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봤더니

서정적인 겨울 풍경 따라 숲속을 소요하다

여행/공연곡성 태안사 숲길

사랑방신문·광주매일신문·광주평화방송 공동기획

남도 힐링 명소를 찾아서

 

오르막길 내리막길 없이 평탄한 오솔길
산줄기 병풍처럼 펼쳐져 겨울바람 포근해
세상 시름 내려놓으니 여유가 자연스레

 

겨울 어귀에서 만난 곡성 태안사 숲길은 너무도 소쇄했다. 아무 속박 없이 고요했으며, 우렁우렁한 계곡 물소리만이 적막을 깨워 흔들었다.


이 길을 따라 쭈~욱~ 올라가면 어떤 세계와 마주하게 될까. 굽이굽이 펼쳐진 오솔길을 향해 찬찬히 걸음을 옮긴다. 한 걸음 두 걸음 내디딜수록 속세에서는 미처 만나지 못했던 유유자적한 풍경들이 서서히 눈에 들어오는데… 마침내 피안의 세계에 접어드는 순간이다.

 

곡성 태안사를 향해 펼쳐진 숲길은 2km 남짓한 거리로 흙과 자갈이 섞인 비포장길이다.


그 길의 폭은 차 한 대가 지나갈 정도로 넉넉하여 차를 타고 훌쩍 올라가버릴 수 있지만, 서정적인 겨울풍경이 여행자들의 옷깃을 붙잡아 끈다. 이 때문에 자연스레 차에서 내릴 수밖에 없다.


절집에 이르기까지 오르막길도 내리막길도 없는 평탄한 오솔길이 이어진다. 어린 아이도 나이가 지긋한 노인들도 쉬이 걸을 수 있을 만큼 가파르지 않은 게 태안사 숲길만의 매력이다.


숲길의 시작은 자유교라는 다리를 건너면서부터다. 이때부터는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번뇌를 떨쳐내고 속세와 멀어질 마음의 채비만 하면 된다.


숲속에 깃든 자연의 소소한 움직임이 청각을 자극한다. 크고 작은 바위 틈 사이로 흘러내리는 계곡물은 걸림 하나 없이 부드럽다.


앙상한 나뭇가지마다 하나 둘 매달려 있는 애처로운 나뭇잎들 사이로 스쳐가는 겨울바람 소리마저 정겹다.


길섶으로 나란히 낙엽들이 누워 있다. 겨울바람에, 그리고 사람들 발길에 치여 길 가장자리로 가만히 물러나 있다. 바스락 바스락 발밑으로 낙엽 밟는 소리가 경쾌하다. 


쓰읍~ 하아~ 큰 숨 한 번 쉬었더니 나무냄새, 흙냄새가 콧속으로 쑥 들어온다. 싱그럽진 않지만 구수한 향내가 은은하게 퍼진다.


바람이 콧잔등을 스친다. 시큰하기보다 제법 포근한 바람이다. 사방을 산줄기가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어 겨울바람조차 부드럽고 따스하다. 아마도 산봉우리를 넘으며 세찬 기운이 한 풀 꺾인 게 아닐는지.

 


얼마나 걸었을까. 자연에 한참 젖어들 때쯤 계곡 위에 걸린 ‘능파각(凌波閣)’이 어서 오라고 여행자를 마중한다.


능파각은 계곡 양쪽 바위에 석축을 쌓고 그 위에 세운 건물로 신라 문성왕 때 만들어졌다고 전해진다. 한국전쟁 때도 소실되지 않고 여순사건 때도 살아남은 위풍당당한 기세가 그대로 묻어난다. 겉모습을 보아 하니 다리 같기도 한 것이 정자인 것 같기도 하다. 가볍고 우아하게 걷는 걸음걸이를 뜻하는 ‘능파’란 이름을 붙여 만들었다는데, 태안사에 접어들기 전 한 오라기 남은 미련마저 털어버릴 수 있는 최종 관문인 셈이다.


