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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미얀마 어린이를 지켜주세요
입력 2021.04.06. 10:47 수정 2021.04.06. 20:01 댓글 1개7년 전에 미얀마 여행을 했다. 불과 며칠 간의 짧은 여행이었지만 몇 개의 강렬한 이미지로 기억되는 미얀마는 아직도 너무나 정겹고 순수하기만 하다. 석양빛에 물든 바간(Bagan) 지역의 사원 군락, 인레(Inle) 호수의 청정한 공기와 은빛 억새, 목에 무거운 링을 겹겹이 두르고 베를 짜는 할머니….
특히 에와야디(Ayeyawady)강을 운행하는 유람선을 타고 밍군(Mingun) 유적을 보기 위해 방문했던 지역에서 만난 아이들의 해맑은 미소와 초롱한 눈망울은 결코 잊을 수가 없다. 아니 끝내 잊히지 않으리라. 그것은 시간과 공간을 훌쩍 뛰어넘어 오랫동안 망각했던 우리의 유년기를 통째로 맞닥뜨리게 해 준 시간이었으니까.
이런 순수가 잔혹하게 짓밟히며 처참하게 유린되고 있다. 무도한 쿠데타 세력들이 민주화를 요구하는 국민에게 시대착오적이고 야만적인 폭력을 거침없이 행사하며 점점 더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의 상황으로 치닫게 하고 있다.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확인된 희생자만 해도 500명 이상에 이르고 특히 이 가운데는 어린아이들도 50명 정도 포함되어 있다고 하니 실로 경악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무차별 학살 내지는 테러가 아니고서야 이럴 수가 있는가? 아이들의 시신을 안고 오열하는 부모들의 모습은 차마 형언하기 어려운 슬픔을 안겨준다. 이 아이들에게 무슨 잘못이 있는가?
유엔아동권리협약 제6조를 보면 "모든 아동은 생명을 존중받을 권리를 가지고 있으며, 당사국 정부는 아동의 생존과 발달을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이렇게 볼 때 아동의 생명과 인권을 존중하지 않고 아이들의 안전한 성장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 권력은 스스로 불법 집단임을 애써 자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이들은 물리적 힘을 앞세워 국가 권력을 장악한 폭력 집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이런 참혹한 상황 앞에서 UN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개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어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이미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버린 쿠데타 세력들의 태도 변화를 기대한다는 것도 현실적으로 난망하다. 그것은 마치 악마가 한순간에 천사가 되기를 바라는 것과 같은 무모한 기대이다. 며칠 전 미얀마군 기념식에 주변국 대표들이 참석해서 쿠데타 세력들과 함께 하는 모습도 많은 사람에게 짙은 분노와 인간적 배신감을 자아내게 했다.
지금이라도 더 이상의 살상과 희생은 막아야만 한다. UN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발 벗고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함께 힘을 모아서 인류의 양심과 정의가 도도히 살아있음을 분명히 보여주어야 한다. 5·18민주광장에도 미얀마 민주항쟁 희생자를 추모하는 붉은 리본이 늘어나고 있다.
미얀마 민주화 운동을 지지하고 미얀마 국민과 어린이를 지켜달라는 외침도 광장을 채워가고 있다. 40년의 시차를 넘어 '광주가 미얀마', '미얀마가 광주'로 동일시되고 있다. 80년 광주민주화운동 당시의 상황이 미얀마에서 그대로 재현되는 듯하다. 죽음 앞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들에게서 5·18민주영령들의 모습이 함께 떠오른다. 목숨이 담보되지 않는 절박한 상황 속에서도 나눔과 연대의 정신으로 똘똘 뭉쳐서 하나가 되었던 위대한 광주정신이 외롭게 투쟁하고 있는 미얀마인들에게 큰 힘과 희망으로 작용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우리가 탄 유람선이 하나의 작은 점으로 멀어질 때까지 선착장에서 손을 흔들며 이국의 낯선 여행객들을 배웅하던 아이들의 모습은 단순히 순수라는 단어 하나로 치부하기에는 부족한 감이 있다.
"친구들이여! 잠시 그 지극한 순수를 내려놓고 그대들의 심장을 향해 광란의 총구를 겨누는 저 무리를 절대로 용서하지 마라. 그대들의 민주와 평화를 오롯이 되찾을 때까지 끝까지 포기하지 마라. 그리고 순수와 미소를 당당하게 되찾은 그 날에도 지금의 이 순간을 영원히 잊지도 마라. 핏빛으로 피어나는 4·3의 동백꽃이 지천으로 넘쳐나고, 물결치는 4·16의 노란 리본이, 4·19 학생들의 피맺힌 절규가 아프게 되살아나는 우리들의 4월 속에서 그대들의 눈물겨운 몸부림을 한순간도 잊지 않을게. 미얀마에서 민주와 인권, 정의와 평화의 깃발이 거리낌 없이 나부끼는 그 순간까지."
