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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스리슬쩍 개헌 안된다
입력 2021.03.15. 09:09 수정 2021.03.16. 08:09 댓글 0개중요한 것은 정부형태가 아니라 어떻게 정부를 운영하는가이다 대통령제로 민주주의를 제대로 못하면서 의원내각제로는 잘 할 수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우리와 함께 제3의 민주화 물결을 탔던 국가들이 대부분 장기집권으로 민주주의에서 멀어졌음을 감안하면 현행 5년 단임 대통령제는 한국 민주주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다
지난 3월4일 박병석 국회의장은 양당 대표와의 회동에서 재보선이 끝나는 대로 개헌논의를 본격화하겠다고 밝혔다. 박 의장이나 이낙연, 김종인 대표 모두 개헌론자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이 모임이 예사롭지 않게 보인다. 박의장의 발언이 청와대 및 여당과 조율을 한 후 나온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180석에 가까운 의석을 지닌 여당이 빵 굽는 것보다도 쉽게 법안을 통과시키고 있어서 개헌도 스리슬쩍 하려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게 된다.
민주화 이후 역대 정부의 임기 말에는 예외 없이 개헌론이 등장했다. 대통령 친인척의 비리가 터져 나오고 대통령의 지지도가 떨어지는 가운데, 개헌론자들은 제왕적 대통령제가 그 원인이라며 분권형 개헌의 애드벌룬을 띄웠고, 정권의 핵심도 이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그렇게 현행 헌법이 문제라면 정권의 지지율이 높을 때에는 왜 분권형 개헌에 나서지 않았는지, 또 왜 권력을 남용해 제왕적 대통령제가 문제라는 비판이 나오도록 했는지 의문이다. 특히 문재인 정부는 대통령의 권력을 더 강화시킬 수 있는 '4년 중임제' 개헌을 시도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임기 말 개헌 시도는 대통령 임기가 끝난 이후에도 정치무대를 떠나지 않고 국회내 자기 세력을 바탕으로 권력을 유지하고자 하는 의도로 해석된다.
대통령의 임기 말에 등장하는 개헌의 주된 내용은 국민이 직접 선출하는 대통령은 외치를, 국회가 선출하는 총리는 내치를 맡자는 소위 '분권형 대통령제'인데, 이는 이름과 달리 분권적이지 않을 뿐 아니라 대통령제도 아니다. 정부형태는 크게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로 나뉘는데, 대통령제는 입법, 행정, 사법이 모두 분립된 체제로 입법부도 행정부도 모두 독립된 선거로 구성한다. 이에 반해 의원내각제는 의회의 다수당(혹은 다수연합)이 내각을 구성하는 것으로 입법과 행정이 융합되어 있다. 따라서 의회 다수당(혹은 다수연합)이 내각을 구성하자는 '분권형 대통령제'는 대통령제가 아니라 의원내각제인 것이며, 의원내각제는 권력을 분산하는 것이 아니라 융합하는 체제다.
'분권형 대통령제' 주창자들은 국민이 직접 대통령을 선출하니 의원내각제가 아니라 대통령제라고 강변하겠지만, 독일과 같이 왕이 없는 의원내각제 국가들도 국민이 직접 대통령을 선출해 국가를 대표하는 역할을 수행하도록 한다는 점에서 옳지 않은 주장이다. 또, 대통령에게 외치를 맡긴다고 하지만, 국회의 다수당을 배경으로 하는 총리에 비교한다면 대통령은 왜소할 수밖에 없으며, 외치와 내치의 구분이 모호하기 때문에 점차 대통령은 정치적 실권이 없는 상징적 역할에 머물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의원내각제적 요소가 강한 프랑스의 준대통령제(semi-presidential system)에서도 의회가 아니라 대통령이 총리에 대한 임명권을 가진다. 다만 프랑스 의회는 총리에 대한 임명동의권에 이어 내각불신임권이 있기 때문에, 여소야대 상황의 대통령이 의회의 동의권과 불신임권을 무력화하기 위해 야당 지도자를 총리로 임명해 동거정부를 구성한 적은 있다. 그러나 프랑스 대통령이 여소야대 상황에서 꼭 동거정부를 구성해야 하는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며, 대통령이 의회를 해산할 수도 있다. 결국 의회가 내각을 구성하자는 '분권형 대통령제'는 대통령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굳이 대통령제라고 네이밍 하는 것은 의원내각제에 대한 국민들의 낮은 지지를 넘기 위한 방편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사실 문재인 정부는 민주화 이후 역대 정부 중 가장 의원내각제적으로 운영되었다. 작년 8월 기준 의원겸직 장관은 37명중 12명으로 32.4%인데, 이는 노무현 정부에서 13.1%, 이명박 정부에서 22.4%, 박근혜 정부에서 23.3%인 것에 비해 월등히 높다. 현재는 정치인 출신 장관의 비중이 더 높아져서 18개부 중 8개부 장관이 의원직을 경험했던 것으로 나타나 44.4%에 달한다. 이것으로도 모자라 당정청간 정책적 소통을 원활히 하기 위해서는 국회의원의 차관급 겸직이 필요하다며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또, 역대 국회의장이 의장의 중립성을 지키기 위해 의장직을 수행하고 나면 정계은퇴 하는 전통을 만들어왔던 것과 달리, 현 정부에서는 국회의장을 지낸 분이 국무총리를 맡고 있다. 공정한 법의 집행을 위해서는 정치적 중립성이 요구되는 법무부 장관마저도 잠재적 대선주자로 간주되던 인물에 이어서 다선의원들이 맡았다.
