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홀로 세상과 맞서는 아이들 "다른 사람 도울게요"

입력 2021.05.06. 19:52 수정 2021.05.06. 20:00 댓글 2개
보호 종료 앞둔 보통 청년들 ‘자립’이야기
동정의 대상 아닌 사회적 지지·보호 필요
학비·생활비 등 당장 생계 문제 부딪히기도
주변 도움 구할 ‘어른’의 부재, 자립 두려움도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시스템 마련돼야”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누군가는 사고로, 누군가는 영문도 모른 채, 누군가는 부모의 이혼으로 보호대상아동이 됐다. 할머니, 할아버지 손에 맡겨지거나 아동시설에서 자랐다. 정부 보호는 만18세 까지다. 대부분 20살이 되면 누구의 보호도 없이 혼자 살아가야 한다. 당장 살 집을 구하고 취직을 해 생활비를 마련해야 한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 광주지역본부 조사에 따르면 보호대상아동 10명 중 3명은 자립에 대한 두려움(31.8%)으로 자립 준비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경제적 부담(26.1%)도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잘 성장해 사회구성원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사회적 지지와 기반이 절실한 이유다.

이에 무등일보와 사랑방미디어가 속한 SRB미디어그룹, 초록우산어린이재단 광주지역본부는 보호대상아동 지원을 위한 백신프로젝트 시즌2를 시작한다. 보호대상아동들이 꿈을 이루고 건강한 사회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기후원 프로젝트다.

정서지지 프로그램에 참여중인 가정위탁아동들. 사진=초록우산어린이재단 광주지역본부 제공

프로젝트에 앞서 무등일보는 보호대상아동 3명을 인터뷰했다. 무등일보가 만난 이들은 부모 없는 설움을 겪는 동정의 대상도 아니고 역경을 이겨낸 신데렐라도 아니었다. 꿈을 꾸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보통의 청년들이었다. 하지만 이들 곁에 꿈을 지지하고 응원해줄 어른들은 없었다. 당장 다음 달 내야할 월세와 생활비를 걱정해야 하고 올해 취업하지 않으면 생계가 막막해지는 갈림길에 서 있었다. 그럼에도 이들은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잘 클 수 있었다. 꿈을 이루면 받았던 도움들을 사회에 꼭 돌려주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스무살, 시설 퇴소와 '자립'…생활비가 가장 걱정

최하은(19·가명)양은 15년 전부터 아동양육시설에서 생활했다. 그의 나이 고작 4살이었다. 부모에 대한 기억은 없다. 이후 부모와 연락이 닿은 적도 없다. 보호종료 시점인 만 18세가 되는 내년이면 지금 지내는 시설에서 퇴소하고 홀로 자립해 살아가야 한다. 광주 특성화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최양은 요즘 입사원서를 쓰느라 바쁘다고 했다. 공기업 취업을 목표로 전산회계 등 취득한 자격증만 7개다. 최양은 "3월부터 시작된 기업들 채용 일정에 맞춰 원서를 쓰고 있다"며 "당장 내년에 시설을 나가야 되기 때문에 일단은 취업이 가장 큰 목표다"고 말했다.

자립을 하게 되면 가장 큰 걱정은 '생활비'다. 광주시 자립정착금 500만원에 불과하고 보건복지부 자립수당은 3년이 지나면 끊긴다. 실제로 자립정착금은 집을 구하기조차 부족한 금액이라 보호종료아동 상당수는 구직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최양은 "그동안 많은 배려를 받았다. 취업을 하게 되면 내가 받아왔던 것들을 어려운 환경에서 지내는 사람들에게 돌려주고 싶다"고 밝혔다

◆친오빠 폭언·폭행에서 벗어나 꿈 찾았어요

강가람(21·가명)씨는 엄마에 대한 기억이 없다. 2살 때 부모가 이혼하면서 엄마의 존재를 모르고 컸다. 대신 '최고의 아빠'가 있었다. 일용직을 했던 아빠는 쉬는 날이면 그의 손을 잡고 시장구경을 하고 맛있는 밥을 먹었다. 그러나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몸이 아팠던 아빠는 그의 초등학교 졸업식 전날 돌아가셨다. 이후 할머니와 오빠와 함께 살았다. 오빠는 폭언과 폭행을 반복했다. 우울증이 심해져 힘든 시간을 겪어야했다. 오빠의 폭언과 폭행을 피해 집을 나와 자취를 시작했다.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마련하고 있다.

강씨가 받는 정부 지원금은 할머니와 오빠가 사는 집 월세와 생활비로 대부분 사용된다. 강씨가 대학에 진학하면서 정부 보호기간이 만24세까지 연장됐지만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그의 어깨가 가벼울리 없다. 강씨는 "일주일에 3~4일씩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활비를 마련하고 있다. 지금 삶이 당장 벅차 먼 미래까지 생각하기는 힘들다"면서도 "아빠가 늘 저를 보고있다고 생각한다. 뿌듯하게 바라보실 수 있도록 더 열심히 살겠다"고 말했다.

◆"받은 도움 돌려주고 싶어" 사회복지사 될래요

박선호(23·가명)씨의 아버지는 3살 때 돌아가셨다. 5년 뒤인 초등학교 2학년때는 엄마마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박씨는 이후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와 함께 지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박씨가 부모님의 빈자리를 느끼지 않도록 사랑으로 키워주셨다.

박씨는 내년이면 군대를 간다. 사회복지사가 되기 위해 대학 편입과 전과를 하느라 군입대가 늦어졌다. 그는 "어릴 적부터 지원을 많이 받았고 나도 똑같이 나눠보자는 생각이 들어 진로를 결정하게 됐다"며 "집에서 지원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군대를 가기 전에 최대한 자격증 공부를 비롯해 사회생활 준비를 해두려한다"고 웃어보였다.

◆부모 유대감 없는 아이들…"사회시스템 필요"

초록우산어린이재단 광주지역본부가 조사한 '보호아동 진로 및 자립 관련 욕구 조사'에 따르면 아동양육시설과 공동생활가정에서 생활하는 보호대상아동은 630여명으로 집계됐다. 이중 설문에 응답한 167명을 분석한 결과 97명(58.1%)이 취업을 했고 45명(27%)은 대학에 다니고 있었다. 22명(13.2%인)은 구직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보호대상아동들은 주거지원을 가장 필요한 서비스로 꼽았다. 자립을 위한 생활용품과 가전제품 지원, 정서적인 지지 등이 뒤를 이었다.

조윤하 광주아동자립지원전담기관 사무국장은 "스스로 잘 살고자 의지가 있는 친구들과 그렇지 않은 친구들은 자립 후에 많은 차이가 난다"며 "'부모와 함께 생활하지 않았지만 세상의 따뜻한 관심과 사랑으로 꿈을 이룰 수 있다', '자신은 그럴만한 힘이 있고 그것을 누릴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사회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성희기자 pleasure@sr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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