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봤더니

투박하고 불편하지만 기본에 강한 시장

여행/공연장터의 삶 장터의 맛 <6> 해남시장



1일자와 6일자에 열리는 '땅끝 마을' 해남(환태평양시대에 해남이 땅의 끝이라기보다는 땅의 첫머리라는 게 더 적확하겠지만 논외인지라 '땅끝'이라는 서울시각의 수식어를 쓰면서도 마음은 편치 않다)의 5일장은 해남시장이나 해남읍장, 또는 해남5일장으로 불린다.


전남 서남부권의 대표적 전통시장으로 해남지역 상인 100여명과 장흥·강진·완도지역 상인 100여명이 종사하고 있으며, 이들을 모두 더한 수만큼의 난전도 200여 군데 펼쳐진다. 해남군 3·1 만세독립운동의 역사적 현장이기도 하다.


해남시장은 투박하고 불편하지만 기본에 강한 전통시장이다. 여타 전통시장들이 먹거리장터와 공연무대, 주차장 등 편의시설을 신설하거나 확충하고 지역경제의 한 축으로 자리해가고 있는 것과는 질감이 사뭇 다르다.


◆ 어물은 싱싱하고 작물은 실하고


대신 해남시장은 '좋은 제품, 저렴한 가격'이라는 시장의 본질에 충실했다. 소비자 입장에서 '신선한 먹거리를 저렴한 가격에 믿고 살 수 있다'는 것은 시장이 갖는 최상의 매력이다. 전통시장을 구성하는 두 가지 중심축이라고 할 수 있는 어물과 작물에서 더욱 그렇다.


해남 자체가 3면이 바다인데다 진도와 완도, 강진, 장흥 등과 이웃하고 있어 서남해안의 싱싱한 어물이 밀려오고, 넓은 들녘의 비옥한 땅에서 자란 작물들은 실하고 풍성했다.


어물은 바다와 가까운 탓에 막 잡아 올린 활어 등이 많이 나오고, 노점의 좌판을 채우고 있는 과일이나 곡식, 채소류는 대체로 농민들이 자신의 과수원이나 논밭에서 수확한 결실들이었다. 발품이 필요한 이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남시장은 고민이 필요한 몇 가지 현안을 안고 있다. '시장은 물건을 사고파는 곳'이라는 공간적 차원에 여전히 머물러 있는 탓이다. 우선 전통시장이 식도락을 겸한 여행지로 바뀌는 추세를 해남시장은 언제까지 외면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시장과 시장 인근 몇 군데에 식당이 있으나 특이성이나 우월성을 찾아 볼 수 없어 내로라하기에는 멋쩍다.


다음으로는 동선의 혼잡과 주차시설의 불편함이다. 시장 내부는 비었는데 시장을 둘러싼 사방의 도로가 장터로 변했다. 상인들이 장옥을 버리고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도로로 빠져 나와 장을 펼쳤다. 밖의 활기참과 안의 스산함은 서로 통할 수 없어 충돌했다.


또한 140면 가량의 공용주차장이 마련돼 있으나 고객보다는 시장 상인들 위주로 이용되고 있는 점도 이래저래 불편하다.


물론 해남시장은 그가 갖고 있는 극명한 강점으로 이러한 단점을 상쇄하고도 남지만, '그래도'라는 말을 끝내 떨치기는 어려웠다.



◆ '물감재'는 어디로 갔을까


해남시장은 특이한 이름으로 유명한 고도리마을을 장터로 삼아 고도리정류장에서부터 시작됐다. 정류장에는 옷가게와 신발가게, 식육점과 분식점 등이 노점과 뒤섞이고 장보러 오는 사람과 장보기를 마치고 돌아가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나이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대부분으로, 오는 사람은 총총히 장안으로 스며들었지만 가는 사람은 장밖의 정류장에서 느긋했다. 남향의 장터정류장에서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은 '남녀 70세 부동석'으로 끼리끼리 앉거나 서서 동네방네 소식을 들이고 또 내보냈다. 할머니들이 정류장의 의자에 앉았고, 할아버지들은 비켜서서 볕바라기 했다.


지금은 사라져가고 있지만 예전엔 해남 사람들을 가리켜 '물감재'나 '풋나락'이라고 부르곤 했다. '감재'는 전라도에서 고구마의 다른 이름이고, '물감재'는 여물지 않은 '풋나락' 과 함께 해남 사람들의 여리고 모질지 못한 심성을 대신했다.