문재인 정부는 인적으로만 국회와 행정부가 융합된 것이 아니라 정부의 운영에 있어서도 의원내각제적 특징을 보인다. 의원내각제 국가들에는 인사청문회제도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인사청문회 제도를 무시했다. 인사청문회에서 시달린 사람이 일 더 잘한다는 말을 공공연히 하며 청문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은 장관을 역대 정부 중 가장 많이 임명했다. 영국과 같은 양당제 의원내각제에는 정부여당의 법안이 90%이상 통과되는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민주화 이후 만들어져온 의회운영체계, 형사사법체계, 그리고 에너지체계를 대대적으로 변화시키는 입법과 관행의 변경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박범계 법무장관이 대통령의 결재 이전에 인사를 발표했다는 대통령 패싱 논란에서 추론할 수 있듯이 이 정부는 집단지도체제의 성격을 보인다는 점에서도 의원내각제와 유사하게 운영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의원내각제적인 국정운영의 결과는 참혹하다. 350조에 달하는 국가채무 폭증에 이어 실업률은 5%대로 올라섰다. 코로나의 영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문 정부 스스로도 더 이상 말하지 않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실패에 기인한 바 크다. 또, 부동산가격 폭등으로 자산양극화는 더 심화되었고, 막무가내 월성원전 폐쇄로 원전생태계는 망가졌다. 그러나 가장 심각한 것은 재판을 받고 있거나 죄를 범한 혐의로 수사대상이 된 자들이 오히려 검찰개혁, 사법개혁을 하겠다고 나서는 적반하장, 우리 편이면 검찰이 기소를 하거나 수사대상인 자들도 더 높은 자리에 기용하는 초법적 행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정부형태가 아니라 어떻게 정부를 운영하는가이다. 대통령제로 민주주의를 제대로 못하면서 의원내각제로는 잘 할 수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현행 헌법이 완벽하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우리와 함께 제3의 민주화 물결을 탔던 국가들이 대부분 장기집권으로 민주주의에서 멀어졌음을 감안하면 현행 5년 단임 대통령제는 한국 민주주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다.
* 광주·전남 대표 정론지 무등일보는 영남일보(경상), 중부일보(경기), 충청투데이(충청) 등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지역신문사들과 함께 매주 화요일 연합 필진 기고를 게재합니다. 해당 기고는 무등일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칼럼> 나는 증오한다 고로 행복하다 프랑스 작가 에밀 졸라는 "증오란 신성한 것"이라고 했다. 억울하게 간첩 누명을 쓴 드레퓌스라는 사람을 옹호하면서 한 말이다. 아닌게 아니라 사회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신성한 증오'엔 저절로 머리가 수그러진다. 그러나 요즘엔 이런 증오를 보는 게 영 쉽지 않다. 물론 증오를 발산하는 이들은 사회정의를 내세우겠지만, 특정 진영논리에 사로잡히는 순간 그 사회정의는 내로남불의 하위 개념으로 전락하고 만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증오는 대부분 이런 내로남불형 증오다.혹 주변에 증오를 자주 발산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잘 관찰해보시라. 그들은 대부분 옳은 말을 한다. 그게 그렇게까지 욕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선 선뜻 동의하기 어려울망정 비난받아 마땅한 일에 대해 비난하는 것에 대해선 일단 긍정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증오를 자주 접하다보면 그 어떤 일관된 패턴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증오의 대상이 진영 중심으로 어느 한쪽에만 집중돼 있다는 점이다.사적인 자리에선 정치 이야기를 한사코 피하는 사람일지라도 누군가가 불쑥 꺼내는 정치 이야기까지 틀어 막을 수는 없는지라 그냥 들어야 할 때가 있을 게다. 잠자코 들으면서도 속으로는 홀로 이런저런 반론을 제기하고 싶을 게다. "그런 특성은 당신이 추앙하는 사람이 훨씬 더 심한 것 같은데, 왜 이 사람만 비난하지?" 이런 생각을 발설했다간 싸움 나기 십상인지라 그냥 자기 머릿속에서만 반론을 제기해야 한다. 사실 관계가 다른 과장과 왜곡이 섞여 있는 주장일지라도 그걸 지적하는 것조차 위험하다. "음. 선동 전문 유튜브를 많이 보는구나"라고 생각하면서 넘어가는 게 좋다.사회과학자로서의 직업병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평소 공사(公私) 영역에서 그런 증오를 발산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유형을 분류하곤 한다. 