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나도 윤여정처럼' 노인들의 유쾌한 도전기

입력 2021.05.03. 15:44 수정 2021.05.04. 08:46 댓글 0개
바리스타로 인생 2막 연 송영자씨
60세에 영상감독 시작 박종익씨
신나는 시니어모델 신미숙씨
지난달 28일 광주 남구 빛고을노인건강타운 시니어 카페에서 송영자씨가 커피 기계를 이용해 아메리카노를 만들고 있다.

"커피가 새인생 열어줬어요"

"자식 둘에 손자까지 키우느라 집안 일만 했었어요. 커피를 만들고 배우는 게 이렇게 재미있는지 몰랐네요."

6년차 바리스타인 뉴시니어 송영자(74)씨는 주변의 권유로 늦은 나이에 커피 공부를 시작했지만, 커피가 새로운 인생을 살게 만들어줬다고 흐뭇해했다.

최근 광주 남구 빛고을노인건강타운에 위치한 시니어 카페에서 만난 송씨는 커피 기계 앞에서 빠르고 능숙한 손놀림으로 아메리카노를 만들어 냈다.

지난달 28일 광주 남구 빛고을노인건강타운 시니어 카페에서 만난 송영자씨.

송씨가 처음 바리스타를 시작한 것은 남편의 권유에서다. 평생 직장생활 한번 하지 않고 자식들만 키우다 9년 전 아들이 맡긴 손자마저 양육을 끝내고 나니 공허함과 무기력감이 몰려왔다.

이후 3년 동안 집에서만 무기력하게 있는 것을 본 송씨의 남편이 "그렇게 있으면 우울증 걸린다. 차라리 일자리를 구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권유했다.

하지만 그의 결정은 쉽지 않았다. 집안 일만 하던 자신이 '직장 생활을 잘 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우연히 화정3동 주민센터에서 노인 일자리 사업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고, 센터 직원의 적극적인 권유로 바리스타 교육을 받았다.

50여일동안 바리스타 교육을 받는 동안 송씨는 새로운 것을 배우는 재미에 푹 빠졌다. 무엇보다 라떼 아트를 배우며 '이런 작업도 할 수 있게 됐다'는 성취감도 맛봤다고 자랑했다.

송씨는 "할 수 있을지 고민만 하니까 못한 거지, 막상 해보니까 생각보다 쉽게 할 수 있었다"며 "그때부터 아메리카노와 라떼, 허브티도 배우면서 점점 욕심이 생겼다"고 말했다.

3년 전 바리스타 2급 자격증을 취득한 그는 이제는 1급 자격증을 따겠다는 새로운 인상 목표가 생겼다고 하고 자랑했다.

지난달 28일 광주 남구 빛고을노인건강타운 시니어 카페에서 송영자씨가 카페 테이블을 청소하고 있다. .

송씨는 일을 하면서 신체적·감정적으로 건강해졌다고도 했다. 평생 감기나 잔병 치레가 많았는데 바리스타로 활동하면서 아픈 곳이 없다는 것이다. 매일 반복적인 일상에 무기력감을 느꼈던 일상도 새로운 경험과 사람들을 만나면서 극복했다.

송씨는 "조금만 걸어도 무릎이 아픈 날이 많았지만, 일을 하고 나서 오히려 더 튼튼해진 것 같다. 내성적이던 성격도 외향적으로 변했다"며 "변화를 체감하다 보니 나이와 상관없이 아직 많은 것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얻었다.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바리스타로 일하고 싶다"고 전했다.

임장현기자 locco@srb.co.kr

박종익 감독.

"중장년 열정 담을 과정 절실"

아흔이 넘은 어머니와 언제까지 함께 할 수 있을까. 문득 어머니의 기록을 남기고 싶었다.

나이 예순이 넘도록 카메라 한 번 만져보지 못했지만, 어머니를 기록하기 위해 무작정 촬영을 시작했다. 무엇보다 어머니의 모습을 직접 촬영해 남기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박종익(69) 감독은 9년 전, 어머니와 함께 생활하며 일거수일투족을 촬영했다. 큰 아들이 올라온다며 미용실을 들리고, 자식 전화 기다리며 손에서 전화기를 놓지 못하는 모습, 산책을 하다 우연히 만난 상인들과 고스톱을 치는 모습, 무엇 하나 특별하지 않은 일상이었지만 어머니라서 특별했다.

그렇게 찍은 영상물만 수백 시간이었다. 일일이 찾기 힘든 영상을 정리하고 하나의 작업물로 만들기 위해 편집까지 손을 댔다.

영상이야 그냥 찍으면 된다지만, 편집부터는 독학으로 할 수 없었다. 다행히 광주 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 진행하는 영상 제작 관련 교육이 있어 강사들을 쫓아다니며 편집을 배웠다.

결과물로 만들어진 어머니의 기록은 박 감독에게 가장 소중한 보물이 됐다. 그의 영상은 서울국제노인영화제에서 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박 감독은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영상 제작을 시작했다.

지난달 29일 박 감독이 처음 작품 활동을 시작한 광주 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 그를 만났다.

박 감독은 중·장년을 대상으로 하는 영상 제작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어 광주시청자미디어센터를 자주 찾는다. 최근에는 영상 플랫폼 활용이 급증하면서 교육을 원하는 사람도 늘어 교육 프로그램이 부족할 정도다.

박 감독은 "20명으로 진행되는 교육에 32명이 지원하기도 했다"며 "의욕은 젊은 사람 못지 않지만 정작 교육해 줄 사람이 부족한 지경"이라고 말했다.

스마트폰 등을 통해 영상에 대한 접근이 쉬워지면서, 자신의 가족을 촬영하는 것은 물론 물론 영상을 통해 자신의 유언을 남겨 놓으려는 사람도 있었다.

