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마사회,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 건전화 평가 A등급뉴시스
- 조국혁신당 박은정 남편, 거액 수임 논란에 "모든 사건서 사임하겠다"뉴시스
- 슬리피, 결혼 2년만 득녀···"산모·아기 모두 건강"뉴시스
- 한국마사회, 말산업 분야 신규 인력 인건비 지원 사업체 공모뉴시스
- '수백억대 리베이트' 혐의 경보제약 임원 구속영장 기각뉴시스
- 윤, 미 의원단 접견 "한국 기업 지원 관심을" 의원들 "한미관계 역대 최고"뉴시스
- 양문석. 지역유세서 "편법대출 진심으로 사과···잠적? 가짜뉴스"뉴시스
- TV토론서 '제주 2공항' 놓고 날 선 공방 벌인 여야 후보뉴시스
- 손흥민, 토트넘과 동행 이어가나···"재계약 전망 밝아"뉴시스
- 돌아온 '괴물' 류현진, 6이닝 9K 2실점···승리는 다음에뉴시스
<칼럼> 공무원의 영혼을 위하여
입력 2021.02.08. 15:31 수정 2021.02.09. 08:35 댓글 0개독일 작가 헤르만 헤세는 "우리는 인간이 놀라울만큼 지성을 계발하고도 자기 영혼을 지배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며 "당신의 영혼에게 물어라!"고 권한다. 돈 때문에 영혼을 팔아버리거나, 출세를 위해서 영혼을 배신한다면 영혼은 당신을 심하게 나무랄 것이라는 경고를 덧붙인다. 아름다운 말이지만, 영혼이 호구지책엔 방해가 되는 게 현실임을 어이하랴.
"출근하면서 영혼을 사물함에 넣어두고, 퇴근하면서 영혼을 다시 꺼내오는 것 같다." 우석훈 씨의 '민주주의는 회사 문 앞에서 멈춘다'에 인용된 어느 대기업 직원의 말이다. 공무원도 노동자 못지 않게 영혼 문제로 시달린다. 공무원은 자주 '영혼 없는 공무원'이라는 비아냥을 듣곤 하지만, 그게 어디 공무원 탓인가. 공무원이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견뎌낼 수 없게끔 무슨 일에서건 절대 복종을 요구하는 권력이 문제일 게다.
사실 공무원의 영혼 문제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등장하곤 했던 해묵은 이슈다. 이게 가장 화제가 되었던 때는 국정홍보처 2급 이하 간부들이 이명박 대통령직인수위 업무보고에 나와 "우리는 영혼 없는 공무원"이라고 말했던 2008년 1월이었다. 노무현 정권 동안 국정홍보처가 주도했던 언론개혁 시도에 대해 인수위가 비판을 하자 "대통령 중심제 아래에선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며 한 말이다. 그러자 언론은 앞다투어 '영혼 있는 공무원'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나섰다.
2009년 2월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재정부 공무원은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키는 보루인 만큼 '영혼'을 가져도 좋다"고 했다. 그는 10월 중앙부처 실국장 워크숍에선 "30여 년간 공직생활을 하면서 가장 모욕적인 질문은 '공무원이 혼이 있느냐'는 것"이라며 "그런 얘기를 들으면 울분을 느꼈다"고 말했다.
공무원들의 그런 울분에 공감했던 걸까? 아니면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 사건을 거치면서 공무원에게 영혼이 없으면 안되겠다고 생각했던 걸까? 2017년 8월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후 첫 정부 부처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공직자는 국민과 함께 깨어 있는 존재가 돼야지, 그저 정권의 뜻에 맞추는 영혼 없는 공무원이 돼선 안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어디 그뿐인가. 집권 초기 여당은 공무원 불복종권을 위한 법 개정까지 추진했다. 민주당 기동민 의원은 새 정부 출범도 하기 전인 2017년 1월 "직무상 명령이 위법한 경우 복종을 거부해야 한다"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정부 출범 후엔 인사혁신처가 개정안을 주도해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의결까지 받았다. "공무원은 직무를 수행할 때 소속 상관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하여야 한다"는 국가공무원법 57조에 "상관의 명령이 명백히 위법한 경우 이의를 제기하거나 따르지 않을 수 있으며 이로 인하여 어떠한 인사상 불이익도 받지 않는다"는 문구가 추가됐다. 어떻게 됐을까? 법 적용이 쉽지 않다는 이유로 이 문구는 국회에서 실종되고 말았다(중앙일보, 2020년 11월 6일).