아무리 대화를 해봐야 내로남불을 내장하고 있는 진영논리라는 방탄벽을 뚫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절감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분석이나 해보자는 자세로 돌아서서 하게 된 게 유형 분류다. 증오의 이유 중심으로 볼 때에 생존투쟁, 쾌락투쟁, 인정투쟁, 이익투쟁의 네가지로 나눌 수 있었다.첫째, 생존투쟁은 자신이 살기 위해서 하는 증오다. 미국 작가 에릭 호퍼는 "열정적인 증오는 공허한 삶에 의미와 목적을 줄 수 있다"고 했는데,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의 강성 지지자들 중에 이런 유형의 사람들이 많다. 삶의 공허함은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 아닌가. 그런데 국가와 민족이라는 거대한 차원에서 격렬하게 증오할 대상을 찾아 증오의 발산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건 자신의 사회적 쓸모와 중요성을 확인하면서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의로운 일이 된다. 어느 정당에서건 강성 지지자들의 진정성과 열정이 감동을 자아내게 할 정도로 강할지라도 그들의 주장대로만 가면 당은 망할 수밖에 없는 역설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에게 우선적인 건 자기 삶의 의미와 목적이지, 그마저 희생해가면서 당의 성공을 바라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둘째, 쾌락투쟁은 자신의 즐거운 쾌감을 위해 하는 증오다. "증오와 사랑은 같은 호르몬을 유발하는 것 같다." 영국 소설가 그래함 그린의 말이다. 이 주장을 입증하겠다는 듯 미국 정신분석학자 오토 케른베르크는 '즐거움으로서의 증오'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격노에서 파생된 증오는 매우 유쾌한 공격적 행동을 낳을 수 있다. 다른 이에게 고통, 수치심, 아픔을 유발함으로써 느끼는 가학적 쾌감, 다른 이의 가치를 깎아내림으로써 얻어지는 환희가 그것이다." 공적 영역에서건 사적 영역에서건 진정성과 열정을 갖고 증오의 언어를 내뿜는 사람들의 얼굴을 본 적이 있는가? 그런 얼굴들만 모아 그림으로 보여줄 수 없는 게 안타깝다. 그들은 개인적으론 쾌감을 느끼며 행복해하는 엑스터시(ecstasy)의 경지에 이르렀겠지만, 문제는 그런 엑스터시를 모르는 사람들과의 소통은 불가능하다는 점일 게다.셋째, 인정투쟁은 자신의 소속 집단에서 인정을 받기 위해 하는 증오다. 그 집단이 비공식 집단이며 느슨하게 구성돼 있을지라도 한 개인의 일상적 삶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라면 위계질서가 엄격한 공식 집단 이상의 영향력과 규제력을 행사할 수 있다. 그 집단의 구성원들이 이구동성으로 증오하는 대상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갖고 있으면 외로워질 뿐만 아니라 정도가 심해지면 왕따를 당할 수도 있다. 테레사 수녀는 "가장 나쁜 병은 나병도 결핵도 아니다. 아무도 존경하지 않고 아무도 사랑해주지 않고, 배척받고 있다는 느낌이 가장 나쁜 것이다"고 했다. 사실 배척받고 있다는 느낌은 공포다. 그런 공포를 피하는 건 물론이고 무난한 인간관계를 위해서라도 증오 발산의 대열에 동참해야 한다.넷째, 이익투쟁은 자신의 현실적인 이익을 위해 하는 증오다. 이는 증오를 팔아 돈을 버는 일부 언론과 유튜브 등 이른바 '정치군수업자들'의 선전·선동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선전·선동을 사회정의로 포장하는 '증오 마케팅' 능력이 워낙 탁월해 정의에 목 마른 신도들로부터 적잖은 헌금을 거둬들인다. 특정 정당이 막강한 지배력을 행사하는 지역으로 내려가면 반대 정당이나 진영에 대해 "누가 더 강한 증오와 혐오의 언어로 공격하나?"를 겨루는 경쟁이 벌어진다. 그런 풍토에선 개인이나 자영업자에게도 증오를 표현하는 건 먹고 사는 문제와 무관할 수 없는 일이 된다. 모두가 다 증오의 방향으로 뛰면 그 증오의 심정과 언어를 공유하면서 따라 뛰어야만 무난하게 살아갈 수 있다.이렇듯 우리 사회에선 자기 진영의 이익과 그 진영에 소속된 사람들의 여러 개인적인 이유들로 인해 증오를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나는 증오한다 고로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시사하는 것이어서,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사람이 어렴풋한 수준일지라도 소속 진영 없이 살아가기는 어려운 일인데다 팔은 안으로 굽기 마련이라는 걸 부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정치권의 고질병인 내로남불이 일반 시민들의 일상적 삶에까지 파고 들어 생활화되는 걸 당연하다고 여길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 모두 그 누구도 증오하지 않음으로써 행복해지는 길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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