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칼럼> 딸 숨진 뒤 유족급여 챙긴 친모의 몰염치 바라만 볼 것인가

입력 2020.06.30. 11:02 수정 2020.06.30. 19:23 댓글 0개
임화영 법조칼럼 변호사(법무법인 무등 종합법률)

소방관 딸이 순직하자 32년만에 나타나 유족 급여로 8천만 원 정도를 타간 생모가 양육비로 7천 700만원을 친부에게 되돌려 주게 됐다. 가수 고(故) 구하라씨의 유산을 둘러싼 구씨 오빠와 친모 간 법적 다툼과 유사해 '전북판 구하라 사건'으로 불렸던 이 사건에 대해 법원은 "딸들을 홀로 키운 전 남편에게 1988년 3월 29일부터 자녀들이 성년에 이르기 전날까지 과거 양육비를 지급하라"고 판결 한 것이다. 법원이 수십년간 자녀를 방치한 친모에게 최소한의 책임을 물은 것으로 주목된다.

법률상담을 진행하다 보면 "수십 년 동안 받지 못한 양육비를 받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결론부터 말해서 부모들의 협의나 가정법원의 심판이 없었다면 10년이 넘은 양육비도 받을 수 있다. 위 판결에서도 친모에게 전 남편이 두 딸을 양육하기 시작한 1988년부터 두 딸이 성년에 이르기 전날까지 밀린 양육비를 지급하도록 했다.

그렇다면 과거 양육비는 얼마나 받을 수 있는 것일까. 판례는 몇 가지 기준을 들고 있다. ▲자녀를 홀로 돌보게 된 양육자가 자녀를 양육하게 된 경위 ▲ 양육에 들어간 비용▲ 상대방이 부양 의무를 인식하였는지 여부와 시기 ▲들어간 비용이 양육에 소요된 통상의 생활비인지 불가피하게 소요된 비용(치료비)인지 여부▲당사자들의 재산상황이나 경제적 능력 등에 비춘 형평성등을 따져 양육비를 산정하게 된다.

이같은 기준을 적용하면 과거 양육비는 통상 우리가 알고 있는 장래 양육비보다 적게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 지금까지 어렵사리 홀로 자녀를 양육해 왔는데 생각보다 적은 양육비는 키운 입장에서 보면 억울 할 수도 있다. 미리 청구했더라면 더 받을 수 있었을 텐데 들어간 비용에 비해 양육비가 적은 것이 자기 탓이라 한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상대방 입장에서는 예상하지 못했던 양육비를 일시에 부담하게 돼 순순히 양육비를 부담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많지 않다. 되려 형평성 등을 이유로 과거 양육비 범위를 깎아내리려 드는 것이 오늘날 세태다. 전북판 구하라 판결에서도 전 남편은 친모를 상대로 1억 9천만 원 상당의 과거 양육비를 청구했으나 실제 인정된 금액은 청구 금액의 30%에도 미치지 못하는 약 7천700만원에 불과 했다. 그만큼 과거 양육비를 맘같이 받아내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결론이다.

많은 사람들이 '전북판 구하라 사건'을 계기로 자녀 양육을 방치한 부모에게 과거 양육비를 어느 정도 받아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돼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이 사건은 양육비 청구 소송인 탓에 자녀를 돌보지 않고 내팽개친 부모가 불쑥 나타나 자녀 유산을 달라는 문제까진 해결해 주지 못했다. 친부모의 사망한 자녀에 대한 유산 상속 논란에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사실이 여전히 숙제로 남았다.

수십년 전 구하라 곁을 떠나 자녀 양육에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은 친모가 구하라 재산 100억대의 50%를 상속받는다는데 누구나 분노하고 있다. 하지만 현행법으로는 어쩔수 없다. 결국 해결책은 법을 바꿔야 한다. 민법 상 유산 상속 결격 사유에 '직계존속 또는 직계비속에 대한 보호 내지 부양의무를 현저히 게을리한 자'를 추가하는 등의 입법적 개선책이 나와야 한다.

그러지 않고는 자식을 버린 부모가 수십년이 지난뒤 불쑥 자식 재산을 상속받으려 해도 멀건히 바라만 봐야 한다. 자녀를 방치한 부모가 무슨 훈장이나 되는 것처럼 남은 재산을 상속받는 몰염치를 언제까지 가슴쓰리게 바라만 봐야 하는가. 자식을 버린 부모까지 챙기기에는 국민의 법 감정이 너무 멀리 있다. 이번에 들끓는 민심을 반영해 국회에서도 심도 있는 논의가 진행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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