한바탕 쇼로 끝나고 말았지만, 가볍게 웃고 넘어가도 좋을 일은 아니었다. 이후 문 정권은 공무원의 '복종 의무'를 강조하면서 공무원의 영혼을 강력히 통제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으니 말이다. 물론 무작정 비판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정권의 입장에선 사안에 따라 공무원의 영혼을 지켜주기 어려운 나름의 고충이 있을 게다. 현재진행형인 '월성 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 사건'과 '김학의 출금 공문 조작 의혹 사건'도 그렇게 이해하고 넘어가야 할까? 그럴 수 없는 게 안타깝다. 이 두 사건은 일견 사소하게 보이지만, 공무원들의 준법 자율성을 말살해 그들을 '영혼 없는 꼭두각시'로 만드는 중대 범죄행위일 수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문 정권은 스스로 '선한 정권'이라고 자부하는 탓인지 절차적 정당성에 매우 둔감하다. 절차적 정당성을 어긴 일에 대한 감사원 감사나 검찰 수사에 대해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 운운하면서 큰소리를 치는 적반하장(賊反荷杖)을 보이기도 한다. 절차적 정당성은 때론 거추장스럽고 짜증나는 일이기도 하지만, 법치를 하지 않겠다면 모를까 그걸 하겠다면 반드시 지켜야 한다. 절차적 정당성은 악하고 불의한 일에만 적용하고 선하고 정의로운 일엔 좀 무시해도 되는 게 아니냐는 생각은 내로남불의 극치일 뿐 보편적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공무원의 영혼 문제에 대해선 우리 모두 좀더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이 문제가 자주 정파싸움의 성격을 갖기에 하는 말이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권이 공무원의 영혼을 죽이면 '관료 개혁'이라고 하면서 반대하는 정권이 공무원의 영혼을 죽이면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이는 게 우리 현실 아닌가. 이런 식으로 내로남불을 저지르다 보면 이 문제는 영영 겉돌면서 바람직한 해법을 찾기가 어려워진다.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진리다. 세상에 전적으로 나쁘거나 전적으로 좋은 것도 없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반드시 치러야 할 비용이 있다는 뜻이다. 공무원의 영혼을 지켜주는 일도 명암(明暗)이 있는 것이지 무조건 좋거나 나쁜 게 아니다. 정권은 공무원이 영혼을 갖게 되면 통제가 어려워진다는 점을 걱정할 것이다. 정당한 우려지만, 통제에만 집착하면 더 큰 걸 놓치게 된다.
영혼은 홀로 사라지는 게 아니다. 공복(公僕) 의식은 물론 자율성과 창의성도 동시에 사라진다. 대통령이 한마디만 했다 하면, 별 실속도 없는 대통령의 심기 경호를 위한 일에 불법도 불사하는 공무원의 충성심에 흐뭇해 하는 순간 공무원 조직은 이른바 '무사안일·복지부동·철밥통'의 수렁으로 빠져 들고 만다. 통제에 대한 집착은 국익보다는 정권이익에 더 신경쓸 때에 강해지는 법이다.
