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봤더니

무등산 자락 첫 동네…무심한 세월이 품어낸 고즈넉한 풍경들

여행/공연화순 이서면 영신마을

사랑방신문·광주매일신문·광주평화방송 공동기획

남도 힐링 명소를 찾아서

600여 년 돌담과 옛 빨래터 등 고스란히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로 선정
마사회 등 후원 8일 문화·나눔축제 열려

울긋불긋한 단풍 위로 폭설이 소복이 내려앉았다. 화순군 이서면 영신마을을 가다 보면 흡사 드라이브 명소로 손색이 없는 아름다움에 사로잡힌다. 장엄한 무등산 국립공원을 휘감아 구불구불 돌아가는 도로 옆으로 설국의 장관이 펼쳐져 있다. 무념무상이다.

화사하게 꽃피는 철에도, 푸르름이 짙어가는 시기에도, 단풍이 절정인 때에도…, 아마도 사계절 내내 유혹의 손길을 뻗칠 것 같은 풍광을 한껏 자랑한다.

무등산의 255m 지점에 위치한 첫 동네는 하얀 눈 속에 가둬진, 한 폭의 그림처럼 신비로움을 더하고 있다. 주상절리에 둘러싸인 규봉암의 전망은 탄성을 지르게 한다. 완벽한 자연과의 조화로움에 감탄사가 터진다.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이다.

주금숙 아름다운마을위원장은 “눈이 오거나 비가 오거나 또 햇살이 들거나, 시시각각으로 놀라운 경관을 연출한다”며 “혼자 있어도 좋고 그림을 그리고 음악 듣기에도 안성맞춤이다”고 소개했다. 실제로 65가구 110여 명이 거주하는 이곳은 예술가들이 적잖이 입주해 있다.

규봉암·무돌길 연결…자연과 조화

소가 드러누운 형상의 마을은 바람과 비와 햇볕에 자연스럽게 세월을 덧입고 있는 나무처럼 인위적이지 않아 매력적이다.

600년 전 무수히 이어진 돌담은 집과 집 사이 경계로, 길과 길 사이 경계로, 작은 밭 사이 경계를 이루며 제법 멋스럽다. 각기 다른 모양의 돌들이 나름의 질서로 튼실하게 자리를 틀고 있다.

돌이 많은 무등산 곳곳에서 손쉽게 구해 지금껏 요긴하게 쓰이고 있다. 마을 여기저기에는 층층이 쌓아 올린 고즈넉한 돌탑들도 눈에 띈다.

마을 위편에는 아낙네들이 모여 속내를 다 풀어놓았던 옛 빨래터가 자리한다. 마치 빨랫감 두드리는 소리가 아직도 들려오는 듯해 발길을 뗄 수 없게 한다.

맑은 눈 같다 해서 ‘설(雪)시암’이라 불리는 이곳은 식수로도 사용이 가능하다. 더불어 수량이 풍부한 만큼 논에 물을 댈 정도였다고 한다. 임진왜란 전에 이율곡 선생이 지나면서 마셔 보고 그 맛이 좋다해 ‘반천’이라 이름 지었다는 일화도 있다.

마을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 숲길, 탐방객들이 몰리는 무돌길과 연결돼 있다. 1960년대 건립된 진양하씨 제각 뒤편으로 조성된 소나무(노송들) 군락은 보호수 지정이 추진되고 있다. 기품 있는 대나무 밭도 일품이다.

기축옥사에 휘말린 동암(東巖) 이발(李潑, 1544-1589) 선생의 5대손이 부지를 기증해 설립됐다는 이서초등학교는 한때 200명이 넘는 유명세를 탔다. 하지만 지리적 위치 때문에 당시 광주의 중학교로 진학한 이들은 장불재를 넘어야만 했다.

지금은 고작 7명만이 재학 중이다. 하지만 주민들은 특성화학교로 전환해 옛 영광을 재현해 보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다.

임란전 이율곡 선생 샘물 맛에 반해

지명 유래를 보자. 영평리(永坪里)의 지명은 영신(永神) 마을의 영(永) 자와 유평(柳坪) 마을의 평(坪) 자를 각각 취해 붙였다. 영신사(靈神寺) 라는 절이 있어 영신(靈神)이라 했는데 후대에 한자가 간략화돼 영신(永神)으로 바뀌었다. 무등산의 신령이 세운 마을이라는 뜻이다.

마을 동쪽은 무등산이 자리잡고 있으며 남쪽과 북쪽도 무등산 자락으로 감싸여 있다. 남서쪽으로는 장복동을 거쳐 장불재를 넘어 광주로 이어져 있고 서쪽으로는 규봉암에 오르는 길이 있다.

동남쪽으로 평야가 형성돼 있고 무등산에서 발원하는 영신천이 마을의 남쪽을 지나 서쪽으로 흘러간다. 마을의 방향은 동남쪽을 향하고 있다. 고려 말에 진주강씨가 입향해 설촌했다고 전해 온다.

이와 관련, 무등산 설화가 전한다. 태조 이성계는 혁명을 일으켜 조선을 창업하고 전국의 명산을 찾아다니며 백세천년의 왕업이 이뤄지길 바라고 억울하게 죽은 고려 명신들의 영혼을 달래고자 팔도명산을 모두 찾아가 정성껏 삼일기도를 드렸다.

하지만 오로지 이 무등산의 산신만이 거절하자 이 태조가 노해 등급이 없는 산이라고 했다. 이때부터 ‘무등(無等)’이라고 불렸다.

<글·사진 광주매일신문 김종민 기자>

■ 이름만 전하는 용소(龍沼)

마을에는 무등산과 못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해진다. 400여 년 전 초여름, 광풍과 더불어 소낙비가 몰아쳐 농부들이 일손을 놓고 비를 피해 앉아 있는데 구름 속에서 하얀 백룡이 꼬리를 치며 못으로 내려왔다.

백룡은 물을 타고 상하로 꼬리를 치며 노니 신기하게도 부근에 있는 개구리와 자라들 수백 마리가 조회나 하는 듯 움직이지 않았다. 그날부터 용신제(龍神祭)를 지내기 시작했고, 풍년이 들었다.

그 뒤 풍류를 즐기는 동복현감이 애첩 ‘비연(飛鳶)’이란 기생을 데리고 규봉암으로 소풍을 가다가 쉴 곳을 찾다 못에 다다랐다. 연석을 만들어 흥겹게 노는데 기생들도 석양노을에 취흥이 진진해 춤을 추며 여흥을 즐겼다.

이때 술기운이 오른 현감이 높은 바위에서 칼춤을 추도록 했고, 흥이 절정에 다다를 무렵 비연이 갑자기 현기증을 일으켜 칼을 쥔 채 못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이에 물속의 백룡이 갑자기 꼬리를 치며 노하기 시작했고 일행은 혼비백산했다.

뒷날 사람들이 찾아가 보니 백룡은 온 데 간 데 없고 맑은 물은 흙탕물이 돼 비연의 시체만 떠 있었다. 이후 가뭄이 들어 농사짓기가 어렵게 되면 기우제를 지냈으며 하늘에서 비를 내려주었다. 그때부터 이 못은 용소(龍沼)라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