- <칼럼> 늘봄학교, 우리 아이들의 삶이 없다 '늘봄', 이 얼마나 예쁜 말인가? 봄처럼 포근하고 따사로움이 늘 함께한다는 뜻일 것 같은 '늘봄'. 그러나 이제 이 언어는 그렇게 쓰일 수가 없다.언어의 의미는 사회에서 규정된다. 아무리 좋은 언어라도 사회에서 다른 의미로 사용하기 시작하면, 언어의 오염이 시작되고 결국 그 언어는 이전의 의미로는 쓸 수 없게 된다. 나에게 '늘봄학교'은 '녹색성장'과 같이 그렇게 오염된 채 다가왔다.2024학년도 1학기 광주지역 늘봄학교, 신청에서부터 선정까지 학교 현장 갈등2월 현재 광주에서는 30여개 초등학교가 늘봄학교에 참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신청한 18개 학교 중 중17개교는 협의록이 없으며, 교장 결정 3개교, 교장과 교감이 함께 결정한 학교 1개교, 교장, 교감, 행정실장이 결정한 학교 2개교, 부장교사가 요청하여 승인한 학교 1개교 등 내가 속한 학교지만 어떻게 늘봄이신청되고 선정되었는지를 학교 구성원은 잘 모른다. 그래서 서로 의심하고 속상해한다. 이렇게 늘봄학교는 불필요한 학교 현장 갈등을 양산 시키고 있다.교사? 돌봄전담사? 일반직? 과도한 노동을 강요받고 있어"우리가 일 때문에 늘봄학교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이 말은 늘봄학교 거부의 본질이 업무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은 거겠지만, 노동자에게는 일도 중요하다. 여전히 시간제가 많은 돌봄전담사의 업무도 아니고, 수업과 생활교육이 고유 업무이자 이것만으로도 과도한 노동을 하는 교사의 업무는 더더욱 아니다. 늘봄지원실을 만들어 일반직을 배정한다는 것도 총액인건비제에 묶여있는 공무원 상황을 보면 실현 가능하지 의문이 들고, 기간제에게 맡기는 것 또한 노동의 불안정성을 부추김과 동시에 결국은 기간제 공고부터 선정 관리까지 다시 학교의 업무가 되는 것은 학교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다 안다. 학교의 누군가는 일을 해야 한다. 본연의 업무가 아니라 강요받은 업무를 그것도 과도하게 말이다.가장 중요한 사실, 우리 아이들의 삶이 없는 '늘봄학교'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늘봄학교에는 우리 아이들의 삶이 없다는 것이다. 올해 초 늘봄학교에 대한 기사가 쏟아질 무렵 내 마음을 훅 치는 기사 하나가 있었다. 기사 중에는 지금은 고등학교 2학년이 된 자녀로부터 들은 초등돌봄교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다음과 같다."엄마, 나는 초등학교 때 돌봄교실이 제일 싫었어. 다른 친구들은 학교 끝나면 엄마랑 만나서 놀이터에서 놀고 학원에 가고 집에서 쉬는데, 난 혼자 돌봄교실에 갔어. 나도 다른 애들처럼 엄마랑 만나고 싶었어." 우리 아이들의 삶을 생각한다면 아침 7시부터 밤 8시까지 학교에 있는 게 폭력적일 수 있겠다는 생각 안드는지? 어른들보고 그렇게 있으라고 한다면 아마 대다수 집에 간다고 하지 않을까?늘봄학교에는 주체인 우리 아이들의 목소리는 빠져있고, 즉 아이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에 대한 고민과 사유는 실종되었다.학교, 지자체, 무엇보다 보호자가 우리 아이를 충분히 돌볼 수 있도록필자도 아이를 돌봄교실에 보냈었고, 아이를 맡길 데가 없어서 발을 동동거린 적이 있다. 대한민국 보호자들이라면 다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두 번이라도 했을 것이다. 그때 절실하게 느낀 것이 돌봄의 사회적책임이었고, 학교 현장에 있는 지금도 여전히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돌봄의 사회적 책임은 보호자의 노동권을 보장하기 위해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과 동시에 보호자의 양육권을 보장하기 위한 적절한 노동시간 합의와 양육시간 확보도 해당될 것이다. 후자의 대표적인 것이 소위 '저녁 있는 삶'과 같은 것이다.학교가, 지자체가 함께 우리 아이들을 돌봄과 동시에 보호자가 우리 아이를 충분히 사랑하고 충분히 돌볼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천천히 가더라도 그렇게 가야 우리 아이들의 삶이, 우리들의 삶이 있다.그렇게 간다면 다시 '늘봄', 이 언어의 원래의 의미를 되찾아 진정 우리가 바라는 '늘봄'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정애숙 광주동산초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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