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봤더니

할머니가 떠난 자리에 ‘쓰봉’이 남았다

여행/공연나주 목사고을시장

할머니는 “쓰봉 하나 살라고 들렸다”고 했다. 알록달록한 무늬의 기모 바지를 할머니가 들었다 놨다 했다. 옷가게 주인이 얼른 말했다. “저녁부터 추워진데요. 오 천 원에 드릴께요. 잠바도 싸니 하나 사가시지”


망설이던 할머니는 ‘추워진다’는 말을 귓전으로 흘리며 발길을 돌려 떠났고, 가게주인은 발길을 돌려올 다른 손님을 기다렸다. 할머니가 떠난 자리에 ‘쓰봉’만이 어린 날의 추억으로 남았다.


시월 끄트머리의 장터에서 바람은 어제와 또 다르게 시렸다. 사나흘 전까지만 해도 여름 같은 날씨에 익숙했던 사람들이 낯선 바람을 피해 찐빵이나 튀김 가게로 향했다. 빨간 털모자를 쓴 소녀의 손에 튀겨진 소세지가 쥐어지고, 어린 남동생의 혀끝에서는 방금 나온 꽈배기가 따끈했다.


매일 매일의 상설시장과 4일과 9일에 열리는 정기 오일시가 병행하여 열리는 오일장의 장터에는 늦가을의 물산이 주는 풍경으로 가득 찼다.


빨갛게 익은 말린 고추가 포대마다 켜켜이 쌓이고 노랗게 익은 단감은 따가웠던 지난 여름날의 햇살로 풍년이 들었다. 가격표시가 없는 김장용 건고추는 1근당 1만5천원의 가격으로 흥정이 오갔으나, 한 자루에 50여개가 담긴 단감은 1만원의 가격표시를 붙여놓고 있어도 발길이 뜸했다. 만생종 양파 묘종도, 어른 팔뚝만한 무도 한 단에 5천원에 거래됐다.


여느 시장과 다름없이 고구마순이나 호박잎, 말린 고사리, 녹두 한 움큼 등의 좌판을 벌인 할머니들이 장옥의 처마 밑에 앉아 해바라기하고, 모퉁이 국밥집에는 불콰해진 사내들의 소주잔이 채워지고 있다.


◆설탕커피로 드릴까요


바람 부는 장터의 비좁은 길을 커피 파는 아주머니가 작은 수레를 끌며 지나고 수레에서는 유행지난 유행가가 흘렀다.


‘첫눈이 내리는 날 안동역 앞에서/ 만나자고 약속한 사람/새벽부터 오는 눈이 무릎까지 덮는데/ 안 오는 건지 못 오는 건지...’


첫눈은 아직 멀고, 만나기로 한 사람도 있을리 없지만 왠지 커피 한 잔은 사먹어야 할 것 같았다. 비록 수레를 개조했지만 취향에 따라 메뉴를 선택할 수 있는 주문형 카페다. 설탕커피를 원하면 설탕을 듬뿍 넣어주고, 블랙을 원하면 블랙도 가능하다. 냉커피는 물론이고 칡즙도 판다.


5백 원에 따끈한 블랙커피 한 잔을 주문한 뒤 스피커의 볼륨을 더 키우면 좋지 않겠느냐고 했다. ‘안 오는 건지 못 오는 건지...’ 목청을 돋운 유행가가 장터의 건조한 바람에 실려 멀리까지 갔다.


인삼과 더덕, 영지버섯, 감초, 오가피나무 등 각종 한약재를 파는 매대 앞에서는 누런 수건을 머리에 쓴 할머니가 쪼그려 앉아 놀놀한 올벼쌀을 팔고, 장구경 나온 40대 부부가 “식구들이 간식으로 좋아 한다”며 1만원을 주고 작은 되로 두 되를 사갔다. 할머니는 “이빨이 좋지 않아 못 먹는다”는 나에게도 “입에 넣고 침으로 불려가며 먹으면 된다”며 한 움큼의 올벼쌀을 건넸다.


◆‘홍어가 웃는다’


목사고을시장에는 장옥의 112개 매대 가운데 50여개가 어물전과 건어물전일 만큼 수산물의 비중이 높다. 장에 나온 수산물은 붕어, 미꾸라지, 대갱이, 가물치, 조기, 민어, 갈치, 병치, 낙지, 문어 등 민물과 짠물을 가리지 않고, 생물과 건어물도 가리지 않았다. 크기가 1m 가량인 죽상어가 1만5천원에, 생물 가물치는 1kg당 3만원에 거래됐다.