공무원 수를 늘리는 데에 적극적인 문 정권이 부디 '양보다는 질'이라는 차원에서 공무원의 영혼 문제에 대해서도 고민해주면 좋겠다. 청와대가 중앙부처들을 틀어쥐고 호령하는 '청와대 정부' 모델을 바꾸지 않고선 기대하기 어려울망정, 공무원에게 불법의 경계를 넘나드는 일만큼은 시키지 말아야 한다. 공무원이 개혁에 능동적으로 임할 수 있는 변화를 위해, 4년 전 문 대통령이 갈파했던 "영혼 없는 공무원이 돼선 안 될 것"이라는 명언이 부디 빈말이 아니었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 광주·전남 대표 정론지 무등일보는 영남일보(경상), 중부일보(경기), 충청투데이(충청), 제민일보(제주) 등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지역신문사들과 함께 매주 화요일 연합 필진 기고를 게재합니다. 해당 기고는 무등일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칼럼> 나는 증오한다 고로 행복하다 프랑스 작가 에밀 졸라는 "증오란 신성한 것"이라고 했다. 억울하게 간첩 누명을 쓴 드레퓌스라는 사람을 옹호하면서 한 말이다. 아닌게 아니라 사회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신성한 증오'엔 저절로 머리가 수그러진다. 그러나 요즘엔 이런 증오를 보는 게 영 쉽지 않다. 물론 증오를 발산하는 이들은 사회정의를 내세우겠지만, 특정 진영논리에 사로잡히는 순간 그 사회정의는 내로남불의 하위 개념으로 전락하고 만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증오는 대부분 이런 내로남불형 증오다.혹 주변에 증오를 자주 발산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잘 관찰해보시라. 그들은 대부분 옳은 말을 한다. 그게 그렇게까지 욕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선 선뜻 동의하기 어려울망정 비난받아 마땅한 일에 대해 비난하는 것에 대해선 일단 긍정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증오를 자주 접하다보면 그 어떤 일관된 패턴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증오의 대상이 진영 중심으로 어느 한쪽에만 집중돼 있다는 점이다.사적인 자리에선 정치 이야기를 한사코 피하는 사람일지라도 누군가가 불쑥 꺼내는 정치 이야기까지 틀어 막을 수는 없는지라 그냥 들어야 할 때가 있을 게다. 잠자코 들으면서도 속으로는 홀로 이런저런 반론을 제기하고 싶을 게다. "그런 특성은 당신이 추앙하는 사람이 훨씬 더 심한 것 같은데, 왜 이 사람만 비난하지?" 이런 생각을 발설했다간 싸움 나기 십상인지라 그냥 자기 머릿속에서만 반론을 제기해야 한다. 사실 관계가 다른 과장과 왜곡이 섞여 있는 주장일지라도 그걸 지적하는 것조차 위험하다. "음. 선동 전문 유튜브를 많이 보는구나"라고 생각하면서 넘어가는 게 좋다.사회과학자로서의 직업병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평소 공사(公私) 영역에서 그런 증오를 발산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유형을 분류하곤 한다. 아무리 대화를 해봐야 내로남불을 내장하고 있는 진영논리라는 방탄벽을 뚫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절감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분석이나 해보자는 자세로 돌아서서 하게 된 게 유형 분류다. 증오의 이유 중심으로 볼 때에 생존투쟁, 쾌락투쟁, 인정투쟁, 이익투쟁의 네가지로 나눌 수 있었다.첫째, 생존투쟁은 자신이 살기 위해서 하는 증오다. 미국 작가 에릭 호퍼는 "열정적인 증오는 공허한 삶에 의미와 목적을 줄 수 있다"고 했는데,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의 강성 지지자들 중에 이런 유형의 사람들이 많다. 삶의 공허함은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 아닌가. 그런데 국가와 민족이라는 거대한 차원에서 격렬하게 증오할 대상을 찾아 증오의 발산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건 자신의 사회적 쓸모와 중요성을 확인하면서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의로운 일이 된다. 