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봤더니

손해보고 팔아도 장터의 정성적 이문은 언제나 남는 장사

여행/공연장터의 삶, 장터의 맛<1>들어가며

한국언론재단의 지원을 받아 광주.전남지역의 전통시장이 간직하고 있는 먹거리와 시장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장터의 삶, 장터의 맛’을 연재합니다. 연재는 오일장 등 정기시장을 중심으로 격주 간격 소개될 예정입니다. 편집자 주

장이 익어갈 때쯤이면

불콰해진 중년 사내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흥정을 벌이다 슬그머니 돌아서는

아주머니의 뒷모습을

좌판의 할머니가 다급히 쫓았다.

소통하며 역지사지 헤아릴 수 있는

공감의 여유가 있는 곳이 장터다.

때문에 장터에서 정성적 이문은  

남는 장사로 동일하게 작용한다.

장터에는 없는 물건이 무엇인지

알 수 없을 만큼 모든 것을 갖추었지만

가질 수 없는 것이 더 많았다.

국화빵은 다양한 형태로 변해

누군가에게는 추억이 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든든한 한 끼의 식사로 남아

여전히 시장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

화순전통시장.

장이 서는 날의 장터는 잔치집 앞마당처럼 들떠 있었다. 잔치집이 그러하듯이 장터에 들어서면 냄새부터가 남달랐다. 국밥집의 곱창 삶은 냄새는 뱃속의 창자를 깨우고, 옷가게의 알록달록한 새 옷이 내뿜은 포름알데히드 냄새는 먼 이국의 냄새처럼 낯설었다.


햇볕에 말라가던 어물전의 고등어나 간재미는 가끔씩 소금물 샤워를 하며 비릿함을 씻어내고, 마대자루에 가득 쌓인 붉은 고추는 장바람에 매웠다.


냄새는 마디 굵은 장터 상인의 손에서도 새어나왔고, 나름 신경쓰고 장보러 온 아주머니의 얼굴에서도 분 냄새가 흘렀다.


과일 가게에 가득 쌓여있던 빨간 능금에서도 냄새가 났는지는 기억이 남아있지 않지만 능금도 빨간 색깔만큼 장터 냄새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을 테다.


장터에는 ‘샤넬- 5’의 냄새만 없을 뿐 세상의 모든 냄새가 배어 나왔다. 장터는 삶이었고 장터의 냄새는 삶의 냄새였다.


열무 몇 단을 판 돈으로 추석에 내려올 손주 용돈을 마련한 할머니에게서는 기쁨의 냄새가 물씬 풍겼지만 직접 담근 말벌주를 한 병도 팔지 못한 할아버지의 쉬지 않는 한숨의 냄새도 장터에서는 묻어 나왔다.


장이 익어갈 때쯤이면 불콰해진 중년 사내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흥정을 벌이다 슬그머니 돌아서는 아주머니의 뒷모습을 좌판의 할머니가 다급히 쫓았다.


소통하며 역지사지로 헤아릴 수 있는 공감의 여유가 있는 곳이 장터다. 때문에 장터에서 정성적 이문은 남는 장사로 동일하게 작용한다.


사람들은 장터에 나와서 삶을 팔았고 또 삶을 샀다. 흥정하여 사고파는 곳이 장터의 삶인지라 누군가는 손해를 보면서도 팔았고, 누군가는 비싸게 주고도 헐값에 샀다며 속으로 웃었다.


살다보면 때로는 손해를 볼 때도 있고 더러는 횡재가 생길 때도 있듯이 장터가 그러했다.


그렇지만 장터의 이문은 정량적인데 있지 않다. 장터는 본질적으로 사는 사람이나 파는 사람이나 다 같은 동질성을 확인하는 공동체의 공간이어서 장터의 정성적 이문은 남는 장사로 동일하게 작용했다. 자본주의의 원형을 간직한 전통시장의 가치이자 매력이다.


정찰제에 따라 ‘법대로’ 사고파는 대형할인점에서는 ‘죽었다 다시 깨어나도’ 만날 수 없는 가치가 전통시장에는 아직 남아 있다.


흥정을 하다 다른 물건 하나를 더 얹어 주기도하고, 쪼그려 앉아 지나는 손님을 따라오는 할머니의 눈길을 외면하지 못해 필요 없는 물건인줄 알면서도 발길이 멈추어 지는 곳이 장터다.


장터에는 없는 물건이 무엇인지 알 수 없을 만큼 모든 것을 갖추었지만 가질 수 없는 것이 더 많았다.


남쪽 작은 섬마을 소년이던 나에게도 장터는 설렘의 기억이 저장된 공간이다. 낙도인 탓에 장날은 한 달에 한 번쯤 열렸고 마을 저수지와 인접한 넓은 공터에서 장은 사나흘씩 계속됐다.