그 중에서도 목사고을시장의 어물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생선이 있으니 바로 홍어다. 홍어는 남도의 대표 생선이지만 근래에 전국으로 소비가 확산되고 있다. 목사고을 정기시장에서 거래되는 홍어는 모두 수입산이다. 국내산 신안 흑산도 홍어는 내어 놓으면 색이 변한데다 비싼 탓에 찾는 사람도 드물어 아예 내놓지 않는다. 국내산 홍어가 없는 장터에서 먼 길을 온 수입산 홍어가 마치 웃는 듯했다.


국내산 홍어는 오일시장 건너편의 상설시장인 ‘공설 아트동’에 가면 구할 수 있다. 두 군데 가게에서 요리는 하지 않고 홍어회만 포장 판매한다. 모듬회 기준으로 국내산의 경우 1kg당 10만원을 호가한다. 수입산은 칠레산이 6만5천원, 우르과이산이 4만5천원이다. 수입산도 등급이 있고 그 중에서는 칠레산 홍어를 최고로 친다.


굳이 국내산 홍어요리와 회를 함께 맛보고 싶다면 영산포 ‘홍어의 거리’로 가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상설시장의 홍어요리집을 찾는 것도 나쁘지 않다.


매년 4월, 유채꽃이 영산강을 물들일 때면 강에는 황포돛배가 흐르고 둔치에서는 ‘영산포 홍어축제’가 열린다. 흑산도 주민들이 왜구떼를 피해 영산강의 하류인 영산포에 강제 이주해온 역사의 연결고리를 홍어에서 본다.



◆개구리 뒷다리젓


시장에 어물전이 있으면 젓갈전도 있게 마련이다. 숭어, 멸치, 전어, 황석어, 까나리, 밴댕이 등 생선도 젓이 되고, 바지락, 소라, 굴 등 조개도 젓이 되어 삭혀지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창난젓, 대창젓, 돔배젓, 또라젓, 속젓, 부레젓, 아감젓 등 생선의 내장과 아가미도 젓이 되어 곰삭고 있다. 바다에 사는 모든 생물과 그 내장까지 젓으로 만들어 먹을 줄 아는 우리의 음식문화가 새삼 경이롭다.


시어머니가 운영하던 젓갈가게의 대를 잇고 있다는 삼화젓갈상회 이순옥(58)사장은 “내가 시집왔을 때만 해도 개구리 뒷다리로 만든 ‘뛰엄젓’이 있었다”며 웃었다. 뛰엄뛰엄 걸어가던 어느 날의 두꺼비가 개구리를 대신하여 생각이 났으나 젓갈로는 쉽게 이어지지 않았다.


젓갈가게 사장이 이쑤시개에 찍어 건네준 토하젓을 혀끝에 올리니 토하의 비릿함이 연한 흙내음과 섞여 후각을 자극한다. 김이 나는 흰쌀밥위에 참기름 한 방울 뿌리고 간간한 토하젓을 비벼 한술 뜨고 싶어졌다.


김치를 담그려고 새우젓을 사러 왔다는 김서원(80) 할머니가 한 마디 거들었다. “아저씨, 술 안드셔? 토하도 좋지만 새비젓으로 명태 해장국을 끓이면 엄청 시원하고 속풀이가 잘돼요. 이왕이면 추젓보다는 오젓이나 육젓이 더 좋기는 한디, 지금은 나오지 않은께 추젓 사다가 먹어도 괜찮아요.”


사라져버린 뛰엄젓과 없는 오젓을 탓하며 토하젓 한 통을 샀다. 토하젓은 800g이 1만원이고 추젓은 1kg이 1만원이다. 여름철에 나오는 오젓이나 육젓의 가격은 추젓의 두 배가량 한다고 했다.


죽물점에는 대나무에서 실을 뽑아 만든 바구니, 소쿠리, 키, 삿갓, 발 등이 플라스틱 제품과 함께 팔렸다. 호미며 낫, 삽, 곡갱이 등 농기구도 팔고 곡물과 말린 나물도 판다. 그러고 보니 젓국을 끓일 때 사용하는 긴 주걱도 있고 마당을 쓸 때 사용하는 싸리나무 빗자루도 전리품처럼 가게를 지키며 서있다. 죽물점이 만물상이 됐다. 시대가 변하고 환경이 변하면서 시장에도 적자생존의 법칙이 적용되는가 싶다.


