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봤더니

서걱대는 갈대와 보드란 갯벌의 어울림…그곳엔 어느새 가을이 무르익고 있었다

여행/공연순천만

사랑방미디어·광주매일신문·광주평화방송 공동기획
남도 힐링 명소를 찾아서

보드란 속살을 드러낸 갯벌 위로 펼쳐진 230만 제곱미터에 달하는 갈대 군락은 순천만 최고의 비경이다.

어느새 가을이다. 언제부턴지 하늘에 태양이 머무르는 시간은 꽤 짧아졌고, 조석으로 목덜미를 스치는 바람은 서느렇다. 가을은 떠남의 계절이라고 했다. 봄·여름 내내 수고스러움을 이겨내고 풍성한 결실을 맺는 시기인 만큼, 마음도 비로소 여유로움을 찾게 된다.


그 마음을 아는지 가을바람이 어디로든 떠나자며 바짓가랑이를 잡아끈다. 자꾸만 보채는 이끌림에 발걸음을 재촉하지 않을 수 없다. 바람 따라 찾아간 곳은 자연이 선물한 천연 정원, ‘순천만’이다. 10월의 순천만은 그윽한 갈대숲과 시원한 바람이 어우러져 서정적인 가을정취를 한껏 뿜어내고 있었다. <편집자주>
 


초가을 어귀에서 만난 순천만은 초록의 광대한 물결 그 자체만으로 절경을 이뤘다. 순천만을 초록빛으로 물들인 주인공은 여름 내내 일광욕을 마치고 늘씬하게 쭉 뻗은 갈대들.


순천만은 밀물과 썰물이 들고 나면서 생겨난 뻘밭으로, 이곳의 최고 비경은 보드란 속살을 드러낸 갯벌 위로 230만 제곱미터에 이르는 갈대 군락이다.


지난 2006년에는 국내 최초로 습지 보존 국제협약인 람사르협약에 이름을 올리면서 세계 5대 습지 중 하나로서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흔히 ‘갈대’라 하면 많은 이들이 늦은 가을을 떠올린다. 물론 늦은 가을철에 변하는 금빛 갈대 물결도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다. 그런데 이제 막 담백색 머리를 풀어헤친 초가을 풍경은 왠지 모를 애틋함과 묘한 매력이 공존하고 있어 본 사람만 알 수 있는 또 하나의 장관이다.

순천만 갯벌은 짱뚱어, 농게, 칠게 등 수많은 생명들을 키워내고 있다.

갈대는 오염물질 정화기능이 뛰어난 식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덕분에 순천만에서의 갈대는 환경파수꾼 역할을 자처한다. 갈대들의 은혜에 힘입어 순천만 갯벌은 수많은 생명들을 키워내고 있다. 짱뚱어며 농게, 칠게 등 다양한 생명의 움직임들이 깃들어 아이들의 살아 있는 자연학습장으로도 좋다.


순천만은 대대포구로부터 1킬로미터 남짓의 탐방로가 펼쳐져 있다. 포구에는 탐사선이 운항하고 있어 발품을 팔지 않아도 물길을 따라 아름다운 풍광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하지만 진정으로 순천만의 진면목을 알고 싶다면, 걸어야 한다. 그렇다고 빠른 걸음으로 대충 휘 둘러보고 말 곳도 아니다. 천천히 걸으면 걸을수록 좋다. 잘 단장된 탐방로를 따라 걷는 것만으로도 힐링의 최적 조건을 갖추게 된다.


때로는 눈을 감아 본다. 가을바람에 서걱거리는 갈대 소리가 마치 빗소리처럼 들려온다. 머리카락마저 간신히 날릴 미풍에도 갈대들은 흐느적대기 바쁘다. 직접 보지 않아도 갈대들의 몸짓이 하나하나 온몸으로 느껴진다.


혹여나 걸음이 빨라질까 바람은 천천히 걸으라며 여행자들의 발걸음을 진정시킨다. 광활한 갈대 군락 사이로 나타나는 물길마다 부드러운 곡선미가 살아 있다. 반듯하게 서 있는 갈대들과 어우러져 더욱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용산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순천만 풍광. S자 큰 물길 옆으로 원 모양의 갈대 군락과 붉은 칠면초 무리가 황홀경을 연출한다 


순천만 감상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최고의 풍경은 용산전망대를 오른 자에게만 허락된다.


용산은 용이 승천하려다가 순천만의 아름다움에 반해 그대로 엎드려 앉았다 하여 이름 붙여진 야트막한 산이다.


용산전망대까지는 갈대숲 탐방로의 종착지점부터 시작해 2km를 꼬박 올라가야 한다. 안내 표지판에는 버젓이 ‘왕복 40분 코스’라고 써 있지만, 결코 쉽지 않은 길이다. 제법 가파른 산길이라 등산 초보자에게는 왕복 40분을 훨씬 넘기고도 남을 거리다.


하지만 쉬이 포기할 수 없는 것이, 그곳에 가야만 순천만 알몸 그대로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올라가는 길은 다행히도 멍석이 깔려 있어 비가 오더라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나무 그늘에 군데군데 시원한 가을바람까지 불어주니 몸 구석구석으로부터 피어오르는 열기와 땀을 식혀준다.


마침내 당도한 용산전망대는 이미 많은 여행자들과 사진작가들로 분주했다. 운이 좋은 날에만 황홀한 낙조를 보여주는데, 그 모습을 담기 위해 다들 무작정 대기하고 있는 중이었다.


S자 큰 물길이 한눈에 들어온다. 순천만 갯벌 위로 간드러지게 누웠다. 물길 옆으로 초록빛 융단이 깔려 있다. 동글동글 원 모양의 갈대 군락과 붉은 칠면초 무리가 그야말로 황홀경을 연출한다.


탐방로를 따라 갈대숲을 걸었을 때는 미처 보지 못했던 순천만의 숨은 모습들이 두 눈에 오롯이 들어온다.


해가 산 너머로 넘어갈 즈음이면, 순천만이 온통 붉은 빛을 토해낸다. 그 순간을 놓칠세라 사진작가들의 셔터를 눌러대는 소리는 더욱 빨라지고 커진다. 용산을 오르면서 느낀 힘듦이 아깝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유난히 짧게 느껴지는 계절 ‘가을’, 우리는 ‘여행’이란 방법을 통해 오래도록 붙잡아 두려 애쓴다. 하지만 지나가는 시간을 아쉬워할 순간에, 지금 당장 이 시간을 최대한 즐기는 것이 현명한 대책이 아닐까 생각한다. 지체할 시간이 없다. 시시때때로 변하는 순천만으로 지금 당장 떠나 보자.


<글·사진 김지연 기자 sunny-jy35@sarangb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