섬은 본능처럼 뭍이 그리웠고, 장이 서는 날의 장터는 각양각색의 물건들이 물길 건너 섬으로 들어왔다. 장터에는 없는 물건이 무엇인지 알 수 없을 만큼 모든 것을 갖추었지만 가질 수 없는 것이 더 많았다.


가질 수 없는 것으로 가득한 장터지만 소년은 한 달에 한 번씩 장이 서는 날을 기다렸다. 장이 서는 날, 장터 한쪽엔 집채 만 한 하얀 천막이 들어서고 밤이 되면 소년은 친구들과 함께 불나방처럼 달려갔다. 연필깎이 칼로 천막을 찢고 들어가다 들켜 검정 고무신을 빼앗기고 돌아오는 길에 별은 처량히 빛났고, 어머니는 다음날 영화비를 대신 물어주고 허리를 숙였다.


물론 운 좋은 날도 있었다. 땅 바닥에 앉아 보는 대형 화면에서 국군아저씨들이 삼각형 모자를 쓴 베트콩을 물리치면 신이 났고, 때로는 예쁜 아가씨가 뽀뽀라도 할라치면 소년의 입속에서는 침 넘어가는 소리가 컸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 천막 끝에 달린 확성기에서 울려 퍼지던 ‘총천연색 시네마스코프’ 라는 단어는 아직껏 환청으로 남아있다. ‘시네마스코프’가 영화를 가르키는 용어인줄을 짐작으로 이해했으니 나의 첫 영어는 장터에서 배운 셈이다.


국화빵은 다양한 형태로 변해 누군가에게는 추억이 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든든한 한 끼의 식사로 남아 여전히 시장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기름 타는 냄새를 풍기며 노랗게 익어가던 국화빵 만 한 게 또 있겠는가. 장날의 국화빵은 가을에만 피는 것이 아니라 장이 설 때면 봄 여름 가을 겨울 가리지 않고 피어 익었다. 장날마다 푸짐하게 피었지만 기껏해야 한 두 개 밖에 살수 없음에 더 간절했던 국화빵은 제일먼저 후각으로 찾아왔고, 다음에는 시각으로 다가선 뒤 마지막에는 미각으로 순식간에 사라지곤 했다. 목젖을 넘어가던 뜨겁고 부드러운 국화빵의 질감은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현재형으로 남아 있는 장터의 맛이다.


그 시절에 소년은 국화빵 장수가 제일 부러웠고 나중에 커서 국화빵 장수가 되고 싶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국화빵 장수는 되지 못했지만 지금도 국화빵은 여전히 나의 발길을 속절없이 멈추게 하는 유혹이다.


이제 그 국화빵이 주던 시장의 맛을 찾아 나선다. 국화빵은 다양한 형태로 변해 누군가에게는 추억이 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든든한 한 끼의 식사로 남아 여전히 시장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


지역마다 장마다 같은 음식과 메뉴라 할지라도 다른 맛이 있고 저마다 특색을 지닌 맛들이 오랜 세월을 지나며 지역의 문화로 자리 잡게 된다. 지역의 맛인 것이다. 지역이 간직하고 있는 맛과 문화를 지역의 전통시장에서 찾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바다가 인접한 곳에서는 각종 어패류가 주인공이 될 테고 첩첩산중에서는 산나물이 주인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더러는 보편화되고 현대화된 음식이 지역의 특색으로 발전한 경우에도 관심을 기울이고자 한다.


유달산에서 말린 목포굴비는 끝내 영광굴비가 되지 못했고 회장님의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그러고 보니 오래전에 전해들을 이야기가 생각난다. 목포의 어느 유명한 재벌 회장님이 생조기를 말려 굴비를 만들기로 했다고 했다. 그는 목포 앞바다의 해풍을 쐰 굴비를 만들어 보고 싶어 유달산 자락에서 조기를 말렸다. 하지만 유달산에서 말린 목포굴비는 끝내 영광굴비가 되지 못했고 회장님의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생조기라는 원재료는 같더라도 어느 지역에서 말리느냐 하는데 따라 맛이 달라진다는 것을 실패로 증명해 보인 것이다. 조기는 칠산 앞바다에서 불어오는 해풍에 말려야 진짜배기 영광굴비가 되는 것이다.


“나주의 배를 유럽의 프랑스 땅에 심었더니 똘배가 열리더라”던 얘기도 목포굴비와 같은 말이다. 팥 심은데 팥이 나는 것이 아니라 땅이 다르면 팥 심은데 녹두가 날 수 있다는 얘기다.


먹거리 뿐만아니라 시장에서 보게 되고 만나게 되는 삶의 이야기도 함께 풀어내 볼 계획이다. 시장에서 만나는 삶의 이야기들이 힘든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되리라 믿기 때문이다. 물론 순전히 내 이야기가 되겠지만 나의 이야기가 당신의 이야기로 전해지길되길 바랄 뿐이다.


조영석/시민전문기자 kanjoy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