주도 북미 간 신경전을 다시 한번 다루겠습니다. 당분간 북미 간 핵협상 성사 여부가 가장 큰 관심사일 수밖에 없어서 이 주제는 앞으로도 종종 다루게 될 것 같습니다.

아시다시피 이달 초 미국 정부가 지난 3개월 남짓 진행해온 대북정책 검토가 끝났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러자 북한은 곧바로 미국을 비난하는 권정근 외무성 미국국장의 담화를 발표하고 "시간이 흐를수록 미국은 매우 심각한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위협했습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신속한 반응이었지요. 그러자 미국 쪽에서 북한을 다독이려는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설리번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ABC 방송과 인터뷰에서 "우리의 대북정책은 적대를 목표로 한 게 아니라 해결을 목표로 한 것"이라면서 "모든 것을 주고받거나 아무것도 주고받지 않는 방식보다는 더욱 조정되고 실용적인 신중한 접근법"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블링컨 국무장관도 "미국의 새 대북정책이 외교를 중심에 두고 있다"면서 "북한이 외교적으로 관여할 수 있는 기회를 잡기를 바란다"고 강조했습니다.

블링컨 장관은 또 "앞으로 수일 내지 수개월 동안 북한의 말과 행동을 지켜볼 것"이라고 덧붙였지요.

지켜보겠다는 블링컨 장관의 발언은 미국이 새롭게 확정한 대북정책을 북한에 전달하려 했지만 북한이 반응을 보이지 않아 실패한 뒤 나온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은 3월 초 미국이 여러 차례 접촉을 제안해왔지만 자신들이 무시했다면서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이 철회되는 걸 확인하기 전까지는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당시 발표는 북한의 대미정책을 총괄하는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의 발언이어서 미국과 접촉 자체를 거부하는 기조가 꽤 오래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을 낳았습니다.

과연 북한은 이번에도 미국의 접촉 시도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미 워싱턴포스트가 보도했네요.

[워싱턴=AP/뉴시스]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8일(현지시간) 워싱턴DC 국회의사당에서 첫 상·하원 합동의회 연설을 하고 있다. 2021.04.29.

그런데 이번 북한의 반응은 바이든 미 대통령이 의회 연설에서 '북한의 핵위협에 외교와 단호한 억지로 대처하겠다"고 간단히 언급하고 지나간 대목을 꼬집은 것이어서 좀 의아스럽기도 합니다.

미국이 새로 확정한 대북정책을 전달하려 했지만 이를 무시하고는 별 내용도 없는 바이든 대통령의 발언을 빌미 삼아 발끈 한 겁니다.

이에 대해 미국의 북한 전문 사이트 38노스는 북한의 반응이 매우 신중하게 조율된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습니다.

우선 권국장이라는 비교적 하위 당국자가 나선 점은 뒤에 최선희나 그 이상의 상급자가 나서서 뒤집을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는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또 권국장의 발언에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개인적 비난이 포함돼 있지 않다는 점도 지적했습니다. 미국을 자극하지 않으려 한 증거라는 거지요.

마지막으로 발언 내용 자체도 조건절을 여러 번 사용하는 등 매우 신중한 내용이라는 겁니다.

상황이 개선되지 않으면 이러저러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압력을 북한이 받게 되고 그로 인해 미국이 심각한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식으로 돼 있다는 겁니다.

듣기에 따라선 위협을 하려는 건지 아닌지조차 확실치 않습니다. 별 내용이 없어 보이는 바이든 대통령 발언에 대한 반응이므로 미지근할 수밖에 없었던 것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이렇게 보면 미국이 새로 마련한 대북 정책에 대해 북한은 아직 제대로 반응하지 않았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미국은 앞으로도 새로운 대북 정책을 북한에 전달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일 전망입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중국을 거쳐서 북한에 전달되도록 하는 것도 검토할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미국과 중국의 사이가 좋지는 않지만 북한 문제에 관한 한 협력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미국 정부가 강조해 왔기 때문에 배제할 수 없는 방식입니다.

이 경우 북한으로선 중국을 통해 전달되는 미국의 대북 정책에 대해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부터 고민할 것 같습니다.

적대시 정책 철회가 확인되기까지 모든 접촉에 반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한 마당이기 때문입니다.

북한이 내세우는 적대시 정책 철회는 뭘 뜻하는지가 애매합니다.

관측통들은 적게는 북한에 대한 비난을 자제하는 것부터 종전선언과 나아가 주한미군 철수 약속까지 다양한 수준으로 분석합니다.

북한이 애매한 표현을 계속 사용하는 건 전술적으로 상당한 효과를 노리기 때문일 겁니다.

미국이 적대시 정책 철회를 먼저 제시하면 우리가 평가해보고 답하겠다는 식이지요.

기선제압을 통해 협상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기고 본다는 협상의 제1원칙을 철저히 고수하겠다는 생각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렇게 보면 북한이 말하는 적대시 정책 철회 조건은 역설적으로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따라서 굳이 종전선언이나 주한미군 철수 약속과 같은 구체적인 조치가 없더라도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충족될 수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평양=AP/뉴시스]북한이 제공한 사진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5일 평양에서 열린 노동당 제8차 대회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이 모든 부문서 미달"이라며 경제 실패를 인정하고 8차 대회를 분수령으로 국가의 부흥, 발전과 인민의 행복을 위한 투쟁을 새로운 단계로 이행할 것이라고 제시했다. 이번 대회는 코로나19 속에도 대표자 4750명, 방청자 2000명 등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2021.01.06.

지금 북한은 코로나 팬데믹을 핑계 삼아 내부 단속을 크게 강화하고 있습니다.

