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봤더니

‘5월 그날’ 추모하고, ‘오월 정신’ 계승하자

여행/공연

사랑방·광주문화재단 공동기획
광주견문록 다시보기 ⑲ 5월 관련 현장들

‘광주견문록 다시보기’ 열아홉 번째 순서는 1980년 5월 관련 현장들이다.

5·18민주화운동을 기록하고 추모하는 공간인 5·18기념공원, 끔찍한 고문의 현장이자 치료의 장소였던 505보안부대와 옛 국군광주병원, 상무대 군사법정과 영창을 그대로 재현한 역사체험현장인 5·18자유공원이다.

광주의 아픈 역사를 잊지 않고 오늘의 정신으로 되살려내기를 호소하는 그 공간들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5·18기념공원
새로운 오월을 열어가는 중심

 

 


광주 서구의 대표적 공원인 5·18기념공원은 상무대 이전과 함께 정부가 광주 시민에 대한 보상 차원에서 상무 신도심에 330만㎡을 시민공원으로 무상 양여함에 따라 조성되었다.

20만㎡ 규모의 5·18기념공원에는 기념문화센터, 기념조각 및 산책로가 들어서 오월정신을 계승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장이자 시민휴식공간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5·18기념공원의 숲속 산책로를 즐기는 것도 좋으나 가끔은 공원 곳곳에 전시된 예술작품을 하나씩 찾아가 작가들이 예술로 승화해낸 오월정신을 되새겨 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으리라.

 

 

 

5·18기념문화센터

5·18 민주화운동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고자 설립된 기관으로 5·18기념문화관, 5·18기념공원, 5·18자유공원의 관리운영 및 5·18 관련 자료수집과 편찬사업 등을 추진하고 있다. 공연장으로 민주홀, 대동홀, 리셉션홀을 운영 중이다.

옛 국군광주병원&505보안부대
80년 5월의 천국과 지옥

 

 

5·18 사적지 중에 천국과 지옥을 꼽는다면? 단연코 국군병원과 505보안부대다. 계엄군에 체포된 시민들과 학생들은 상무대에 설치되었던 계엄사령부로 끌려가 갖은 고문과 구타를 당했다.

그 과정에서 부상당한 이들이 실려 간 곳이 국군광주병원이었는데, 군부의 엄중한 감시 아래 있었으나 의료진의 보살핌과 몸 상태에 대한 거짓보고 덕분에 시민들은 뜻밖의 천국을 맛보았다.

반면에 505보안부대는 말이 필요 없는 지옥이었다. 지금도 어디선가 고통스런 신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며 다들 소름끼쳐 할 정도로 505보안부대는 무고한 시민들과 민주인사들을 잔인하게 고문했던 생지옥이었다.

 

 

그럼, 5·18 당시 천국과 지옥으로 들어가 보자.

2007년 국군병원이 함평으로 옮겨가면서 방치되고 있는 국군광주병원 건물 내부로 들어서니 외래진료실, 외래접수실, 행정부서, 등록과, 병리실 등을 안내하는 푯말이 지난 역사를 말해준다.

1964년 건립된 국군광주병원은 5·18 당시에는 국군통합병원으로 불렸는데, 이곳에서의 진료기록은 군부가 환자들을 폭도와 불순분자로 매도하는 자료가 됐고, 1995년 ‘5·18 특별법’ 제정 이후에는 환자들이 5·18 피해자로 인정받는 자료가 되었다.

군정보부대인 광주기무부대가 1974년에 창설한 505보안부대는 5·18 당시 무고한 시민들을 고문하고 무자비한 폭행을 자행했던 곳이다. 광주기무부대가 31사단으로 옮겨간 후 화재에 10대들의 집단폭행 사건까지 발생하면서 현재는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옛 건물로 들어서니 불에 타버린 빨간 벽돌건물, 문자가 적힌 방, 중앙계단 끝에서 펼쳐진 지하실. 어디에서도 5·18 당시의 흔적은 발견할 수 없었으나 알 수 없는 서늘함에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2015년 11월, 광주시는 5·18민주화운동 기념사업의 발전 방안 모색을 위한 마스터플랜 공청회를 개최했다.

5·18 당시 천국과 지옥이었던 국군광주병원과 505보안부대를 활용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다양한 논의가 오갔다.

서구의 한 시의원은 노인건강타운을 건립하자는 의견을 제출했고, 옛 국군광주병원은 국가폭력 피해자 치유시설로 옛 505보안부대는 체험 및 역사교육공원으로 활용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구체적인 활용방안이 수립되기까지 보다 많은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5·18민주화운동 기념사업의 목표가 오월정신을 다음 세대에 계승해나가는 일임은 잊지 말아야겠다.

5·18자유공원
생생한 역사체험의 현장

광주 서구에는 또 하나의 5·18 공원이 있다. 바로 5·18자유공원이다.

 

 

상무대 영창으로 더 알려진 이곳은 김대중컨벤션센터 인근에 자리한 공원으로 1980년 당시 계엄군의 강경 진압에 맞서 싸우던 시민들이 구금되어 군사재판을 받던 상무대 군사법정과 영창을 옮겨와 원형으로 복원·재현한 공원이다.

5·18자유공원은 1980년 5월 당시 잔인한 폭행에 피 흘리며 쓰러지던 시민군의 모습이 가슴 아프게 다가오는 곳으로 매년 5월이면 추모객들의 발길이 줄을 잇는다.

상무대 영창과 법정

5·18 자유공원 가장 안쪽, 철조망이 쳐진 곳에 6개의 영창시설이 조성되어 있다.

영창 내부는 수감자를 한눈에 감시하기 위해 6개의 방을 부채꼴 모양으로 배치해놓았는데, 좁디좁은 방에 갇힌 시민들은 다리도 펴지 못하다가 고문실로 끌려가야 했다.

 


상무대 법정은 5·18 민주화운동 당사자들을 재판하기 위해 급조된 것으로 고등군법회의를 열기 위해 만들어졌다. 1980년 당시 군사재판에 회부된 616명은 제대로 된 항의와 변호도 받지 못한 채 폭도라는 이름으로 사형과 무기징역, 20년 이하의 형량을 선고받았다.

상무대 영창과 법정은 단체 방문객을 위한 체험 교육을 통해 1980년 5월 당시의 역사를 생생하게 전달하는 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우리는 떳떳하고 자랑스럽다. 역사 앞에나 뒤에 계시는 가족들 앞에서도 민주주의 만세!

자유 광주시민 만세! 대한민국 만세!”

“어린 학생과 청년들 5명이 사형선고를 7명이 무기징역을 받았는데 어떻게 해서 사형이고 무기가 되는지 법조인인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처음 재판할 때부터 이 군법재판을 인정하지 않았다. 왜? 그것은 조작극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지시를 받고 놀아난 것처럼 꾸미지 말고 차라리 무기형이라도 좋으니 수괴로 해 달라. 명색이 교수인데 수괴가 더 어울리지 않겠는가? 그래야 사람들도 믿지 않겠는가? 참 멍청한 재판부요 공소장이다.”

- 1980년 5월 당시 군사재판에 참여했던 이들의 진술

<이 기사와 사진은 광주문화재단이 발간한 ‘문화관광탐험대의 광주견문록Ⅰ~Ⅴ’에서 발췌하였습니다.>