목사고을시장에는 특이하게도 산닭을 현장에서 잡아 손질해 주는 닭전이 다섯 군데 있다. 한 마리당 폐계는 6천원, 토종 촌닭은 1만8천원, 오골계는 2만원씩에 판매했다. “흰 털의 오골계가 더 약이 된다”는 주인아주머니의 말이 ‘다가 올 겨울을 오골계에 의지하여 버티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조영석/ 시민전문기자(kanjoys@hanmail.net)


◆ 우리나라 최초의 시장



목사고을시장은 고려 때부터 조선시대까지 나주 목사(羅州牧使)가 있던 곳이라는 데에서 이름이 유래한다. 1천 여 년 동안 전라도 남부의 행정과 문화 중심지였다는 나주의 자부심이다.


자부심에는 우리나라에서 시장의 시초가 열린 곳이라는 역사성도 함께 한다. 나주 읍내장인


목사고을시장의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조선 전기에 닿는다. ‘성종실록’에는 ‘전라도 무안 등 여러 고을에서 이익을 쫓는 무리들이 장문(場門)을 열어...’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장문은 시장을 말한다.


기근이 들었을 때 이 지역의 백성들이 궁여지책의 장시를 열어 간난신고의 삶을 이어갔던 곳이다. 하지만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시대에 상업인구가 늘어가는 것을 우려한 호조에서는 이를 금지 시켰고, 이에 나주목사 이영견이 장시 금지령을 철폐해줄 것을 호소했다는 내용이 전해 온다.


나주와 무안 지역은 영산강과 강이 만들어낸 비옥한 평야로 농수산물이 풍부한데다 영산강의 물길을 이용한 교역으로 시장이 형성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나주 등 영산강 유역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시장이 개설 될 수 있었던 이유다.


광주에서 갈 경우 나주시 초입의 삼도육교가 끝나는 오른쪽에 나주배원예농협 공판장과 함께 자리하고 있다.


나주목의 동헌터에 있던 상설시장인 금계매일시장과 성북시장이 통합돼 2012년 목사고을시장으로 새롭게 개설됐다. 한 때는 야시장과 토요시장도 함께 열렸으나 지금은 폐지됐다.


‘아, 맛나~’


나주떡보 ‘제비쑥떡’


황종환 사장이 직접 재배한 제비쑥의 부드러운 순에 찹쌀가루를 섞은 뒤 시루에 쪄서 만든다. 개떡과 송편, 인절미 등이 있다. 물과 설탕대신 배즙을 사용, 떡에서 설탕의 단맛과는 다른 배 맛 특유의 달콤함이 배어나온다. 인절미에는 배청과 콩가루가 담긴 작은 비닐 컵도 제공된다.


냉동실에 보관 한 뒤 해동을 하면 처음 구입당시의 부드럽고 쫄깃한 식감이 그대로 살아난다.


선물셋트로 배송 판매와 함께 5개들이 소포장으로 현장도 판매한다. 소포장은 개떡 2천원, 송편 3천원, 인절미 5천원


태양수산 ‘운저리 회’


포장 전문 횟집이나 여느 횟집과 달리 싱싱한 운저리를 저렴한 가격에 맛볼 있다. 맑고 투명한 살을 잔뼈와 함께 얼기설기 썰어내는데 씹을수록 달차근한 맛이 식감으로 살아난다. 운저리 회에 생마늘 한 조각을 얹은 뒤 재래식 된장에 찍어 먹는 맛이 일품이다. 담백하고 비리지 않아 막걸리와 궁합이 잘 맞는다. 1만원 어치를 주문하면 5-6마리가 담긴다. 보리 비빔밥이 제공되는 운저리 회무침도 한 접시에 2만원이다. 소라와 산낚지, 숭어회도 함께 판다.


배꽃마을 ‘홍어요리’


상설시장의 홍어요리집인 ‘배꽃마을’ 식당에서는 홍어를 이용한 모든 메뉴의 음식을 맛볼 수 있다. 홍어회, 홍어무침, 홍어찜, 홍어전, 홍어탕, 홍어 전골, 홍어애국 등과 이를 모두 아우르는 홍어 한 상까지 있다. 무엇을 먹든 홍어의 알싸한 맛을 느낄 수 있지만 그 중에서도 홍어찜이 가장 강한 맛을 낸다. 자칫 입안이 헐 수도 있지만 막혔던 가슴이 확 트임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국내산 홍어는 가격을 맞출 수 없어 아르헨티나산을 사용한다. 보리 잎에 끓여낸 홍어애국은 7천원, 4인 기준인 홍어 한 상은 8만원이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조영석 시민전문기자 kanjoy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