능파각을 지나면 또 하나의 터널을 만나게 된다. 바로 나무숲이다. 이곳 나무들은 하나 같이 덩치가 커 아늑하다. 오랜 시간 동안 자기 몸을 키우기 위해 그 자리에서 그렇게 지키고 있었을 터, 인고의 세월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세월의 이끼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일주문을 넘어서니, 유유자적한 태안사 절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봉두산 서쪽 자락에 살포시 안긴 태안사는 742년 3명의 신승이 창건하여 ‘대안사(大安寺)’라고 칭했다. 이후 혜철대사가 절을 크게 일으켰고 ‘태안사(泰安寺)’로 이름을 갈았다. 하지만 지금 모습이 그때의 모습은 아니다. 한국전쟁 시절 능파각과 일주문을 제외한 15채의 건물이 화마에 사라졌기 때문이다. 오늘날 매끈하게 자리잡은 건물들은 복원을 통해 새롭게 탄생한 것이다.  


태안사 앞마당에는 원형의 연못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연못 가운데는 부처의 사리를 간직한 삼층석탑이 우뚝 솟아 있다. 이따금씩 부는 고운 바람에 일렁이는 물결도 아름답다.


숲길을 따라 거꾸로 내려오는 길은 아쉬움에 발길 떼기가 쉽지 않다. 마음속에 품었던 풍경 하나하나 기억하리. 다시 속세로 회귀하거들랑 깨끗이 비웠던 마음속에 새로운 무언가를 또 다시 차곡차곡 채워 나가겠지.


바쁠수록 돌아가라. ‘마음의 여유’는 우리가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볼 수 있게 해준다. 여유는 잠시라도 짐을 내려놓는 찰나에 다가온다.

 

■ 한 시인의 생애와 숨결이 오롯이 ‘조태일시문학기념관’

 

태안사 숲길에 들어서자마자 만나게 되는 멋스러운 목조건물이 ‘조태일시문학기념관’이다.


조태일 시인은 억압된 현실에 맞선 저항시인이자 서정시인이었다. 196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문단에 등장한 뒤 수많은 후학을 길러냈다.


이러한 조 시인을 기리는 기념관이 태안사 가는 길에 있는 이유는 이곳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태안사 대처승의 아들로 태어났다. 이후 잠시 고향을 떠났지만, 결국엔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30년 만에 고향땅 곡성으로 내려오게 됐다. 즉, 곡성은 조태일 문학의 처음과 끝이 완성된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조태일시문학기념관은 최소한의 건축적 기능만 할 수 있도록 군더더기 없이 만들었다. 마치 시인의 심성을 닮은 듯하다.


이곳은 기념관과 시집관으로 구성돼 조 시인의 육필 원고와 유품을 전시해놓고 있다.


특히 목구조로 구축된 기다란 기념관동은 동서로 드러누워 있다. 서쪽 끝은 땅속을 향해 뿌리 내리고 동쪽 끝은 몸을 들어 땅위를 굽어보는 강인한 의지의 표현인 동시에 그의 민중성이 담겨 있다.


풀씨가 날아다니다 멈추는 곳/그곳이 나의 고향/그곳에 묻히리//햇볕 하염없이 뛰노는 언덕빼기면 어떻고/소나기 쏜살같이 꽂히는 시냇가면 어떠리/온갖 짐승 제멋에 뛰노는 산속이면 어떻고/노오란 미꾸라지 꾸물대는 진흙밭이면 어떠리//풀씨가 날아다니다/멈출 곳 없어 언제까지나 떠다니는 길목/그곳이면 어떠리/그곳이 나의 고향/그곳에 묻히리// -조태일의 ‘풀씨’


누구에게나 그리운 고향이 있다. 조 시인의 ‘풀씨’를 읊조리니 문득 사무치게 고향에 가고 싶어진다.

 

*개관시간: 화요일~일요일
-4~9월: 오전 9시~오후 6시
-10~3월: 오전 9시~오후 5시
*휴무: 매주 월요일, 법정 공휴일
*문의: 061-362-5868

 

<글·사진 김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