배움에 대한 갈증인지 장년층의 열정은 젊은 사람들보다 크다.

박 감독은 "한 교육생은 영상편집 프로그램을 다루는 법을 물어보기 위해 자정이 다 돼서 전화하는 경우도 있었고, 몸이 불편한 교육생은 영상 기획을 위해 6시간 동안 A4 반 장 정도 타이핑을 해 온 경우도 있었다"며 "의욕으로 가득 찬 사람들이 많은데, 이를 뒷받침해줄 만 한 프로그램이 적어 아쉽다"고 전했다.

그는 "장년층을 대상으로 하는 기초 교육은 비교적 마련돼 있지만 전문성을 갖추기 위한 심화 교육은 진행되지 않아 아쉽다"고 지적했다.

최근 평생 교육이나 노인 일자리 관련 사업에서 IT기술, 빅데이터 분석 등의 이름으로 실시되는 일부 교육들이 스마트폰 이용법과 같이 기초적인 수준에 머물기 때문에 그 이상을 꿈꾸는 장년층은 기회를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박 감독은 최근 인디테일협동조합에 참여해 장년층의 일자리 창출 및 사회 공헌 활동을 하고 있다. 기술 교육을 통해 중장년층의 미디어 활용과 접근성을 늘리고 일자리 창출까지 연결시키는 작업은 물론 박 감독 자신이 '어머니'를 기록한 것처럼 영상 제작 기술이나 예산이 부족한 사람들이 원하는 기록물을 제작해 주는 활동이다.

박 감독은 "교육의 필요성도 공감하지만, 영상을 만드는 게 가장 하고 싶은 일이다"며 "올해는 치매 환자를 돌보는 가족과 그 주변인들의 시선을 영상에 담을 계획이다"고 말했다.

임장현기자 locco@srb.co.kr

시니어모델 신미숙씨.

"예순에 찾은 '너는 내운명'"

쏜살같은 30년이었다. 아들 하나, 딸 둘을 키워내는데 걸린 시간이었다. 장성한 자식들을 떠나보낸 뒤에야 '나'가 보이기 시작했다.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고 자부했는데 뒤돌아보니 헛살았나 싶은 마음이 자꾸만 들었다.

젊을 때부터 직업이 있어 어느 정도 위치에 선 사람들을 볼 때 부러움이 컸다.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생각에 대학 공부를 시작했다. 사이버대학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고 잠시 웃음치료 강사로 활동했다. 그러다 "모델하면 잘 맞을 것 같다"는 주변의 우연한 권유로 지금의 길로 왔다. 어릴적부터 남다른 패션감각을 자랑했던 그는 자신이 가장 재밌고 신나하는 일을 찾았다. 나이 예순에 찾은 운명이었다. 이젠 그의 이름 앞에 '모델'이란 수식이 붙는다. 28일 오후 시니어모델 신미숙(64)씨를 만나 그의 모델 도전기를 들어봤다.

신씨는 "자식들이 출가한 뒤엔 나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며 "그러다 우연히 모델 수업을 들었는데 인생 처음으로 이렇게 재밌는 일이 있다는 걸 알았다. 매일이 신났다"고 말했다.

신씨는 무대 위에서 걷고 포즈를 취할 때면 심장이 떨린다. 관중들 앞에서 당당히 나아갈 때 긴장감과 스릴이란 말로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는 "잘 모르는 사람들이 그냥 걸으면 되는 것 아니냐고 하지만 막상 해보면 쉽지 않다. 해도해도 어렵지만 나를 이만큼 행복하게 하는 일이 없다"며 "모델 일은 여러 수업들을 통해 배웠고 지금은 꾸준히 연습을 통해 무대에 설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코로나19가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시니어모델 신미숙씨가 제4회 UN평화모델광주전남대회에서 수상했다.

그렇다면 마음의 활력소도 되지만 몸도 건강해진다는 시니어모델이 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건 무엇일까? 신씨는 "주변에서 모델일을 어렵게 생각지만 특별한 일이 아니다"면서 "시니어모델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키가 크든 작든, 날씬하든 뚱뚱하든 중요치않다. 자신감과 열정이 첫번째다"고 밝혔다.

이어 "주변에 평생교육원이나 복지시설에 수업이 많다"며 "주변 사람들에게 꿈에는 나이가 없다고 강조한다. 마지막 석양이 더 찬란하고 아름답다"고 강조했다.

삼남매인 자녀들과 사위, 손자들의 응원도 큰 힘이 됐다는 신씨는 "자녀들이 엄마가 행복한 일에는 언제든 찬성해준다"며 "손녀가 나중에 시니어모델이 되겠다는 말을 했다. 어리니까 시니어모델이 뭔지도 모르면서 내가 무대에 서는 모습이 좋아보였나보다"며 뿌듯해했다.

현재 신씨가 활동하고 있는 김대식시니어모델교실에는 30명이 넘는 회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대부분 60대지만 80대 고령도 있다.

그는 "같은 꿈을 이뤄나가는 동료들이 있어 든든하다"면서도 "시니어모델 지역 시장은 취미로 즐길 수 있을 뿐 수익을 기대하기 힘들어 장기간 하는 사람이 드물다. 직장이나 가사 일에서 은퇴 후 제2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꿈과 용기를 가지고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김성희기자 pleasure@srb.co.kr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광주・전남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 교통정보, 미담 등 소소한 이야기들까지 다양한 사연과 영상·사진 등을 제보받습니다. 메일 srb7@hanmail.net전화 062-510-1150카카오톡 플러스친구 '사랑방미디어'

일반 주요뉴스
댓글0
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