'조롱하는 말'이라며 질색 하는 사람도 있었으나 대체로 허물없는 사이에 나누는 애칭으로 통했다. 경상도 지역에서 가까운 사람끼리 주고받는 '문디야'하는 말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해남물감재'는 해남장에 나오지 않았다. 아예 고구마 자체가 많지 않았고 그나마 모두 껍질이 불그스레한 밤고구마뿐이었다. 찾는 이가 많지 않아 이제는 품종마저 사라져가고 있다고 했다.


'물감재'없는 장터에 단감과 대봉이 지천으로 깔렸다. 과일상의 매대도, 노점의 좌판도 온통 감으로 노랗게 물들었다.



◆ '감하나 따고 하늘보고'


옥천면에서 과수원을 한다는 할머니도 단감을 내다 팔려고 장에 나왔다. 할머니의 노점에는 '무조건 1만원'이라고 쓰인 딱지가 붙은 그물망태 10여개가 쌓여있고 그물망태 안에는 단감이 무수히 담겼다. 가격표의 글씨는 가지런하여 정성스러웠고, '무수히'는 100개로 환산됐다.


"옛날에 해남은 감이 귀했어. 요즘은 어찌나 심어 쌌는지. 내가 직접 땄어. 할아버지랑 함께. 손닿는 데만. 힘들어서 위쪽은 못 따" 할머니의 말은 끊어져서 하나로 이어졌다.


그물망태에 담긴 것은 '하늘 보고 하나 따고, 하늘 보고 또 하나 따고'를 100번이나 되풀이 한 77세 할머니와 그보다 더 나이 많은 할아버지의 삶이기도 했다.


'인건비도 안 나오겠다'는 말을 할머니가 "그런다고 먹는 것인데 어떻게 놔둬. 딴데까지 따야지"라고 받았다. 말을 멈춘 할머니가 먹어보라며 그물망에서 때깔 좋은 단감하나를 꺼냈다. 한 개에 100원으로는 환산할 수 없는 무게의 노동이 단감에 실렸다.


두툼한 잠바를 입은 통통한 아주머니가 "워따매~ 따느라고 징하게 고생 했것네!"라며 한 마디 던지고 지나가고, 할머니는 건너편 과일가게에 진열된 단감을 보고 "밸짝스럽게 이쁘게도 놔뒀네…"라고 말끝을 흐렸다.


할머니는 반듯이 정리되어 더 비싸게 팔려나가는 과일가게의 단감이 부러웠고, 그물망에 담겨 팔리지 않는 자신의 단감이 애잔했다.


◆ 약초꾼 할머니도 뱀이 무서워


'해남읍5일시장'이라고 쓰인 간판의 아케이드 앞에도 마산면에서 온 72세의 윤정애 할머니가 쪼그려 앉아 산약초를 팔았다. 할머니 앞에는 자연산 영지버섯과 바위솔, 느릅나무껍질, 산엉겅퀴뿌리 등이 고만고만한 비닐봉투에 담겨 놓이고, 천문동은 신문지에 싸여 볕이 들지 않는 포대에 따로 보관됐다.


할머니는 친정어머니가 약초꾼이었던 탓에 40대 초반부터 가업을 잇듯 자연스럽게 산을 탔다고 했다. 3남4녀중 여섯째로 태어나 자신과 손위 오빠, 막내 남동생만 겨우 초등학교를 나올 수 있었다며 할머니는 간난 했던 삶에 진저리 쳤다.


"자식들은 하지 말라고 하지만 멀쩡한 삭신을 놀려서 뭐 하겄어. 우리나라 산이라고 생긴 산은 다 가봤어. 근데 요즘은 멧돼지도 많고 뱀도 많아서 무섭기는 해" '멀쩡한 삭신'의 할머니는 관절염으로 손가락이 휘어졌고 '안 가 본 산'이 없지만 멧돼지와 뱀이 무서웠다.


가격을 알지 못해 말린 잔대 1만원어치를 달라고 했다. 지난번 나주목사고을시장에서 올 겨울을 넘기기 위해 샀던 오골계가 생각나서다. 할머니는 '산모에 좋다'며 3천원을 더 주고 모두 가져가라고 했다. 바짝 말라 손가락만 해진 잔대 스무남짓이 산모와는 거리가 먼 내게로 기꺼이 왔다.


◆ 문어 때문에 우는 화랑게


어물전의 생선들은 다양했고, 다양한 만큼 생경했다. 성인의 두 뼘이 훨씬 넘을 듯한 잉어가 플라스틱 대야에서 헤엄치는가 하면 커다란 대야가 좁은 죽상어는 몸을 활처럼 구부린 채 꿈틀됐다. 잉어는 3마리가 세트로 2만원에 팔렸고 상어는 4만원을 호가했다.