국경을 봉쇄해 외부와의 접촉을 완전히 차단하는 건 물론이고 내부적으로 주민 이동도 크게 억제하고 시장의 운영도 최소한으로만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많은 사람이 굶어 죽는 일이 또 일어나는 것 아니냐는 불만이 외부는 물론 북한 내부에서도 불거지는 것 같습니다만 북한 당국은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비사회주의 즉 자본주의 외래문화를 배격하고 북한식 사회주의의 순수성을 한층 강화해야 한다는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벌이고 있습니다.

이와 동시에 각종 대규모 회의나 노동신문에 실리는 장문의 글 등을 통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 대한 무조건적인 충성을 강조하는 일도 부쩍 늘고 있습니다.

팬데믹 상황인데도 이처럼 체제 단속을 최우선시하는 모습은 혀를 찰 일입니다.

주민들의 고통을 덜어줄 생각은 하지 않고 오히려 체제 단속 강화의 기회로 삼는 모습을 보면서 '해도 너무 한다'는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뭐 그런 느낌이 들더라도 자제하고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앞으로도 상당 기간 북미 간에 교착상황이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습니다. 결국 바이든 정부도 오바마 정부 때의 '전략적 인내'로 돌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비관론까지 나오는 상황입니다.

개인적으로 그렇게까지 비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의 새 대북 정책에 대해 아직 북한이 최종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은 상황이니까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정의용 외교장관이 '바이든 정부의 대북 정책 검토 결과가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방향으로 결정된 것을 환영한다'고 말한 것도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알다시피 우리 정부가 미국에 포용적인 대북 정책을 강력히 주문해왔다는 것을 감안하면 정장관의 반응이 미국이 상당한 정도로 포용적인 대북 정책을 마련했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문제는 '적대시 정책 철회'라는 애매한 조건을 걸고 있는 북한을 어떻게 협상으로 끌어낼 수 있느냐입니다.

이와 관련해 한 가지 제안을 하겠습니다.

바로 한미일 3국이 힘을 합쳐서 북한의 팬데믹 상황을 신속하게 끝낼 수 있도록 하자는 겁니다.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3일 서울 용산구 예방접종센터 코로나19 백신 보관소에서 의료진이 화이자 백신을 분주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2021.05.03. photo@newsis.com

미국이 가장 효과가 좋다는 화이자나 모더나 백신을 북한에 한 2,000만 명 분을 주겠다고 공개 발표하면 어떨까 싶네요.

이 생각을 떠올린 건 지난 3일 저녁이었습니다. 이후 이 제안이 미칠 파장을 다각도로 검토했습니다.

우리나라도 백신 때문에 논란이 큰 마당에 북한에 먼저 주자는 거냐라는 반발부터 북한이 뭐 잘한 게 있다고 선진국들도 부족한 백신을 주겠다는 거냐, 핵만 가지면 무슨 일이든 쉽게 얻어낼 수 있다는 거냐 등등 문제점이 적지 않은 제안입니다.

그렇지만 모든 사안에는 긍정적 효과와 부정적 악영향이 항상 공존합니다.

각종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그런 부작용을 감수하면서까지 한미일이 북한에 백신을 조건 없이 제공한다는 건 북한을 적대시하기는커녕 오히려 최대한의 선의를 가지고 있음을 증명할 수 있는 방안이 충분히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 제안을 받으면 북한이 어떻게 반응할까요?

앞서 말한 대로 북한은 지금 팬데믹 상황을 체제 강화에 악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백신을 줘서 팬데믹을 곧 끝낼 수 있게 된다면 체제 강화 노력을 중도에 중단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당장 크게 억제해온 시장 활동부터 모두 풀고 국경 봉쇄도 해제해야 할 테니까요. 그렇지만 체제 강화 노력 중단을 이유로 백신 지원 제안을 거부하긴 힘들 겁니다.

그보다는 북한은 백신의 효과를 불신하면서 거부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노동신문은 4일 '악성 전염병 사태의 장기화에 철저히 대처하자'라는 기사를 실었습니다.

왁찐, 백신의 북한식 표현입니다. '왁찐이 결코 만능의 해결책이 아니기 때문에 악성 전염병 사태의 장기화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면서 "해를 이어가며 원만히 진행할 수 있게 방역체계를 우리 식으로 완성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내용입니다.

일단 아직 백신을 전혀 공급받지 못하고 있는 북한 당국의 무능력에 대한 변명처럼 들립니다.

그렇지만 악의적으로 해석하면 백신 때문에 팬데믹 상황이 빠른 시일 내에 끝나 버리는 걸 경계하는 것 아니냐고 의심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후자는 절대 아닐 것이라고 믿습니다만 북한의 진정한 속내가 무엇인지를 확인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백신 지원 제안을 거부하면 팬데믹 종식을 늦추려는 속내가 빤히 들여다보일 것이고 받아들이자니 핵 협상에 앞서 얻어내려던 '적대시 정책 철회'가 무산되는 꼴이어서 고민을 많이 하지 않을까요?

뭐 이렇게 말하면 북한을 곤경에 빠트리려는 제안 자체가 '적대시 정책을 입증하는 증거'라고 반박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반박하면서 백신 지원 제안을 거부한다면 국제사회의 비난이 한층 강화될 것이고 북한이 운신할 수 있는 여지도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반대로 북한이 자기들 주장처럼 진정으로 주민들의 안녕과 복지를 최우선시하는 '인민대중 제일주의', '이민위천(以民爲天)', '위민헌신(爲民獻身)'의 나라라면 좌고우면하지 않고 백신 지원 제안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받아들인다면 앞으로 협상이 잘 진행될 수 있는 바탕은 마련될 수 있을 겁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제가 '형편없는 골통'이라고 느껴지시나요?

<창 넘어 북한>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공감언론 뉴시스 yjkang1@newsis.com, pzcmaria@newsis.com <저작권자ⓒ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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