어느 정당에서건 강성 지지자들의 진정성과 열정이 감동을 자아내게 할 정도로 강할지라도 그들의 주장대로만 가면 당은 망할 수밖에 없는 역설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에게 우선적인 건 자기 삶의 의미와 목적이지, 그마저 희생해가면서 당의 성공을 바라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둘째, 쾌락투쟁은 자신의 즐거운 쾌감을 위해 하는 증오다. "증오와 사랑은 같은 호르몬을 유발하는 것 같다." 영국 소설가 그래함 그린의 말이다. 이 주장을 입증하겠다는 듯 미국 정신분석학자 오토 케른베르크는 '즐거움으로서의 증오'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격노에서 파생된 증오는 매우 유쾌한 공격적 행동을 낳을 수 있다. 다른 이에게 고통, 수치심, 아픔을 유발함으로써 느끼는 가학적 쾌감, 다른 이의 가치를 깎아내림으로써 얻어지는 환희가 그것이다." 공적 영역에서건 사적 영역에서건 진정성과 열정을 갖고 증오의 언어를 내뿜는 사람들의 얼굴을 본 적이 있는가? 그런 얼굴들만 모아 그림으로 보여줄 수 없는 게 안타깝다. 그들은 개인적으론 쾌감을 느끼며 행복해하는 엑스터시(ecstasy)의 경지에 이르렀겠지만, 문제는 그런 엑스터시를 모르는 사람들과의 소통은 불가능하다는 점일 게다.셋째, 인정투쟁은 자신의 소속 집단에서 인정을 받기 위해 하는 증오다. 그 집단이 비공식 집단이며 느슨하게 구성돼 있을지라도 한 개인의 일상적 삶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라면 위계질서가 엄격한 공식 집단 이상의 영향력과 규제력을 행사할 수 있다. 그 집단의 구성원들이 이구동성으로 증오하는 대상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갖고 있으면 외로워질 뿐만 아니라 정도가 심해지면 왕따를 당할 수도 있다. 테레사 수녀는 "가장 나쁜 병은 나병도 결핵도 아니다. 아무도 존경하지 않고 아무도 사랑해주지 않고, 배척받고 있다는 느낌이 가장 나쁜 것이다"고 했다. 사실 배척받고 있다는 느낌은 공포다. 그런 공포를 피하는 건 물론이고 무난한 인간관계를 위해서라도 증오 발산의 대열에 동참해야 한다.넷째, 이익투쟁은 자신의 현실적인 이익을 위해 하는 증오다. 이는 증오를 팔아 돈을 버는 일부 언론과 유튜브 등 이른바 '정치군수업자들'의 선전·선동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선전·선동을 사회정의로 포장하는 '증오 마케팅' 능력이 워낙 탁월해 정의에 목 마른 신도들로부터 적잖은 헌금을 거둬들인다. 특정 정당이 막강한 지배력을 행사하는 지역으로 내려가면 반대 정당이나 진영에 대해 "누가 더 강한 증오와 혐오의 언어로 공격하나?"를 겨루는 경쟁이 벌어진다. 그런 풍토에선 개인이나 자영업자에게도 증오를 표현하는 건 먹고 사는 문제와 무관할 수 없는 일이 된다. 모두가 다 증오의 방향으로 뛰면 그 증오의 심정과 언어를 공유하면서 따라 뛰어야만 무난하게 살아갈 수 있다.이렇듯 우리 사회에선 자기 진영의 이익과 그 진영에 소속된 사람들의 여러 개인적인 이유들로 인해 증오를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나는 증오한다 고로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시사하는 것이어서,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사람이 어렴풋한 수준일지라도 소속 진영 없이 살아가기는 어려운 일인데다 팔은 안으로 굽기 마련이라는 걸 부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정치권의 고질병인 내로남불이 일반 시민들의 일상적 삶에까지 파고 들어 생활화되는 걸 당연하다고 여길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 모두 그 누구도 증오하지 않음으로써 행복해지는 길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 · <칼럼> 자연에 대한 받듬과 존중의 태도
- · <칼럼> '가족주의'의 역설
- · <칼럼> 섬세해야 민주주의다
- · <칼럼> 지역균형발전이라는 국민사기극
- 1광주시가 알려주는 '벚꽃 명당' 어디?..
- 2밤에 열린 순천만국가정원 '나이트 가든투어' 시범 운영..
- 3[3월 4주] 사랑방 추천! 이달의 분양정보..
- 4DN솔루션즈, SIMTOS 2024에서 최첨단 공작기계 홍보..
- 5회식 후 갑자기 사라진 남편···범인들의 정체는?..
- 6이정현 "식사 잘 못하는 ♥의사 남편, 도시락 2개 챙겨"..
- 7광주 2월 대형마트 중심 소비↑ 반면 건설수주 94%↓..
- 8초1 금쪽이 "6년째 외할머니와 살아···엄마는 '영상 통화'로..
- 9조국, 한동훈 '정치 개 같이' 발언에 "한 마디로 조금 켕기는..
- 10HJ중공업 건설부문, 김완석 신임 대표이사 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