큰 눈을 두리번거리던 문어가 주인 몰래 대야를 넘다 들켜서 다시 들어가고, 게걸음으로 도망치던 화랑게도 문어 때문에 덩달아 들켰다. 2kg쯤 되는 문어는 4만원에 거래됐고 화랑게는 한 바가지에 1만원을 불렀다.


어디서 왔는지 송사리 같은 작은 물고기도 대야를 가득 채웠다. 주인은 '무에 지져 먹으면 맛있다'는 물고기를 '곱사리'라고 불렀다. 한 아주머니가 '붕어는 필요 없다'며 '곱사리' 무리 속에 섞여 있는 몇 마리 새끼붕어 값을 빼달라고 요구했고, 주인은 '아짐한테 많이 받것소?'라며 붕어까지 포함하여 한 바가지를 3천원에 팔았다.


민물장어 미끼로 쓴다는 미꾸라지 치어도 나오고, 숭어와 운저리도 나오고, 꽃게와 뻘떡게도 나와서 초겨울 어시장을 풍성케 채웠다.


선어가게에서는 횟감으로 사용할 수 있는 냉동 삼치가 크기에 따라 3만원이나 5만원씩 했고, 손바닥만한 구이용 우럭은 2만원에 여덟 마리를 담았다.


나와 대화를 나누던 젓갈가게 사장은 '장사가 먼저지, 뭐하냐?'는 젊은 아낙의 버럭에 머쓱하여 자리를 뜨고, '곱사리'를 팔던 중년사내가 가끔씩 굵은 저음으로 "자연산 미꾸라지~"라고 외치며 손님을 불렀다.


◆ 오백원에 산 하나 뿐인 전용 술잔


장터에서 바람은 차가웠고, 볕기는 따스했다. 헛개 열매와 대추, 감초, 구기자 등의 약재를 팔던 할머니가 볕바른 벽에 기대어 잠들었는데 건너편 노점의 약재상은 재배한 영지버섯의 가격을 놓고 베트남인 부부와 손가락 대화로 말없는 흥정을 오랫동안 벌였다.


나이 여든둘이라는 삼산면에서 온 윤덕심 할머니는 '대콩나물'이라며 짚불을 태워 키운 콩나물 한 움큼을 2천원에 팔고, 박으로 만든 바가지를 작은 것은 500원, 큰 것은 1천원에 팔았다. 큰 바가지에는 맥주 한 잔이 겨우 담길듯하고 작은 바가지에는 그 반이 담길듯하여 작은 바가지 6개를 샀다. 단골 막걸리 집에 맡겨 놓고 명수리, 영고니, 원서비 다 불러 어깨 으쓱대며 전용 술잔으로 사용하고 싶어졌다.


장은 오후 3시를 넘기면서 한산해졌다. "코다리 아홉 마리를 만원에 '폭탄세일'하고, 햇멸치 한 박스를 '깜짝세일'한다"고 스피커를 울리던 이동트럭 총각의 목소리도 사라지고, "맛이 좋은 꼬막, 몸에 좋은 꼬막, 백프로 국내산 왕꼬막 4키로를 단돈 만원씩에 드린다"고 외치던 꼬막장수 아저씨의 가두방송도 잠잠해졌다.


할머니들이 떠난 고도리정류장에는 색 바랜 플라스틱 의자가 몸통을 드러내고, '비잉글빙글' 돌아가던 뻥튀기 까만 기계도 움직임을 멈췄는데 나른해진 옷가게 주인이 옆집 사장을 불러 장기 삼매경에 빠졌다.


조영석 시민전문기자 kanjoys@hanmail.net


-"아~ 맛나!"


옥희네 밥집



한 그릇에 3천원하는 장밥이다. 장이 서는 날에만 파는 집밥 같은 장밥 집으로 유명하다. 8명이 앉을 수 있는 원탁이 5개 있고 식탁이 차려지면 오는 대로 수저와 젓가락만 가지고 원하는 자리에 가서 먼저 온 사람과 함께 식사하는 방식이다.


생선구이나 찌개를 기본으로 김과 김치, 파김치, 마늘장아찌, 콩자반, 깍두기 등 예닐곱 가지의 정갈한 반찬이 곁들여진다. 상인들을 위해 새벽 4시 반쯤 문을 여는데 장이 설 때마다 100여명이 찾는다. 상인회 부회장인 윤옥희(60)사장이 운영하는 밥집으로 어물전을 끼고 돌다보면 상가사무실 건너편에 '옥희네 밥집'간판이 보인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